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응봉능선~문수봉~의상능선~국녕사] 수요산행 속으로...[사진]

2006. 3. 16. 13:38☎청파산행과여행기☎

728x90

 

 

 

             삼각산[응봉능선 ~ 문수봉 ~ 의상능선 ~ 국녕사] 수요산행 속으로...

 

 

 

 

 

 

의상능선에서 만난 강아지 바위

  

 

북한산성 北漢山城
지정번호
:
사적 제162호
지정연월일
:
1968년 12월 5일
  시 대
:
조선시대
  규모·양식
:
543,795㎡ 석축
  재 료
:
석조기단, 목조
  소 유 자
:
국유
  소 재 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 1-1 외, 서울특별시
     
은평구, 성북구, 강북구, 도봉구 일원

북한산성은 조선 숙종 때 한성의 관망을 위해 도성을 축조하고, 그 방어 효과를 높이기 위해 삼각산에 산성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북한산성이란 이름은 ≪삼국사기≫에 백제 개로왕(蓋鹵王) 5년(132)에 이미 나타나고, 신라는 이곳의 비봉(碑峰)에 진흥왕(眞興王)이 순수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진평왕(眞平王) 25년(603)에는 고구려 장군 고승(高勝)이 북한산성을 포위 공격하자 왕이 1만명의 군사로 구원한 기록이 있고, 661년에는 고구려의 장군 뇌음신(惱音信)이 말갈군과 함께 북한산성을 20여일간 포위 공격하자 성주이던 동타천(冬陀川)이 성안의 주민 2, 800명과 함께 필사의 결전으로 물리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때의 북한산성은 오늘날의 성곽으로 둘러싸인 북한산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한산성(漢山城) 즉 한산 지역의 북쪽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한편 11세기 초 거란의 침입이 있자 고려 현종(顯宗)은 고려 태조의 재궁(梓宮)을 삼각산에 옮겨왔다. 고종(高宗) 19년(1232)에는 삼각산에서 몽고군과의 격전이 있었으며, 우왕(禑王) 13년(1387)에는 삼각산에 중흥산성(重興山城)을 쌓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침을 자주 당하자 도성의 외곽 산성을 마련하자는 축성론(築城論)이 일어나 효종 10년(1659) 송시열(宋時烈)에게 명하여 수축하게 하고, 숙종 37년(1711)) 왕명으로 대대적인 축성공사가 시작되었다. 그 해 4월에 착수한 이 공사는 훈련도감(訓鍊都監)·금위영(禁衛營)·어영청(御營廳)의 3군문이 담당하였고, 그 아래 각 군문에는 책임 감독관으로 낭청(郞廳)을 두었으며,

 

또 그 아래에 내책응(內策應)·외책응(外策應)·독책장(督策將)을 두었다. 공사별로 부석패장(浮石牌將), 축성패장(築城牌將), 수구패장(水口牌將), 운석패장(運石牌將), 치도패장(治道牌將)과 이장변수(泥匠邊首), 야장변수(冶匠邊首), 석수변수(石手邊首), 목수변수(木手邊首) 등으로 공사를 감독하도록 하였다. 축성에 필요한 노동력은 3군문의 군사는 물론 서울의 주민과 승려들이 동원되었고, 그 밖에 모역군(募役軍)과 각종 공장(工匠)이 동원되었다.

 

서울의 주민은 경상가(卿相家) 이하 각 호(戶)를 대·중·소로 구분하여 대호는 3명, 중호는 2명, 소호는 1명씩 식량을 지참하고 취역에 나섰으며, 모역군은 한 달에 쌀 9두와 면포 2필씩이 지급되었다. 이때 이룩된 것이 오늘날의 북한산성이다.약 6개월에 걸쳐서 완성을 보게 된 북한산성의 성기(城基)는 보현봉·만경대·백운대·원효봉·대서문·의상봉·증취봉·나한봉 등을 연결하는 선으로 길이는 모두 7, 620보, 즉 21리 60보가 된다.

 

그 중에서 수문(水門) 북변에서 용암(龍岩)까지의 2, 292보는 훈련도감이, 용암 남변에서 보현봉까지의 2, 821보는 금위영에서, 수문 북변에서 보현봉까지의 2,507보는 어영청에서 각각 담당하여 쌓았다. 성문은 모두 13개로 수문 북변에서 용암까지 사이에 수문(높이 16척, 폭 50척), 북문(높이 11척, 폭 10척), 서암문(西暗門, 높이 7척, 폭 7척), 백운봉암문(높이 6척 3촌)이 있고, 용암 북변에서 보현봉까지 사이에 용암봉암문(높이 6척 5푼, 폭 7척 5푼), 대동문(大東門, 높이 9척, 폭 10척), 보국문(輔國門, 높이 6척 6촌, 폭 6척 5촌), 대성문(大成門, 높이 13척, 폭 14척)이 있으며, 수문 남변에서 보현봉까지 사이에 대서문(大西門, 높이 11척, 폭 13척), 청수동암문(높이 7척, 폭 7척), 부왕동암문(높이 9척, 폭 8척), 가사당암문(높이 7척, 폭 7척), 대남문(大南門, 높이 11척, 폭 11척)이 있었다.


축성이 끝난 후 숙종 38년(1712) 10월에 이르러서는 북한산성의 주관부서로 경리청(經理廳)을 설치하고, 여기에 도제조와 제조관을 두었다. 행궁(行宮)의 수호ㆍ관리는 관성장(管城將)이 맡았으며, 수성장병(守城將兵)으로는 대성문ㆍ동문ㆍ 서문에 수문장 각 1인과 갑사둔(甲士屯), 점암둔(點岩屯)에 둔장 각 1인을 배치하였고, 수첩군관(守堞軍官)은 266인, 별파진(別破陣) 200인, 아병(牙兵) 635인이 항상 거주하였다.

 

그 후 영조 23년(1747)에는 총융청(摠戎廳)으로 하여금 관리토록 하였고, 이듬해에는 상원봉(上元峰) 아래에 130칸의 행궁과 140칸의 군창(軍倉)을 지었다. 성내에는 승군(僧軍)을 위한 136칸의 중흥사(重興寺)가 승군 총섭(摠攝)이 있는 곳이었고, 이 밖에도 11개의 사찰과 2개의 암자가 있었다. 성안에는 8개소의 창고가 있었으며, 99개소의 우물과 26개소의 저수지가 있었다.


현재 성의 둘레는 12㎞, 성 안의 면적은 200여만평으로, 성벽은 아직도 잘 남아 있는 부분이 많다. 성곽의 여장은 허물어졌으나, 현재 대서문이 남아 있고 장대지(將臺址)·우물터·건물터로 추정되는 방어시설의 일부가 남아 있다. 1990년부터 훼손된 동장대·대남문·대성문·대동문·보국문과 성곽들을 보수·복원하여 거의 완공 단계에 있다.

 

- 서울시문화재 홈피에서 발췌 -

 

 


 

산행지도 한서락님 제공

 

 산행일시 : 2006년 3월 15일(수요일)

 산  행 지 : 삼각산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 1- 1외 서울특별시 은평구

 산행코스 : 용봉능선 비봉능선 의상봉능선

 산행인원 : 14명

 산행시간 : 5시간

  

 

 

좌 지하철 구파발역에서 인사 소개를 하고 있어요

우 일행들이 기자촌 느티나무 정류장에하차 하여

 

 

돌이켜 보면 내가 북한산을 처음 올라 본것은 등산이라기엔 너무나 웃기는 복장 (운동화에 청바지차림 비무장)으로 지금으로 부터 15년여전 초딩 동창회를 북한산 기자촌 입구에서 만나 가볍게 산행을 하고 내려 오자고 시작한 산행코스가 아마도 응봉능선이 아닌가 긴가 민가 하게 기억이 가물 거린다 그후  IMF라는 거대한 파고를 만나 내노라 하던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에 다니던 친구가 잘나가던 직장을 명퇴 하고 날 잧아온 후 나는 가끔씩 친구와 북한산을 찿은것이 북한산(삼각산) 산행길의 시초가 되었다

 

그땐 솔직히 어떤 코스를 가야 좋은지 상식도 없이 무조건 북한산을 찿은것이다 그땐 지금처럼 컴퓨터를 다를 줄도 모르고 또한 요즘처럼 다양한 층의 산행인구가 산을 찿지도 않던 시절이다 그러다 보니 궁리끝에 구기동 5도민 회관을 경유하여 깊은 산골짝속에 고래등 같은 몇층집으로 되어 있는 그 시절 이회창씨집을 지나 무작정 올랐다 그렇게 시작된 북한산 산행길은 10년의 세월을 산을 다니게 되면서 이제는 그 수를 헤일 수 조차도 없이 북한산을 많이 오르내렸다

 

그러다 보니 이제 나름대로 산행에 대한 가속도 생기고 비법도 꽤나 터득을 하였는데도 늘 단체 산행에 몸이벤 나는 지금도 나홀로 산행을 상당히 꺼려하며 피하고 있다 그래서 혹시 시간적 여유가 있을때면 늘 옛날 내가 첫 경험을 한 북한산 산행 코스를  다시 올라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는데 ... 봄이오는 소리가 들리고 날씨가 상당히 화창하여 지면서 늘 우리덜 수요산행팀에게 환상의 산행코스를 안내 하여주는

 

우리산내음 조대장과 한서락 아우가 1개 능선도 아닌 북한산 환상의 3개능선 코스 (응봉 비봉 의상능선)을 하루에 돌아 준다니 이게 얼마나 고맙고 기쁜일이 아닌가요 나로선 절대로 놋칠 수 없는 절호의 챤스 이지요? 사람들은 나더러 아니 그렇게 여러번 북한산을 다니면서 그러고도 안가본 코스가 있느냐고 하면서 웬만하면 한번 빠지고 자신들과 원거리 원정 산행을 함께 가자고 몇번의 추파를 던지 오지만

 

솔직히 원거리 산행 조오치요 하지만 일년전만 하여도 아들 아이들이 일요일 아빠를 대신하여 자리를 지켜 주어서 그땐 가능 했지만 요즘은 모두다 직장들을 다니면서 부터는 저희들도 휴일을 쉬어야 하니까 사정이 여의칠 못하답니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소비하면서 달려가 정작 산행 시간은 고작 대 여섯시간 하고 집에는 밤중에나 늦게 돌아오게 되다 보면  나처럼 아직도 일선에서 생업의 현실에 충실하여야 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쉽지가 않지요

 

그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나더러 그럼 일요산행을 함께 가자고 권유를 해오지만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일요일 공휴일이 없이 정신없이 뛰어야 하는 한심한 자영업자 인걸요 그러다 보니 나 같은 사람들에겐 요즘 우리나라 근로자님덜 주 5일재 근무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영원히 가까이 갈 수 없는 별처럼 생각이 들고 아니면 마치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 같은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럼 또 어떤 친구는 나더러 그럽니다 하루벌어 열흘을 먹는것도 아니고 나 하나 죽어지면 그만인데 쐐빠지게 그렇게 고생하며 살면 뭐 하냐구요? ㅋㅋㅋ 그런 소리 들을땐 정말 나같은 사람은 살맛 안나지요 그것은 나도 그 친구의 말이 100% 정답인걸 알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쐐 빠지게 고생을 한다고 나중에 자식들이 알아줄것도 아닌데 웬만하면 대강대강 하면서 인생을 즐기며 살라고 친구가 날 자꾸만 부축이지만

 

어디 세상일이 생각처럼 마음처럼 그렇게 되지많은 않더라구요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친구는 지금은 가정 경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수 있는 기반위에 올라 있으니 어케 새벽 2시까지 휴일도 없이 근무를 하는 우리네 소시민의 애환이 서린 인생의 삶을 이해를 다 할 수가 있겠어요 나를 늘 함께 하려는 친구의 고마운 우정만 가슴에 새기면서...  언제 한번 제대로 친구와 원거리 산행 해외여행 한번 떠나는것을 동행을 해주지 못하고 있으니 늘 그 친구에게 마음으로 미안하지요

 

그래서 난 생각했지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송충이가 갈잎을 먹으려 들면 옆구리가 터저 죽게 된다고... 그렇다고 나 자신의 주어진 운명을 내 나이에 비관하며 어깨처져 살 수 많은 없잖아요 그래서 나는 내가 살기위한 자생 능력 자아 판단을 했지요 그리고 철저하게 내 생활과 함께 하는 레져 활동을 찿다 보니 우연치 않게 나에게 행운이 왔지요 그 행운이 무엇이냐구요? 그것이 바로 내가 늘 다니고 있는 수요산행이랍니다

 

그렇게 운좋게 만난 인연이 모두다 한국의 산하에 산행기를 쓰게 되면서 얻게된 소중한 만남이 되었지요 인생을 살다보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는것인데 그 중에서도 아무리 생각을 하여 보아도 산에서 만난 산 사람들의 우정은 정말 어케 생각을 하면 조금은 바보 스럽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우직하고 진실하지요 옛말에 이웃 사촌이 멀리 살고 있는친 인척 형제보다 더 다정하 다는 이야기처럼

 

늘 산에서 만나며 우정을 이어가다 보니 이제는 정말 친형제 친인척들에 대한 정보다도 더 우정이 깊어만 가는것 같아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지요 아마도 산이라는 그 큰 품속에서 너도 나도 몸에배인 터득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렇게 맺어진 우리산내음 수요산행 친구들과 일주일 동안 기대하고 고대하였던 북한산 3개능선코스 산행을 떠나며 처음 산행을 떠날때의 그 들뜬 기분이 되어 밤잠도 설치고

 

이른 아침 부평에서 전철을 타고 종로 3가에서 다시 또 전철을 갈아타고 우리들의 1차 모임장소 구파발역 대합실에 도착을 하니 약속 만남 시간이 9시 50분인데 35분전 9시 15분에 젤 1등으로 도착을 하여 일행들을 기다리지요 그렇게 나에게 수요산행은 산중독이 들게 했지요 약속 시간이되니 일행들이 속속 도착을 하고 우리들은 다시 기자촌 방향으로 가는 마이크로 버스를 갈아타고 느티나무 정류장에 하차를 하여 곧바로 들머리 구간을 들어 서지요

 

 

 

옛날을 회상하게 하는 철판으로 만들어지 출렁다리를 건너니 마치 삼림욕장을

방불케 솔내음이 진동하는 육산길 등로를 따라 호젓하게 산행이 시작이 되네요

 

 

이정목에서 우리들은 사모바위 방향으로 오르지요 가볍게 무명봉을 오르니 멀리 다양한 모습으로

펼처지는 북한산 장관이 360도 파노라마처럼 펼처 지지만 디카로 표현은 한계가 있네요

 

 

우리들이 진행하고 있는 좌측 건너편에 의상능선이 보이네요

 

 

태양은 오늘도 떠 오르리

 

 

그렇게 힘들지 않은 릿지 코스가 아기자기하게 시작이 되지요

 

 

우리일행들 진행 방향에서 우측으로 작은 노적봉도 보이네요

 

 

산불조심!!! 언제 다시 부르짓어도 결코 무시해서 안되지요 요즘 5월이면 한국의 산하에서 산행을 계획하고 있는 대구의 팔공산에 어린 아이들이 저지른 산불을 보면서 매우  마음이 아픔니다 아직도 산에서 담배를 피우시는 우리 산님들 계시면 너도 나도 산행길엔 꼭 금연을 하여 주세요 그리고 건강위하여 산을 오르는것인데 왜 산을 오르시면서 건강을 해치는 담배를 피우시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쉽지 않네요 웬만 하시면 담배를 끊어 보세요

 

저의 경우입니다만 본인들은 잘 모르시만 본인들이 무심코 내 뿜어 대시는 그 담배 연기에 나처럼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 연기를 맡게되면 정말 얼마나 거북스런지 아시나요 사람들이 모두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저의 경우는 담배를 피우시는 분이 저 앞에 오고 있으면 미리 숨을 멈추고 그 사람을 지나치는 습성이 생길 정도랍니다 그러니 그 가족들은 얼마나 고역이겠어요 특히 어린이가 있다면 얼마나 아이에게 해롭겠어요 죄송합니다 산불조심 하자는 의미였는데 금연운동을 하고 있었네요

 

 

건너편에 보이는 아름다운 삼각산의 풍경들

 

 

암릉지대를 만났어요 하지만 이제 우리 수요산행 친구들은 대부분 이정도의 암릉구간은

힘들지 않게 통과를 하지요 물론 여러분들이 서로의 안전을 확보하면서 말입니다

 

 

기암

 

 

저 아름다움

 

 

 

 

거대한 용의 화석인가? 용 비늘이 바위에 길게 나타나 있어요

 

 

일행들이 함께 기념사진도 찍어 보지요

 

 

늘 안전을 확보 하면서 가기도 잘도 간다 조오대장 슬기찬님

 

 

멀리 사모바위앞 헬기장에 사람들이 있고요 비봉도 가까이 보이네요

 

 

사모바위

 

 

사모바위 그리고 비봉

 

 

문수봉 방향으로 방포하라!!

 

 

문수봉 가는 암릉길

 

 

가기도 잘도 간다

 

 

석문도 지나고 (통천문같지요)

 

      

 

 

 

금강산도 식후경 즐거운 점심시간

 

 

드뎌 문수봉을 오르고 있지요 암벽능선길 / 목민님

 

 

조심하셔유 연산동(최윤영님)

 

 

후미도 완벽하게 잘 챙기도록 알았지요?

 

 

문수봉 정상도 보이네요

 

 

기암 스랲지대도 통과를 하고

 

 

퓨 이제 안심이다

 

 

문수봉 기암 저 암벽위를 타는 사람들도 있어요

 

 

기암

 

 

문수봉 정상이 올려다 보이고

 

 

태극기가 휘날리는곳으로 가고 있어요

 

 

암릉구간이지만 안전하게

 

 

거대한 보현봉

 

 

국기봉 정상에 일행들의 모습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조대흠 대장은 산행을 하며 태극기만 만나면 꼭 애국가를 시키지요 그래도 우리들은

누구도 불평없이 시키는대로 따라해 정말 애국심이 불타는 산님덜이지요 ㅋㅋㅋ

 

 

의상능선을 향하여 방포하라!!

 

 

칠성봉에서 바라본 나한봉

 

 

나월봉 우회길의 에스켈레이터바위 구간을 통과 하고 있어요

 

 

삼각산(백운봉 만경봉 인수봉) 그리고 앞에 큰 노적봉이 위용을 떨치고 있어요

 

 

에스컬레이터 구간을 통과하고서...

 

 

대서문을 지나 오늘은 조대장이 난 많이 봐주었요 헹님 니 맘대로 오세요 하네요 ㅋㅋㅋ

봐주는것인지 갈구는것인지 분별이 어렵네요 그래도 난 눈치없 조대장 뒬 졸졸 따르지요

 

 

어이 조대장 저 아래 저 사찰 이름이 뭥겨?

 

    

 

증취봉 가는길

 

 

어떤 부부산님 이분덜 뒤를 따르다보니 어느 암벽 한 구간도 외상없이 모두다 릿찌로 통괄를 하네요

증말 대단한 부부산님들 모습이 그렇게도 부러웠지요 몇년만 젊었어도 암장학교라도 댕길 수 있는데...

 

 

에에에 에에에 바둑아 어디있냐?

 

 

나 요기 있지롱 / 증말 자연이 맹글은 강아지가 어쩌면

저렇게 복스럽고 천연덕 스런지요?넘넘 귀여워요

 

 

용출봉의 아름다움 증말 조오타!!

 

 

나두 조오타

 

 

용혈봉도 통과를 하고

 

 

또 기암 암릉구간을 만나지요

 

 

자명해인대(紫明海印臺)

일만선생님 해석좀 해주세요

 

 

용출봉 정상

 

 

저기는 어쩌구 저쩌구 그러나 난 하나도 못들었어요

 

 

노랑머리를 한 바위 아마도 미제인가요? ㅋㅋㅋ

 

 

기암에 소나무

 

 

의상봉 정상에서

 

 

돌아온길을 뒤 돌아보니...

 

 

거대한 불상이 좌정한 모습의 국녕사가 보이네요

 

 

 

 

국녕사는 수도 서울의 북쪽 명산인 북한산 의상봉 아래인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416-8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영봉으로 알려진 의상봉은 화엄 신앙의 대선각자이신 의상대사께서 천공을 받아 정진을 하셨으며 많은 선지식들의 참선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의상봉을 마주하고 있는 봉우리는 원효봉으로 원효대사님께서 수행하시던 터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러한 영지에 자리잡은 국녕사는 일찍이 사명대사께서 나라에 환란이 있을 것을 예지하시고 국녕사가 흥흥하면 나라가 흥한다고 하시며, 십천우(十千宇 - 우주전체를 뜻함)를 뜻하는 열 개의 사찰을 북한산 요소요소에 창건하셨으며, 승병을 양성하고 배치하여 성문을 사수케 한 호국불교의 실천 도량이었습니다.

 

86년간이나 되던 대가람이었던 국녕사는 우리 민족의 수난의 역사와 함께 대부분 소실되어 요사채를 법당으로 해서 겨우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1991년 화재로 전소되고 말았습니다. 능인선원에서는 호국불교의 얼이 담긴 국녕사를 복원하여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나라가 평안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세상 구석구석까지 밝혀져 모든 중생들의 청정 귀의처가 되도록 발원하여 1998년 10월부터 복원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1713년(조선 숙종 39) 청철(淸徹)과 철선(徹禪)이 창건했다. 그러나 이곳은 사찰이 들어서기 이전부터 유정(惟政)이 수도를 하던 터로 추정되며 사찰이 들어선 의상봉(義湘峰)은 신라 때의 고승 의상이 참선을 하던 참선도량으로 이름난 곳이다.

이곳에 사찰이 들어선 것은 북한산성 축조와 관련이 있다. 당시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던 성능(聖能)의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1713년 북한산성을 축성할 때 팔도의 사찰에 영을 내려 의승(義僧)을 뽑았다. 그리고 이들 의승을 산성 안에 두고 성문과 수문·창고 등을 지키게 하기 위하여 21개 사찰을 창건 또는 보수하였다는 것이다. 당시의 사찰 중 현존하는 것으로는 국녕사를 비롯해 중흥사·태고사·진관사·노적사·승가사·상운사 등이 있다.

창건 후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단지 창건 때는 총 86칸에 이르는 큰 규모의 사찰이었다고 하며 1991년 화재로 모두 불에 탄 것을 능인선원(能仁禪院)에서 1998년 10월부터 중창하기 시작하였다. 현재는 대웅전과 산신각·종각·요사채가 있다. 부근에 한월당(漢月堂) 대선사의 부도가 전하나 한월당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나무관세음보살

 

 

이 거대한 불상을 건립하는데 얼마나 많은 고충이 있었을까 아직도 미완성 불상이지요

 

 

마지막 눈이 녹아들고 있었어요

 

 

그런가 하면 계곡엔 이미 물이 흐르고

 

 

북한산 산행을 마무리를 하고 있어요

 

 

그곳엔 늘 우리들에 즐거운 뒷풀이 카페가 있지요

 

 

파전한장에 막걸리 시켜놓고 이날 산행의 평가도 하고 그리고 다음 산행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그리고 우리들은 또 다음 수요일 만날것을 기약하면서 버스를 타고 다시 전철을 갈아타며 집으로 오지요

 

 

저의 길고 긴 산행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산님들에게도 함께 감사를 드립니다

  

청파 윤도균이 운영하는 카페이지요  

주소를 누르시면 이동합니다

  

카페 주소 http://cafe.daum.net/salamstory  

다음카페 사람사는이야기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