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28. 09:06ㆍ☎청파의사는이야기☎
팔불출 남편이어도 좋다.
글 : 청파 윤도균
지난해 가을 어느 날 시흥시 정왕동 1,500여 평의 밭에 고추, 들게, 조, 수수 등 온갖 잡곡을 심어 자급자족하는 외사촌 여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오빠 어제 빨간 고추 끝물을 다 따고 났는데 아직 먹음직스런 싱싱한 풋고추가 주렁주렁 달렸고 들깨도 수확기 되어 깻잎을 따도 되는데 오빠 시간 되면 와서 고추도 따고 깻잎도 따’ 저림 해서 두고 먹으면 좋을 텐데 오빤 늘 바쁜 사람이시니 시간 내기 쉽지 않지요? 하는 동생의 소릴 들으니 그렇지 않아도 풋고추간장 저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로선 동생의 말 듣기 무섭게 벌써 입에서 군침이 돈다.
‘근데 경희 엄마야 문제가 있어.’
‘오빠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아녀 그런 건 아니고 다름이 아니라’
아 글씨 이놈의 도영이 할 망이 나하고 도영이 만 남겨두고 9박 11일간 유럽 여행을 떠났으니 나도 가서 고추랑 깻잎 따오고 싶은 생각은 굴뚝 같은데 이제 초등학교 5학년 손자놈을 혼자 두고 집을 온종일 비울 수가 없네 하니 오빠 그럼 일요일 하면 되잖아요 그땐 큰아들이 있으니 도영이 아비에게 맡기면 되잖아요.
이렇게 해서 시작된 풋고추, 깻잎 따기 모임은 내친김에 남동생 부부, 여동생 부부 그리고 수지 사는 또 다른 외사촌 여동생 등을 모두 불러 모으니 그럭저럭 10여 명이 모여 풋고추를 따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무슨 고추 따기 시합이라도 열린 것처럼 고추밭을 한 이랑씩 타고 앉아 고추 따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아니 그런데 웃기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게 가족들이 모였으면 가을 날씨라곤 해도 아직 후덥지 근 한데 오빠 한잔하시고 따지요 하며 막걸리 한잔 따라 주면 어디가 덧나는지 어떻게 된 동생들이 눈치코치는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고추 따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라고 내가 나서 ‘동작 그만’ 아니 이것들이 어디서 배워먹은 짓들이야 나는 혼자 오고 너희는 부부가 왔으니 오빤 고생하지 말고 쉬라 하고 너희가 딴 것 “십시일반” 조금 나눠주면 어디가 덧나느냐고 한소리 하며 배낭에 넣어간 몇 병의 막걸리와 돼지껍질 안주를 내놓으며 한 잔씩을 돌리니 졸지에 마치 가족 소풍이라도 나온 분위기가 되어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석 잔 되고 그러다 보니 어영부영 빈 막걸리 병 수가 10여 개나 고추밭 이랑에 나뉭군다.
그렇게 되니 얼쩡해진 동생네들 그때서야 하하 호호 여유 있는 웃음소리가 이어지며 이건 고추를 따는지 신세타령을 하는 것인지 왁자지껄하며 천방지축 분위기 속에 풋고추, 깻잎 따기를 마치고 나니 풋고추 한 자루, 깻잎이 한 자루 2자루나 되는 것을 집에 싣고 와 거실에 풀어놓으니 집안 전체가 풋고추 깻잎으로 가득한데 문제는 이 손타는 고추와 깻잎을 여행 떠난 아내가 집에 올 때까지 아직 6일이나 남았는데 그때까지 놔두면 보나 마나 힘들게 거둬온 물건 썩거나 물러터져 버리게 될 텐데 이놈의 노릇을 어떻게 한담?
그렇다고 이걸 갓 시집와 직장 다니는 작은 며느리를 불러 밤새 다듬자고 하자니 안 봐도 뻔히 답답할 것 같고 에라 모르겠다 두 팔 걷어붙이고 밤새도록 고추와 고춧잎을 따로 다듬어 분리해 놓고 깻잎도 차곡차곡 30여 장씩 묶음을 만들어 놓고 나니 어영부영 새벽이 훤히 밝아 새벽들이 군포 사는 여동생에게 전화해 다듬어놓은 고추와 깻잎을 어떻게 처치했으면 좋으냐 물으니 ‘오빠 우리도 밤새도록 그거 다듬느라 꼬박 날밤 새웠다며 소금을 팔팔 끓여 양 다라 같은 곳에 담아놓고 뭐로 꾹 눌러’ 노란 말을 듣고 동생의 말대로 소금물을 끓여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고추와 깻잎을 차곡차곡 집어넣고 돌로 눌러 서늘한 베란다에 두고 풋고추잎은 얼추 삶아서 냉동실에 얼려놓고 작업을 끝내니 오전 10시다.
그 후 아내가 여행에서 돌아왔어도 시치미 뚝 떼고 풋고추 깻잎 따왔다는 소리하지 않고 하루가 지날 무렵 여동생과 전화로 여행 다녀온 수다를 떨던 아내가 ‘여보 당신 풋고추잎, 깻잎’ 따왔다며 어떻게 했느냐고 묻는다. 왜? 당신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못할 줄 알았지? 하며 소금물에 담가놓은 고춧잎, 깻잎을 보여주니 우리 도영할망 세상에…. 이 많은 것을 어떻게 다 손질했느냐며 당신 최고라나 뭐라나 하면서 나를 치켜세우며 내가 저림 해놓은 고추와 깻잎을 두 손질해 꺼내먹기 좋게 용기에 저장하며 하는 말 올겨울 내년까지 당신 좋아하는 저림 고추 두고두고 먹어도 충분할 것 같다며 싱글벙글 좋아한다.
그리고 나더니 이놈의 이야기를 처제들과 아내 친구들에게 도영이 할아버지가 어쩌고저쩌고 자랑을 해대는 바람에 나는 어영부영 “팔불출”남편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분명한 내 생각은 팔불출이면 어떻고 조금 모자란 남편이면 어떻단 말인가?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가재 잡고 도랑 치고’ 내 좋아하는 풋고추 저림 두고두고 먹을 찬거리 마련했고 아내 좋아하는 깻잎으로 반찬 풍년들었으면 그것으로 넉넉하지 쓸데없이 남자 체면 어쩌고 저쩌구가 뭔 상관이란 말인가? 체면이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닌데,
나는 오늘 아침도 아내가 정성으로 양념해 놓은 시 큰 세콤 풋고추 저림 장아찌 맛에 공깃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활기차게 건강한 하루를 시작하며 이렇게 행복하기만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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