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 소요산아 ! 소요산아!!

2006. 1. 24. 00:47☎청파산행과여행기☎

728x90

 

 

 

 

아 ~  소요산아! 소요산아!!

 

 

 

  

 

 소요산
높이 : 587M
위치 : 경기도 동두천시, 포천군 신북면
산행포인트 : 산세 조망 계곡 명소
 

위    치 : 경기 동두천시 상봉암동  

관 리 처 : 소요산 관리사무소(031-860-2065)
           483-100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산 1-1번지 
홈페이지 : www.ddc21.net 
개    요 : 동두천시 소요동에 있으며 한수 이북 최고의 명산, 또는 경기의 소금강 등으로 불린다. 서
           울에서 44km, 동두천 시청에서 동북쪽으로 약 5km의 거리에 있는 소요산 (587m) 은 해발은
           낮아도 수목과 폭포, 봉우리가 줄지어 있다. 소요산에는 곳곳에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이
           야기가 스며 있다.  요석공주가 머물렀다는 별궁터와 원효가 수도했다는 원효대도 있고 정
           상인 의상대 옆에 있는 공주봉(원효가 요석공주를 두고 지은 이름)도 있다. 
           산 중턱의 '자재암'은 원효대사가 도를 깨친 곳으로 원효가 요석공주와 인연이 있은 후 심
           산유곡인 이곳을 찾아와 수행하다가 절을 지었다고 한다.  수행 도중 관세음보살과 친견하
           여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하여 자재암이라 했다고 한다.  자재암 주변엔 아담한 물줄기
           의 폭포가 널려 있다.  원효폭포, 옥류폭포, 청량폭포, 선녀탕 주변엔  여름철마다 피서객
           들로 북적댄다. 자연석굴인 나한전과 산중턱의 금송굴도 신비롭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던 혼란한 시기에 생존하였던 원효 (元曉 617-686) 는 의상과 더불어
           당나라에 유학하려 두차례(34세, 650년 및 45세, 661년) 나 시도하였으나 자신의 마음밖에
           따로 법이 없음을 깨닫고 혼자 되돌아와 보편적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왕성한 저술,
           선교활동을 펴,그 사변력, 통찰력과 문장력에 대한 명성이 항간에 자자하였다.  그는 광대
           들이나 쓰는 무애박을 치고, 무애가를 부르며, 무애춤을 추며, 광대, 백정, 기생, 시정잡
           배,  몽매하고 늙은사람들 사이를 방방곡곡 떠돌며 춤추고 노래하며 술마시고 거문고를 켜
           며 무수한 대중에게 불법을 전하였다. 코흘리개 아이까지도 부처에 대해알게 되었다. 
           김춘추의 둘째누이인 요석공주(瑤石公主)는 첫남편을 백제전투에서 잃고 홀로 되었는데 불
           심이 깊었던 공주는 인격이 고매하고 화랑시절 백제전투에도 참가했던 원효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원효는  667년 문무왕 7년경(51세) 부왕인 태종무열왕의 과부공주인 요
           석과 만나 얼마후 설총을 낳고 이후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 小姓居士) 라 하며 무애의
           보살행을 행하였다 한다.
           결혼전 원효는 거리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고 한다. "누가 자루빠진 도끼를 주겠는가? 내
           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으리라."  
           이를 귀부인을 얻어 어진 아들을 낳고 싶다는 원효의 결혼에의 관심으로 보는 견해도 많지
           만 새 시대의 지평을 열어보이리라는 사상사의 선언으로 보는 견해가 더 우세하다.
           소요산에 가면 원효가 과연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알수 있는 자취가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높은 산 불끈 솟은 바위는 지혜로운 이가 들 곳이요,(원효대)
           푸른 소나무 깊은 골은 수행자가 깃들 곳이니라.(자재암)"
          "주리면 나무열매를 먹어서 주린 창자를 달랠 것이요,(소요산)
           목이 타면 흐르는 물을 마셔 그 갈증을 식힐 것이니라.(원효폭포)"
          "메아리가 울리는 바위굴을 염불하는 법당으로 삼고,(나한전-굴)
           슬피우는 기러기를 기쁘게 마음의 벗으로 삼을 것이니라."
           자재암은 신라 선덕여왕 14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조선세조 10년에 간행된 반야바
           라밀다 심경약소 언해본이 완벽하게 발견되어 보물 1211호로 지정되어 보관되어 있는 것으
           로도 유명하다. 의상대는 소요산  정상에 있는  봉우리로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있어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이 장관이다. 
이용요금 : - 어    른 : 2,000원
           - 학    생 : 1,200원
           - 어 린 이 :   650원
           - 주차요금: 2,000원(소형)

등 산 로 : 1) 관리사무소  매표소 → 일주문 → 백운암 → 자재암 → 하백운대 → 중백운대 →
              선녀탕 → 자재암 → 관리사무소(5.71km, 1시간 30분) 
           2) 관리사무소  매표소 → 일주문 → 백운암 → 자재암 → 하백운대 → 중백운대 →
              → 상백운대 → 선녀탕 → 자재암 → 관리사무소(6.21km, 2시간 30분)
           3) 관리사무소  매표소 → 일주문 → 백운암 → 자재암 → 하백운대 → 중백운대 →
              → 상백운대 → 칼바위 → 나한대 → 금송굴 → 자재암 → 관리사무소(6.89km, 
              3시간)
           4) 관리사무소  매표소 → 일주문 → 백운암 → 자재암 → 하백운대 → 중백운대 →
              → 상백운대 → 칼바위 → 나한대 → 의상대 → 공주봉 → 구정터 → 일주문  → 
              관리사무소(8.19km, 43시간)
        ※ 소요산은 소요산역이 있는 소요동이 산행의 들머리가 된다. 입구에서 중간의 주차장과 상
           가를 지나  그저 평탄한 길을 따라 가다보면 '소요산 자재암' 이라 쓰인 현판을 단 일주문
           에 들어서게 된다.  여기서 조금 오르면 기암 절벽 사이로  떨어지는  원효폭포가 있고 그
           폭포아래 속리교라는 다리가 있다. 여기서 두 갈래 길이 나타나는데, 오른쪽으로  난 계곡
           길을 따라 오르면 남쪽 능선 위, 소요산의 정상인 의상대(587m)로 바로 오르게 된다. 

           속리교를 지나  왼쪽의 난간으로 난 길을 계속 오르면  절벽을 이룬바위가 나타난다. 원효
           대사가 수도 한 곳이라는 전설이 서려있어 원효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양쪽으로 치솟은 암
           벽 사이의 숲길을 오르면 곧 세심교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백운암 돌담 옆을 지나면 곧 자
           재암에 닿는다. 자재암 옆에는 나한전이라고 불리는 자그마한 굴이 있는데, 여기에는 아주
           맛있는 물이 솟아나온다.(원효샘물)이 물은 최고의 차맛을 내기로 유명하여 이곳은 예로부
           터 시인묵객들의 담론과 산책을 유도한 우리나라 차문화의 산실이다. 그 옆에는 높이 20여
           미터의 청량폭포가 있고  청량폭포를 지나면 중백운대로 이어지는 능선길과 계곡으로 계속
           되는 두 갈래 길이 나타난다. 

           중백운대로 오르는 길은 가파른 암릉길이다.  중백운대에서 상백운대 (535m) 로 가는 길은
           경사가 완만한 밋밋한 길이지만 능선 남쪽은 가파른 벼랑을 이루고 있다. 상백운대에서 선
           녀탕이 있는 계곡으로 바로 내려갈 수도 있고 아니면 나한대를 거쳐 정상인 의상대까지 간
           후 원효폭포 쪽으로 하산할 수도 있다.  또한 의상대로 이어지는 능선 곳곳에 계곡 쪽으로
           난 하산길이 있다. 이쪽 능선에서의 하산길들은 경사가 급한 편이지만 위험하지는 않다.
           산 입구엔 구한말에 독립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홍덕문선생 추모비" 가 있다. 
 

 산행일시 :

 산  행 지 :  

 산행코스 :

 산행인원 :

 산행시간 : 

산행기

 

그러니까 지난 일주일전 동생 승안이로 부터 형님 오는 10/27일 등산이나 함께 하시자는 연락이 온다 그렇치 않어도 나는 어디로든 산행 계획을 하고 있었기에 나는 흔쾌히 약속을 하며 어느 산으로 갈까? 하고 상의를 하니 오랫만에 용섭이와 함께 북한산 등산을 하자는 의견이였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북한산은 하도 많이 오른 경험이 있기에 동생 승안 에게 우리 이번엔 기차를 타고 소요산으로 한번 산행을 하자고 의견을 물으니

 

형님 용섭이가 그날이 할머님 기제사가 되어 너무 멀리 갈수 없을걸요 하고 여운을 남긴다. 그러고나서 2~3일 지나니 다시 용섭에게서 전화가 온다.형님 산행 하실 수 있는것 유효 하지요? 하고 말이다 그렇긴 한데 너가 할머님 제사가 되어 곤란 하다며? 하고 되물으니 좀 일찍만 오면 상관 없다는 말을 한다. 그래 그럼 우리 소요산 갔다가 일찍 오는 방향으로 하고 그리로 가자고 결정을 하고

 

나는 나의 친동생에게도 연락을 한다. 모처럼 형과 함께 산행을 하자고 그랬더니 평소 낚시에 취미를 가지고 있는 동생은 이미 낚시 계획이 약속이 되어 있다고 하며 다시 연락을 해주겠다고 하며 전화를 끈는다. 나는 속으로 무정한 눔 모처럼 하는 형의 부탁인데도 메몰차게 자기 취미 때문에 호응을 하지 않다니... 생각을 하며 야속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저 싫으면 나라 상감도 못 말린다는데... 어쩔 수 없지 생각을 하며 나는 같은 부모의 자식인데도 어쩌면 이렇게 취미가 상이하게 다를수가 있을까 생각을 하며 나 같으면 낚시는 정말로 돈주며 하라고 해도 답답해서 못할것 같은데 동생은 완전 낚시광이 되어 전국의 저수지와 강가을 이미 수십년을 다닌 낚시 매니아다.

 

그러한 동생을 등산을 가자고 제안을한 내가 오히려 동생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면 이상하게 생각을 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그런대 의외로 어제 다시 동생에게서 자기도 형과 함께 등산을 하겠다고 전화가 왔다. 나는 모처럼의 고향 후배들과 동생과의 산행이니 차질이 없게 하기위하여 사전에 한국의 산하 싸이트에서 내가 가려는 소요산에 대한 사전 코스 견학을 한후 약도와 교통편을 복사를 하고나서

 

동생들에게 09:00정각 까지 의정부 역에서 만날것을 약속을 한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쏟아진 늦가을 비가 내린후 날씨가 급작스럽게 추워지는 것을 보니 산행 준비를 단단히 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턴 아이젠 까지 챙겨 미리 배낭을 꾸려 놓는다.그런데 몇일전 내가 산행을 함께 하자고 내가 제안을 할때 가족들과 북한산 등산 예정이 되어 있다던 30년지기 군대에게서 전화가 온다 형님과 함께 산행을 가겠다고 말이다  

 

나에겐 너무도 반가운 사람들과의 산행이 생각지도 않게 쉽게 모이게 예정이 되니 하루 전날부터 마음이 들떠서 일도 손에 잘 잡히지를 않고 잠도 잘 오지를 않어 뒤척 거리다 그루잠이 들어 아침 6시30분에 시계를 마쳐놓고 잠을 잣는데도 그시간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준비를 하니 시간이 순식간에 7시를 지나고 있다. 나는 서둘러 전날 챙겨둔 배낭을 메고 부평역으로 달려 가려니 추운 날씨를 예상하여 두터운 겨울 산행복장을 했기에 땀이 비오듯한다.

부평에서 의정부까지 전철을 이용을 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약 2시간 정도면 충분히 의정부역에 도착을 할수가 있으려니 생각을 하고 9시에 일행들과 만나자고 약속을 하였는데 부평역에서 내가 전철에 승차를 하고 보니 이미 7시 15분이다.의정부에서 소요산을 향하는 열차가 매시간 20분에 출발을 한다고 알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내가 시간을 맟추기가 이미 틀렸다는 생각이들어 마음이 급해 죽을지경인데 전철에 타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는 별다른 생각을 해보아야 옴치고 뛸수가 없다.

에라 모르겠다 모든것은 운명의 작난에 맡겨 두는수 밖에 별도리가 없다.내가 늦게 되던 누가 늦게 되던 여차하면 한 시간 늦게 의정부역에서 출발을 하게 될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눈을 감고 어제밤에 설친잠을 청해 보려하니 오히려 눈은 더욱 또랑또랑 해지며 잠을 잘수가 없다.시간을보니 9시10분인데 전철은 신설동역을 통과를 하고 있다.
젊어선 사람들이 나더러 머리 좋타고 많은 칭찬을 들었었었는데 ...

 

내일 모래면 60이된 나이를 살고보니 모든것은 마음뿐 우선 기억력이 옛날 같지를 않타.내딴에는 꼼꼼하게 메모를 하여 가지고 나선 동생들의 핸드폰 번호를 살펴보며 이제는 하나씩 전화통화를 하여 위치를 확인을 하려 하는데 나의 곁에 앉은 많은 등산객들이 대부분 우르르 일어서기 시작을 한다 여기가 어디쯤인데 다들 내릴 준비를 하는것인가 확인을 하려 하는데 전철에서 안내 방송이 나온다 여기는 도봉산역 입니다.하고 말이다.

 

차에탄 대부부의 등산객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나니 차안에 남은 사람들은 얼마가 되질 않는다.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우선 나의 동생에게 전화를 하니 개포동서 버스를 타고 나와서 전철을 갈아타야 하는 동생은 이제 동대문에서 전철 갈아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7호선을 타고 도봉산역에 와서 의정부행 열차를 갈아 타야 하는 봉묵이는 아직 노원역 사이를 통과 하고 있는 중이라며 형 약간 늦을것 같다고 한다.

 

이어서 승안에게 전화를 하니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맨트만 나온다 답답하여 용섭에게 통화를 하니 구파발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하여 승안이와 의정부 시내를 거의 도착을 하고 있다고 전화를 받는다.나는 동생들과 통화를 하고서 우선 안심을 하였다.나보다 먼저와서 기다리고 있는 동생들이 아직은 없기 때문이었다.전화통화를 하고나니 전철은 어느덧 망월사 역을 진입하고 있었다.

 

전철에 타고 있던 등산객 대부분이 망월사 역에서 대부분 많이 내리는 것을 보니 아마 이곳에도 산행을 하기가 좋은 코스가 있는가 보다하는 생각을 하며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곳에서 시작하는 산행을 한번 해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기차가 어는덧 의정부 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서둘러 하차 하여 프렛홈으로 향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승안이와 용섭이가 도착을 하여 매표소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이다.드디어 우리는 역에서 셋이 만나 반가운 해우를 하고서 동생과 봉묵에게 다시 전화확인을 하니 둘이 한 차를 탄듯 도봉산역을 지나고 있다고 한다 몇분을 기다리고 나니 일행 모두를 만날수가 있었다.서둘러 표를 사가지고 시간을 보니 9:12분이다.약속을 철저하게 지켜준 동생들에게 고마운 생각이한다.

오랫만에 만난 동생들과의 만남이 너무도 반갑고 즐거운 기분이 되어 신탄진행 무궁화호 열차를 오르고 보니 차안은 이미 많은 등산객들의 행열이 발 디딜틈도 없이 그야말로 콩나물 시루를 방불케 한다.우리 일행은 간신히 승객들을 비집고 승차를 할수가 있었다.너무도 많은 인파가 좁은 차량에 승차를 하고보니 자리를 잡기가 쉽지가 않다.

 

출발 정시가 되어 차량이 출발을 하고 보니 서로들의 몸이 닿아서 불편하기 짝이없다.그런대도 철도청 당국은 이곳 경원선 열차에 대한 아무런 배려도 없이 목적지를 향하여 느릿한 속도로 잘도 달리고 있다.철도청에서 조금만 승객들을 배려 하여 일요일만 이라도 몇칸을 더 달고 다닐 수 있는 배려를 해줄 수 있었다면 승객들을 이지경으로 짐짝 취급을 하지 않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경원선행 무궁화 열차를 애용할수가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봄철과 가을 단풍철이면 매년 년례적으로 등산 인파들이 많이 몰려들어 사실상 이 철이 되면 항상 적자 타령으로 일관하며 승객을 위한 개선엔 뒷전인 철도 당국에 상당한 운임 수입을 올릴수도 있을텐데... 요지부동으로 일관하며 언제적 열차운행 계획표가 수년이 흘러도 변모를 하지않고 있는것을 보며 철도당국의 안이한 자세로 운영이 원망 스럽기 짝이 없다 

오전 9~11사이 상행열차와 오후 3~5시 사이에 하행선 임시 열차 몇칸이라도 증량 하여 운행을 하게 되면 경원선을 이용하는 많은 인파들로 부터 좋은 여행의 인상을 남길수도 있을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을 하여본다 그러나 철도당국의 계산은 어차피 이나마도 운행을 안하면 너희들이 어떻게 할것이냐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는것 같애 한심한 생각이 드는것이 아마 나만의 생각은 아닐것이다.

 

들녁에는 어느덧 가을 걷이를 마친 시골 풍경이 빽빽한 인파의 머리 사이로 주마등처럼 흘러 지나가고 있다.우리 일행은 산을 오르기 전에 이미 열차에서 찜질방에라도 온듯 주체 할수 없을 정도의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더이상 참기가 곤란할 지경이다.그런데 열차에서 구내 방송이 들린다 여기는 소요산 소요산 역입니다.하고 말이다.

 

그러다 보니 열차안에 숨을 죽이고 있던 많은 인파들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을 하니 열차안은 더욱 혼란 스럽다 간신히 인파를 헤치고 소요산역에 하차를 하고나니 이미 속옷이 촉촉히 땀으로 젖어 있는 상태에서 밖으로 나오니 쌀쌀한 날씨에 불어오는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우리 일행은 발길을 재촉을 하여 소요산 입구를 항하여 걸어 올라가면서 약간의 음식물을 구입을 하려 하니

 

북한산이나 도봉산 입구의 상인들의 다양하면서도 염가 판매하는 음식에 비유하면 거의 곱이나 값이 비싸면서도 질 또한 너무도 성의가 없이 음식을 만들었다.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약간의 음식물을 구입을 하고서 매포소 입구에 표를 끊으려고 보니 1인당 \1.500원이나 한다.국립공원도 아닌 그렇타고 도립공원 표시도 돼어있지 않은 곳의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는 생각을 하며 구입을 하여 표를 살펴보니

 

관광지 입장료 \300원 문화재 관람료(자재암)\1.200원 합계 \1.500원인데 동두천시장의 관인과 자재암 주지의 관인이 함께찍힌 표를 팔고 있다.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이상 하기 짝이없는 반강제적인 문화재 관람료를 받고 있는것이다. 한마디로 이곳 소요산에 위치한 주지암측은 해마다 등산객을 상대로 기천만원의 불로 소득을 챙기고 있다는생각이 든다  

 

그런데 더 이상한것은 특정 종교 집단을 위한 불로소득을 해당 지자체가 앞장을 서서 징수하고 있는 모순을 보게되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한마디로 배가 배꼽보다 더큰 계산법으로 자재암이 부당한 실리를 챙기고 있는 현실을 보며 불교계의 그 텃세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가소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루에도 수천명의 인파가 저렇게 부조리한 입장료를 내면서도 사실은 문화재 관람은 전혀 하지도 않으며 등산을 즐기고 있는데 강제로 문화재 관람료라는 이름으로 징수를 하고 있다니...에이 더러운 세상 종교인이나 비 종교인이나 자신의 배때기 채우기에 급급하다는 생각이 드는것은 내가 너무 비 종교인이 되어 천박스러운 인간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부당하게 생각이 드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고 그냥 순응을 하며 산행을 하는 인파들의 묵묵 부답이 정당한 것일까? 도대체 뭐가 뭔지 분별을 할수가 없다.종교의 잣대로도 선과 악의 키를 재기 힘든 현장의 실체를 보게된것 같애 모처럼의 산행이 초장부터 못볼것을 본것 같은 느낌에 기분이 그다지 좋게 생각이 들지를 않는다.

우리 일행은 이런 저런 부조리한 사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등로를 오르다보니 산행 안내 표시가 있는 커다란 표지판 앞에서 우리들이 등산 할 코스를 선택을 한다 일주문 우측코스를 택하기로 하여 그 첫번째 도전봉인 공주봉 산행을 시작을 하려 하고 시간을 보니 10:30분이다. 등로는 계단으로 만들어 놓은 산행코스가 있었지만 우리 일행은 낙엽을 밟으며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산행로를 오르기 시작을 하였다.

 

낙엽 밟는 소리가 싸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소리에 한결 추운 겨울 기분을 예감하게 한다.우리 일행 뒤를따라 산행을 많이 해보지 않은것 같이 보이는 등산객 몇분들이 따르고 있다.한참을 따라 오다가 아마도 등산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 그 사람들은 오던길을 도로 빽을 한다.별 사람들도 다 있네 생각을 하며 산행을 계속 하고 있으려니

 

내가 사전 인터넷 답사를 한바에 의하면 소요산은 사실상 높지도 않고 별무리 없이 산행을 할수가 있을것이라고 생각 하였던것 과는 상이하게 의외로 산행이 만만치를 않타는 생각이 들게 산세가 가파르고 험준 하다.나는 동생들이 나 보다는 모두들 젊었으니깐 믿거니 하고 내가 하는 산행 속도로 속행을 하니 동생들이 첨차 뒤로 처지기 시작을 한다.

 

봉묵이가 먼저 수건을 꺼내면서 처지고 있다.시간을 보니 산행 시작을 한지 안직 25분이 채 넘지를 않는다.나는 동생들을 생각 하여 좀 쉬고 오를까 생각을 하다.등산을 하며 힘이들다고 그때마다 쉬기로 시작을 하게 되면 인내력이 생기지를 않기 때문에 조금만 힘이 들면 쉬려고 하기 때문에 일행중에 리더는 반드시 적당한 페이스 조절을 하여야 할필요가 있기에

나는 내친김에 쉬지를 않고 그냥 공주봉(526m)를 오르고 말았다.시간를 보니 30분이 걸렸다.조금 기대리고 있으려니 동생들 일행이 땀을 딱을며 정상을 오르며 와 하는 소리를 지른다.저 싱그러운 젊음의 모습들이 너무도 건강미가 넘쳐 흘러 보이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생각이된다.잠시 휴식을 취하며 배낭에서 싸가지고 간 음료수를 나눠 마시는 그 상쾌한 기분은 아마 산행의 의미를 만끽해 보지않은 사람들은 실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십여분간 휴식을 취하고 의상대를 가기 위하여 내려가는 코스를 향하는 동생들의 입에서 형 이곳을 오르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오른 코스보다 더 험준한 산행을 하네요 하는말을 한다.산은 어떤 경우에고 크고 작고 높고 낮음의 일방적인 잣대질로 절대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산행을 어느정도 해본 유경험자들은 잘 알고있다.

 

산은 각자의 산대로의 남다른 의미와 비밀이 있기때문에 얕다고 우습게 깔보고 오른산에서 의외로 산행의 어려움을 체험하게도 되고 높다고 미리 겁을 먹고 오른 산에서 의외로 산행의 쉬운 맞을 알게되는 경우들이 허다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오르는 우리일행의 행진은 모든 사람들이 산행 시작을 원효폭포 자재암 하백운대를 경유하여 오르는데

 

우리들 일행만 그 반대로 산행을 하게되고 보니 우리일행 뒤에는 밀려오는 인파가 없어서 산행을 하기가 너무도 편하다 마음대로 산행의 속도를 조종을 하여도 뒤에 사람들 신경을 쓰지 않게 되고 보니 이번에는 앞장을선 승안이의 발걸음이 만만치를 않어 뒤를 따르는 나의 입장에서도 때로는 헉헉 거리며 숨을 몰아 쉬며 뒤를 따라야 하는 입장이다.

내 산행 경험에 의하면 산행은 선두에 서서 산행을 하여야 힘이 덜 들지 아무리 베테랑 산행 경력이 있어도 뒤를 따르는 입장이 되면 선두에서 산행을 하는것 보다 훨씬 힘이 들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항상 뒤처저 버릇을 하다보면 산행이 항상 힘이들고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며 이야기를 하며 걷다보니 어는덧 소요산 중에는 제일 높다는 의상대(587m)이다.

 

그런대 이번 코스에는 일행 누구도 힘이 들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없다.아마 첫번째 코스를 오르는 어려움에 비유를 하면 모두들 할만한가 보다.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잠깐 쉬기로 하고 그곳에서 배낭에 넣어간 약간의 술로 중간 급유를 한 잔씩을 나눠 마시고 보니 마음에 자유를 만끽 한다.정상에서 심호읍을 하고 야호 소리도 목청높여 지르고 나니

 

산행을 하는 모두들의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 진듯 코노래까지 부르는 여유를 보이며 나한대를 오르는 우리일행의 발걸음은 가볍다 못해 날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것 같다.안전 산행을 생각하며 5섯이서 나눠마신 한병의 개살구 나무를 잘라서 담근 술이 의외로 취기를 돋으며 기호에 잘 맞은듯 하다. 어렵지 않게 나한대 정상에를 오르니

 

우리 일행과 반대편 쪽에서 오른 등산 인파들이 나한봉 정상 일대에서 인산인해를 이루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 챙겨간 음식을 나눠먹는 사람들의 분주함이 마치 왁자 지껄이는 시장을 방불케 한다.우리 일행들도 이번에는 승안이가 배낭에 넣어온 시골에서 담근 약주술 한병을 한잔씩 공평하게 나눠 마시고 보니 그맛이 두고온 고향 생각을 나게 한다.

 

밀려드는 인파들의 속에서 정상에서 의상대를 바라보며 기념 사진을 찍고 우리 일행은 다시 상백운대를 향한다 그런데 산행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이미 우리 일행의 산행은 탄력을 받았고 각자 산행의 즐거움을 만끽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한참을 신명나게 산행을 계속을 하고 있는데 아! 이것이 웬일이란 말이가? 아름드리 소나무가 칼바위 능선에 뿌리를 내리고 수많은 억겁의 세월에도 고사하지 않고 독야 청청하게 자태를 뽑내며 생육을 하고 있는 아름다운 절경이 보인다.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도 고고한 저 소나무의 모습에 도취하여 앞서가는 동생들을 불러세워 소나무를 배경으로 한 컷씩 사진을 찍으니 그 모습이 정말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람하고 늠늠하기 까지하다.내친김에 상백운대는 쉬지도 않고 통과를 하고보니 시간이 어느덧 한 시를 넘고있다.적당한 장소에서 점심을 먹어야 하기에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피하여 낙엽이 푹석푹석 쌓인 음푹한 장소를 물색을 하여 각자 배낭에 싸가지고 간 음식을 내놓으니 그야말로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김밥에 여러가지 잡곡을 섞어 정성드려 지은 혼식 도시락에 파주지방 사람들이 즐겨 먹는 고수채 장아치 등등을 안주로 배낭에 마지막 남은 한병의 개 복숭아 나무술이 우리들의 산행의 마지막 만찬의 흥을 돋운다.맛있는 점심을 먹고 중백운대를 향하여 하산을 하는 우리일행들의 발걸음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그런데 한가지 옥에 티라고 할까

 

몰염치한 산꾼들이 자신들이 쳐 마시고 남긴 오물과 쓰레기를 산중 곳곳에 아무렇치도 않게 버려두고 양심없이 내려간 흔적이 상당히 많은것을 보면서 정말 쓰레기 만도 못한 인간들이 자신들이 발생한 오물을 수십 수백년이 흘러도 공해로 남게 버려두고 기어 내려가 그래도 집에 돌아가 즐거운 산행을 하고 왔다고 가족들 앞에 자랑을 하고 있을 한심한 인간들의 오염 현장을 보며

모두다 줏어 들고 내려오지 못하는 나자신의 마음이 죄를 진듯 께림직 하다. 중백운대를 눈 깜짝할 사이에 통과를 하고 하백운대를 향하는 우리 일행들의 입에서는 이구동성으로 문화재 관람료라고 값을 지불하고 온 자재암은 근처에도 가지를 않었는데 문화재 관람료를 의무적으로 받고 있는 동두천시와 불교계측의 부당한 요금징수 행위에 대하여 또 한번 입방아를 찧게된다

 

우리 일행들이 내려온 곳은 매표소와 주차장을 한참이나 내려와 상인들이 장사를 하고 있는 상가지역 촌 이다. 우리들은 다음 산행을 약속을 하고 또 오늘의 산행을 평가 하기위하여 길가에 장사를 하는 목로 주점 간이 의자에 앉아 파전 두장에 소주 두병을 나눠 마시며 이날 산행에 대한 소견을 나눈다 그런데 이날 소요산 산행을 하며 우리 일행들이 공통적으로 느낀 소감은

 

철도청에서 의정부 신탄진행 운행 구간의 무궁화호 열차가 너무 혼잡스럽고 불편하고 비좁은데도 이를 방치 묵과 하고 있다는것과  또한 일부 상인들의 지나친 상혼이 극성을 부리고 있는대도 이를 시정이나 개선은 하지 않고 그져 안이한 자세로 한번 지나치는 관광객 등산객 이라고 해서 너무 홀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도 경기도 파주가 고향인 똑 같은 경기도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을 하여볼때 그것은 분명 正道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이러한 문제점들을 모르는척 외면하는 동두천시 지자체의 눈이 미래를 보지 못하고 흐리멍텅 하다는 생각을 하며 안타깝게 생각을 하게 된다 
아울러 모처럼 기대를 하고 찿어간 소요산행의 산행소감은 산은 그야말로 너무도 아름답고 공기좋고 코스도 좋은데

 

이를 관리 하는 지자체측의 좀더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장료 보다 문화재 관람료로 "배보다 배꼽이 더큰 입장료" 수입을 챙기는 특정 종교 단체의 염치없는 행동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를 않는다.차라리 문화재 보호 성금이라고 하거나 자연 환경 보호 기금이라는 이름으로 명칭을 변경을 하여 입장 수입을 챙긴다면 

 

차라리 많은 사람들로 부터 납득이 쉽고 나처럼 이의를 제기 하는 사람들도 없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모처럼 찿어간 소요산 산행기를 적으며 소요산의 치부를 나열한것 같에 죄없는 소요산에게 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든다.하지만 나의 이러한 지적은 소요산을 더 오래 사랑할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의 소망 때문이다

 

 

 

저의 길고 긴 산행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산님들에게도 함께 감사를 드립니다

  

청파 윤도균이 운영하는 카페이지요  

주소를 누르시면 이동합니다

  

카페 주소 http://cafe.daum.net/salamstory

  

다음카페 사람사는이야기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