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23. 04:30ㆍ☎열린文學人사랑방☎
수필의 얼굴
수필은 자신의 삶과 인생을 담는 그릇이다.
사람에 따라 유리그릇, 옥그릇, 토기 항아리, 백자 대접 등 자신에게 적합한 그릇이면 될 것이다. 성격과 취향에 맞는 그릇이어야만 자신의 삶과 인생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다.
수필을 담는 그릇을 가지기 위해선 마음속에 자신의 영혼을 비춰 보이는 거울이 있어야 한다. 마음속 거울에 영혼이 비춰보이도록 닦아내야 한다. 이기 집착이라는 때, 화냄이라는 얼룩, 어리석음이란 먼지를 지워내야 한다. 마음속에 샘이 있어서 고통, 갈등, 상처를 씻어내야 한다. 마음속에 종을 달아 두어서 양심의 종소리를 울릴 줄 알아야 한다. 그릇이 깨끗하고 정갈하지 않으면 어떤 것을 담아 놓아도 빛깔과 향기가 나지 않는다.
수필은 가장 친근하고 편안하게 다가설 수 있는 문학이다. 읽고 쓰기에 가장 쉬운 문학이지만, 좋은 작품을 남기기란 실로 어렵다. 인생과 마음의 경지에 따라 수필의 품격과 경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수필을 쓰는 방법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생의 수련, 마음의 연마, 인격의 도야가 필요하다. 인격에서 향기가 나야 문장에서 매화 향기가 난다.
수필은 자유분방하다. 좋은 수필이란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을 막힘없이 써내려간 글이다. 마음속에 흐르는 생각이나 감정이 사색의 가락을 타고 거침없이 흘러가야 한다. 오랜 습작을 통해서라야만 제재에 맞는 소재의 동원과 자연스런 구성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만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다.
수필 쓰기엔 연령의 제한이 없다. 누구에게나 그 때의 삶과 인생을 담으면 된다. 체험하고 느낀 것들의 의미부여가 소중한 것이지, 연령이 문제되지 않는다. 10대의 순수와 20대의 열정도 좋으며, 60대의 원숙과 70대의 경지도 소중하다. 인생에 있어서 소중하지 않은 때란 없다. 인생의 행복과 가치도 시간의 양(量)에 있지 않고 시간의 질(質)에 있을 것이다.
수필은 체험과 느낌을 쓰는 것만으로 그쳐선 안 된다. 자신의 체험과 느낌이 독자들에게 인생적인 도움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수필은 자신의 이야기이지만,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공유의 것으로서, 독자들의 삶에 의미를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 독백이되 그냥 자신의 푸념이어서는 안 되며, 모든 사람에게 공감과 새로운 발견과 의미를 제공해야만 수필이 될 수 있다. 신변잡사(身邊雜事)의 나열이 아니라, 그 속에서 진실의 발견, 본질의 탐구, 의미의 창출이 있어야 한다.
수필은 개성과 취향과 정서를 잘 드러내는 문학이다. 남다른 독창성과 면모를 보여야 한다. 자신의 삶과 인생으로 깨달음의 꽃을 피워내야 한다. 굳이 장미꽃이나 난초꽃만이 꽃이 아니듯 꽃마다 일생을 통해 피어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각자의 삶과 개성으로 피어낸 꽃이어야 한다.
수필의 주제와 소재는 특별, 기적, 웅대함에 있지 않고 대개 일상, 보통, 평범함 속에 있다. 사소함의 통찰을 통해 인생의 발견과 의미를 찾아낸다. 수필 쓰기란 사소함 속의 위대함, 평범함 속의 비범함, 보통 속의 특별함을 발견하는 일이다. 나무를 보고 숲을 보아야 하며, 나뭇잎이 지는 소리를 듣고 겨울의 말을 들어야 한다.
수필은 맑은 가을, 산야에 피어나는 들국화와 같다. 화려하거나 사치스러운 모습과는 달리 수수하고 소박하다. 자신을 과장해서 보이려거나 뽐내려 들지 않고, 진솔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 걸음 물러선 마음의 여유, 남 앞에 나서지 않는 겸허, 꾸밈없는 소박함 속에 수필의 향훈이 있다. 들국화는 화려한 모습은 아니나, 그냥 외면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샘물에 막 얼굴을 씻고 난 모습처럼 그 표정엔 맑은 고요가 가라앉아 있다. 단번에 눈길을 끄는 꽃은 아니나, 볼수록 아리잠직하고 샘물을 길어 올리는 듯한 신비감이 깃들어 있다. 이 평온하고 정한(靜閑)한 발견과 경지가 수필의 참모습이 아닐까 한다.
수필을 쓰면 마음의 정화, 평온, 치유, 깨달음을 느끼게 된다. 인생을 성찰하게 되며 인생을 보는 안목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수필을 쓰는 목적은 인생의 기록과 함께 인생에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부여하는 일이다. 보다 가치 있고 보다 의미 있고 보다 아름다운 인생을 추구하게 이끈다.
수필을 읽는다는 것은 작자의 마음과 인생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수필의 경지는 곧 인생의 경지라 할 수 있다. 수필은 소설, 동화, 희곡과는 달리 논픽션이기 때문에 진실과 순수의 토로이며 고해성사(告解聖事)이다. 언행일치(言行一致)의 삶을 보여야 하고, 쓴 후에도 책임이 따른다.
좋은 수필을 발견하는 것은 좋은 인생을 만나는 일과 다름없다. 좋은 수필은 곧 좋은 인생이 바탕이 된 것이므로 아름다운 공동체를 건설하는 일과 닿아있다. 수필쓰기는 삶과 인생에 대한 발견이자 창조이다. 인생이란 그릇에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꽃을 피워놓느냐 하는 것이 수필의 얼굴이 아닐 수 없다.
鄭 木 日
'월간문학'과'현대문학'으로등단
경남문인협회회장
창신대문예창작과겸임교수
저서 : '침향'외 다수
수상 : 수필문학대상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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