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산책] 소리 내어 고전을 읽어볼까?

2013. 6. 7. 10:32☎열린文學人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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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내어 고전을 읽어볼까?
강 명 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인터넷서점에 들어가 보면 책이 바다처럼 흘러넘친다. 외국어로 쓰인 것이라 언감생심(焉敢生心) 꿈도 못 꾸던 책과 어려운 고전을 풀어쓴 훌륭한 번역본도 허다하다. 일간지에 일주일에 한 번 실리는 서평에도 좋은 책이 수두룩하다. 그런가 하면 종종 단골서점을 들러 서가를 훑어보면 읽고 싶은 책들로 눈이 황홀할 지경이다. 얼마 전에는 퍽 궁금해하던 방면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담고 있는 책을 우연히 들른 서점의 서가에서 발견하고 뛸 듯이 기뻐하며 구입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저렇게 만나는 책들은 부디 좀 읽어달라고 유혹한다. 그 유혹에 지고 말아 사들이지만, 완독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책은 연구실에 있다가 집으로 옮겨져 책을 쌓아두는 창고 방에 무심히 쌓일 뿐이다. 먼지가 쌓인 그 ‘양서’를 보며 다시는 함부로 책을 사들이지 않으리라 결심하지만, 그건 헛된 다짐일 뿐이고 나는 어느새 또 책을 주문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독서가가 아니라, 나태한 매서자(買書者)에 지나지 않는다. 매서자는 호서가(好書家)도 못 되고, 다독가(多讀家)도 아니고, 애서가(愛書家)도 아니니, 스스로 한심할 뿐이다.

조선의 둔재, 억만 번 책을 읽다

  옛날 사람도 이러했던가? 적은 책이라도 좋은 책을 열심히 읽는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있을 수 없다. 숙종 때 문인인 김득신(金得臣)은 책 많이 읽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최근 필요에 의해 어떤 다산의 글을 훑다가 「김백곡(金柏谷)의 독서에 대한 변증」(金柏谷讀書辨)이란 글을 거듭 읽고 나의 매서(買書)와 게으른 독서를 맹성하였다. 다산은 이렇게 말한다.

  김백곡(金柏谷, 柏谷은 김득신의 호)은 자신의 「독서기(讀書記)」에서 그가 읽었던 책의 횟수를 써 놓았다. 그런데 사기(史記)「백이전(伯夷傳)」은 1억 1만 1천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사서삼경ㆍ사기한서(漢書)장자(莊子)ㆍ한유의 산문 중 어떤 글은 6, 7만 번을 읽었고, 적게 읽은 것도 수천 번 이하는 아니라고 한다. 문자가 만들어진 이후 수천 년 동안 이 세상을 통틀어 독서에 바지런하고 뛰어난 사람은 마땅히 백곡을 으뜸으로 꼽아야 하리라.

  다산이 말하고 있는 「독서기」란 김득신의 문집 백곡집에 실린 「고문삼십육수독수기(古文三十六首讀數記)」란 글이다. 36편의 고문을 읽은 횟수에 대한 기록이란 뜻이다. 다산의 말처럼 김득신은 최소한 1만 번 이상 읽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때 읽는다는 것은 소리 내어 읽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1만 번 이상의 독서란 정말 엄청난 양이 아닐 수 없다.

‘읽고 또 읽는 공부법’을 추천하고 싶다

  꼼꼼하고 정밀한 성격의 다산은 「독수기」의 내용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 「백이전」을 1억 3천 번 읽었다는 말은 실제 10만 3천 번이란 말인데, 하루에 1백 번을 읽는다 가정하면 3년을 꼬박 읽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다른 책도 읽어야 하고, 또 병들어 독서를 폐하는 날이 없을 수 없다. 부모를 섬기는 데도 당연히 시간이 소요되고, 그런가 하면 관혼상제에도 참여해야 한다. 이런 합리적인 계산으로 다산은 「독서기」는 김득신의 사후 누군가가 그가 독서에 부지런하였다는 말을 듣고 써서 넣은 것으로 생각한다. 과연 다산다운 결론이다.

  하지만 다산은 그래도 김득신의 독서회수를 찬양해 마지않는다. 정말 그렇다. 김득신은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을 골라 끊임없이 읽었던 것이다. 김득신에게 ‘읽다’는 동사는 소리 내어 읽는 것이다. 글은 소리 내어 읽으면 소리와 함께 그 글이 몸이 배게 된다. 중요한 텍스트를 끊임없이 소리 내어 읽음으로써 그 텍스트가 몸에 젖어들고 배게 하는 것이 진정한 독서가 아닐까?

  험한 세상이다. 나날이 고달프다. 이 여름 하루 한 뼘만 한 짬이라도 내어 장중한 목소리로 고전을 읽고 외우며 세상을 건널 지혜를 구해볼까. 그리하여 매서가의 한심한 처지를 면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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