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151p]제1장 언어의 성격을 이해하는 길...2. 방언은 지역적 정감의 산실이다 3. 외국어와 외래어는 유식을 드러내는 도구가 될 수 없다.

2020. 3. 17. 12:47☎저작권침해신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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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언어의 성격을 이해하는 길...2. 방언은 지역적 정감의 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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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방언은 지역적 정감의 산실이다.


  1) 방언을 사용하여 독특한 지역적 특성의 정감을 환기할 수 있다.


  방언은 바로 여러 지역의 사투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즉 특정의 지역사회에서만 제한적으로 통용되는 폐쇠성을 지닌 언어이다. 따라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식적인 글에서 방언을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근래 국어 순화운동의 일환으로서 방언과 표준어를 엄격히 구분하고 방언을 되도록이면 표준어로 고쳐 쓰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방언은 국어순화의 대상은 아니라고 본다. 즉 표준어가 있다고 해서 방언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방언은 그 나름대로의 긍정적 기능을 지닌 귀한 우리말이다. 방언은 의미를 전달하는 기능 이외에도 그 어떤 정서를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기능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밥 먹었니?'라는 표준어의 표현을 경상도 방언의 표현인 '밥 뭇나"'로 바꾸어보자. 앞의 표현은 식사의 여부를 묻는 단순한 의미전달의 기능을 지닐 뿐이다. 반면 뒤의 표현은 이러한 의미전달의 기능뿐만 아니라 경상도의 풍토에서 우러나오는 독특한 지역적 정감, 그리고 그런 표현을 쓰는 사람의 혹은 억세계, 혹은 순박하게 느껴지는 독특한 개인적 정감을 환기하는 기능까지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표준어는 공식적인 의사소통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따라서  의미전달이 가장ㅇ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규격화되고 획일화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의미의 차원을 넘어서는 독특한 정감의 세계를 섬세하게 표현하는 데 있어 표준어는 아루래도 한계를 지닌 언어이다. 하지만 이런 측면에 있어 그 어떤 언어도 따라올 수 없는 특출한 능력을 발휘하는 언어가 바로 방언인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방언은 우선 향토의 언어로서 독특한 지역색을 드러낼 수 있다. 또한 방언은 일상생활과 가장 밀착된 언어로서 개인의 독특한 원초적 생활감정을 드러낼 수 있다. 지역색이나 원초적 생활감정 등은 말이 지닌 의미만으로는 결코 그 전모가 드러나지 아낳는다. 그것들은 의미를 넘어선 정서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미전달에 치중하는 표준어로는 결코 이러한 것들을 표현해 낼 수가 없다. 이러한 표준어의 한계와 부족을 메워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방언이다. 표준어를 안다고 해서 방언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방언을 사용할 수 잇ㅎ고 또 많이 사용하는 글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잇다. 첫째, 사적인 글이다. 즐 글쓰는 이와 개인적으로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쓰는 글이다. 편지 글 같은 것이 대표적인 것이다. 이런 글에서는 둘 사이에 흐르는 개인적인 정감을 서로에게 확인시키기 위해 흔히 방언을 사용한다. 둘째는 문학적인 그링다. 문학적인 글은 인물이나 사건, 배경 등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인물이나 배경의 성격을 두드러지게 하려는 목적으로 흔히 방언을 사용한다.


  "진수야!"

  "예."

  "니, 우짜다가 그래 댔노?"

  "전쟁하다가 이래 안 댔심니꾜. 수루탄 쪼가리에 맞았심더."

  "수류탄 쪼가리에?"

  "예."

  "음······."

  "얼른 낫지 않고 막 썩어들어가기 땜에 군의관이 짤라버립디더, 병원에서예."

  "······."

  "아부지!"

  "와?"

  "이래 가지고 우째 살까 십습니더."

  "우째 살긴 뭘 우째 살아. 목숨만 붙어 잇으면 다 사는 기다.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나 봐라. 팔뚝이 하나 없어도 잘만 안 사나. 남 봄에 좀 덜 좋아서 그렇지. 살기사 와 못 살아."

  "차라리 아부지같이 팔이 하나 없는 편이 낫겠어예. 다리가 없어노니, 첫째 걸어댕기기에 불편해서 또 죽겠심더."

  "야야, 안 그렇다. 걸어댕기기만 하면 뭐 하노. 손을 지대로 놀려야 일이 뜻대로 되지."

  "그럴까예?"

  "그러다니. 그러니까, 집에 앉아서 할 일은 니가 하고, 나댕기메할 일은 내가 하고, 그라면 안되겠나, 그제?"

"예."

-하근찬, <수난 이대> 중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경상도 사투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글이다. 작가는 이 인물들의 성격에 대해 단 한마디의 설명도 해주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인물들이 마치 매일 만나는 살람들이기나 한 것처럼 그들의 성격을 생생히 알 수 잇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어 항상 당하고만 살아온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센 생명력과 구수한 인정으로 꿋꿋이 내일의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방언의 마력이다. 설명이 아니라 느낌으로만 알 수 있는 인간성의 한 측면을 그 어떤 언어보다도 효과적으로 전달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방언인 것이다.


3. 외국어와 외래어는 유식을 드러내는 도구가 될 수 없다.


  1) 외국어와 외래어는 쓸 자리를 가려서 써야 한다.


  외래어는 외국에서 들어온 말 중 이미 국어로 인정받고 있는 말이다. 따라서 외래어는 국어가 아닌 외국어와는 엄밀히 구별되어야 할 개념이다. 외래어가 국어로 인정받고 잇는 이유는 거기에 해당하는 우리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말을 쓰지 않을 수는 없으므로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국어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외국어와 외래어를 구별하는 방법은 간단핟. 우리말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외국어이다. 예를 들어 나이프는 우리말 칼로 대체할 수 있으므로 국어로 받아들여 쓰게 된 외래어이다.

  외국어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 흔히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려는 목적에서 우리말을 써도 될 곳에 굳이 외국어를 쓰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오히려 교양의 천박성을 드러내줄 따름이다. 그리고 듣는 이에게 호감을 주지도 못한다. 잘 생각해보면 이는 쉽게 알 수 있다. 듣는 이가 그 외국어를 아는 경우에는 그것이 무슨 별다른 유식함되 되지 않을 것이고 듣는 이가 그 외국어를 모르는 경우에는 그에게 지적인 소외감을 줌으로써 잘난 척한다는 소리밖에 들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말에는 유난히 외래어가 많은 편이다. 이처럼 외래어가 많이 사용되는 데에는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다. 우선 근대화과정에서 외국의 문물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에 대응하는 국어를 일일이 만들어낼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없엇던 것이다. 이에 대응하는 국어를 만들어낸 경우라도 또한 이를 대중화 시키기가 어려웟다. 독특한 내포를 지닌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그 내포를 왜곡하거나 훼손하는 사례가 만았고 또한 그 내포를 정확히 표현한 경우라 하더라도 일상생할에 쓰이기에는 지나치게 불편한 표현이 되기가 일쑤였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대대적인 국어순화운동을 펴면서 흔히 쓰이는 각종 스포츠 용어를 국어로 바꾼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대체어가 지나치게 생경하고 우스꽝스러워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를테면 골키퍼를 수문장 이라고 부르는 식이었다. 결국 이 대체어들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폐기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적절한 대체어를 만들지 못해 이미 완전히 국어화된 외국어를 굳이 국어로 바꾸려는 일은 어렵기도 하려니와 절실한 필요성도 없다고 생각된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경우는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며 쓸 수 있을 만큼 적절한 대체어가 만들어지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외래어 아닌 외래어의 경우이다. 다시 말ㄹ해 이에 대응하는 우리말이 분명히 있는데도 오히려 이를 쓰는 것이 더욱 일바노하되어버린 외국어들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말 대체어가 있으니 외래어라 할 수도 없고 완전히 국어화하였으니 외국어라 하기도 어려운 묘한 경우이다. 이러한 외래어 아닌 외래어 또한 우리말에는 유난히 많다.

  그 이유는 험난했던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유달리 외국의 침략을 많이 받은 나라이다. 때로는 나라의 뿌리가 흔들릴 만큼 외국의 영향력이 강성했던 대도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몽곡, 조선시대에는 일본이, 그리고 해방 후에는 미국이 그러한 영향력을 행사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굳이 어느 때라 할것 없이 중국은 우리나라에 대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러한 외국의 영향력과 함께 그 나라의 언어도 국어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엇다. 몽고어와 일본어, 그리고 영어와 한자등이 우리말에 스며들어와 마치 국어인 것처럼 행세하게 된것이다.

  이러한 외래어들이 그 어떤 언어적 필요성에서 유입된 것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제 우리나라는 명실상부한 독립국이다. 이러한 외래어가 유입될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조건은 이제 모두 사라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외래어들이 쓰여져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이다. 편리하다고 해서, 도는 유식하게 보이려고 이러한 외래어들을 마냥 사용하는 것은 어찌 보면 참으로 지각 없는 행동이다. 우리가 그렇게 청산해버리려고 애썼던 역사적 조건들, 즉 외국의 영향력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외래어들을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우리말 대체어가 있는 경우는 즉시 버려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우리말 대체어가 없는 경우라 해도 시급히 대체어를 만들어 이를 대중화시켜 나가야 한다.

  북한에서처럼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로 부르는 언어생할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런다고 해서 반드시 튼튼한 주체성이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칼이나 전화, 근성이나 차다라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굳이 나이프나 텔레폰, 곤조나 히야시 등의 말을 쓰는 또 다른 형태의 작위적인  언억생활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쓸데없이 외국어를 남용한다든지 불행했던 역사적 조건 아래에서 비정상적으로 유입된 외래어를 남용한다든지 하는 주체적이지 못한 인격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기 대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쓰지 않아야 할 이유가 가장 분명하면서도 도한 가장 흔히 쓰이고 있는 외래어가 바로 일어계 외래어이다. 다음에 흔히 쓰이는 일어계 외래어와 이를 국어로 순화한 것을 몇 가지 들어 보았다.


  2) 버려야 할 일어계 외래어들


  ▶ 일어를 그대로 받아 쓴 말들

  ⊙ 가다마이  양복

  ⊙ 가라        무뉘 / 바탕(가라는 좋은데 옷감이 안좋다)

  ⊙ 가이당     계단(이 건물은 가이당이 너무 가파르다)

  ⊙ 고데        흙손 / 인두 / 머리지지개 (고대하다)

  ⊙ 곤죠        근성 도는 좋지 않은 성격

  ⊙ 기스        흠

  ⊙ 기지        천 / 옷감(하늘색 기지)

  ⊙ 노가다     공사판 노동자

  ⊙ 다라        네모지게 만든 그릇 / 함지 (고무다라이)

  ⊙ 다마네기  양파

  ⊙ 단까        들것(모래 두 단까만 가져와라)

  ⊙ 단도리     '段取', 준비 / 채비(단도리를 잘해라)

  ⊙ 도키다시  길닦이(저희 집ㄷ 도키다시 잘 부탁합니다)

  ⊙ 루베        입방미터(모래 1루베만 자져 와라)

  ⊙ 몸뻬        여자 바지

  ⊙ 무데뽀     '無鐵砲', 무모한 / 막된 사람 또는 무모하게 / 막되게(무데뽀로)

  ⊙ 사시미     생선회(이 집 사시미 맛이 좋다)

  ⊙ 삼마이     희극배우 / 멍청이(에라, 이 삼마이 같은 녀석아)

  ⊙ 소데나시  소매가 없는 옷

  ⊙ 소바        국수(메밀 소바)

  ⊙ 스시        초밥(스시 1일분)

  ⊙ 스키다시  곁들이 안주(와사비랑 스키다시 좀더 주시오.)

  ⊙ 식사라     개인 접시

  ⊙ 아나고     붕장어

  ⊙ 아사리     수라자 / 무법천지 / 난장판(거기는 완전히 아사리판이다)

  ⊙ 야지        야유 / 조롱 / 훼방

  ⊙ 오자미     놀이주머니(오자미 던지기 놀이)

  ⊙ 와사비     고추냉이

  ⊙ 우라        안 / 안감(이 옷은 몇 번 빨면 우라가 뒤집혀서 못 쓴다)

  ⊙ 우와기     저고리

  ⊙ 유도리     여유 / 이해심

  ⊙ 쿠사리     면박 / 야단

  ⊙  헤배       평방미터(자갈을 1헤베만 한 층으로 깔아라)

  ⊙ 히야시     차게 하다(이야시 잘된 맥주)

  ⊙ 히야카시  회롱(다 큰 처녀가 늦게 다니니 히야카시 당하지)


  ▶ 일어식으로 변형된 말들

  ⊙ 간데라     칸데라 / 등, 포르투갈어 candela의 일어식 발음

  ⊙ 간스메     통조림. can의 일어식 변형. 'can+스메'

  ⊙ 뎀뿌라     튀김. 포르투갈어의 일어식 발음

  ⊙ 동까스     fork cutlet의 일어식 변형. '豚+카스레쓰'

  ⊙ 레지        lady 또는 register의 일어식 발음으로 추정

  ⊙ 마호병     보온병. '마호(魔法의 일어)+甁'

  ⊙ 보루바쿠  포 / 판지상자. boardbox의 일어식 발음

  ⊙ 비후까스  beefautlet의 일어식 발음 '비후카스레쓰'에서 온 말

  ⊙ 사라다     쎌러드의 일어식 발음

  ⊙ 조루        물뿌리개, 포르투갈어 jorro의 일어식 발음

  ⊙ 함박스텍  hamburg steak의 일어식 발음






저자 박동규 교수 / 글쓰기를 두려워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