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의소리 **
어머니가 한복을 입으신 모습은 아름답다. 중요한 집안의 대소사(大小事)에 어머니께서는 옥양목으로 된 한복을 언제나 차려 입으셨다. 한 여름엔 삼으로 만든 모시저고리였는데, 만추(晩秋) 들녁에 노랗고 자디잔 조의 색깔이었다.
명절이나 대소사(大小事)가 다가 올 때쯤 한복을 곱게 빨아 바람이부는 응달에 말리셨다. 식솔들이 먹고 남은 밥찌꺼기를 모았다가, 광목으로 만든 풀주머니 속에 넣어 으깨어 우유 빛 나는 풀물을 만드셨다.
어머니는 손가락에 풀물을 묻혀 한복에 뿌리셨다. 골고루 풀물을 먹인 한복을 다시 응달에 말리 후 양 볼에 물을 가득 머금어 분무기처럼 골고루 뿜으셨다. 적당히 수분을 머금은 한복을 포대에 쌓아 다듬잇돌 위에 놓고 방망이질을 하셨다.
어머니가 다듬질을 할 때는 집안이 한가하고 조용했다. 양손의 움직임은 천상(天上)을 향해 찬양하는 모습이었고, 여인의 회한(悔恨)을 노래 하는듯한 방망이소리는 처량 하다못해 엄숙(嚴肅)하기 까지 했다.
집안의 경사(慶事)스런 일이 있을 때면 다듬잇방망이 소리가 대청마루에 공명(共鳴)되어 연꽃 입새 위로 물방울이 굴러가는 듯한 청아(淸雅)한 음을 토해냈다.
어느 타악기 연주자가 둔탁한 방망이 두 개로 돌판 위에서 이런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을까? 어머님의 정갈한 방방이 소리를 지금 생각해 본다. 이 다듬이질 방방이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어머니만이 유일하게 하나님과 대화하는 방언(方言) 아닌가도 문득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한복을 다듬이질을 하는 것은 곱게 주름을 펴는 역할도 하였지만, 물빨래로 줄어든 치마저고리를 원래 길이로 되돌리는 역할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 옷들이 식물성이라 빨래를 하면 옷이 줄어들었고
다듬이질 한 것과 안 한 것은 때가 묻는 오염도 차이가 났다. 다듬이질이 끝나면 화롯불에 달궜던 인두로 저고리 옷깃과 동정을 조붓하게 다림질했다. 그리고 치마저고리의 잔주름을 잡은 다음 한복을 곱게 입으셨다.
홍포(紅布)를 보면 흥분해 돌진하는 스페인의 투우(鬪牛)처럼 어렸을 적 나는, 어머니가 한복을 입고 있을 때마다 어머니치마폭 속으로 무작정 돌진했다. 어머니는 투우사처럼 이리 저리 피하시다가 양팔을 벌려 마지막에 나를 치마 속으로 감싸 앉았다.
‘어머니에게 안긴 맛 ·······’ 무엇으로 표현할까? 치마 속에는 매실냄새 같은 상큼한 다듬잇살 향이 배어났다. 어머니가 움직일 때마다 풀 먹은 치맛자락의 다듬잇살 소리.........
‘사각사각’한 소리를 들어 본적이 있는가? 나는 이 소리를 ‘어머니의 소리’라고 한다. 어머니가 홑청을 갈아주신 이불속에서도 다듬잇살의 ‘사각사각’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어머니의 한복에서 나는 ‘사각사각’한 소리를 지금도 느끼고 있다.
내가 결혼식을 할 때 아내에게 예쁜 녹의홍상(綠衣紅裳) 한복을 보냈다. 그녀는 요즘 본견한복도 좋은데 웬 난데없는 무명 옥양목(玉洋木) 치마냐며 의아했지만 그녀는 나의 속뜻을 알아주었다 기꺼이 내가 보내준 연두저고리와 다홍치마를 입었다
. 폐백 때 큰절 을 할 때 마다 그녀에게서 다듬잇살 소리가 어머니처럼 ‘사각사각’ 들렸다. 본견으로 만든 실크한복을 입었을 때는 생동감 없이 축 늘어진 힘없는 모습이었고. 걸어 갈 때나 절을 할 때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소리 없는 무성영화(無聲映畵)만을 떠오르게 했다.
사람과 사람들 사이를 살짝 지나칠 때도 어김없이 눈을 밟을 때처럼 “사각사각”소리가 났다. 나는 다시 한 번 그 소리에 만취(滿醉)해 보고 싶다. 지금은 한복대신 ‘환자복’을 입으셨지만 내일! 아니,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를 다시 한 번 뵙게 해달라고 주님에게 기도를 드린다.
(2006년 9월 3일 병원을 다녀오면서: 이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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