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 건강하다 엉아들의 고양누리길 / 08 경의로 7.25km, 09고봉누리 6.72km 도보여행

2019. 1. 8. 12:17☎청파산행과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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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 건강하다 엉아들의 고양누리길

08 경의로 7.25km, 09고봉누리 6.72km 도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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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 건강하다엉아들의 고양누리길 8코스 7.25km .9코스 6.72km” 도보여행

 

바쁘다 바뻐, 새해초라 년말에 이어 연일 바쁘다. 그 와중에 천만다행은 내가 장노(장기간 노는사람)이길래 망정이지, 출퇴근 하는 입장이면 큰일날 일이다. 오늘(2019.1.7.)일은 9인의 엉아들이 고양누리길 8코스를 진행하는 날이다. 지하철 3호선 정발산역에서 10시정각 일행들을 만났다. 그런데 이날은 지난번 누리길 걸을 때, 약속한대로 연산동(최윤영)대장이 일행들이 배낭에 달 수 있는 명찰 크기보다, 다소 작은 태극기를 구입해와 한 개씩 나누어 주며 배낭에 잘 보일 수 있도록 달아준다.

 

이유는 요즘 세상돌아가는 꼬락서니가 하도 기가막혀서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면, 광화문광장에 대한민국 국민의 철천지 원수인 북한괴뢰정권 괴수 김정은 방문을 찬양 한다는 현수막이 걸리고, 세계10원 경제대국이 문재인 정권들어, 세계19위로 추락해 버리는 현상이 발생하는가 하면, 시장에서 공장에서 너무 어려워 큰일이라는 소리가 난무한다. 한심한 일이다. 그래 우리들만이라도 정신바짝 차려, 만에 하나 월남처럼 공산정권이 들어서지 못하게 하나된 마음으로 단결해 대응하자는 의미다.

 

10시정각 정발산역을 출발한 우리는, 정발산공원안내도 지점에서 계단길을 오른다. 그 오름길에 신기한 현장을 본다. 거대 마주보는 두 개의 소나무 밑둥에 뿌리가 옆으로 연결되어 연리근 소나무가 되어 나무는 둘이지만 한 나무가 되었다. 신기한 일이다. 연리근 지나, 평심루(心褸)까지 이어지는 코스는 왜송(倭松) 오솔길로 이어진다. 평심루에서 잠시 가던길을 멈추고 일행들과 함께 인증샷을 찍는다. 그리고 다시 잔디광장, 정발산파크골프장을 지나 풍산역 방향으로 진행하다. ‘하늘이 보이는 지붕을 가진 밤가시초가를 돌아본다. 이곳 밤가시초가는 경기도지방 전형적인자 집이다. 그 모습을 보니 지금은 자유로 개발에 밀려 헐려버린 1960년대 고향집 생각이 눈에 선하다.

 

밤가시초가를 지나, 고가교도 지나고 풍산역을 왼편에 바라보며 황룡산, 일산역 방향을 따라 잘 다듬어진 도로공원길을 간다. 그런데 겨울인데도 하얗게 바랜채 잎새가 떨어지지 않은 캐나다 단풍 모습이 이색적이다. 풍경좋고 일행들과 나누는 대화가 좋아서, 가던길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는데, 겨울잠자리님께서 누리길때마다 나눠주시는 쵸콜릿과 맛좋은 사탕이 느슨해진 도보길 활력을 보충해준다.

 

멀리 일산역이 보인다. 다가가니 그 옛날 일산역 모습이 걸려있다. 청년시절 일산역을 지나다니던 추억이 새롭다. 일산역 지나 풍산역 방향으로 가는길목엔 거대 대포알 모형에 울긋불긋 단풍잎을 붙여 놓은 조형물이 이색적이다. 무슨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알길이 없다. 멀리 일산 SBS제작센터도 보인다.

 

“100만 행보도시 600년 문화도시 고양이이라쓴 벽화가 우리 일행들을 반겨 웃는다. 덩달아 우리도 웃으며 간다. 그렇게 고양누리길 8코스 경의로누리길 구간은 웃음꽃이 함께 하는 누리길로 이어진다. 탄현역을 지난다. 새까맣게 하늘높은줄 모르고 치솟아 오른 “The Zennith라로 쓴 주상복합 아파트를 올려다 보느라 목이 뻣뻣하다.

 

앞서가는 일행들이 배낭에 태극기를 달고, 보무도 당당하게 걷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가는 일행들을 불러세워 놓고 태극기 배낭멘 사진을 찍어둔다. 일산동고등학교 앞을 지난다. 아직 1월인데 제22회 졸업식을 축하한다는 현수막이 걸렸다. 우리들 시절엔 대게 졸업을 2월초에 했는데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뱃속에서 쪼르륵 소리가 난다. 오후 115분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파트 단지 지역을 지나다 보니 마땅히 점심먹을 식당이 없다.

 

 

 

 

걸으면 건강하다엉아들의 고양누리길 9코스 고봉누리길 6.72km

 

어쩔 수 없이 황룡산 쉼터까지 가서 간식을 먹기로 하고, 일산동고등학교 지나며, 고양누리길 9코스 고봉누리길 6.72km 코스로 간다. 황룡산 오름길도 역시 왜송 오솔길로 이어지는데, 고도가 없다보니 너무너무 편안하다. 군부대 철조망이 나타났다. “경고 이지역은 군사보호 구역이므로 사진촬영을 금한다. 철채을 앞에두고 아래로 가면 금정굴이고 위로 가면 황룡산 정상가는 길이다. 우리는 정상길로 간다. 그런데 황룡산 쉼터에 도착하니 정상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더 이상 진행을 막는다.

 

어쩔 수 없이 황룡산 쉼터에서 고양누리 고봉누리길 9-1코스 패스포트 도장을 찍고, 휴식을 취한다. 15분전 오후 2시다. 식사 시간이 지났다. 지참하고 간 간식을 모두 꺼내어 허기를 달랜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용강서원, 상감천마을을 애돌아 고봉산 삼거리에서 다시 통한의 금정굴 평화의 공원으로라고 세워놓은 글을 보고 금정굴에 오른다.

 

금정굴은 6.25 전쟁 때인 195010월 경기도 고양군 송포면 덕이리 금정굴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 현장이다. 현장을 돌아보는 내내 가슴찡하고 쨘하다. 30분여 금정굴을 돌아보는데, 고양누리길 현장답사를 나온 고양시 공무원 세분을 만났다. 그래서 고양누리길 구간에 비미한 내용들, 그리고 개선해야 할 점들을 건의하고 우리는 서둘러 삼거리 맞은편에 보이는 두부마을집에 들려 오후 3시 순두부와 비지를 시켜 점심을 먹는다.

 

이어 속보로 영천사, 진밭, 만경사, 안곡습지공원에서 마지막 9-2코스 패스포트 스템프 도장을 찍고, 안곡초등학교앞에서 고양누리길 8코스 7.25km, 9코스 6.72km 합계 13.97km 도보여행을 모두 마친다. 오후 440분이다. 서둘러 버스를 타고 풍산역에서 전철을 갈아타며 일행들과 다음 월요일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6.25 전쟁 때인 195010월 경기도 고양군 송포면 덕이리 금정굴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

 

해방 이후 고양 지역에서도 한국 다른 지역처럼 좌우익 대립이 심각하게 일어났었다. 1950625일 북한의 남침 이후 3일만에 고양 지역은 인민군에 넘어갔으나, 아직 아군이 북진하고 있으니 동요하지 말라는 라디오 방송을 믿고 피난하지 않은 주민들이 많았다. 들어온 북한군은 고양에서도 인민재판을 벌여 우익 인사들을 체포해 고문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북한군은 75일 고양군 임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해 선거를 치러 인민위원을 뽑았고, 주민들을 인민의용군으로 징집했다.

 

그러던 중 9월에 인천상륙작전이 이루어진 이후 920일에는 능곡이, 928일에는 일산이 수복되었다. 그 사이 고양 일대는 인민위원회 등이 해산되고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어서 좌익과 우익 간의 학살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국군이 고양에 진입한 이후 부역자들을 색출하는 일이 시작되었고, 인민위원장 등 부역자들이 사살되었다. 10월부터 고양경찰서가 다시 복귀해 부역혐의자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기서 누가 부역자인지 가려내는 건 인민군이 아닌 이상 정확히 알 수 없었기에 주민들이 고발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부역혐의자들은 연행되어 각 경찰서 지서에서 1차 조사를 받고, 조사 후 경찰서로 연행되어 갔다. 이 연행 과정에서 고문 또한 빈번히 행해졌다고 한다.

 

이후 경찰에서는 임의로 이들을 분류해서 몇몇은 석방하고 몇몇은 금정굴로 끌고 갔다. 금정굴은 고양시 일산서구 탄현동에 위치한 황룡산 자락에 위치한 굴로, 동굴은 아니고 일제강점기 때 금 채굴을 위해 수직으로 파 놓은 굴이으며, 처음에는 굴 앞에 주민들을 세워놓고 총으로 쏘아 떨어뜨렸으나, 생존자가 나타나자 이후엔 굴 입구에서 총살한 후 굴 속으로 던져놓는 방식으로 바꿨다. 이후 106일부터 1025일까지 20여 일에 걸쳐 학살이 이어졌다. 희생자들은 심사를 받는 줄 알고 금정굴 아래 공터에 모여 있다가 경찰에 지시에 의해 5~7명씩 현장으로 올라갔으며, 한 번에 한번에 20~40명씩, 많게는 47명까지 끌려갔다고 한다. 또한 부역혐의자들의 가족 역시 학살의 대상이 되었고, 이들의 재산 역시 경찰에 의해 탈취되었다. 학살은 10월 말에 군검경 합동수사본부가 개입하면서 중단되었으며, 이후 의용경찰대원과 시국대책위원장 두명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 그러나 처벌받은 경찰관은 없었다.

 

이후 학살 사건은 묻혀져 있다가 1993년 시민단체들과 유족들에 의해 문제가 제기되었고, 1995년 현장 발굴을 나서 153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1999년 경기도의회는 고양 금정굴 양민학살 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를 내 금정굴 사건이 경찰의 주도로 다수의 민간인을 불법 살해하여 암매장한 사건이라는 결론을 냈고, 2006년에는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금정굴 사건에 대해 경찰 책임하의 불법 학살로 인정하였다. 이후 고양경찰서에서도 유감과 애도의 뜻을 표명했고, 법원도 금정굴 유족에게 국가 배상을 판결했다.

 

그러나 이 사건 당시에 발굴된 유해들은 안치할 곳이 없어 서울대병원 창고에 보관해 오다가, 2011년 고양시 청아공원 납골당으로 옮겨졌고, 이후 계약기간 만료로 2014년 하늘문공원 납골당으로 다시 옮겨졌다. 2010년 새로 당선된 고양시장 측에서는 금정굴 유해를 안치하고 평화공원을 조성한다고 하였으나 이는 보수단체 등의 반발로 인해 이루어지지 못했고, 2014년 유해를 청아공원에서 하늘문공원으로 이장할 때도 고양시 측은 2000만원의 예산을 상정했다가 여당에 의해 전액 삭감되었고, 이후 표결에 따라 절반 금액으로 정해지는 일도 있었다. 20157월 금정굴 희생자 지원조례가 다시 시의회에 상정되었으나 통과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다음백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