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파평윤씨 태위공파 남양공손 성동리 문중 춘향제에 다녀오다 [사진&동영상]

2010. 4. 7. 01:00☎청파의사는이야기☎

728x90

 

 

 

 

 

 

 

 

파평윤씨 태위공파 남양공손 후손 가족납골묘

 

 

오늘(2010.4.4)은 파평윤씨 태위공파 남양공손 성동리 소종중문중 춘향제날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날 우리집안 조상님 춘향제를 모시고 왔는데 또 다시 성동리 문중 조카에게서 아저씨가 종친회장이시니 성동리 문중 조상님 춘향제에 참석하여 주셨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고 바쁜 업무가 있지만 빨리 다녀와서 일을 보기로 하고 오전 11시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문중 가족납골묘에 도착하니

 

벌써 20여분의 총친들이 춘향제 준비를 마치고 내가 도착하니 곧바로 제를 모시는데 이곳 성동리 소종중 가족 납골묘에는 40여분 조상님들에 대한 납골을 모신곳인데 먼저 맨 윗대 조상님에 대한 제례를 올리고 이후 부터는 대(代)가 같은 조상님들은 합동으로 잔을 올리는 절충형 형식으로 제례를 모시었다. 우리집의 경우 12분(5대조, 고조, 증조, 조부, 부모, 형님)을 모두 다 같이 함께 잔을 올리고 있는데 ... 그러나 이 두 문중의 개선된 제례문화 그 어떤 방식도 어떤것이 더 좋고 나쁘다는 평가를 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 모두 나름대로 일장일단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통 유교방식에 의한 제례 절차에 준하여 본다면 성동리 문중의 제례법도 그리고 우리집안 제례법도 모두 전통과는 한참 동떨어지게 변형된 제례를 모시고 있는것이다. 그렇치만 요즘같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사회에서 아직도 꼭 그 옛날 전통 방식만을 고집 하는것은 일면에서는 세태를 바로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과거에 얽메어 사는 모습이라 볼 수 있다. 현대는 과거 우리의 부모님들이 조상님하면 껌뻑죽어 받들던 그런 시대가 이미 아니다.

 

현재 50세 정도의 세상을 살아온 사람들 정도나 그나마 조상님과 부모님 유지를 받들어 묘소 벌초를 하고 있는 정도이지 이후 젊은 세대들에게 조상님 벌초, 기제사,등등의 유교문화적 제례 방식을 그대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집안도, 성동리 소종중 문중도 각처에 모셔계신 조상님들 묘소를 개장 화장을 모셔 납골묘를 조성하고 한곳에 조상님들 납골을 모시고 벌초도 어느날을 정하여 실행하다 보니

 

적어도 이날 만큼은 우선 벌초 일감이 작고 많은 종친들이 한곳에 모여 벌초를 하게되고 보니 요즘은 점차 젊은 사람들 참석율도 좋아졌다  과거에는 벌초 한다고 하면 젊은 사람들 모습은 눈을 크게 뜨고 보아도 보기 쉽지 않았지만 이렇게 납골묘를 조성하고 벌초를 하다 보니 이제는 어린 아이들을 대동하고 참석하는 종친들이 늘어 이제는 벌초나 춘향제, 추향제가 집안의 또 하나의 새로운 축제 문화 비슷하게 바뀌어

 

이기회를 통하여 좀체로 만나기 쉽지 않은 사촌, 오촌, 육촌, 등등의 종친들이 인사를 나누는 계기도 되고 내친김에 문중 대소사 일도 상의하고  얼마나 다양한 부분에서 효과를 얻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치 않았으면 벌초도 제례도 어떤집은 잘 모시는는가 하면 그렇치 못한 집안은 사실상 조상님 묘소 관리도 엉망이고 솔직히 제례도 올리지 못하여 자손없는 집안처럼 조상님 묘소가 고청으로 변모한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어 가슴아팠는데 이렇게 납골묘 조성하여 조상님들을 합동으로 모시게 되니

 

얼마나 편한 세상이 되었는지 ...그러다 보니 나 개인적인 생각엔 지금 우리처럼 여러곳에 산재되어 모신 조상님들 묘소를 개장 화장을 모셔 납골묘 조성하여 한 곳에 합동 관리 하며 제례를 모시는 방안이 요즘같이 바쁜 시대에 흉이되기 보다는 오히려 시대 현실에 적합하게 윗대 조상님을 모시는 방안으로 적극 장려되어야 할 문화라 생각을 한다. 물론 더 좋은 방안이 있으면 지속적으로 개선을 하면서 말이다.

 

 

성동리 문중 종손(鐘吉) 잔을 올리는 모습

 

 

이곳 성동리 문중 납골당은 180기용이다.

 

 

후손들이 재배를 올리고 계신 모습

 

 

 

 

 

 

 

 

 

 

 

 

이곳 성동리 문중 납골묘는 내가 풍수지리에 대하여 문외한이지만 묘자리로만 놓고 보면 아마 머지않아 우리나라에서 한가닥 할 수 위인이 나올 수 있는 자리가 틀림없는것 같다. 멀리 한강과 임진강이 서해에서 들어와 갈라지는 (삼더풍)이 훤히 바라 보이고, 묘소 앞 400여 미터 전방에는 시원하게 뻥 뚫린 자유로가 위치하고 있고 바로 임진강 건너편에는 북녁땅 옛날의 (경기도 개풍군과 개성)까지 훤히 건너다 보이고 서해 방향으로는 날씨 좋은날은 강화도까지 보이고 한강 건너 김포 방향도 무엇하나 막힘없이 훤히 보일 정도로 조망이 시원하다.

 

 

앞에 보이는 도로가 자유로이고 사이에 강이 임진강이며

건너편 빨갛게 대머리까진 산이 보이는곳이 북녁땅 이북이다.

 

 

간이묘사

 

춘향제를 모시고 따스한 잔디밭 햇볕 아래 종친들이 점심 식사를 하며 종사에 대한 회의도 진행 하면서 이날의 파평윤씨 태위공파 남양공손 성동리 문중 춘향제는 모두 끝을 맺고 서둘러 귀가 하려는데 집안 안 조카님께서 봉지에 손자아이 주라고 제사 음식을 한 보따리 싸 주시어 인사를 드리고 자유로를 달려 부평에 도착하니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성동리 문중 납골당 내부모습 (네모 한 칸에 화장모신 납골함 양위분)이 들어간다.

 

 

멀리 건너다 보이는 시뻘건곳이 북한땅인데 산이 온통 새빨갛다. 그리고 아파트라고

드문드문 지어놓은 모습도 보이는데 망원경으로 보아도 거의 인적은 보이질 않는다.

 

 

 

 

출처 : 사람사는이야기속으로
글쓴이 : 청파 윤도균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