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라 !! 산내음 열풍아 2 [사진]

2006. 4. 5. 23:42☎열린자유글겔러리☎

728x90



 

 

불어라!! 산내음 열풍아 ! 2

 

 

 

  

 

 

사패산(552m)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동과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 사이에 있는 산

위치: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동과 양주군 장흥면 울대리 사이

 

높이는 552m이다. 북한산국립공원의 북쪽 끝에 있는 산으로, 동쪽으로 수락산, 서남쪽으로 도봉산을 끼고 있다. 도봉산과는 포대능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사이에 회룡골계곡이 있다. 의정부시 서쪽에 있으며, 양주시 장흥면에 있는 4km 길이의 송추계곡은 북한산국립공원 송추지구로 지정되어 관리된다. 사패산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선조의 6째 딸인 정휘옹주가 유정량()에게 시집갈 때 선조가 하사한 산이라고 하여 붙은 것이다.

 

한동안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어 일반인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고 도봉산이나 북한산의 유명세에 가린 덕분에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다. 숲이 울창하고 계곡에 물이 풍부하고 깨끗하여 가족단위 휴양지로 인기 높다. 암봉이지만 도봉산의 날카로운 암봉과는 대조적으로 정상은 넓은 암장으로 되어 있고 거대한 제단 모양을 이룬다.

 

산행 기점은 양주시 송추계곡과 원각사계곡 2곳, 의정부시 안골계곡, 범골계곡, 회룡골계곡 3곳이 있는데, 어느 코스든 산행시간은 3~4시간 정도 걸린다. 계곡의 시원한 맛을 느끼면서 산행하려면 범골계곡, 안골계곡, 송추계곡이 낫다.  

 

대중교통으로는 의정부행 국철을 타고 회룡역(회룡골 코스)이나 의정부역(안골계곡, 범골계곡 코스)에서 내리거나, 교외선을 타고 송추역에 내려 송추계곡과 원각사 코스로 올라가거나,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의정부행 버스를 타고 송추에서 내려도 된다.  

 

 

 

 산행일시 : 2006년 4월 5일

 산  행 지 : 울대고개 사패산 회룡사

 산행코스 : 울대고개 - 사패산 = 포대능선 - 헬기장 = 회룡사 = 회룡사 매표소

 산행인원 : 16명

 산행시간 : 4시간 반

  

 

 

 

 

 

 

 

 

 

 

 

 

 

 

 

 

 

 

 

 

 

 

 

 

 

 

 

 

 

 

 

 

 

 

 

 

 

 

 

 

 

 

 

 

 

 

 

 

 

 

 

 

 

 

 

 

 

 

 

 

 

 

 

 

 

 

 

 

 

 

 

 

 

 

 

 

 

 

 

 

 

 

 

회룡사 소개

 

회룡사는 조선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절의 창건에 관해서는 신라 때 초창되었다는 설과 조선 초에 창건되었다는 서로 다른 주장이 전해지고 있다.1977년 봉선사에서 발행한 <봉선사본말사약지>에는 절이 681년(신문왕 1) 의상(義湘)에 의해 창건되어 법성사(法性寺)라고 불려졌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다른 문헌에서는 의상이 도봉산에 법성사라는 절을 창건했다는 기록을 찾아 볼 수 없다.

아마도 후대에 세워진 국내의 여러 절들이 의상이나 원효, 또는 도선 등을 창건주로 받드는 것은 절의 유래가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에서 나온 듯하다.회룡사 역시 이러한 생각에서 창건주를 신라 통일 초기의 고승인 의상으로 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그러므로 절에서 주장하고 있는 의상에 의한 창건 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주저되는 점이 있다.

의상의 창건 이후의 역사는 <봉선사본말사약지>에 의하면 930년(경순왕 3)에 동진(洞眞)국사가 재창하고 1070(문종 24)에 혜거(慧炬)국사가 3창하였으며, 1384년(우왕 10)에 무학대사가 4창하고 1034년(태종 3)에 회룡사로 고쳐 불렀다고 되어 있다.절을 재창하였다는 동진대사는 신라 말 고려 초의 선종 승려로서 그의 비문이 전해지고 있는데 회룡사와의 관련 사실은 비문에 보이지 않는다. 동진 경보(慶甫, 868~948)는 영암 출신으로 풍수지리설로 유명한 도선(道詵, 821~898)의 제자이다.

동진대사는 중국에 유학하여 조동종(曹洞宗)을 국내로 들여왔고 후백제 견훤의 후원을 받기도 하였고, 고려가 건국되자 태조와 혜종, 정종의 귀의를 받기도 하였다. 만약 회룡사가 동진 경보에 의하여 재창된 것이 사실이라면 절은 의상에 의해 화엄 사찰로 출발한 후 신라 말 고려 초에 선종 사찰로 그 성격이 바뀐 셈이 된다.그러나 동진에 의한 재창설 역시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고려 문종 때 절을 3창하였다는 혜거 역시 망월사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광종 때 영국사(寧國寺)에 머물던 법안종 계통의 승려로 짐작되고 있다.

광종 때의 혜거국사가 회룡사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은 있으나 절의 기록에는 문종 때라고 하고 있어 의심스러운 면이 있다. 그러니까 회룡사와 관련된 무학대사 이전의 사실은 모두 사찰의 기록 그대로를 믿기에는 망설여지는 면이 많다고 하겠다.권상로가 편찬한 <한국사찰전서> 하권의 회룡사항에는 한결같이 무학대사에 의하여 1984년(우왕 10) 또는 1395년(태조 4)에 처음 창건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마 이 기록은 그대로 믿어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조선 전기에 편찬된 <신중동국여지승람> 권11의 양주목 불우(佛宇)조에 망월사, 영국사 등과 함께 도봉산에 있는 절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절의 창건과 관련하여서는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에 얽힌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즉 1398년(태조 7) 태조가 함흥에서 한양의 궁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있던 왕사 무학을 방문했다.

무학은 1394년에 정도전(鄭道傳)의 미움과 시기를 받아 이곳 토굴에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이 때 태조의 방문을 받았던 것이다. 태조는 여기서 며칠을 머물렀고, 이에 절을 짓고는 임금이 환궁한다는 뜻으로 그 이름을 회룡이라 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1881년(고종 18)에 승려 우송(友松)이 쓴 <회룡사중창기>에 전하고 있다.이와는 연대는 달리하여 함흥에 내려가 있던 태조가 1403년(태종 3)에 환궁한 뒤 이곳에 있던 무학을 찾아 왔으므로 무학대사가 태조의 환궁을 기뻐하여 회룡사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이와는 달리 1384년(우왕 10)에 이곳 도봉산에서 이성계는 무학대사와 함께 창업성취를 위한 기도를 했는데, 이성계는 지금의 석굴암에서, 무학은 산등성이 가까이 있는 무학골에서 각각 기도를 드렸다는 것이다.그 뒤 이성계가 동북면병마사 라는 직책을 맡고 요동으로 출전하자 무학은 홀로 남아 작은 절을 짓고 손수 만든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그의 영달을 축원했다고 한다. 그 뒤 왕위에 오른 이성계가 이곳으로 와서 무학을 찾아보고 절 이름을 회룡사로 고쳤다고 한다.

 

 

 

 

 

 

 

 

 

 

 

 

 

 

 

 

 

 

 

 

 

 

 

 

 

 

 

 

 

 

 

 

 

 

 

 

 

 

 

 

 

 

 

 

 

 

 

 

 

 

 

 

 

 

 

 

 

 

 

 

 

 

 

 

 

 

 

 

저의 길고 긴 산행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산님들에게도 함께 감사를 드립니다

  

청파 윤도균이 운영하는 카페이지요  

주소를 누르시면 이동합니다

  

카페 주소 http://cafe.daum.net/salamstory  

다음카페 사람사는이야기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