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학부모 되기

2012. 6. 15. 13:21☎사람사는이야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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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83 호
다산의 학부모 되기
김 영 죽 (고려대 한자한문연구소)

  세상의 모든 부모는 아이들이 잘 되기를 바란다. 건강하게 자라는 것은 물론이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필자 역시 2012년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두 아이의 평범한 엄마이다. 필자를 포함하여, 자식을 둔 부모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아이들의 교육문제일 것이다. 이들 부모들에게 수많은 교육정보들이 제공된다. 그러나 다양한 정보들이 항상 순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올바른 교육철학이 없다면 그 정보들 가운데 그저 다수가 선택한 것들을 취하게 된다. ‘다수의 선택’이 반드시 ‘올바른 선택’일 리는 없다.

‘밤 한 톨을 다투는 세상’에 자식을 몰아넣나

  ‘다수의 선택’ 가운데 하나가 바로 조기교육이다. 우리 아이를 남들보다 좀더 빨리 가르쳐서 두각을 나타내게 하려는 이 열풍은, 부모들의 불안 심리와 자본주의 시스템, 무한경쟁 사회가 빚어내는 절묘한 작품이다. 문제는, 아이들의 개성이 무시된 채 모두를 한 곳으로 몰아 획일화된 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능력’과 ‘개성’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이들이 밟는 과정이 거의 동일하다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 자신의 아이들이 어떤 분야에 재능이 있고 흥미가 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데 큰 이유가 있다.

  다산 역시 그가 살던 시대를 ‘밤 한 톨을 다투는 세상’이라 여겼다. 다산은 한창 두 아들이 장성해나갈 때 강진에 유배당하는 바람에 아이들 곁에 없었다. 그는 그 빈자리를 아들들에 대한 애정 어린 편지로 채웠다.

  때로는 자애로움으로, 때로는 엄격함으로 자식들의 인간됨과 학문적 성장을 독려하고 깨우쳤다. 상투적인 훈계가 아니라, 성격과 개성에 따른 맞춤식 가르침이었다. 세심했다. 새해를 맞아 글 읽는 계획을 세우는 방법은 어떠한 것이 좋은지, 아들의 글씨체가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의문 나는 곳은 과연 해결되었는지에 대해 일일이 살피고 보듬었다.

  본인의 경험을 들어 작심삼일(作心三日) 이란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으니, 그 애초의 좋은 마음만 간직하고 있다면 훗날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것이라는 충고는 참으로 진정성이 느껴진다. 단순히 아이 옆에서 요일별로 학원 갈 시간을 정해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화하고 맞춰주고 살피고 기다려줘야

  다산은 아이들에게 할 일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이들 간의 유연한 소통은 ‘기다리자’ ‘같이 해보자’는 마음자세에 뿌리를 두고 있다. 천천히, 아이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가 탐색할 시간을 주고 도와주는 것이 바로 부모의 역할이라는 점을 몸소 실천한다. 부모란, 아이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그들 스스로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첫 스승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설마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맞댈 수 있는 지금의 부모들이 유배 간 다산보다 처지가 나쁘기야 하겠는가. 그럼에도 최소한의 정성과 배려조차 학원이나 과외에 맡겨버리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아이들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믿음과 약속, 이것이 실천되려면 적어도 다산과 같은 정성과 가르침으로 자신의 아이들과 소통하려는 자세를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소통을 몸으로 배운 아이들은, 사회의 요소요소에서 제 나름의 기량을 발휘하는 재목으로 자랄 것이다.

  부모의 마음이 조급하다고 해서, 본인의 사회적 위치와 불만을 아이를 통해 투영하지 말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함께 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다산의 교육철학이며, 또한 다산의 실천적 사고와 행적이 일상으로 스민 것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