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이 만약 어느 지방에 소재하고 있었다면? 수요산행 의상능선길 [사진]

2006. 11. 23. 21:09☎청파산행과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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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이 만약 어느 지방에 소재하고 있었다면?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

= 산중에 명산은 안산 즐산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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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옛 문헌에는 북한산이란 명칭 보다는 삼각산(三角山)으로 더 잘 알려진 산이다. 이는 최고봉 백운대(白雲臺)와 그 동쪽의 인수봉(仁壽峰), 남쪽의 만경대(萬景臺:일명 국망봉)의 세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삼봉산(三峰山), 화산(華山) 또는 부아악(負兒岳) 등으로도 부른다.중생대 말기에 지층에 파고 든 화강암이 지반의 상승과 침식작용으로 표면에 드러났다가 다시 풍화작용을 받아 험준한 바위산이 되었다. 서울 근교의 산 가운데 가장 높고, 산세가 웅장하여 예로부터 서울의 진산(鎭山)으로 불렸다.

 

최고봉인 백운대에 오르면 서울 시내와 근교가 한눈에 들어오고, 도봉산·북악산·남산·관악산은 물론, 맑은 날에는 강화도·영종도 등 황해의 섬도 보인다. 인수봉은 암벽등반 코스로 암벽등반인들에게 인기가 높다.그 밖에 노적봉(716m)·영봉(604m)·비봉(碑峰:560m)·문수봉(716m)·보현봉(700m) 등 이름난 봉우리만도 40여 개나 된다. 등산 코스는 우이동·정릉·세검정·구파발을 기점으로 하는 코스가 대표적이다. 진관내동·세검정·성북동·정릉·우이동 등의 여러 계곡도 볼 만하다.

 

능선에는 북한산성이 8㎞에 걸쳐 펼쳐지는데, 평균높이는 7m이며, 14개 성문 가운데 대남문(大南門)·대서문(大西門)·대성문(大成門)·보국문(輔國門)·용암문(龍岩門) 등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또 비봉의 진흥왕 순수비 터를 비롯해 유명한 북한 이궁지(離宮址)와 진관사·문수암 ·태고사·원효암·상운사(祥雲寺)·도선사(道詵寺)·승가사·화계사 등 많은 사찰과 문화유적이 산재한다. 서울 외곽에 있어 연중 등산객과 일반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1983년 도봉산과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북한산이라는 명칭은 백제시대 이래의 한강 유역을 뜻하는 행정지명에서 기원하였고 산이름으로 부르지는 않았다. 『삼국사기』, 『백제사』 에 나오는 한산(漢山)과 관련된 기사를 살펴보면 한수(漢水) 이북의 북한산을 뜻하는 한산(漢山), 한수이남의 남한산을 뜻하는 한산, 한수이북 또는 한수이남의 어느 큰산을 뜻하는 말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백제사』 에 나오는 한산은 대체로 북한산 지역을 의미하고 있다.


백제의 시조 온조가 처음 한강 이북 하북위례성에 도읍하여 정착하였다가, 온조왕 14년(B.C5) 한강 이남으로 천도한 뒤 한강 이북의 한산지역을 북한산, 한강이남 지역을 남한산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백제에서는 주로 이러한 뜻으로 북한산이란 명칭을 사용하였다. 『삼국사기』에 '북한산'이란 명칭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진흥왕이 북한산에 순수비를 건립한 기사이다. "진흥왕16년 10월에 북한산에 순행하여 강역(彊域)을 획정하였다." 위의 기사에서 북한산이 순수하게 산명만을 지칭하는건지 '북한산주(北漢山州)'를 의미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진흥왕은 북한산의 비봉(碑峰)에 올라가 순수비를 세운 것은 분명하다.

 

또한 조선시대의 모든 지리서에는 '삼각산'이란 항목을 설정하고 일명 화산 또는 화악으로 적은데 비하여, 금서룡은 북한산이란 항목에 일명 삼각산이라고도 한다고 북한산을 본명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iN)

 

항간에 북한산의 명칭이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꼭 그렇치만은 않은 자료들이 많이 있다 (원래의 이름은 한산(漢山)으로 전해오고 있음) 1600년대에도 북한산을 삼각산으로 불린 것을 알 수 있다. 삼각산은  북한산 정상의 세봉우리 즉,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를 의미하는데 이는 서울에서는 잘 구분이 안된다.그런데 북한의  개성에서 북한산을 바라보면 명확하게 세 봉우리로 보인다  개성은 고려시대의 수도로 개경으로 .개경이 고려시대의 수도가 된 이후에  나라의 중심이 된 개경에서 남쪽의 북한산을 볼 때에는 '삼각산'이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문헌상으로는  고려시대 성종 이후부터 삼각산이라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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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시  : 2006년 11 월 22 일 (수요일)

  산  행 지 : 북한산(836m) (지구상에서 탐방객이 가장 많은 산)

   산행코스 : 구파발역 = 백화사입구 = 의상봉 = 가사당 암문 = 용출봉 = 용혈봉 = 증취봉 = 부  왕동 암문 =  나월봉 = 나한봉

                        = 청수동 암문 = 문수봉 = 대남문 = 대성문 = 보국문   = 대동문 = 구천폭포 = 아 = 카데미 매표소 = 수유역.

   산행인원 : 연산님,청파윤도균,조대흠대장,온사랑님,뭐야님,호야님,착한님,아인나님,이운영 님,톰스님, 양지편사람님,거

                       시기님,참이슬님,포맨님,빛도리님,빛쑤니님,난보물님,  후안님,산아님,드림님, 조은비님,백오동님,백 육동

                       님,능소화님,강경옥님...목민님 (문수봉)마음고요님(구천폭포) (27명)                

  산행시간 : 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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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감악산 산행때 고향 친구가 승용차 가득히 싫어준 김장꺼리로 도심생활 가족으로선 좀 많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려 배추를 30여통이나 김장을 담으며 인근에 살고 계시는 형수님 조카 며느리 누이동생을 불러 후다닥 김장을 해치우고 배추 겆저리에 들기름 듬뿍 넣고 지글지글 끓여 넉넉하게 장만하고 곁들여 돼지 보쌈 만들어 어머니가 정성으로 담으셨던 그 기가 막히 농주는 아니어도 서울 주변 산꾼들이 즐겨 선호하는 서울 막걸리 몇병 사다놓고 가족들이 빙 둘러 앉아 모처럼 푸짐하게 일요 만찬에 드니

 

세상사는 재미가 그 어느것 못지않게 여유롭고 즐거웠지요 옛날 배곱아 살던 내 어린 시절에는 늦가을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네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이 김장을 해치우고 나면 일년 반 농사를 지었다고 마음 든든해 하시던 그 시절의 아버지 어머니의 안위처럼 우리집도 그 못지 않게 마음든든함을 느끼기도 하지요 그러니 울 도영 할마이 커다란 김치냉장고 두개 가득찬것만 보고만 있어도 걱정이 없다며 내년 여름까지 이제 김치 걱정은 뚝 이라며 아주 흐믓해 하고 있네요 그러니 그런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는 도영이 할아부지 맘도 덩달아 흐믓하지요

 

하지만 그 도영 할마이 기쁨속에는 늘 말없이 내조 잘 하는 도영이 할아부지에 뼈골 욱신 거리는 아픔이 있는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자기만 배실 배실 웃어대는 울 도영 할마이가 ㅋㅋㅋ 김장하던 그날은 와 그리도 마귀 할멈처럼 무서버 보이는지요? 그게 무슨 소리냐구요? ㅋㅋㅋ 세상에 내 딴엔 재배 농민들 생각하여 강원도 아름드리 고냉지 배추 30통을 사가지고 오던마다 내친김에 아예 소금물에 절이는것은 내 담당이지요 어디 그 뿐인가요 절인 배추 하루밤 자고 나서 그 많은 배추 물에 씻는것도 또 내 책임이구요

 

그렇게 이른 새벽부터 한 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 아침 한 술 뜨고 나 잠시 숨돌리려 하니 울 도영이 할마이  자기는 도영이 델구 교회로 살짝 빠지면서 나더러 커다라 스탠 다라로 가득 담긴 무를 가르치며 저 무 채좀 썰어 줄 수 없냐고 물어 보는데 그넘의 소릴 듣고 어케 걍 넘길 수 있나요? 또 미친척 하고 팔 걷어 부치고 쓱쓱쓱 흥부가 박타듯이 슬근 슬근 채칼을 밀어 수북하게 양다라 가득 썰어놓고 나 겨우 숨돌리려 하는데 시상에 교회에서 돌아온 도영 울 할마이 고추가루 새우젓 같은 양념 다 내놓으며 자기는 재료를 넣어 줄 터이이 기왕지사 도와 주는것 배추속을 버무려 달라네요

 

나참 기가막혀 김장한다 떠벌려 놓고 결국은 짜리 몽땅 이 도영 할바이 막노동 시키려 작정이라도 한듯 한 시를 틈을 주지 않고 부려먹으려 작정을 했네요 그래도 함게 몸을 대고 살아온 삼십년 세월인데도 이렇게 계획적으로 남푠을 부려 먹으려 머리를 쓰는데 그러니 한 다리 건너 팥쥐 에미가 콩쥐를 어떻게 하면 더 부려 먹을 수 있을까 꽤를 냈던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같이 생각이 드네요 그렇다고 아직 형수님 누이동생들도 아니 왔는데 나 몰라라 팽개치고 강건너 등불 바라 볼 수 도 없는 성격이니 성질 급한넘이 우물 판다고 할 수 없이 또 말없이 무 채 썰은 다라를 껴 앉고 배추속을 버무리고 있지요 김장하는데 젤루 힘드는 일이 사실은 배추속 버무리는 일이거던요

 

하지만 어디 그런일 한 두번 해 봤나요 결혼 30년이 지났으니 이미 그짓도 30번도 더 넘게 했걸랑요 그렇게 힘들게 준비 해두었으니 끝이냐구요 ㅋㅋㅋ 어딜요 아직도 멀었능걸요 고무장갑 끼고서 한참 신바람나게 배추속을 넣어 벌써 몇통이나 채워 놓고 있는데 그때 형수님 조카 며느리 누이동생들 도착하여 배추속 넣고 있는 나를 보면서 아니 오빠! 작은 아버님 이게 웬일이세요 하면서 세상에 무슨 배추속을 남자가 넣고 있으며 어쩌면 그렇게 야무지게 잘도 잘 싸고 있느냐고 세상에 우리 오빠같은 남자가 어디 있느냐고 누이동생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니 게도 가재편이라고 누이동생 그 소리에 도영 할바이 어깨에 힘이 들어 가네요 

 

그러면서 지네 남푠 매제는 김장을 하던 뭘 하던 주방 근처에도 안 와 본다구 하면서 언니는 복이 호박이 넝쿨째 굴렀다고 하니 도영 할마이 그때서야 자기가 생각을 해도 그런것 같다네요 ㅋㅋㅋ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일을 할때는 모르겠는데 김장 다 해놓고나서 몸이 욱신 욱신 거리며 여기 저기가 다 뻐근 하여 지네요 하지만 무슨 개같은 팔자가 그렇다고 언제 안방에 한번 누어 휴식을 취할 그럴 시간이 없네요 일욜도 없이 이어지는 독서실 근무 시간 매일 2시까지는 꼼짝없이 지켜야 하다 보면 도영 할베는 평생을 단 하루도 아플 시간도 없답니다 마음같아서는 하루쯤 끙끙대고 싸고 누워 보고 싶은날도 있는것 있지요 ㅋㅋㅋ

 

하지만 그넘의 수요 산행날 오직 단 하루 도영 할마이가 내 자리를 대신 지켜준다는 그 옵션 때문에 꼼짝없이 깩 소리 한 번 못하고 꼬리 내리고 이렇게 비참하게 살지요 그리고 드디어 11월 22일은 이 도영이 할베 압박과 설음에서 해방될 수 있는 수요일! 그러니 그 수요일이 이 도영이 할베에겐 그렇게 소중하고 기다려 지는 날이 아닐 수 없지요 그러다 보면 어떤때는 일주일에 수요일이 한 두번 정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할때가 수도없이 많이 있지요 그런땐 반드시 울 도영할마이에 폭력과 압박이 있기 때문이란것 이미 나를 잘 아는 알만한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 된지 오래 됬지요 그렇게 고된 홍역을 치르며 나선 수요산행길이니 마치 날아갈듯한 기분으로 걸망을 걸머지고

 

전철을 두번이나 갈아타며 한 걸음에 달려가지요 그리곤 오늘도 또 서울지역 인근에 산다는 이유로 시도 때도 없이 수시로 북한산을 찿는것이 습관처럼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이제는 내가 북한산에 매료 되었기 때문일까요? 나도 모르게 북한산 예찬 극찬론자가 되어 버린지 이미 오래지요 그래서 이날도 또  늘 기대를 하며 찿아간 수요산행길이 지구상에서 다녀간 관람객 수 가 가장 많다는 북한산 하고도 설악의 공룡능선 버금가는 그래서 일면 북한산 공룡능선이라 불리우기도 하는 의상능선 산행길을 나섰지요 그러면서 생각을 하지요 만약에 아주 만약에 북한산이 설악산이나 지리산처럼 어는 지방에 위치하여 있다면 아마 모르긴해도 나의 생각으로는 설악산 지리산 못지 않게 산악인들에게 각광을 받을 수 있을텐데 ... 하는 생각을 하지요

 

솔직이 북한산 도봉산은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어 교통이 용이롭고 편리하여 수도권 인근 국민들의 각광을 받는 산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어 많이 알려져 북한산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찿는 산으로 소문이 나 있을뿐이지 설악산이나 지리산 한라산처럼 정말로 산을 사랑하는 산 매니아들이 즐겨 찿는 산이되어 세계에서 탐방객수가 젤로 많은 산은 아니지요 하지만  만약에 북한산 도봉산이 설악산이나 지리산처럼 지방에 소재 하고 있다면 나의 생각으로는 정말로 산을 사랑하는 매니아 산님들에게도 결코 설악이나 지리산 한라산 못지않게 각광을 받을 수 있는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산이라는 생각을 하며 안타깝게 생각을 해보지요

 

시간날때 마다 늘 북한산을 찿는 나같은 경우가 생각을 할때도 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만 솔직이 북한산 산세나 그 아름다움 만으로 따지고 본다면 우리나라 그 어느 산과 비유를 하여도 결코 뒤지지 않을 아름답고 유명한 산인데 다만 수도권과 인접하고 있으며 게다가 교통 연결까지 용이롭게 이루어 지고보니 수도권 시민들이 너도 나도 많이 편안하게 오르다 보니 북한산은 사실 자연도 꽤나 많이 훼손이 된것도 사실이고 또한 인구밀도와 그로 인한 차량으로 인한 공해가 늘 띠를 두르고 있다보니 신선한 산행길에 대한 선호도 면에서 환경적으로 뒤질뿐 그래서 안타깝게 생각을 하지요

 

그렇치만 않고 북한산이 만약 어떤 지방에 소재하고 있다면 아마 모르긴 해도 북한산은 정말 산을 사랑하는 산 매니아 분들에게도 가장 각광을 받을 수 있는 산으로서 손색이 없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또 북한산을 사랑하는 사람이되어 나는 일행들과 함께 북한산의 공룡능선이라 불리우기도 하는  의상능선을 향하여 일행들과 함께 오르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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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년말이면 사람들의 가슴 옷깃에서 볼 수 있는 사랑의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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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사 매표소를 향하여 / 우측으로 뾰족하게 보이는 봉우리가 의상봉이지요

 

구파발 1번  홈에 9시 40분까지 집결하고 보니 흐미 오늘도 또 25명의 인원이 참석을 하였네요 아마도 의상능선을 간다는 공지를 보고 더더욱 많은 회원님들께서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이들 동행산행을 길을 나서지 않았나 생각을 하며 늘 함께 하는 산님들에게 감사를 하며 일행들이 모여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다시 버스를 타고 북한산 매표소를 향하다 백화사 앞 하차하여 이곳에서 부터 산행이 시작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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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가을이 꽤나 깊은듯 등로에는 수북하게 쌓인 낙엽길을 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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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이 늘 선두를 맡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전진을 하는 조대장을 따라 급하게 경사로 이어

진 등로를 따라 오르다 잠시 전망을 보니 백운대 염초봉 원효봉이 아주 가깝게 건너편에 선명하게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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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산행길 가이드 조대장의 등로 안내는 계속되고 ...

 

의상봉은 북한산 매표소를 가다 보면 가기전 우측으로 뾰족하게 솟아 오른 암봉이 보이지요 그곳을 지나 다니다 보면 누구나 한 번

쯤으 꼭 오르로 싶어 하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무엇 보다도 암릉길로 이어지고 있어 산행을 하는 또 다른 멋과 맛을 느끼게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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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부터 서서히 의상봉 암릉 구간이 시작이 되지요

 

의상봉은 그 높이가 503미터로 바로 건너편에 마주 보이는 원효봉과 그 높이가 비슷하다고 하는 조대장의 설명이 이어지고 있지요 하지만 산행을 하며 사진에 미친 난 늘 조대장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다 보면 이렇게 산행기로 기록을 할때 메모도 안하고 증말 애를 먹지요 그러다 보면 때론 엉뚱한 지명을 써 실 수를 할때도 많이 있지요 그러면 이를 본 조대장 급하게 전화가 오지요 형님 이 부분은 어떻게 잘못이 되었으니 수정 하세요 하고요 그러다 보니 난 이제 산행을 하면서 조대장 없이 허전해서 산행을 하지 못할 정도로 뗄라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말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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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경사 슬랩 릿지구간

 

하지만 고령자라고 여자들이라고 스님이라고 봐 주는것 조대장은 얄짤 없지요 일단 등로 구

간에 들어서면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누구나 전원 열외없이 통과를 하여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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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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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대 만경대 노적봉도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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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사이로 본 또 다른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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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증말 절경이다 조대장 그의 설명에 일행들이 감탄사가 이어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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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쎄게 한 번 쉬지도 못하고 일행들 전원 의상봉 정상엘 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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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좌우로 의상능선에서 바라보이는 조망은 정말 환상적인 산악 드라마 한편을 보듯 이어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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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최대의 흑룡사 / 나무관세음보살 / 내년에는 증말로 국립공원 입장료 좀 안받게 하여 주십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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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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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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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할 용혈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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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에 귀여운 울 바둑이 바위도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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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혈봉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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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암봉은 모두다 오르며 가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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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안전 둘도 안전 늘 안전 제일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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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행이 된 나와는 갑장 온사랑님 화이팅!!

 

우리들 산행길엔 3 ~ 4학년 산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지만 때론 나 보다도 더 선배님들도 몇 분들 계시지만 이 분들 결코 젊은 산님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고 그동안 쌓으신 년륜으로 암벽을 오르내리시며 어우러져 산행을 하는 모습을 볼때 마다 정말 인생은 60부터란 신조어를 실감하게 되지요 그러다 보니 나더러 어떤 산님들은 그러네요 청파님은 육학년 3반이 아니라 삼학년 6반이라구 하라네요 ㅋㅋㅋ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생은 맘 따로 나이따로 따로 따로 늙게 되더라구요 - 그러니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 있지요 맘은 청춘인데 아니라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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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능선 산행길의 귀여운 마스코트 바둑이 바위가 마치  손에 닿을듯 가까이에서 우리 일행들을 반기고

있네요 줌으로 당겼걸랑요 ㅋㅋㅋ 하여간 늘 포동포동한 그 아릿다운 모습이 영랑없는 바둑이를 닮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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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취봉 정상은 암봉이되어 정상목은 바위 아래에 세워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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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이 이곳 증취봉 암벽 한켠 마당바위 구간에 모여앉어 금강산도 식후경 점심식사를 하게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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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형님 늘 너무 위험해요 안전에 만전을 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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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회로도 있지만 일행 전원 암벽을 통과 하라 이건 조대장 의 지상 명령이지요 그러니 어케 열외 우회를 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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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두 조대장의 뒤를 따라 늘어선 일행들 우리 일행들이 지나는 모습을 옆으로 우회를 하는 산님들이

보면서 특공대 훈련 하는것 같다고 수근 수근 거리며 지나시네요 ㅋㅋㅋ 맞아요 울덜 조특공대 ㅋㅋㅋ

 

 

오르기만 하나요? 내려갈때 더욱 신경을 써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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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시범 조교 빛도리님 안전하게 조심조심 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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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설악의 공룡능선을 넘는듯한 착각을 하게 하지요 아니 근디 맨 앞에 백오동님 아니셔요 으이그 무서버라 ! 기세 등등하

던 남자 산님들이 백오동님 오신다니  철녀 산님이 무서버 겁난다고 초장 부터 겁을 먹었는데 ...이날 산행길에 함께 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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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급경사 암벽 구간을 내려가는 사진인데 암벽위에서 찍은 사진이 다 보니 마치 평지를 재미로 기차놀이 하며 가고 있는듯 하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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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베이터 암벽 구간을 일행들이 내려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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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능선에 바라본 건너편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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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봉 정상에서 식사를 하는 산님들의 모습 대부분 이곳 칠선봉은 통과를 안하고 걍 지나 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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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봉 기암절경 암봉군 / 우리들이 이곳 구간을 가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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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의 역사를 보는듯한 착각이 / 대열을 지어 문수봉을 우회하는 산님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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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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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칠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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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지나온 의상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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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들이 올라 오기를 문수봉 정상에서 응원 산행차 반대코스로 오시어 기다리고 계신 목민님 모습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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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을 오를때 마다 생각이 나지요 릿지화는 물론이지만 거머리 손 같은것은 없는가? 누가 개발을 할 수 없나 아마 그런 개발품 나오면 새

로운 장비로 돈벌이 꽤 될터인데... 거머리처럼 바위에 착착 붙는 거머리 손 함 연구나 해 볼까 생각을 하는데 잘 될릉가 모르겠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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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여자라고 봐주지 않컬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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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도 코스를 선두가 시범을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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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끔찔끔 오금이 저리는 구간도 전원 무사히 안전하게 통과를 하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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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아래 문수사 도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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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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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수녀님도 암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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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대 만경대 인수봉 노정봉이 한 눈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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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늘 사랑하는 태기가가 휘날리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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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이 기념 사진을 찍어 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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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본 문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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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문 이제 부터는 북한산성 성벽길을 따라 안전 산행으로 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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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봉 구간도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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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길과 개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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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길따라 우리들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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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길 옹성에 벌써 일행들이 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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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옹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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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산행은 사실은 암벽등로만 오간것이 아니라 역사 탐방 산행을 한것 못지 않게 계속 이어지는 성벽 그리고 이어지는 문들을 경우하며 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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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위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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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에서 우리들은 우이동 아카데미 하우스 방향으로 하산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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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을 통과하고 있는 일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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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수락 불암산이 보이지만 스모그 현상으로 조망이 좋지를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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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이 풍부할때면 장관을 이룬다는 구천폭포와 계곡을 지나 아카데미 하우스 매표소 인근에 오니 완전히 낙엽쌓이 등로가 운치가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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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매표소를 통과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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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육원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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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육원을 지나 일행들이 가벼운 뒷풀이라도 하기 위하여 도보 하산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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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단풍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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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과 자전거와 늦 가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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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강북구 구간에는 늘 올때마다 느끼지만 태극기가 가로등에 늘 계양이 되어 있는것이 참으로 인상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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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마찬 가지로 이날도 의상능선에서 아카데미 하우스 매표소까지 북한산 (서,동) 종주를 했지요 그것도 준마처럼 달려가듯하는 산행이 이어지다 보니 어떤 산님 너무 빡쎄고 힘들어 다음부턴 못 나오겠다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소리도 들었지요 ㅋㅋㅋ 하지만 그런 소리 하신 산님들 나중에 보면 당신들이 더 열성적으로 수요산행에 참석을 하시게 되는걸 왕왕 보고 있지요

 

그러다 보니 목도 마르고 아무리 시간이 없다고 하여도 어케 참새가 방아간을 걍 지나 가나요 그냥 저녁 삼아 꼬리국밥 시켜놓고 시원한 맥주 한잔에 이슬이 한 잔 부어서 목을 축이고 나는 또 업무 관계로 일행들 보다 조금 먼저 서둘러 자리를 일어서 부평까지 달려오니 어느덧 7시 반이 다 되고 있네요 산행을 하고서도 언제 한번 편히 앉아 뒷풀이도 못하는 내 인생 증말 증말 힘들게 넘으며 살고 있지요

 

이날도 함께한 울 수요산행길 산님들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아울러 저에 산행기를 늘 애독하여 주시는 산님들에게도 늘 감사를 드립니다 언제까지 일지는 모르지만 산행을 놓치 않고 계속 이어지는 한 부족 하지만 저에 산행기는 이어질것입니다 늘  너그러움으로 애독 하여 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이제는 날씨가 많이 쌀쌀하여 졌습니다 환절기 늘 건강들 유의 하시고 즐거운 산행길 안전하게 이어 가시길 기원 합니다

  

  

저의 길고 긴 산행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산님들에게도 함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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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

경제 대공황 시절 미국의 많은 가정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구입하기는 커녕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우리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하지만 우리 가족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놀이도 있지.” 라며 가난에 찌들릴 대로 찌들려 잔뜩 주눅이 든 우리들에게 재미있는 놀이를 제안하셨다.

“상상력을 발휘하는 거야, 서로에게 주고 싶는 선물을 그림으로 그려서 주면 되잖아.”

 

코리스마스 아침이 되었다. 아버지가 빛나는 검정 리무진과 빨간 색 코터보트를 선물로 받았다. 어머니는 다이아몬드 팔찌와 새 모자를 받았다. 어린 피터는 선물을 받으면서 활짝 웃었다. 수영장 그림과 잡지에서 오려낸 장난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피터가 부모님께 선물을 드릴 차례였다.

피터는 얼굴 가득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밝은 색 크레용으로 남자, 여자 그리고 사내 아이가 그려진 그림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림 밑에 서툰 글씨로 꼬불꼬불하게 힘들어 쓴 한 단어를 보고 가족들은 감격에 겨워 서로 꼭 부둥켜 안았다.그 단어는 바로 “우리”라는 글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