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24. 19:56ㆍ☎청파의사는이야기☎
호박 같은 내 일생
청파 윤도균
‘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이란 고사성어가 실감이 난다. 엊그제까지 도영이네! 집 거실 문갑 위에 이 집에 ‘가보[家寶]’라도 되는 것처럼, 행여 먼지라도 쌓일까? 하루에도 몇 번씩 ‘신주[神主]’ 모시듯 윤이 나게 닦아 꽃 단장까지 시켜 주던 이 집 안주인 도영 할 망이 왜? 무슨 ‘변덕[變德]’이 났는지 오늘(2013,6,21) 오후 갑자기 “도영할베”를 부르더니 여보 우리 이 호박 잡아 호박죽 쑤어 먹읍시다 한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마치 안전장치 없는 고공 번지 점프대에 올라 뒤뚱뒤뚱 ‘위험천만[危險千萬]’ 한 모습으로 사시나무 떨 듯하고 있는데 평소 이 집에서 제일 인자한 성품의 도영할 베까지 나서 그럽시다 하더니 성큼성큼 주방으로 가 서슬이 시퍼렇게 날 선 독일제 제일 큰 식칼을 골라 들고 와 장식장 위에 신주처럼 모신 나를 들어 거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려놓는다.
이런 때 입이라도 있으면 도영 할아버지에게 두 손, 발 싹싹 빌며 살려 달라고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사정이라도 해보련만 입이 없으니 ‘벙어리 냉가슴 앓이’하듯 눈치만 살피는데, 드디어 올 것이 온 듯 도영 할베 내 정수리에 식칼을 대 칼질할 범위를 눈대중하더니 두 무릎을 꿇고 서슴없이 내 목에 칼을 들이댄다.
그런 도영할베 모습이 영락없이 “사형을 집행할 때, 죄인의 목을 베는 일을 맡은 망나니”와 다름없이 식칼을 내 몸에 댔다, 뗐다를 반복하더니 또 칼날을 지긋이 눈에 대고 서슬을 확인하더니 이내 작심이라도 한 듯 인정사정 보지 않고 내 몸에 칼을 들이대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자지러지는 목소리로 “호박 살려 주세요.”를 제아무리 외쳐도 목소리는 안 나오고 가슴만 답답하고 시리다.
도영이 할아버지 저에 소원 한 마디 들어주세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형수도 사형 집행 전 마지막 소원 한 마디” 들어준다는데, 이 ‘맷돌 호박’소원 한마디 들어주세요. 하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비니 ‘이심전심’ 마음이 통했는지 도영이 할아버지 잠시 하려던 작업을 멈추더니 나를 쓰다듬으며 하는 말 “호박죽 쑤어 먹기는 정말 아까운 호박인데….” 하면서 주춤거린다.
그 틈에 나는 서둘러 도영이 할아버지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소원을 전한다. 어차피 “호박 신세로 태어난 운명이니 오박죽 되는 것이야 탓할 수 있겠느냐만 내 마지막 한 가지 소원은 내 배 가르시거든 그 속에 내 뒤를 이어 다시 아름다운 '맷돌 호박'으로 태어날 수 있는 소중한 호박씨 몇 알이 있을 터이니 그 호박씨”만이라도 몇 개 골라서 올해는 틀렸고 내년 봄 양지 바른 곳에 심어 주세요. 하고 말이다.
그러자 도영할 베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내 정수리 중심에 식칼을 들이대고 오른 팔은 손잡이를 또 왼 팔은 식칼 끝을 잡고 지그시 누르니 마치 한 여름철 잘 익은 수박 자를 때 나는 소리처럼 “쩍”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이 순식간에 두 쪽으로 갈라져 나뒹군다.
그런데 이상하게 속이 텅 비었고 그 속에 정말 몇 알 안되는 탱탱하고 실한 호박씨가 얽히고설킨 실 거미줄 같은 내용물 속에 보인다. 이렇게 반 쪼개진 맷돌 호박은 다시 쪽결따라 십여 쪽도 넘게 나뉘어 거북이 등처럼 단단히 굳은 껍질을 벗겨 내고 얄팍한 수저로 호박 속을 파내더니 또다시 잘게 썰어 양푼에 담으니 뭉긋이 넘칠 정도로 양이 많다.
그렇게 호발 절단 작업을 끝내고 도영할 베는 “내가 소원으로 이야기한 호박씨 열 아문 게를 고르는데” 이를 본 도영할망 아니 호박 심을 곳도 없는데 씨는 골라 무얼 하느냐며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라지만 도영할 벤 기어코 호박씨를 골라 작은 봉지에 담아 서랍에 보관하고 잘게 썬 호박을 수돗물에 깨끗이 샤워를 시켜 한동안 사용 안턴 ‘풍년압력솥’을 꺼내 그 속에 나를 넣고 가스불을 붙인다.
그러더니 도영할 망은 또다시 도영이 할아버지를 부르더니 물에 불려 놓은 ‘찹쌀과 절구’를 내주며 절구에 찹쌀가루를 빻으라고 주문을 하는데 도영할 베는 속이 좋은 것인지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인지 군소리 않고 한 시간이 넘게 손으로 찹쌀가루를 빻아 미지근한 물에 풀어 이미 삶아놓은 팥과 함께 ‘풀떡 풀떡 풀떼기 꽈리’를 불어대며 끓는 호박죽에 넣고 '누룽지' 생기지 않게 기다란 나무 주걱으로
“오른쪽으로 빙빙, 왼쪽으로 빙빙 엇박”으로 십여 분을 저으니 드디어 호박죽이 완성됐는데 성질 급한 도영 할아버지 순간을 참지 못하고 맛본다며 국자로 뜨거운 호박죽을 떠 맛보다 앗! 뜨거워 소리와 함께 입술을 데워 물집이 생기고 말았다. 그 모습 보며 "도영 할베 쌤통" 소리가 목구녘까지 나오는것을 꾹 참고 그동안 옛정을 떠 올리며 내 맘을 삭인다.
불과 2시간여 만에 “멀쩡했던 '맷돌 호박'의 모습은 오간 데 없고 대신 그 호박이 달콤하게 맛깔스런 호박죽” 신세가 되어 이 집 온 가족이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둘러앉아 호박죽을 맛있게 먹는 달란 한 모습 보니 내 비록 난도질당해 호박죽 신세가 되었지만, 이 집 온 가족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건강식품으로 거듭날 수 있어 큰 보람을 느낀다.
도영할 아버지 고맙습니다. 내년 봄 꼭 보관해 두신 ‘호박씨’ 양지바른 곳에 심어 주세요. 그것으로 이 '맷돌 호박'은 여한이 없습니다.
“조선 제3대 태종이 된 이방원의 〈하여가 何如歌〉에 정몽주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세우는 일에 가담할 뜻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하여가〉를 지어 그의 마음을 떠본 이방원이 지은 시조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고 유혹했으나 정몽주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라고 받아치며 유혹을 뿌리친 정몽주의 시조”가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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