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가훈 전시회

2009. 7. 21. 23:57☎청파의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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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가훈 전시회
03.11.13 01:06 ㅣ최종 업데이트 03.11.13 10:37 윤도균 (ydk3953)
▲ 교장 선생님과 내빈들이 개막식 테이프를 커팅하고 있는 모습
ⓒ 윤도균
나는 오늘(12일) 아주 특별한 학교, 아줌마스쿨(www.ajummaschool.com) 일성여자중고등학교와 양원주부학교(교장 이선재) 학생들이 개교 51주년 기념일을 맞아 개최하는 가훈 전시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집을 나선다.

그런데 아침부터 늦가을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어 나의 발길을 잠시 멈추게 한다. 보통 때 같았으면 비도 오고 날씨도 그렇고 다음날로 미루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으나 빗길을 마다하고 참석을 강행하는 뜻은, 요즈음 사소한 일로 가정과 사회가 무너지고 또 웃어른을 공경할 줄 모르는 현실을 보면서 그 원인은 모두 가정의 핵심 체계 즉 뼈대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 가정에 가훈은 집안의 철학과 미래를 담아 만든 뼈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일종의 가정 헌법과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 학생들과 내방 손님들이 교장 훈시를 듣고 있는 모습
ⓒ 윤도균
이러한 깊은 뜻이 담긴 가훈 전시회를 여는 이들은, 어린 시절 배우지 못한 것을 평생 마음의 한을 담고 있다 뒤늦게 중·고등학교 공부를 하기 위하여 모인 일성여자중고등학교와 양원 주부학교의 아주머니 만학도들이다.

이들은 어린 시절 피치 못할 가정형편으로, 그리고 딸이라는 남녀차별의식 때문에 아예 중·고등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열 식구 벌지 말고 한 식구 입 덜라"는 옛말을 따라 어린 나이에 일찍 출가하여 아프고 저린 마음 가슴에 쓸어안고 오로지 앞만 보고 가정에 충실한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역할을 성실히 이행하여 보란 듯이 떳떳하게 가정을 일구어 놓았다.

그런데 이 학교는 학생들이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필수적으로 가훈 갖기 운동을 전개하여 자녀에게 귀감이 되도록 하고 가정과 사회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원동력을 갖도록 하고 있다. 또한 매년 개교기념일이면 학생 작품과 서예가들의 친필 휘호를 협찬 받아 가훈 전시회를 열고 있는 것이다.

올해도 2003년 11월 12일(수) 오전 10시부터 11월 14일(금) 오후 3시까지 양원주부학교(서울 마포구 대흥동 소재) 강당에서 176점의 전시작품을 모아 가훈 전시회가 열고 있다. 이렇게 특별한 의미가 담긴 가훈전시회 행사 관람을 위하여 비를 맞으면서도 양원주부학교 사무실에 들려 대기하고 있는데도 50대 정도의 한 아주머니가 중학과정 공부를 하고 싶다고 찾아 왔다.

▲ 이선재 교장이 가훈전시회 훈시를 하고 있는 모습
ⓒ 윤도균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아주머니는 초등학교 졸업을 하지 못하여 중학교 과정을 바로 입학하지 못하고 초등학교 과정을 이수한 후 중학교에 입학이 된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행사 관계로 인파가 붐비는 와중에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그렇게 라도 공부하겠다고 다짐하는 그의 모습에서 배우지 못한 한이 얼마나 가슴을 저리고 아리게 하였는지가 느껴져
불현듯 나도 모르게 콧등이 시큰해지며 눈시울이 젖는다.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실은 나의 아내도 저 아주머니와 똑같은 조건하에서 이곳에서 공부를 시작하여 지금은 일성여자중학교 3학년 졸업반이고 내년이면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기 때문이다.

▲ 어머니 학생들로 구성된 합창단원들이 축가를 부르고 있는 모습
ⓒ 윤도균
양원주부학교와 일성여자중고등학교는 6.25사변으로 피난 나온 전쟁 고아, 극빈 아동 등 정규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는 청소년을 교육시킬 목적으로 1953년에 일성고등 공민학교로 출발, 주로 극빈자와 근로 청소년을 교육하여 왔다. 70년대 후반부터는 경제적 여건이 나아지고 중학교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청소년은 줄어들고 나이든 성인들이 입학하기 시작했다.

80년대 초에는 한 학급에 10여명 정도의 나이든 주부 학생들이 늘기 시작을 하여 83년도부터 주부들의 희망대로 별도로 지도하기 시작한 것이 양원주부학교의 시작이 되어 88년 평생교육법에 의해 평생교육시설로 교육청에 등록하였고 일성여자중고등학교는 2000년 12월 5일 서울특별시 교육감으로부터 2년 6학기제로 학력 인정을 받아 지금까지 모두 3만644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만난 한 주부학생에게 이번 전시회에 가훈을 출품하였느냐고 물으니 가족과 상의하여 가훈을 정하고 고명하신 서예가들의 도움으로 전시회에 출품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전시가 끝나고 나면 집 거실 중앙에 걸어놓고 온 가족이 가훈에 걸맞은 적합하고 바람직한 생활을 하며 명랑하고 건전한 가정을 만들어 나가면 아마 우리 사회도 더 밝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늦가을 아침 비를 맞으면서도 전시회에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나도 다시 한번 우리 집 가훈 “있어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를 새겨보며 발길을 집으로 향했다.

▲ 전시된 가훈 작품 일부 사진
ⓒ 윤도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