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하천 굴포천(堀浦川) 지명유래

2020. 11. 16. 14:59☎청파의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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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포천 현황

 

굴포천은 한강하류부에 위치한 한강의 제1지류로 인천광역시 부평구 일신동 철마산에서 발원하여 인천광역시 부평구의 도심지의 공단지대를 지나 부천시를 통과하여 경기도 김포시 신곡동의 신곡 양 · 배수장에 이르는 인천에서 가장 긴 지방하천이다.

 

인근 지방하천인 청천천, 계산천, 귤현천, 갈산천과 함께 실개천인 세월천, 목수천, 산곡천, 구산천 등이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러든다. 굴포천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는 동부간선수로와 서쪽에는 서부간선수로가 남북으로 축조되어 있다.

 

굴포천은 지형적으로 저지대를 이루고 하천의 폭이 그리 넓지 않은데다 밋밋한 높낮이를 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적은 강우에도 쉽게 침수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지형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굴포천은 부평시내의 생활오수와 공단지역의 산업폐수가 함께 유입되어 오염물질 배출부하량이 인천시의 하천 중 가장 컸으나 자연형 하천 조성사업 이후 수질이 급격히(상류부등급) 개선되었다.

 

굴포천과 관련된 유래

 

굴포(堀浦)’라는 말은 판개울을 한문으로 표현한 말로써 인공으로 팠다는 의미가 이름에 포함되어 있다. 옛날에 삼남지방에서 정부에 바치는 곡물(삼남미)를 싣고 바다를 통해 강화 손돌목을 거쳐 한강을 거슬려 올라가 용산으로 옮겨왔다.

 

그런데 손돌목이라는 곳이 바다밑에 사습뿔같은 암초가 많아 밷르이 자주 조난을 당했다고 한다. 고려 고종때 최충현의 아들 최이라는 사람이 이 위험한 손돌목을 피하기 위해 부평 만월산 칠성약수터에서 발원해 부평벌을 가로질러 한강으로 흐르던 하천을 개조하고, 인천 제물포 쪽과 연결해 배가 다닐 수 있는 수로개설을 시도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300년 뒤인 조선 중종 대 김안로가 최이의 계획대로 하천을 피기 시작했지만 원통이 고개를 뚫지 못했다고 한다. 그때 뚫지 못한 곳이 간석이고 그때 판 하천이 지금의 굴포천이다. 그 때의 이름들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굴포천 유래에 따른 이야기

 

굴포천(堀浦川)은 인천광역시의 부평구 금마산 북사면의 공설묘지 내 칠성약수터에서 발원하여 부평구와 경기도 부천시의 경계를 이루며 북류하는 하천이다. 김포시를 지나 한강에 유입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대교천(大橋川) · 직포(直浦) · 굴포(堀浦)라는 세 가지 지명이 등장한다. 이 중 대교천에 대한 설명을 보면 "근원은 원적산에서 나와서 북쪽으로 흘러 직포가 되고, 김포현을 지나면서 굴포가 되어 제법진(濟法津)으로 들어간다."고 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면 오늘날의 굴포천 상류는 대교천, 중류는 직포, 그리고 김포 일대의 하류는 굴포라는 지명으로 구분되어 불렸음을 알 수 있다.

 

굴포라는 지명은 부평과 인천 사이의 산줄기에 위치한 원통고개 · 무네미고개 · 안하지고개와 함께 고려와 조선 시대에 걸친 운하 굴착과 관련된 지명 유래를 갖고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굴포천 중류에 '직굴포(直掘浦)'라는 지명이 보이고 하류에 '굴포(掘浦)'라는 지명이 확인된다.

 

굴포천이 흐르는 김포에서도 관련 사료 기록이 확인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김포현의 기록에 의하면 "굴포천은 김포현 동쪽 17리 지점을 흐르고, 하천의 근원이 인천부(仁川府) 정항(井項)에서 나오는데, 북쪽으로 흘러 김포현의 북쪽 5리 지점을 흐르는 고도강(孤島江)을 지나서 통진현 연미정(燕尾亭)으로 흘러든다. 강에 해마다 다리를 놓았는데 그 비용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김포현 출신 양성지(梁誠之)가 공조 판서가 되었을 때 계청하여 도선(渡船)을 설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김포읍지에서는 굴포천을 부평의 대교천(大橋川) 하류로 기록하였다. 그러나 여지도서와 그 이후에 발간된 지리지 및 지도에서는 굴포천이라는 지명을 찾기 어렵다. 조선 시대의 고지도서에서는 김포와 부평의 경계를 형성하는 하천으로만 표기되어 있고 굴포천이라고 기록된 것은 많지 않다.

 

굴포천은 경사가 매우 완만하고 하폭이 작아 통수(統水) 능력이 부족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하천은 한강으로 유량을 신속히 배출하지 못하고 특히 홍수시 굴포천 유역에 침수 피해를 주어 왔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착공된 것이 굴포천 방수로사업이다. 즉 하천의 유량을 황해로 직접 방수하기 위한 유로 건설을 뜻한다. 그 후 공사가 진행되면서 이 사업은 경인운하 착공 사업으로 확대되었다.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위키백과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