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상처 안은 중부전선 따라... 특별한 DMZ 여행

2015. 3. 23. 14:47☎오마이 뉴스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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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상처 안은 중부전선 따라... 특별한 DMZ 여행

'멸공OP'와 '두루미 자는 마을'부터 노동당사까지

15.03.23 13:42l최종 업데이트 15.03.23 13:42l

생각하기조차 싫은 6·25전쟁을 겪은 세대에, 경기도 파주 출신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북한 대남 방송을 라디오 듣듯 하며 살아온 아픔이 있다. 그래서 전국방방 곡곡 많은 곳 여행을 다니다가도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DMZ 이야기만 나오면 귀가 쫑긋해지는 사람이기도 하다.

며칠 전 장승재 DMZ 관광 대표가 '중부전선 DMZ 지오피아 힐링 팸투어'(강원도 철원군 민통선마을 중심으로) 실시한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 접하고 냉전의 시대의 상흔 (DMZ)을 탐방하기 위하여 참가 하게 됐다.

멸공OP는 우리나라 최전방 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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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공OP에서 일행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 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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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전 8시 30분,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출발한 전세 버스는 2시간 30여분을 달려 '멸공OP'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이 도착하자마자 뛰어나와 친절히 맞이하는 국군 장병들을 대하니 마치 군대에 간 내 아들들을 보는 듯 더욱 반갑다.

군인들의 협조를 얻어 '멸공OP'를 배경으로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정훈 장교의 안내에 따라 상황실에서 적과 대처하고 있는 DMZ의 생생한 현장 설명을 듣는다. '멸공OP'에서 본 DMZ 현장은 아무런 일도 없던 것처럼, 하늘을 향해 치솟은 철조망 너머에도 봄이 오는 듯 푸른 바람이 넘실거린다.

또한 녹슨 철조망 너머 실개천처럼 흐르는 한탄강을 건너면, 그리 높지 않은 산등성이에 우리 국군 GP가 있다. 외형상 보기에는 평온한 듯 해 보이지만 남방 한계선 2km, 북방한계선 2km를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첨예하게 대처하고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곳이다.

정훈 장교의 말에 따르면 우리 일행들이 멸공OP에서 움직이는 일거수일투족까지 북에서 관찰 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또한 이곳 멸공OP 인근에서 영화 <고지전>과 TV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를 촬영했다고 설명했다.

65년간 끊어진 채 달리지 못하는 '금강산전기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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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마나는 달리고 싶다 끊어진 철길! 금강산 철로 90킬로라고 쓴 흰색 글씨가 눈길을 끈다.
ⓒ 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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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 상황 설명에 이어 남쪽을 가리키며 정훈 장교가 설명하는 곳은 강원도 철원군 동송면 정연리에 위치한 '끊어진 금강산전기철도'다. 위에서 내려다보며, 나는 내 생전에 저 철도를 타고 금강산에 가볼 수 있을까하는 막연한 기대를 해본다.

장승재 대표가 '금강산전기철도' 현장도 이날 답사 계획에 들어있다고 한다. 금강산전기철도는 6·25이전에는 철원역에서 출발한 기차가 사요, 동철원, 동송, 양지, 이길리역을 지나 6번째 정연역에 다다르는 구간이라 한다. 철원에서 정연리까지는 18km인데 오랜 세월 사용을 안 해 철도가 녹슬어 있다. 다리 전체 구간에 걸쳐 '끊어진 철길! 금강산 90킬로' 흰 글씨가 씌어져 있다.

우리는 멸공OP 조망을 마치고 깎아지른 아스팔트 일방도로를 10여분 조심조심 내려서 '전선교회와 면회소'가 있는 곳에 정차 한다. 이어 여기서부터 '끊어진 철길! 금강산 90킬로' 생생한 현장을 돌아본다. 한참을 바라보며 사진 촬영을 하다 보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며 해묵은 65년 전 피난시절기억이 떠오른다.

전쟁의 상처가 남긴 지명 '민들레 벌판'

이날 우리 일행을 안내한 '사단법인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강원도지회 지회장 김일남 해설사' 말에 따르면 정연리 금강산철도를 지나 한탄강 상류에 이르면 곧 바로 '민들레 벌판'이 보인다고 한다. 민들레 벌판이란 지명을 듣고, 지명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봄이면 노란 민들레가 벌판 가득 펴서 지명을 민들레 벌판이라 했는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벌판 이름은 옛날부터 유래해 내려온 애초의 지명이 아니라 6·25 전쟁이 빚어낸 아픈 상흔의 지명이라 한다. 한탄강 일대에는 수십만 년 전 화산 작용에 의해 곳곳에 커다란 '현무암 돌덩어리 들판'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철원 사람들은 그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 돌을 '구멍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 나중엔 그 '구'자도 빼고 그냥 '멍돌'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멍돌 들판은 마을에서 멀어 아무짝에 쓸데없는 벌판이라 주민들은 이곳을 '먼 멍돌들' 이라 불렀다.

그러다 다시 언제부터인가 아예 '먼들'로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6·25 전쟁 때 이를 외래어 발음으로 미군들이 '먼들'을 'Mendle'로 군 작전도에 표기해서 생긴 이름이 지금은 "민들레 벌판"이 되었다고 한다. 너무 가슴 아픈 지명의 뜻을 알고 나니 짠한 마음이 든다.

내 마음 같아선 하루빨리 남북통일이 되어 현 지명에 걸맞은 '민들레 벌판'을 조성하여 남과 북의 국민들이 다 함께 오가며 화합을 이룰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끊어진 철길! 금강산 90킬로' 현장을 돌아보고 나니 어느 사이 정오가 지났다. 배꼽시계가 주책없이 자꾸 쪼르륵 쪼르륵 울려댄다.

여행은 먹는 즐거움이 함께 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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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루미 콩탕을 아시나요 모 요리연구가가 이곳 이길리 마을에 와서 주민들과 만들어낸 음식으로 "두루미 자는 마을"에서 두루미를 따서 음식 이름을 "두루미 콩탕"이라고 한다. 실제로 먹어보니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정도로 내 입에는 착착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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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동성읍 이길리 마을회관 부속건물에 도착해 이길리 부녀회원님들과 김종연 사무장이 마련한 고향내음 물씬 풍기는 시골밥상을 맞이해 점심을 먹는데 이곳 주 메뉴가 '두루미 콩탕'이라 한다. '두루미 콩탕?' 내 생각엔 혹시 이곳 이길리 마을 이름이 '두루미 자는 마을'이 되어 혹시 천연기념물 두루미로 콩탕을 만들어 주는 것 아닌가 의아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뜻을 알고 보니 아니었다. 상당히 저명한 요리 연구가가 이 마을에 와 현지에서 생산한 콩을 가지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 음식을 만들었단다. 두루미 마을의 상징인 두루미를 붙여 음식 이름에 붙여 두루미 콩탕이라고 했단다. 콩을 갈고 여기에 약간의 고기를 넣어 끓인 것인데, 사람 따라 평가는 다르겠지만, 나의 입맛에는 "천하일미"라 할 정도로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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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에는 농촌 풍경에 어울리는 벽과가 그려져 있고 옥상에는 두루미 자는 마을을 상징해 커다라 두루미 조형물이 설치 되어 있다. 그림에 보이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유사시 주민 대피시설인 방공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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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 아니다. 당일 아침에 채취한 싱싱한 봄냉이 나물과 이름 모를 여러 가지 반찬들에, 가을걷이 끝물 고추를 따고 남은 희끗희끗한 고추를 따서 말려 기름에 튀긴 튀각 등, 무려 10여 가지의 진수성찬에 반해 식탐이 나지만, 대식가가 아니어서 더 먹지 못하는 것이 원망스러울 정도다. 여행을 즐기면서 최전방 지역 주민들과 진솔한 이야기 나누며 호흡 할 수 있는 '중부전선 DMZ 지오피아 힐링 팸투어' 여행의 진가를 알 수 있어 더욱 기쁘다.

'두루미 잠자는 마을' 이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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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길리가 "두루미 자는 마을"이 되어 마을회관 옥상에 거대 두리미 조형물을 세웠다. 해마다 10월 부터 3월사이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두루미가 많이 날아 오는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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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정연리 이었다. 1979년 11월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로 분리 개명 되었다. 최초에는 현 위치에 주택 68동을 짖고 340명의 주민이 이주해와 살았다. 그런데 현재는 67가구에 주민 181명 살고 있다. 이길리 주민 상당수는 갈말읍 토성리에 살던 주민들이다. 이길리 마을은 선전마을이라 벌판 한 가운데 마을이 형성 되었다. 현재도 절반 정도는 최초 이주 당시의 집 구조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2013년에는, '국립민속박관'에서 이길리를 한 해 동안 조사했다. 마을에 대한 자료(마을풍경, 생활상, 전통, 역사 등)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사진 기록으로 남겨 고증을 거친 해설과 함께 마을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또한 '공간 박물관'을 조성해 이 조사 자료를영구 보관하고 있다. 그리고 마을 이름을 '두루미 자는 마을'로 명명했다. 마을회관 옥상에는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대형 두루미 모습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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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판엔 아직도 천둥오리 수백마리가 먹이를 찾고 있다. 이곳 이길리, 유곡리는 철새천국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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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리 마을회관, 창고, 주택 등에는 다양한 풍경의 벽화를 그려 아름답고 평화로운 농촌 마을 상징 하는 풍경이 있는 마을을 조성했다. 아울러 마을에 2013년부터 '두루미 탐조대'를 설치, 운영하며 천연기념물 두루미를 보호하기 위하여 '에코차(전기)' 14인승을 운영, 이 차를 타고 철새 탐방과 조망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여름에는 한탄강 상류 청정수에서 자란 다슬기를 채취하며 물놀이를 즐길 수 도 있다.

민통선 마을 중 가장 발전 변화가 없는 마을 유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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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촌 유곡리 안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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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골리 마을에 아주 작은 통일촌 교회 정겨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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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7월 30일 국가에서 주택 60가구를 짖고 주민 230명을 이주 시킨 마을이다. 최초에는 황무지였던 땅을 주민들이 입주해 개간 하여 옥토를 조성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그런데 '83년특별조치법'에 따라 수십 년간 경작해온 토지가 타인에게 등기할 수 있게 되는 바람에 유곡리 주민들은 그동안 가꾼 농토를 빼앗기게 되는 수모를 겪었다.

당시 입주민은 3사단에서 전역한 군인들이 입주해 살았다. 지금은 입주 당시 주민 1세대들만 대부분 거주 하는 실정 이다. 그 외 2세대 주민은 인근 또는 외지에 나가 살면서 농사철에만 대왕하며 살고 있는 실정이라 한다.

유곡리는 원래 근북면 이었었는데 김화읍으로 편입이 되었다. 때문에 근북면에는 사실상 주민이 살지 않고 있다. 왜냐면 행정관청(면사무소)이 없기 때문이다. 주민들 주소, 토지대장 등에는 근북면으로 표기 되어 있지만, 모든 행정 업무는 김화읍사무소에서 처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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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촌 유곡리 마을 주민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곳 주민들이 농사를 지으며 애로점을 듣고 가능한 범위내에서 농산물 판로 협조를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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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곡리는 최초 입주 당시 옛 모습에서 달라진 것 없이 별로 없다. 심지어 슬레이트 지붕이 아직까지 그대로 있다. 주민들 말에 따르면 올해 일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주택 개량 사업을 하게 될 것 이라고 한다.

우리는 유곡리 마을회관에서 주민들과 허심탄회 하게 애로 사항에 대한 토의를 한 후 지역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 판로를 이날 자리를 함께한 일행들이 협조 하여 판로를 강구하는 방안을 연구 검토하기로 약속하고 아쉬운 작별을 고하며 이날의 마지막 여행지 노동당사로 향한다.

폐허 일보 직전 철원 노동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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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원 노동당사 철원 노동당사는 현재 거의 폐허 일보직전 같다. 2층과 3층은 허물어져 내렸고, 외곽 뼈대만 남은 상태이다. 잘 보존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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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통치 당시, 철원군은 강원도의 도청이 소재였다. 따라서 구철원은 철원군의 중심지였다. 이때 철원읍 관전리에 조선로동당에서 당사를 건설했다. 6·25전쟁을 거치며 구철원이 우리나라에 귀속되면서 이 노동당사도 대한민국의 수중에 들어왔다.

몇 년 전에 왔을 때만 해도 노동당사를 방문한 관람객이 2층과 3층까지 오르내리며 관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건물 자체가 거의 폐허 일보 직전에 다다른 듯 해 지금은 건물 안에 들어갈 수 없도록 폐쇄했다. 2층과 3층 골조도 철거를 한 것인지, 무너진 것인지 층이 없다 시피한 채, 외형 뼈대만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이곳 노동당사는 지난 2013년 11월 10일 KBS <열린 음악회 - 1000번의 만남> 행사가 녹화된 바 있으며, 과거 '서태지와 아이들'이 이곳에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적도 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