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김· 리퍼트· 비건… 기업들이 美관료 출신 영입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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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경제 / 자동차

성김· 리퍼트· 비건… 기업들이 美관료 출신 영입하는 이유

美·中 갈등 따른 ‘인플레 감축법’ 등 보호주의 확산 따라

정한국 기자

입력 2023.12.09. 03:00업데이트 2023.12.09. 06:56

현대차가 성 김 전(前) 주한 미국대사를 자문역으로 영입한다고 8일 밝혔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으로는 미국 외교계에서 최고위직에 오른 인물로, 오바마, 트럼프, 바이든 정부에서 핵심 요직을 맡은 외교 전문가이다.

현대차뿐만 아니라 삼성·LG·포스코 등 한국 대기업이 최근 미국 외교가와 정계의 고위직 인사들을 잇달아 영입하고 있다. 미·중 갈등을 계기로 최근 세계는 신(新)냉전 체제가 도래하면서 미국을 시작으로 자유무역 대신 보호주의가 급격히 확산하는 방향으로 통상 질서가 바뀌는 중이다. 특히 기업들은 미국의 입법이나 새로운 규제, 수출 통제 정책 등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이 한국을 겨냥하는 정책뿐만 아니라 중국을 겨냥해 반도체·배터리 등 미래 산업의 핵심 소재를 통제하는 등 정책을 바꿀 때에도 한국 기업들은 엄청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국내 글로벌 기업들은 미국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가진 정치·외교 전문가가 절실한 상황이다.

그래픽=양진경

현대차그룹의 경우 미국인 외교 전문가를 자문으로 공식 영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차는 이날 “성 김 전 대사는 미국 국무부에서 은퇴한 후 내년 1월부터 합류할 계획”이라며 “기후·환경·에너지 이슈 등 불확실성이 고조된 경영 환경에서 주요 현안을 풀어가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소통 방식을 그룹에 접목해 대외 네트워킹 역량을 높이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성 김 전 대사를 통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자국 전기차 산업을 강력하게 보호·육성하기 시작한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걸 우선 과제로 보고 있다. 또 성 김 전 대사는 지난달까지 인도네시아 대사를 지내는 등 홍콩·일본·말레이시아 등에서 근무하며 아시아 사정에도 밝아, 신흥 시장으로 거론되는 아세안 지역 전략 수립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현대차는 지난해 인도네시아 현지 공장을 준공했고 최근 싱가포르에는 글로벌 혁신센터를 구축해 아세안 시장에서 사업을 확장 중이다.

앞서 삼성전자가 지난해 2월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를 영입한 것이 대표적인 외교 전문가 확보 사례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그를 정부와 의회 등을 대상으로 대외협력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북미법인 대외협력팀장 겸 본사 부사장으로 임명했다. 리퍼트 전 대사는 오바마 정부에서 국방부 아태담당 차관보와 국방장관, 비서실장 등을 거쳤다.

LG그룹도 비슷한 시기인 작년 2월 조 헤이긴 전 백악관 부비서실장을 미국 워싱턴 공동 사무소장으로 영입했다. 미국 정계에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었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부터 도널드 트럼프까지 4명의 공화당 소속 대통령 재임 시절 15년간 백악관에서 근무했다.

포스코그룹도 2021년 스티븐 비건 전 미국 국무부 부장관을 미국 법인의 고문으로 영입한 바 있다. 그는 2019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당시 북핵 협상대표를 맡은 인물이다. 특히 그는 미국 포드에서도 14년간 근무해 기업에 대한 이해도 깊다. 또 지난 3월에는 한화솔루션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상원의원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대니 오브라이언 폭스코퍼레이션 수석부사장을 북미 법인 대관 담당 총괄로 영입했다. 한화솔루션은 내년까지 미국 조지아주에 3조2000억원을 투자해 북미 최대 규모인 태양광 통합 생산 단지 ‘솔라 허브’를 만드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전문가들은 미·중 갈등이 여전한 가운데 미국 주도의 통상 질서가 이어지는 만큼 기업들이 미국 정책에 갈수록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대기업의 외교관 출신 한 임원은 “지난해 IRA 도입 때 한국 기업들은 미국 정책 변화를 놓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체험했다”면서 “전문가 영입전은 갈수록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