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없는 나무 없고 조상 없는 자손 없다 (시제이야기)

2009. 7. 21. 23:56☎청파의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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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없는 나무 없고 조상 없는 자손 없다 (시제이야기)
사회가 다양화 하면서 점차적으로 조상님을 모시는 시제 문화도 많은 변화를 하고있다
윤도균 (ydk3953)
옛날에는 음력 시월을 숭모경조(崇慕敬慕)의 달로 생각을 하리만큼 시월은 전국 각처의 각 성씨 문중별로 돌아가신 위 조상님들에 대한 시제를 모시는 달로 지정이 되어 시제를 모시고 있다

▲ 재실에서 제례 올리는 모습 1
ⓒ 윤도균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나의 아버님 게서는 음력 시월이 되면 매년 근 일주일기간 정도를 경주로 양주로 파주지방으로 시제를 드리기 위하여 집을 떠나곤 하셨다 가을 농사를 마치시고 어머님이 깨끗하게 빨아 달여놓으신 옥양목 두루마기에 한복 바지저고리를 곱게 입으시고 휘적휘적 성황당 고개를 넘어 몇 일간씩이나 시제 참석을 위하여 집을 떠나시는 아버지가 어렸을 적 나의 생각에는 마치 한얀 황새가 고개를 넘어가는 듯한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다 어느 해 시제때 인가 아버지가 또 다시 시제참석 여행을 떠나시려 준비를 하시기에 나는 아버지에게 아버지는 왜 그토록 조상님들의 시제에 대하여 몇 일간씩이나 나 집을 비우시며 한번도 빠지지않고 정성껏 참석을 하시냐고 말씀을 드렸더니 아버지의 말씀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자연과 사람은 “뿌리 없는 나무 없고, 조상 없는 자손이 없다”고 하시며

비록 옛 어른들의 교훈이 아니라 하더라도 나를 낳아 길러 주시고 돌봐주신 부모님이나 오늘의 나를 존재하게 해주신 조상님들에 대하여 정성을 다하여 일년에 한번 시제를“숭조경모(崇朝敬慕)”의 예우 차원에서 모시는 것은 자손으로서 당연한 도리이고 사람 사는 이치라고 말씀을 하여 주셨다

하시면서 아버지는 몇일있다 우리 파평윤문 문중에서는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기시고 또한 우리나라 역사에도 영원히 지워지지않는 빛을 남기신 윤관장군님 시제에 16살짜리 나를 데리고 참석을 하셨다 시제 하루전날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분 수리에 모셔진 윤관장군님 묘 사당에 도착을 하여 전국에서 구름처럼 많이 시제 참석을 하신 어르신들의 틈에서 하루저녁 숙식을 하면서

어려서지만 나는 어렴푸시 조상님 모시는 일엔 섣불리 나 개인의 사사로운 형편으로 인하여 조상을 모시는 일에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고 그 후 현대 사회를 사는 사회생활에서도 웬만하면 매년 거르지 않고 고향에서 모시는 조상님들 시제에 꼭 참석을 하곤 하였다

그런데 점차적으로 사회가 다양화하고 그에 따라 사람들이 과거와는 달리 너도나도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게 지내는 생활을 하다보니 과거에는 며칠에 걸쳐 나눠 지내던 시제를 몇 년 전부터 하루에 지내도록 간소화하였는데도

그런데도 실질적으로 시제날 오전에 시제를 올리고 점심 식사 후 오후에 모시게 되는 조상님들의 시제에는 참석을 하였던 후손들이 너도 나도 모두 바쁘다는 이유로 떠나 버리고 연세가 많이 드신 어르신들 몇 분만 남아 잔여 시제를 모시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어

하는 수 없이 작년도 시제때 앞으로 계속 이런 식으로 시제를 모시는 일이 유명무실해 지는 것을 방지하고 또한 바쁜 시간을 내어 참석한 후손들의 전원참석하에 시제를 축제형식으로 모실 수 있는 방법으로 재실을 지어 한곳에서 조상님들에 시제를 모시게 되면 한결 시제행사를 경건하게 모실 수 있을 것 이라는 종친들의 의견이 우세하여

금년 여름 서둘러 재실(용산제)을 짓고 올해 처음으로 재실에서 시제행사를 치러야 했기에 종친회 총무일을 보고있는 나는 시제 행사 때 사용할 병풍 3질을 직접 내손으로 휘호를 하여 제작하고 현판 글을 써 걸고 시제모실 제물을 준비 하고 근 보름여 기간동안 정말 정신없이 철저한 준비를 한 끝에

드디어 새로 건축한 용산제(龍山齊) 재실에서 많은 종친들이 참석 한 자리에서 성대하고 엄숙하게 시제를 모시게 되었다 올해 처음으로 재실에서 시제를 모시게 되니 과거보다는 한결 시제를 모시는 후손들의 마음가짐도 경건하고 또한 많은 제관들이 참석을 하여 그야말로 시제 축제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성황리에 시제를 마칠 수 가 있었다.

나의 아버님이 생존해 계실 때 늘 앞장을 스셔서 고향 시제에 참석을 하시며 하시던 일을 어언 내 나이 60이되어 이제 아버지께서 하시던 조상님 모시는 일에 내가 그 자리를 이어받아 다시 대 물림을 하고 있는 입장이 되고 보니 새삼 아버지의 업적이 그리고 아버님 생존에 흔적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