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을 찾아서

2023. 8. 17. 22:07☎청파산행과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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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fh9jf4RGQ38

 

15일이다.

동심회 단체 카톡방에

 

갑자기 8월16일 냉면 번개 공지글이 떳다.

 

16일 수요일은 인천 화평동 냉면으로 점심을 함께 하겠습니다.

시간 되시면 오세요.

 

* 8월16일(수) 12시

* 동인천역 4번 출구

* 베낭없이 간단 복장

* 참가자 댓글 필수

* 회비 1/n

 

오랫동안 주 5일 근무로 동심회 산행 및 둘레길 걷기에 일체 참석을 못했다.

그런데 마침 인천 화평동 냉면 번개 공지를 보았다.

그것도 인천에서다. 3시간 근무를 마치고 나니 정오 12시다.

서둘러 부평역에서 1호선 전철을 타고 동인천역에 도착하니

12시 40분이다.

 

잠시 각처에서 오는 친구들을 기다리니 모두 5명이 모였다.

동인천 북부역 광장을 나와 좌측으로 걷다 보니 화평동 소문난 냉면 골목이 나온다.

 

이곳 화평동 일대 냉면집들은 하나같이 세숫대야 냉면, 왕냉면으로 소문이 나있다.

우리는 일행들과 아저씨 냉면집에 들어서니

홀안은 이미 만원이다.

그바람에 잠시 머뭇거리자니, 쥔장이 안으로 들어 가시지요.

하며 안내를 하는데 요리조리 미로같은 꼬불꼬불 통로를 따라간다.

그런데 그곳에 넓직한 조금은 구닥다리 홀이 있다.

 

하지만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아 비지땀 뻘뻘 흘리며 온 일행들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 맛집이다.

시간이 늦어서 2시 정도되니 세숫대 만한 왕냉면 그릇에

푸짐하게 내온 비냉, 물냉을 맛있게 먹고나니 더 부러울것이 없다.

 

이때다. 파랑새 아우가 말한다.

모처럼 나선김에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이 돌아보고 가면 어떨까요 한다.

그 달동네 박물관을 난 6년전쯤인가 다녀왔다.

그땐 정말 실감날 정도로 산비탈에 다닥다닥 달라붙여 지은

판자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달동네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 우리가 찾아간 "수도국산달동네마을"은

이병헌 주연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아니라

'아파트 유토피아' 다.

 

그 옛날 “수도국산달동네마을”이 천지개벽을 했다.

하늘에 닿을뜻 우뚝우뚝 치솟은 아파트들이,

마치 메타쉐콰이아 숲 밀림처럼 아파트가 빽빽하다.

 

실감이 나질 않는다.

게다가 햇볕은 화롯불 불볕을 쏟아붓기라도 하듯

뜨겁다.

그 오르막길을 오르고, 또 올라도

아파트 밀림숲에 가려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내리는

땀으로 범벅이 되고야 겨우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에 도착했다.

 

일행들과 경로 할인을 받아 입장을 하니

의외로 시원한 냉방이 우리를 반긴다.

일행들과 옛시절 향수를 그리며

옛 달동네 수도국산 풍경을 돌아보는

감회가 시리다 못해 아리다.

 

 

인천에 오래 거주한 이들이 고향처럼 느끼는 수도국산 달동네의 시작은 1908년 송현 배수지가 만들어질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후 한국전쟁과 1960~1970년대 산업화를 거치며 이주민들의 생활공간으로 크게 번성하였으나, 2000년대 후반 도시 재개발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이후 인천광역시 동구청은 사라져가는 수도국산 달동네의 삶을 기억하고자 옛 달동네 터에 박물관을 건립하였습니다.

 

박물관은 역사 속에 실존했던 수도국산 달동네 서민의 평범한 삶과 생활을 기본 테마로 삼고, 나아가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이해하기 쉽게 전시하였습니다. 첫 개관 이후 지금까지 많은 지역주민과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는 동구의 대표적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이런 사랑에 보답하고자 2015년에는 어린이를 위한 달동네놀이체험관을 신설하여 좀 더 쉽고 재미있게 근현대 역사를 접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유물의 수집 및 보존, 전시, 연구, 교육 등 박물관의 기능을 성실히 수행하여 인천 동구의 근현대사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문화시설로서 지역의 문화발전에 기여하는 박물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960~70년대 동인천 풍경

Dongincheon in the 60s and `70s

 

60, 70년대 인천의 중심지는 동인천역 부근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수도국산을 비롯해 양키시장이라 불리며 없는 것이 없었던 중앙시장, 헌책방 거리가 형성된 배다리, 옛 개항장 인근의 자유공원 등으로 하루종일 수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며 이동하였다. 70년대 동인천역 주변에서 즐겨찾았던 음악다방과 동네사진관, 중앙시장의 양장점등은 이제는 자주 볼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 시절추억이 서린 물건들은 아직도 옛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수도국산 달동네가 생기기까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갑진년(1904)에 왜병이 전환국(현재 전동) 근처에 주둔하였는데, 이곳 주민들을 강제로 철거시켜서 송현동 산언덕에 새로운 주거를 정해 주었다고 한다.

 

-고일의 「인천석금仁川 (1955) 이는 송현동 달동네에 대한 기록으로 고일이 인천의 근대화 과정을 기록한 인천석금」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인에게 상권을 박탈당한 한국인들은 인천 동구 송현동, 송림동과 같은 신설 마을을 찾았고, 비탈진 소나무 숲은 가난한 사람들의 보금자리로 변모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고향을 잃은 피난민들이 대거 몰려들었으며, 1960, 70년대에는 산업화와 함께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곳에 이주하였다. 산꼭대기까지 작은 집들이 생기면서 181,500㎡ 규모의 수도국산 비탈에 3천여 가구가 모듬살이를 하였다. 그 결과 수도국산은 인천의 전형적인 달동네가 되었다.

수도국산 달동네를 기억하시나요?

 

수도국산은 소나무가 많다는 뜻으로 만수산 또는 송림산으로 불렸다. 수도국산 인근에 솔고개라는 뜻의 송현동과 소나무 숲이라는 의미를 지닌 송림동 등의 지명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인천은 원래 우물이 적고 수질이 좋지 않았는데, 개항 이후 급격하게 증가한 인구로 물 확보에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에 대한제국 시기 중앙관청인 탁지부에서 1906년에 수도국을 신설하고 공사에 착수하였다. 수도국산'이라는 명칭은 1909년 인천과 노량진을 잇는 상수도 공사를 벌인 뒤산꼭대기에 수돗물을 담아두는 배수지를 설치하면서 생겨나게 되었다.

 

Why Was It Called "Sudoguksan'?

 

The sudoguk of Sudoguksan means 'waterworks Originally, the named of the mountain was Songnimsan, which means pine tree forest in Korea. The name was changed to Sudoguksan around 1909 when Korea opened its port. The opening of this port brought with it an increase in population, which led to a shortage in the water supply The government constructed a water pipeline linking Incheon and Seoul, and built a reservoir near the top of the mountain. Giving the town its much needed water and the

 

달동네의 어제와 오늘

Past and Present of the Daldongnae

 

달동네와 같은 '도시 저소득층의 집단 밀집 주거지'의 시초는 일제 토막민촌'이다. 토막민촌은 일제의 수탈을 피해 농촌에서 강점기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올라온 이들이 주인 없는 산비탈이나 개천가에 허가 받지 않고 지은 것이다.

 

달동네도 그 중 한 형태인데, 일제의 식민정책, 8·15해방, 한국전쟁 그리고 1960년대 경제개발 과정에서 인구가 급격하게 집중되고 주택이 부족하게 되자 빈민계층이 한 곳에 모여 살면서 발생하였다.

60~70년대 달동네 삶을 재현하다

The way to Daldongnae

 

대부분의 달동네 주변에는 시장이 있었고 달동네로 가는 어귀에는 상가들이 모여 있었다. 수도국산 달동네도 어느 달동네와 마찬가지로 초입에 구멍가게, 연탄가게, 복덕방, 이발소 등이 자리 잡았다.

 

가게들을 지나면 동네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 길은 뒷동네로 갈수록 가파르고 좁아 손수레 조차 다니기 힘들 정도였다. 달동네 집들은 경사면에 위치하고 좁은 공간에 여러 집이 있다보니 수도나 변소를 집집마다 둘 경관이 되지 않았다. 결국 공동으로 화장실과 수도를 설치하여 사용하였다.

 

또한 수도국산달동네에는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다니지 못한 사람들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모여서 공부할 수 있는 야학당도 있었다.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의 상설전시실은 1971년 11월의 어느 날을 재현하였다.

밤하늘의 달과 별이 보이는 동네, 달동네

About Daldongnae

 

달동네는 높은 산자락에 위치해 달이 잘 보이는 동네를 의미하는 것으로, 판자촌 주민들이 임시 천막을 치고 살면서 방에 누우면 밤하늘의 달과 별이 보인다고 해서 생겨났다. 달동네라는 용어가 널리 쓰인 것은 1980년 TV 일일연속극 <달동네> 방영 이후이다. 지금은 없어진 TBC방송국에서 81년까지 방영한 이 연속극은 어려운 처지 속에서 보듬고 살아가는 달동네 사람들의 애환을 그려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달동네는 불량노후주택이 모여 있는 산동네를 지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