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부모는 아이들이 잘 되기를 바란다. 건강하게 자라는 것은 물론이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필자 역시 2012년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두 아이의 평범한 엄마이다. 필자를 포함하여, 자식을 둔 부모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아이들의 교육문제일 것이다. 이들 부모들에게 수많은 교육정보들이 제공된다. 그러나 다양한 정보들이 항상 순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올바른 교육철학이 없다면 그 정보들 가운데 그저 다수가 선택한 것들을 취하게 된다. ‘다수의 선택’이 반드시 ‘올바른 선택’일 리는 없다.
‘밤 한 톨을 다투는 세상’에 자식을 몰아넣나
‘다수의 선택’ 가운데 하나가 바로 조기교육이다. 우리 아이를 남들보다 좀더 빨리 가르쳐서 두각을 나타내게 하려는 이 열풍은, 부모들의 불안 심리와 자본주의 시스템, 무한경쟁 사회가 빚어내는 절묘한 작품이다. 문제는, 아이들의 개성이 무시된 채 모두를 한 곳으로 몰아 획일화된 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능력’과 ‘개성’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이들이 밟는 과정이 거의 동일하다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 자신의 아이들이 어떤 분야에 재능이 있고 흥미가 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데 큰 이유가 있다.
다산 역시 그가 살던 시대를 ‘밤 한 톨을 다투는 세상’이라 여겼다. 다산은 한창 두 아들이 장성해나갈 때 강진에 유배당하는 바람에 아이들 곁에 없었다. 그는 그 빈자리를 아들들에 대한 애정 어린 편지로 채웠다.
때로는 자애로움으로, 때로는 엄격함으로 자식들의 인간됨과 학문적 성장을 독려하고 깨우쳤다. 상투적인 훈계가 아니라, 성격과 개성에 따른 맞춤식 가르침이었다. 세심했다. 새해를 맞아 글 읽는 계획을 세우는 방법은 어떠한 것이 좋은지, 아들의 글씨체가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의문 나는 곳은 과연 해결되었는지에 대해 일일이 살피고 보듬었다.
본인의 경험을 들어 작심삼일(作心三日) 이란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으니, 그 애초의 좋은 마음만 간직하고 있다면 훗날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것이라는 충고는 참으로 진정성이 느껴진다. 단순히 아이 옆에서 요일별로 학원 갈 시간을 정해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