2021. 1. 21. 23:27ㆍ☎청파산행과여행기☎
북한산 명칭 유래
북한산의 명칭은 서울의 옛 이름 한산(漢山)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산의 북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세 봉우리인 백운대(836.5m), 인수봉(810.5m), 만경대(787m)를 아울러 삼각산(三角山), 삼봉산(三峰山) 또는 화산(華山)이라 부르기도 했으며, 삼국시대에는 아기를 등에 업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부아악(負兒岳)이라고도 했다.
역사
서울과 인접한 산들 중 가장 높고 산세가 험하여 예로부터 서울의 진산으로 여겨졌다. 고구려의 왕자 온조와 비류가 남으로 내려와 북한산 봉우리에 올라 지세를 살폈다고 전하며,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수도를 수호하는 천혜의 방어막 역할을 수행했다. 병자호란 이후 다음 세대인 1711년(숙종 37)에는 북한산 일대에 산성을 축조하고 이를 북한산성이라 불렀다. 북한산성은 북한산 능선 8km를 따라 이어지며 당시 건립된 14개의 성문 중에 대남문·대서문·대성문·보국문·용암문이 보존되어 있다.
자연환경
백운대와 인수봉, 만장봉은 중생대 쥐라기 중기의 대보조산운동으로 추가령구조곡 이남에 대보화강암이 관입하면서 형성되었다. 북한산의 기반암은 대보화강암으로, 북쪽으로는 철원, 포천과 연결되며 남쪽으로는 여주, 이천으로 연결된다. 북한산 외에 도봉산과 불암산, 수락산, 관악산, 청계산도 같은 시대에 형성되어 이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암반들을 서울화강암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후 1억년 동안 침식과 풍화작용을 거치며 다양한 형태의 지형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인수봉은 수평으로 전개된 판상절리가 발달한 암괴지형이며, 백운대는 보른하르트(bornhardt)라고 하는 화강암 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출처:다음백과]
북한산 종주산행중 집중 폭우로 조난 직전...청년의 도움으로 구사일생 산행
올(2003년) 여름들어 8주째 주말이면 연속해 비가 내린다. 그러나 가끔은 예보가 틀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1970년(35년전) 군에서 만난 전우(김봉묵)에게 전화를 한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는데 예정된(북한산종주산행)을 어떻게 할까? 그대로 산행을 강행할까, 말까? 의논을 한다.
그러자 친구가 말한다. 시작도 안하고 포기 하는 것 보다는, 일단 계획대로 진행 하자고 한다.아마 친구도 북한산 종주 산행 계획에 마음이 들떠 있었나 보다. 나 또한 같은 기분으로 마음이 들떠, 단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새벽 4시반이다.
아파트 베란다문을 여니 세찬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친구와 구파발역 분수대 광장에서 6:30분 만나는데 걱정이 태산이다. 그러다 보니 또 마음에 갈등이 생긴다. 그런데 이때 마침 친구에게 다시 전화가 온다. ‘형 비가 많이 오는데 괜찮을까.’하고 묻는다. 글쎄, 어떻게 할까? 전화 대화가 둘이 다 포기 보다는 산행에 미련이 있다.
그래서 만남 시간을 1시간 느춰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엔 아내와 두 아들들이, ‘아버지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데, 친구분에게 다시 전화해 산행을 취소 하라고 성화다.’ 하지만 춘향이 한번 먹은 마음 일편단심(一片丹心)인데, 조금전 한 약속을 바로 뒤집는다는 것이 친구에 대한 결례다. 그냥 강행이다.
산행에 나서기전 2001/05/01 한국의 산하에 북한산 종주 산행기를 쓴, 청종님의 산행기를 눈감고 외울 정도로 숙지 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다행히 비가 멈췄다. 서둘러 배낭을 메고 부평역으로 향하며 신앙도 없으면서 마음속으로 기도를 한다. ‘하느님! 비옵니다. 오늘 하루 비를 멈추어 주십시오. 친구와 나에게 행운의 날을 주시 옵소서...’
부평역에서 전철을 갈아타며 구파발 분수대광장에, 도착 하니 07:00시다. 조금 있으니 친구가 도착 했다. 그런데 다시 또 이슬비가 내린다. 낭패다. 분수대 광장에 모였던 다른 산꾼들은 일찌감치 산행을 포기하고, 끼리끼리 선술집에 모여 해장을 한다.
그러나 친구와 나는 북한산성 입구행 버스를 타고 달려, 하차해 원효봉 들머리로 이동한다. 원효봉 코스는 지질이 마사토 구간이 길다. 그래서 각별히 미끄럼으로 인한 사고에 주의해야 한다. 산행을 하다보면 출발후 3~40분 지났을때가 제일 힘이든다. 친구와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씩씩 오른다.
그런데 이렇게 이른 시간에 원효봉 방면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다. 반갑게 수고하십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들은척도 안하고 갈길을 간다. 멋쩍다. 그 모습 보며 대개 산이좋아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호연지기" 정신이 있어, 상호 인사는 기본이다. 그런데 저이들은 기본이 안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시구문을 조금 지나니 매표소가 나온다. 그런데 시간이 일러 공단 직원들이 아직 출근전이다. 그 바람에 뜻하지 않게 북한산국립공원을 공짜로 입산한다. 기분이 좋다. 솔직히 입장료 몇푼 안내서가 아니다. 왜 있잖아요. '공짜는 양잿물도 먹는다.'란 말.
매표소 지나 한 바탕 땀 흘리며 오르는데, 우리 뒤에 40대 정도의 젊은이가 발걸음도 가볍게 휘적휘적 올라온다. 그러더니 잠시 우리가 휴식을 취하는 옆에 앉으며, ‘어디서 오셨어요.' 하고 묻는다. 서로 인사를 나눈다. 그분은 고양시 화정지역 인근에서 오신(우상식)씨다. 그런데 이분 산행 실력이 상당히 준족이다.
우리는 그분에게 ‘군에서 만난 전우 사이인데, 원효봉에서 출발해 백운대 찍고, 우이암, 도봉산 선,만,자 찍고 사패산까지 이어지는 북한산국립공원 종주중이라고 소개를 한다. 그러자 그분이 말한다. 연세 드리신 것 같은데 체력이 대단들 하시다고 격려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사실은 이번 산행이 초행길인데 원효봉지나, 북문에서 곧바로 백운대로 올라 갈수 없냐고 물으니 놀라는 표정이다. 그러면서 물론 가실 수는 있는데,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날은 암벽등반(염초봉지역)이 쉽지 않으니, 좀 멀드라도 정상코스로 그냥 우회해 위문으로 가시라고 일러준다.
위문 방향 등로는 돌계단 길이다. 불행중 다행인것은 조금전까지 내리던 비가 소강상태다. 그 바람에 우산을 접으니 날아갈 것 같다. 우상식씨가 우리에게 인사를 하며, 원효암 방향으로 간다. 아마 독실한 신자이신 것 같다.
이제부터 암릉 구간이다. 그러나 위험 구간에 로프가 설치되어 안전하다. 하지만 어제밤, 그리고 새벽에 내린비로 바위에 물기가 흥건하다. 친구와 나는 서로 안전을 당부하며 원효봉 정상에 올랐다.
그런데 원효봉 정상엔 정상비가 없다. 다만 백운대에서 원효봉쪽으로 이어지는 북한산성 성곽 축조물과, 드넓은 치마폭을 드리우고 있는 치마바위, 암반이 우리를 보고 쉬어가라 미소 짓는다. 치마바위 미소는 나보고 한 미소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내 친구, 골드 미남 봉묵씨에게 던친 추파일 것이다.
치마바위 추파는 못받아도 일단 치마폭에 퍼질러 앉아, 가던길을 멈추고 휴식을 취한다. 건너편에 '원효와 동문수학' 했다는 의상대사의 이름딴 의상봉‘이 가물가물 운해속에 보일락 말락 한다. 그리고 그 산기슭에 사찰이이 있다. 그런데 사찰에 모신 청동불상이 먼발치에서 보는데도 어마어마 하다.
그런데 조금전 원효암으로 가셨던 우상식씨가 다시 원효봉에 오르셨다. 반가움에 친구가 배낭에 넣어온 매화주를 한 잔씩 나누어 마시고 우리는 위문을 가기 위하여 하산하듯 내려선다. 그런데 지난 밤, 그리고 아침에 내린비로 바윗길이 여간 미끄러운 것이다.
친구와 나는 서로 조심 할것을 당부하며, 위문 방향 오르막길에서 우상식씨와 헤어진다. 점차 가팔르게 이어지는 위문 오름길은 숨이 턱에 걸리는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무슨 작전명령을 완수하기 위한 군인들 처럼, 비지땀을 흘리며 고행(苦行) 산행을 하고 있다. 그런데 친구는 힘들다는 소리도 않고 마치 묵언수행(默言修行) 임무를 수행 하는 도인(道人)처럼 묵묵히 내 뒤를 따른다.
이럴때 친구가 오늘 산행은 이쯤에서 접고. 다음 날씨 좋은날 다시 도전 합시다. 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런데 우직한 친구는 포기 소리는 커녕, 힘들다는 소리도 않고 묵묵부답이다. 그런데 이때다. 아니, 가을도 아닌데 멀쩡한 나무에서 떨어진무슨 도토리가 바닥에 즐비하다. 이상하다. 분명 병든 나무는 아닌데 무슨 이유일까?
궁금증을 앉고 가는데 이때다. 갑자기 내 머리를 딱 하고 때린다. 깜짝놀라 주위를 살피니 제법 굵은 도토리알이, 떨어지며 내 머리에 맞은 것이다. 범인은 분명 다람쥐 아니면 청솔모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고놈들이 고의적으로 나를 노리고 있다 도토리를 따서 던진 것이 분명하다.
지난밤 꿈에 산행을 하는데 앞서간 사람이 분명히 밟고 지나간 바위가, 갑자기 무너져 내리며 나를 향해 굴러온다. 그 바람에 비명을 지르며 꿈에서 깼다. 별일 다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아무래도 그 꿈땜을 한 것 같다.
드디어 멀리 전방에 위문이 아득히 보인다. 그러나 우중 산행중인 우리는 혹독한 비지땀을 흘리며 오른다. 힘겹게 위문에 도착했다. 그런데 비 때문에 친구와 전화하며 산행을 서두르느라 아침을 걸렀다. 그러다 보니 체력소모가 심하다. 잠시 막간을 이용해 간식을 먹으며 주변을 살핀다.
그러나 백운대에 오르는 산꾼들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다. 휴식을 끝내고 가팔르게 이어지는 암릉 코스다. 다행히 바위에 보철 계단을 만들어 비가 내려도 안전엔 큰 문제가 없이 오른다. 나는 한손에는 우산, 또 한손엔 카메라를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칫 젖은 바위를 지나다 방심하면, 앗차하는 순간에 사고를 당할 수 있다.
비는 점점 더 세차게 내리더니 바위홈을 따라 빗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그간 많은 산행을 했지만 이번처럼 위험을 동반한 우중 산행은 처음이다. 그런데다 자욱한 안개 때문에 코앞에 보이는 인수봉 정상이 보였다 숨었다 술래잡기를 한다.
청명한 날 같았으면 모처럼 힘들게 오른 백운대 정상에서 친구와, 인증샷을 남길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하늘이 원망스럽다. 그 와중에 반가운것은 어느 대학 산악동아리 팀인지, 7~8명의 학생들이 우리를 보고 반가히 인사를 하며 조심 하시라고 염려를 해준다. 학생들 뒤를 따라 우리도 백운대에서 하산을 한다.
뱃속에선 쪼르륵 소리가 난다. 그러나 앞을 분별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비가 내린다.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태다. 어쩔 수 없이 잠시 목책을 넘어 공터에서, 김밥 한 알을 입에 넣는데 더 세찬 비가 쏟아진다. 할 수 없이 다시 배낭을 챙겨메고 우산을 받쳐들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서서 김밤을 먹는다. 그런데 목이 메더니 한 수 더떠, 딱꾹질이 난다.
와중에 갑자기 그 옛날 농촌 생활할때, 우스게 소리로 전해온 유머어가 생각난다.
‘멀쩡한 하늘에서 갑자기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쏟아져 내린다. 그런데 우산은 없지요. 거기다 갑자기 설사(泄瀉)까지 나지요. 바지 허리빠는 옭매져 풀리지 않지요. 꼴지개는 작대기가 부러져 뚝 아래로 굴렀지요. 풀뜯던 소는 천둥 소리에 놀라, 이리뛰고 저리뛰고 경거망동 하지요.’ ......,
그런데 이날 바로 내가 그 형국(形局)이다. ㅋㅋㅋ 어쩔 수 없이 판초우의를 착용한다. 그런데 내것은 파란색인데, 친구는 국방색이다. 영락없는 군인이다. 친구와 나는 1970년 군에서 만난 전우 사이다. 친구는 충북 진천 태생이고, 나는 경기도 파주 출신이다.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릴때는 하산길이 더 위험하다. 그 길을 따라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내려오다 보니, “제회 베를린 올림픽 (1936년)에서 금메달을 따신, 손기정(孫基禎)선수‘께서 현판글을 쓰셨다는 백운산장(白雲山莊)에 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비를 그으며, 파전에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목구멍에서 자위질을 한다.
그러나 우린 갈길이 멀다. 아쉬움을 달래며 허겁지겁 백운산장을 내려선다. 도선사 내림길은 계곡에 빗물이 불어나 등산화를 신고 첨벙첨벙 지난다. 웃기는것은 그 와중에 '빈대떡과 막걸리'를 두고 지나쳐 오는 기분이 영락없이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스쳐 지나온 기분이다.
이럴줄 알았으면 차라리 이런날은 집구석에서, “빈대떡이나 부쳐먹지”란 노래말처럼 빈대떡이나 부쳐 먹으며 오수(午睡)나 즐길걸......, 그 사이 도선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여기 부터는 아스팔트길이다. 우리는 판초우의 패션을 뽐내며 보무도 당당히 걷는다. 친구의 판초우의 팻션이 폼난다. 한방 찍었으면 작품될 것 같다. 그러나 비를 피해 배낭속에 잠자는 카메라를 꺼낼수 없다. 무주공산(無主空山)이다.
우이동 버스 정류장이다. 잠시 우리가 가야할 진행 방향을 살핀다. 건너편에 우이공원 이정표가 보인다. 다행히 세차게 내리던 빗줄기가 소강상태다. 빗속에서 '게눈 감추듯 먹은 점심'이 시원치 않다. 가던길을 멈추고 자리를 잡고 비로서 제대로된 점심을 먹는다. 한 잔대신 음료수로 건배를 한다.
요기(療飢)를 하고 나니 생기가 난다. 거기에 판초우의까지 벗으니 날아갈 것 같다. 속보 행군이다. 우이암매표소를 지나 차츰 고도를 높히며 우이능선 방향으로 가는데 식곤증인지 졸음이 온다. 휘청거릴 정도다. 청명한날 같으면, 잠시 쉴꼄 10분정도 토끼잠을 자고 가도 된다.
멀리 "원통사" 이정표가 보인다. 그리고 낮으막한 언덕을 넘으니 저 아래 보문산장이 보인다. 그런데 또 비가 내린다. 갈길은 멀지요. 초행이라 거리 예측도 불가지요. 걱정이 태산이다. 한마디로 '종로로 갈까요. 청량리로 갈까요.' 다.
문제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찾어봐도 이정표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어린시절 했던대로, 손바닥에 침을 뱉어 탁쳐 침이 향하는 방향으로 가기로 하고, 장난삼어 침을 튀겨 보니 침이 정확히 우이암 방향으로 튀었다. 친구와 나는 파안대소 하며 너덜길을 지나 우이능선에 오른다.
능선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 홀가분하다. 그런데 이 또 무슨 복병이란 말이가? 갑자기 못가 하며 막아선 것처럼 커다란 바위가 갈길을 막는다. 아무리 우회로를 찾아도 소용없다. 어쩔 수 없이 릿지를 해서 지나야 하는데 의지할 로프도 없다. 암벽 산꾼이 아니다 보니 보조 장비도 없다. 다리가 후들 거린다. 꼭 박수무당 작두타는 심정이다.
그런데 이때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큰 매낭을 메고, 양손엔 스틱을 든 청년이 은인처럼 나타났다. 그리더니 성큼성큼 바위를 타고 내려와 우리를 안전하게 통과시켜준다. 너무 고마워 어느 방향으로 가냐고 물으니, 젊은이는 만장봉까지 간다며 휘적휘적 구름에 달가듯 지나간다.
그래 사실은 우리도 사패산까지 가는데, 동행하면 안되겠냐고 묻는다. 그러자 청년은 조금 있으면 어두워 지는데 렌턴은 챙기셨냐고 물으며, 보온병에서 녹차를 따라 준다. 그러면서 산행중 만약 지쳐 체온이 떨어지고나 사고를 대비해 항상 더운물을 준비해 다니시라고 일러준다.
청년이 건네준 따스한 녹차를 마시고 나니, 정말 거짓말처럼 긴장했던 몸이 사르르 풀리며 생기가 돈다. 산체험을 했다. 뿐만 아니다. 청년은 우리들더러 자신의 부모뻘 되시는데, 이렇게 산행 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다며, 잠시 쉴때마다 슝늉과 따스한물, 귀한 보이차를 대접 하며 우리를 극진히 안내한다.
청년의 심성이 하도 고마워‘ 이 늦은 시간에 왜 혼자 만장봉에 가느냐 물었다. 그러자 청년은 원래는 만장봉에서 산악동아리팀 일행들과 암벽등반을 계획 했는데, 비가 많이 내려 포기하고 자신만 워킹(working)삼어 만장봉까지 갔다 하산 할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청년이 말한다.
아무래도 이런 날씨 아래 오늘 사패산까지 종주는 무리니, 저하고 만장봉까지 가셨다 같이 하산 하시지요. 하고 권유한다. 친구와 나는 젊은이의 제안에 동의 하며 뒤를 따른다. 그런데 조금전까지 그만하던 비가, 갑자기 코앞을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집중 폭우가 쏟아진다.
그러자 청년이 말한다. 아무래도 그냥 스처 지나가는 비가 아닌것 같은데, 그냥 여기서 하산을 하시지 한다. 이때 시간이 오후 5시다. 갑자기 하늘이 깜깜해지며 물폭탄같은 비가 쏟아진다. 무섭다. 겁이난다. 우리가 서있는 지점에서 도봉산 매표소까지는 약 3.5km다.
큰 문제는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세차게, 쏟아지는 집중 폭우를 둟고 안전하게 하산할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자칫 잘못하면 조난당할지도 모를일이다. 청년이 우리를 지켜주러 온 수호신 같이 의지가 된다. 셋이 서로 각별히 안전을 챙기며 하산 하는데, 사방에서 계곡물이 범람해 우리가 갈길을 막는다.
더 걱정은 이러다 산사태 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계곡물이 모여 더크게 범람하는 바람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우회로를 찾는다. 그렇다고 공식적인 우회로가 아닌, 위급상황을 피하기 위한 대책이다 보니, 돌가닥다리, 가시덤불로 엎어지고 찢기고 산전수전(山戰水戰)을 하며 수마(水魔) 현장을 피하며 내려간다.
그런데 얼떨결에 보니 저 만큼 멀리 도봉산 매표소가 보인다. 그러나 매표소 방면 도로는 집중 폭우로 무릅을 넘어 허리까지 찰 정도도, 시뻘건 물길이 노도(怒濤)처럼 포말(泡沫)을 이루며 흐르고 있다. 우리는 죽기 살기로 우회, 우회를 거듭하다 가까스로 도봉산매표소에 도착했다. 퓨휴! 안심이다.
산행중 처음으로 경험하는 악조건 산행이었다. 옷이 젖어 마치 물에빠진 생쥐꼴이다. 그렇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산행중 우연히 만난 청년의 큰 도움으로, 친구와 나는 조난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하산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만약 청년을 만나지 못했다면 꼼짝없이 조난당해 생과사(生과死)의 갈림길에 설뻔했다. 아찔하다.
상가지역에 도착하니 오후 7:20분이다. 우리는 청년에게 오늘 큰 은혜를 입었다. 가볍게 식사나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청년은 극구 사양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청년을 그냥 보낼 수 없다. 거듭 사정을 하자 청년은 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동석했다.
저녁 식사를 하며 서로 통성명(通姓名)을 했다. 청년의 이름은 “김진태”라고 소개를 한다. “김진태씨!” 당신은 내 친구와 나의 생명에 은인입니다. 그 인연 잊지 않겠습니다. 고마웠습니다. 감사 합니다. -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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