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지금으로 부터 37년 전 그러니까 1970년도 육군 제 25사단 72연대 2대대 6중대 화기분대에서 근무 했던 윤도균입니다.
제가 애타게 찾는 사람은 이등병 시절 함께 근무를 했던 25사단 72연대 6중대 2소대 화기분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최명규 병장님"을 찾습니다.
당시 나에 주특기가 “104, LMG 병과”여서 최 병장은 나의 사수였고, 나는 부사수 사이로 만나 근무를 했습니다.
내가 졸병시절 대대 ATT, 또는 연대 RCT 훈련이 있을 때면, 유난히도 키가 작은 내가 M1 소총을 휴대하고 거기에다 얼마나 무겁고 덩치가 큰 LMG 기관단총을 어깨에 메고 훈련에 임할 때면 최병장은 늘 새까만 이등병인 당신의 조수인 내가 힘들어 하는 것이 안타까워 늘 나에게서 LMG를 빼앗아 메고 훈련에 임하곤 하였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최명규 병장은 폭양이 내려쬐는 여름철, 그 무거운 LMG 기관단총을 메고 감악산 657m의 정상 탈환을 위하여 약진 앞으로 공격을 하다가도, 잠시 틈만 나면 군복이 땀에 젖어 소금이 하얗게 배어나오는 주머니에서 수첩이 젖을 새라 비닐에 싸고 또 쌓은 메모 수첩을 꺼내,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즉흥 메모를 하며 글을 썼습니다.
최명규 병장!
그 시절 사실은 나도 문학을 사랑 했던 사람이 되어, 최명규 병장과 나는 졸병과 선임자 사이가 아닌 같은 취미를 가진 동호인으로서 진심으로 서로를 아끼고 존중 했습니다.
그때 나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군대를 늦게 가게 되는 바람에 선임자인 최명규 병장 보다 내가 나이가 몇 살 더 먹었었는데, 사람 좋은 최병장은 늘 그런 날 이해하며, 더 애틋하게 보살펴 준 것이 아닌가? 기억을 합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의 나의 병영 생활이었지만, 나에겐 늘 그렇게 가슴이 따뜻한 최명규 병장이 있어서 나이 들어 늦게 간 군대 생활이라, 비록 몸은 고단 하였지만 늘 마음을 함께하는 최명규 병장이 있어서 의지가 되고 군대 생활이 마냥 즐겁기 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중간에 내가 행정병으로 선발되어 25사단 사령부 본부중대로 인사 명령을 받아 전출할 때, 아쉽게도 최명규 병장과 군대 생활을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작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갑작스럽게 떠나는 나를, 최병장은 차마 나를 바라보지 못하였고 나는 그 최 병장과의 이별이 너무나도 아쉽고 가슴 아파 눈물로 작별을 하고 말았어요.
그 후 사단 사령부 전출하여 이따금 간간히 최 병장과 통화 할 수 있었지만,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멀어진다고 했나요? 난 깜빡 최명규 병장이 전역을 한것도 잊어버리고 사령부 근무에 푹 빠져 들고 말았어요.
그 후 1973년 11월 저도 전역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이 무려 4번이란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나의 머릿속에는 졸병시절 늘 나를 그렇게 애틋하게 돌봐주었던 고참이며, 유난히 가슴이 따뜻하며 문학을 사랑했던 그 최명규 병장이 그리워 늘 마음 한 구석에 최명규 병장과 만나는 꿈을 꾸며 내 나이 어느덧 6학년 4반 슬하에 일곱 살 손자 아이까지 있는데도…….
어느 날 갑자기 문득 문득 최 병장 생각이 나면 너무도 그립고 보고 싶어서 눈시울을 적시며 가슴앓이를 하고 산답니다!
그립고 보고 싶은 최명규 병장님! 당신이 있어서 나의 현역 생활은 행복 했습니다. 당신이 있어서 남들은 군대 생활은 아까운 청춘과 젊음을 썩히는 것이란 말을 했지만 난 늘 군대는 사회생활의 연장선상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최명규 병장 당신을 만나서 너무도 자랑스럽게 군생을 마치고 전역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최명규 병장님! 꼭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최병장님이 그리워 난 벌써 몇 번인가를 당신과 함께 LMG를 메고 달리던 감악산을……. 그리고 당신과 내가 함께 근무했던 LMG 벙커를 찾아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장현리를 벌써 몇 번이나 찾았는지 모릅니다.
최명규 병장님! 그때 그 시절 우리가 근무했던 LMG 벙커에 내가 최병장님과의 얼마 남지 않은 이별을 아쉬워하며, "사수가 떠나던 날"이란 시를 낙서로 LMG벙커 벽에 써놓은 것을…….
당시 1군사령관을 지내셨던 모 장군님께서 훈련 시찰차 우리 벙커에 들어오셨다. 그 시를 보고 이것 누가 쓴것이냐구 중대장 더러 물었을 때, 이제 우린 둘이 꼼짝없이 영창 가게 되는줄 알고 얼마나 겁 먹고 떨었었는데...
나중에 그 시가 당시 전우 신문에 싫렸을줄을 누가 어떻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최명규 병장님 짧은 시간에 하늘만큼 땅 만큼 보고 싶고,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다 전할 수 없어 너무 너무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그립고 보고 싶은 최명규 병장님 꼭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넘넘 보고 싶어요. 연락 좀 주세요! 네 ~~~
인천 부평에서 - 청파 윤균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