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86p]제2장 좋은 글의 이론적 요건은 무엇인가···4. 명료성 5. 정확성

2020. 2. 26. 18:47☎박동규교수문학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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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좋은 글의 이론적 요건은 무엇인가···4. 명료성 5. 정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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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교수님의 "글쓰기를 두려워 말라" 책을 몇번 읽었지만, 읽는 당시는 이해가 되다가도 책을 놓고 나면 멍멍하다. 그래서 이번엔 아예 교수님 저서 "글쓰기를 두려워 말라" 책 전권을 타자를 쳐, 블로그, 카페에 올려 시간, 장소 구애받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저자이신 교수님의 양해를 구합니다.


4. 명료성


  명료성이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명확이 드러나 있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글이란 일기와 같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디까지나 독자를 전제로 하여 그 어떤의미의 전달을 목적을 삼는 것이다. 따라서 명료성은 빠뜨릴 수 없는 좋은 글의 요건이 된다. 특히 정보의 전달을 목적으로 한는 섦여문이나 주장의 설득을 목적으롤 하는 논증문의 경우 이러한 명료성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건이 된다. 글의 명료성을 확보하기 우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에 유의하여야 한다.

 

  1) 평이하게 써야 한다


  되도록이면 평이하게 써야 한다. 즉 쉬운 말로 의미를 전달하여야 한다. 평이하게 쓰라는 것은 어려운 말 자체를 쓰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 아니다. 쉽게 쓸 수 있는 것을 굳이 어려운 말로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말을 쓰는 것이 자신의 지식이나 교양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잘못되 생각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러한 생각을 일러 현학적 태도라 한다. 애써 자신과의 교양과 지식을 과시하려는 이러한 현학적 태도는 가작 경계해야 할 태도이다. 쓸데없이 한자어나 외래어 외국어를 남발하는 태도, 난해한 개념어나 추상어를 선호하는 태도 등이 모두 의미전달을 어렵게 만드는 현학적 태도이다. 되도록이면 쉬운 우리말로 풀어쓰고 구체적인 표현으로 의미를 상술하여야 한다. 쓰고자 하는 내용에 대해 스스로도 잘 모르거나 도는 알고 있다. 하더라도 자세하게 설명해줄 능력이 없을 대 이러한 현학적 태도가 많이 나온다는 것을 독자는 알고 있다.  


  지식은 광의로 보아 현실적 과제의 해결과정에서 촉발된 것이다. 그러나 일단 그것이 하나의 지식으로 성립된 후에는 사회적, 역사적 현실에서 유리되어 자족성과 독립성을 유지하게 된다. 이리하여 지식의 활동인 문제의식이나 개념이 형식화, 인습화되기 쉽다. 따라서 이러한 지식의 형식화, 인습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식이 본래 어떠한 현실과제에서 촉발되었는가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쉽게 써도 될 것을 괜히 어렵게 쓴 글이다. 평이한 내용을 굳이 어려운 표현을 써서 이해를 어렵게 하였다. 표현이 쉬우면 독자가 글의 내용을 얕잡아보게 되지는 않을까 겁을 낸 것이다. 그러나 실상 독자는 자신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가장 좋아한다. 윗글을 보다 쉬운 표현으로 교쳐보면 다음과 같다.


  넓은 의미에서 지식이란 현실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일단 그것이 하나의 지식으로 성립되게 되면 이제 지식은 애당초 자신이 생겨났던 그 현실을 떠나 지식 그 자체로서의 독립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다 보면 지식의 중요한 내용인 문제의식이나 개념 등은 더 이상 변할 수 없는 완고한 것이 되어 딱딱하게 굳어버리기 쉽다. 형식적이고 인습적인 지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의 형식화 인습화를 피하게 위해서는 그 지식이 애초에 어떤 현실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겨난 것인지를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2) 간결하게 써야 한다


  복잡한 사고의 내용을 표현하려면 문장이 길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되도록이면 빫은 문장으로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다. 쓸데없는 수식어나 완곡어법은 피하는 것이 좋다. 의미의 전달과 특정한 뉘앙스이 환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표현만으로 문장을 축양하여야 한다.

  또한 하나의 문장 안에 주어와 서술어의 관계가 네 번 이상 반복 된다면 이는 반드시 검토하여야 할 나뿐 문장이다. 이러한 문장은 얼마든지 두 개의 짧은 문장으로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장의 구조가 복잡해지면 문장성분 사이의 호응에  혼동을 일으켜 어법에 맞지 않는 글을 쓰기가 쉽다. 글쓰는 이가 어법에 맞게 썼다 하더라도 이를 독해해야 하는 독자의 고충은 격심할 것이다. 지나치게 길고 장황한 문장은 명료성을 해쳐 글읽기의 효율성을 크게 떨어뜨리게 된다.

  문장을 간ㄴ결하게 쓰는 요령에 대해서는 경제성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자세하게 논의가 될 것이다.


  3)의미의 모호성을 피해야 한다.


  실제적으로 명료성을 해치는 가장 구체적인 경우는 문장의 의미에 모호석이 있는 경우이다. 의미의 모호성이란 한 문장의 의미가 여러 가지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이 경우 독자는 글쓴이가 전달하려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몰라 내용을 분명하게 파악할 수 없다. 의미의 모호성이 유발되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다음의 예문을 보자


(1) 어젯밤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2) 김 선생님은 호랑이다.

(3) 내가 좋아하는 선배의 친구는 나를 싫어하고 있다.

(4) 그는 소리를 지르면서 달아나는 범인을 쫓아갔다.

(5) 철수는 그날 아침 영수에게 어젯밤의 꿈이 불길하여 아무래도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길것만 같다고 예기했다. 그런데 그날 밤 교통 사고를 당한 것을 바로 그였다.

 

  (1)의 문장에서 우리는 '돌아가셨다'는 말의 의미를 본래 있던 장소로 되돌아갔다'는 의미와 '죽었다'는 의미 두 가지로 해설 할 수 있다. 이러한 모호성은 어휘 자체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어 생겨나는 모호성이다. 이를 일러 허휘적 모호성이라 한다.

  (2)의 문장에서도 '호랑이'의 의미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김 선생님이 실제로 호랑이일 리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일단 이 말을 하나의 비유로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그 비유의 구체적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그것은 무섭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고 용감하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어떤 연호성은 어떤 비유의 함축이다. 다양함으로 인해 생기는 모호성이다. 이를 일러 은유적 모호성이라 한다.

  (3), (4), (5)의 문장 역시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설될 수 있다.

  (3) 에서는 내가 좋하는 사람이 선배인지 그 친구인지 모호하다.

  (4) 에서는 소리를 지른 것이 나인지 범인인지 그 친구인지 모호하다. 그리고

  (5)에서는 그가 영수인지 철수인지 모호하다. 이러한 모호성은 문장의 구조 대문에 일어나는 모호성이다. 이를 일러 구조적 모호성이라 한다.

  어휘적 모호성이나 은유적 모호성은 전체 글의 흐름을 보아 대충 올바른 의미를 가려낼 낼 수가 있다. 따라서 그다지 심각하지는 않은 차원의 모호성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모호성을 유발시키기는 것이 허용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될 수 있으면 보다 명료한 표현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보다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구저적 모호성이다. 구조적 모호성은 글의 구조 자체에서 유발되는 모호성이어서 글 전체의 흐름을 통해서도 올바른 의미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글 전체의 의미를 완전히 뒤바꾸어놓을 만큼 치명적인 독해상의 장애를 이야기 한다. 따라서 글의 명료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구조적 모호성이 유발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이러한 구조적 모호성을 피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들을 사용할 수 있다. 우선 쉼표와 같은 구두점을 사용하여 글의 의미를 분명히 할 수 있다.(4)에서 '그는'이나 '소리를 지르면서'의 뒤에 쉼표를 붙이면 수식의 대상이 각기 범인과 그라는 것을 분명히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의미가 분명히 드러나도록 문자의 조직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 역시 (4)에서 '그는'을 '쫓아갔다'의 앞으로 옮겨놓으면 그 의미는 명확해질 것이다. 글의 명료성을 확보하는 데 가장 좋은 문장의 조직은 수식어와 피수식어 등과 같이 서로 관련을 지닌 어휘들을 되도록이면 가까운 곳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다음으로 보다 분명한 의미를 드러낼 수 있는 정확한 어휘를 찾아 표현을 바꾸어본다. (5)에서 첫 문장의 '그'는 당연히 영수로 해석된다. 만약 철수라면  이 '그'는 '자기'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한 어법이다. 하지만 두 번째 문장의 '그'가 누구인지는 결코 알 수 없다. 이때는 그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혀주는 것밖에는 모호성을 피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문장 안에서 구조적 모호성을 유발하는 대표적 어휘가 바로 지시어이다. 이점을 잘인식하여 지시어를 사용 할 때에는 모호성을 유발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 하여야 할 것이다.


  4) 막연한 표현을 피해야 한다.


  막연한 표현이란 담고 있는 의미, 즉 내포가 지나치게 넓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잘 알 수 없는 표현을 말한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명확해졌다.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다 같이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 혼자 잘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도와 힘을 합칠 때에만 살기 좋은 사회가 이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겨 내야만 한다. 단결하여 고난을 이겨내는 자에게만 영광된 미래가 보장될 것이다.


  아주 힘이 었고 단호하게 주장을 펼치고 있는 글이다. 내용도 아주 타당한 것이어서 더욱 공감이 간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지 하나도 알 수가 없다. 어떤 것이 '우리 사회의 발전'이고 '살기 좋은 사회'인지, 이를 위해 우리는 어떻게 '노력'하고 '잘'해야 하는 것인지, '어려움'이라면 도대체 어떤 어려움을 말하는 것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명료한 것이 없고 모든 것이 막연하기만 하다.

  이처럼 구체적인 내용이나 근거 없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 말을 늘어놓는 것은 아주 좋치 않은 태도이다. 학생들이 쓰는 논술문 같은 글에서 이러한 예를 흔히 볼 수 있다. 결론에 가서 괜히 '우리 모두 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라는 식의 표현을 덧붙인다든지, 또는 어떤 주장을 할 대 괜히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는 식의 표현을 덧붙인다든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내용을 덧붙이는 것은 사실 아무 쓸데가 없다. 주자의 내용이 명료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의 짜증만 다해줄 뿐이다. 하나마라한 상식적인 내용으로 모자라는 분량을 채우려는 안간힘 같아 보일 뿐이다. 어떤 식의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여야 하는지 그리고 중요하다면 왜 중요한지 분명하게 드러내주어야 하는 것이다. 초등학생의 글을 보면 '우리 모두 노력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자'라는 식의 표현이 자주 아온다. 명료성이 없는 글이 얼마나 유치하게 보이는지는 이를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의도적으로 막연한 표현을 쓰는 경우도 있다. 비유나 상징의 효과를 노리는 경우가 그것이다. 비유나 상징은 구질구질한 설명 없이 한두 마디로 많은 내용을 전달하려는 목적에서 주로 쓰인다. 예를 들어 '현대문명은 또 하나의 바벨탑이다'라는 표현은 바벨탑이라는 어휘 하나만을 가지고서 현대문명이 지니고 있는 커다란 능력과 자만심, 그리고 이로 인한 자멸의 위험성 등의 포괄적인 내용을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적절한 비유와 상징을 구사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다라서 글쓰기의 초보자들은 이를 함부로 흉내내지 않는 것이 글의 명료성을 해치게 될 뿐이기 때문이다. 특히 객간성을 중시하는 설명이나 논증의 글에서는 비유와 상징은 앞뒤의 문맵을 통해 그 의미를 누구나 명효하게 알 수 있을 때에만 사용하여야 한다.


5. 정확성


  정확성이란 의미에 모순이 없고 어법상의 각종 규칙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명료성이 글의 의밀를 분명히 전달하는 것을 가리킨다면 정확성은 글의 의미를 올바로 전달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정확성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논리에 맞는 문장, 그리고 어법에 맞는 문장을 써야만 한다. 그리고 논리에 맞는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어휘를 적절하게 선택해야 하고 글의 내용에 논리적 모습이 없어야 한다. 또한 어법에 맞는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문법을 준수하고 표준어를 사용하여야 하며 띄어쓰기와 문장부호의 사용에도 어긋 남이 없어야 한다.


  1) 논리에 맞는 문장을 써야 한다.


  ▶ 적절한 어휘를 선택해야 한다.

  근데문학사상 사실주의의 창지자로 불리는 플로베르는 일물일어(一物一語)의 원칙하에 작품을 썼다고 한다. 일물일어란 하나의 대상을 가리키는 어휘는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 말은 곧 대상을 가장 정학하게 드러낼 수 있는 어휘를 찾아낼 때까지는 그 대상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디고 하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어휘의 적절한 선택을 위해 얼마만큼 고심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비록 플로베르처럼 가장 정확한 어휘를 찾아 내려는 노력은 못 한다 하더라도 보다 정확한 어휘를 찾아내기 위한 노력만큼은 게을리 하니 말아야 할 것이다.

  다음의 문장들에서 어휘를 부적절하게 선택한 구체적인 예를 볼 수 있다.


(1) 어머니는 불교를 믿지만 나는 교회를 믿는다.

(2) 이번 일요일에 나하고 테니스를 치러 가자.

(3)국어시험을 많이 틀렸다


    ⑴에서 '교회'는 '기독교'로 바꾸어야 한다. 교회는 건물이므로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리고 (2)의 '치러 가자'는 '하러 가자'로 바꾸어야 한다. 치는 대상은 테니스가 아니라 테니스공일 것이기 때문이다. (3)의 '시험'은 '시험문제'로 바꾸어야 한다. 시험을 틀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구어에서는 어휘가 조금 부적절하게 사용되었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 의미를 전달하는 데 큰 무리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어에서는 사정이 아주 다른다. 이러한 부적절한 어휘의 사용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문어의 첫 번째 윈칙은 바로 정확성이기 때문이다. 다라서 구어에서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사소한 것이라 하여 어휘의 오용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크게 망신을 당하게 된다. 문맥에 맞이 않는 어휘를 쓰는 것은 대부분 몰라서 그런다기 보다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


  ▶ 내용에 논리적 모순이 없어야 한다.

  의미의 정확한 전달을 위해서는 문장이 논리적으로 조직되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문장을 일러 논리적 호응을 지킨 문장이라 한다. 문자의 논리적 호응 역시 어휘의 적절한 선택과 마찬가지로 지식보다는 정성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수돗물이 오염된 것으로 밝혀져 시민 건강에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이말은 예전에 아나운서들로부터 흔히 듣던 말이다. 언뜻 들으면 아무런 잘못이 없어보인다. 그러나 이 말은 인과관계를 잘못 표현해 내용상의 논리적 모순을 지니고 있다. 즉 수돗물이 오염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시민 건강이 우협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수돗물이 오염되어 시민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가 맞는 표현이다. 이 문장이 논리적 호응을 지키지 못한 것은 순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2) 어법에 맞는 문장을 써야 한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그것이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적절한 표현을 얻어야만 한다. 좋은 표현이란 화려한 수식으로 되배된 미시여구를 쓰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좋은 표현의 으뜸가는 조건은 바로 어법에 맞는 문장이다. 어법을 지키지 못한 글은 아무리 훌륭한 내용과 멋있는 표현을 지녔다 하더라도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이런 경우를 한번 상상해보자. 여기 심오한 철학적 내용을 지닌 글이 하나 있다. 내용에 걸맞게 어려운 개념과 아름다운 수사가 장엄하게 펼쳐진다. 그런데 읽다보니 맞춤법이 틀린 어휘가 가끔 나온다 문법을 지키지 않는 비문도 가끔 나온다. 띄어쓰기도 가끔 틀린다. 이렇게 된다면 그 훌륭한 내용과 멋있는 표현은 오히려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독자는 글쓴이의 교양과 학식에 대해 의심하게 딘다.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이건 뭔가 우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치 바지의 앞 지퍼가 열린 줄도 모르고 으흠으흠 하며 점잖은 척하고 있는 신사를 보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어법을 모르고 글을 쓴다는 것은 산수를 모르면서 수학을 논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문장을 조직하는 데 쓰이는 어법을 문법이라 한다. 사실 문법이란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언어의 조직을 합리적으로 체계화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이라면 누구나 쉽게 터득할 수 있다. 그런데 문법에 대해 논리적으로 따져들어가면 이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 이도실제 글을 쓸 때는 문법에 맞니 않는 문장 즉, 비문을 쓰는 일이 허다하다. 이는 결국 문법을 지키는 데 있어 관건이 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정성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법에 맞는 문장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후 국어의 문장에 대해 논의 하는 부분에서 자시히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