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10. 12:26ㆍ☎저작권침해신고센터☎
제1장 언어의 성격을 이해하는 길... 2. 언어를 알맞은 자리에 골라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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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교수님의 "글쓰기를 두려워 말라" 책을 몇번 읽었지만, 읽는 당시는 이해가 되다가도 책을 놓고 나면 멍멍하다. 그래서 이번엔 아예 교수님 저서 "글쓰기를 두려워 말라" 책 전권을 타자를 쳐, 블로그, 카페에 올려 시간, 장소 구애받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저자이신 교수님의 양해를 구합니다.
2. 언어를 알맞은 자리에 골라놓아야 한다
1) 인물의 성격에 어울리는 언어를 골라야 한다
길에서 우연히 중년의 신사와 만났다. 머리가 희끗한 것으로 보아 나와 나이가 비슷해보였다. 그는 나에게 "참으로 오랫동안 뵙지를 못하였습니다"라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나는 그 신사의 얼굴이 기억에 없었다. 그렇다고 "누구시지요?" 하고 묻는다는 것이 실례가 될 것 같아 "안녕하십니까" 하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는 당황해하며 "아이구, 왜 이러십니까" 하며 내 손을 잡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서 다시 신사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그는 내 고등학교 2년 후배로 우리 동네에 살던 동창이었다. "이 사람아" 하고 어깨를 치고 말았지만 그는 잣긴을 못 알아보는 선배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어째 저를 잊으셨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내가 실수를 하여 후배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과 같이, 글에서 인물들의 대화를 쓸 경우 자칫 어울리지 않는 언어를 쓰면 어색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말하듯이 글을 쓰라는 것은 어릴 적부터 들어온 말이지만 말하는 것을 그대로 적어보면 전혀 다른 글이 되는 것이다.
'어제 사입은 옷은 입고보니 어깨가 불편하고 멋이 나지 않았다'라고 일기에 적은 글을 친구를 만나서 말로, '어제 산 옷이 말이야, 입어보니 폼이 없고 불편해' 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글에서 보면, 문장은 주술부분이 명확하게 나타나 있고 글의 조직이 잘 짜여져 있지만, 말의 경우는 상대에게 전달하려는 내용과 기분을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어법이나 문장구조의 정석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대화의 경우에는 말하는 이의 특성에 맞는 언어를 골라써야 하는 것이다.
겨우 웃음을 그친 그녀가 핸드백을 열어 손수건을 꺼냈다. 눈밑을 닦아내면서 그녀가 말했다.
-어찌나 웃었던지 눈물이 다 나네. 아, 재밌다.
나는 무언가 막막한 심정이 되어 창밖을 내다 보았다.
-당신 ······아니, 그냥 너라고 하지 뭐. 나 이제부터 당신한테 말 놓을께.
-지금도 놓고 있어요.
-너는 나한테 말 놓아도 돼.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너는 조금 전에 무라고 했지. 비행기를 타고 가면 되지 않냐고 했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그녀가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전에도 똑같은 말을 한 남자가 있었어. 날이가면 되지 않냐구,. 그렇지만 말이지······.
나는 그녀를 바라 보았다. 웃음은 언제 사라졌던가.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렇지만, 사람은 날개가 없어. 날개가 있어야 날아가는 거야.
-한수산, 《첼로가 있던 겨울》 (《묵학사상》, 1994년 5월호) 중에서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서 한 청년과 여인이 술집에 앉아 나누는 대화의 한 부분이다. 이 대화에서 청년의 말과 여인의 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청년은 예의가 바르고 흐트러짐이 없는데 여인은 술에 조금 취한 듯한 인상이 풍겨난다. 이렇게 각자의 특성이 살아나는 것은 작가가 교묘하게 청년과 여인의 어투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여인은 '재미있다'가 아니라 '재밌다'라고 짧은 호흡의 말을 하고, '당신'이라고 하다가 '너'라고 바꾸는 방식으로 격식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온 과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여인과는 달리 청년은 말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고 마음의 이야기를 말로 들러내기 보다는 입을 다물고 혼자 생각하면서, 내면의 독백을 고개를 그덕인다든가 짧은 대답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글에서 대화를 이용하는 경우에 생각해야 할 것은, ① 말하는 이의 성격이나 뜻 혹은 기분이나 교육수준까지도 생각해 보고, ② 말을 하는 상대와의 관계를 고려해서 상대와 어떤 상태에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배려를 해야 하며, ③ 대화를 흥미있게 축약하여야 한다.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펼치면 대화의 내용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게 된다.
-목사님, 이번 주일날이 단옷날이라는 걸 알고 계세요? A가 말한다.
-아! 그래요? 나는 모르고 있었네요. 그러나 요새는 단옷날이라고 해도 시시해요. 시대가 바뀌었으니까요.
목사가 말한다.
-옛날 목사님이 어린 시절에는 단옷날 어떤 행사가 있었어요>
-우리 어린 날에는······.
그러나 목사는 특별히 이렇다 할 단옷날에 대한 기억이 나지 않는듯 말을 잇지 못한다. 잠시 후에야 다시 입을 열어 말한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처녀들은 모두 빨간 한복을 입고 그네를 뛰었지요. 그리고······동네 아이들은 밤이 되면 깡통에 불을 넣고 빙빙 돌리며 놀았지요.
목사는 전혀 자신이 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아! 그렇던가? 아, 그래요. 그거 대보름날 밤에 하는 겅예요.
-하일지, <경마장은 네거리에서>) 중에서
이 짧은 대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목사와 A라는 청년이다. 청년은 우리 것에 대한 인식의 깊이를 목사에게 물어보고, 목사는 이러한 물음에 헛대답을 하고 있다. 좀더 설명적으로 말한다면, 목사는 단오를 모를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삶의 틀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삶의 세계를 바꾸어주는 신을 따르게 하는 선도자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하는 빈정거림이 이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 빈정거림을 "아! 그렇던가?" 하는 아주 짧은 말로 처리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목사와 청년과의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목사와 청년이 논의하고 있는 이야기의 핵심이 다른 감정적인 곳으로 날아가버리는 것도 막고 있다. 몇 마디의 대화에 감추어진 이러한 의미들은 축약의 묘미를 느끼게 하는 방식이 되는 것이다.
다음의 시 한 편을 보면 말투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 몫을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엄마 집은
비 오면 눈물에 씻기고
바람 불면 한숨에 날려
자꾸만 작아지는데
지천에 유행처럼 번지는
화강암 치마, 노간주 머리띠
그리고
그리고 붉은 핏빛 철쭉 한 송이
꽃아드리지 못한 제가
자식이라
엄마
우짤꼬예
곽철남, <노들가변에서 어머니를 생각하며> 중에서
이 시는 어느 방송국에서 주부들을 대상으로 생활시를 모집했을때 뽑힌 작품이다. 이 시를 행간을 붙여서 읽어보면 "철쭉꽃 한 송이도 꽂아드리지 못한 자식이 자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는 고백이 되고 있지만, "엄마 우짤고예" 하는 사투리는 바로 자식의 한이 서린 비명과 같아서 어덯게 해볼 수 없는 안타까움을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투박한 정이지만 진실하게 두 주먹을 잡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뱉게 되는 "우짤고예"라는 말은 어머니에 대한 모든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이를 통해 글쓴이가 산 계곡의 어느 포근한 논둑길을 걸으면서, 그리고 애호박을 숭덩숭던 썰어넣은 수재비를 먹으면서 자란 사람일 것이라는 상상을 해보게 한다. 말의 축약적 사용은 이러한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2) 인물의 개성을 드러나게 하는 데도 언어의 특색을 살려야 한다.
글에서 주제가 되는 이의 말을 그의 성격과 어울리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글쓰는 이의 입장과 글 속에 등장하하여 말하는 이의 위치가 다라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글은 쓰는 이가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독특한 방식에 다라 논리적으로 혹은 설명적으로 묘사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글의 문체가 아닌 말하는 방식으로 그 인물의 개성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글쓰는이의 시각과 언어를 가지고 등장인물에게 말을 하도록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한 점 대문에 '등장하는 이의 개성적인 언어'를 만들어 내어야 하는 것이다.
나풀리에서 버스를 타고 소렌토로 향해 갈 때였다. 중학교 음악시간에 "돌아오라 소렌토로" 하고 선생님을 따라 목청을 뽑아 노래부르던 생각이 나서 친근한 고향마을을 찾는 기분이 들었다. 운전기사가 "여기가 소렌토입니다" 하고 버스를 세웠다. 길에 내려섰다 바다와 마주한 벼랑에 있는 조그만 옛 도시가 소랜토였다. 나는 벼랑밑을 보았다. 손바닥만한 모래사장이 있었고, 이 모래밭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사다리처럼 가파른 돌계단을 걸어가게 되어 있었다. 고풍스러운 성당의 모습은 이탈리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이어서 조금은 기대가 무너지는 듯했다. 그때 일행 주의 한 사람이 "저길 봐"하고 소리를ㄹ 질렀더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 누군가 벼랑의 바위들을 뚫어 암자처럼 만들어놓고 돌 속에 집을 지어놓은 것이 보였다. 누가 다시 "제비집이다"라고 했다.
나는 겨우 하룻밤을 그곳에서 잤다. 그리고 수많는 전설을 가진 소래토를 둘러보고 온 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지만 묘하게도 '제비집'이라는 말은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소랜토만 떠올리면 틀림없이 '제비집'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가장 정확한 말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등장하는 인물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말, 또는 그의 성격이나 인품에서 나올 수 있는 말, 그의 취향에 어울리는 정확한 말 등을 찾아야 한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마포 나루터에 조깃배들이 들어왔다. 학교에서 돌아와 마포로 가면 나루터 근처에서 뱃사람들이 조기를 뱃바닥에서 삽으로 퍼내어 팔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어떤 샛사람이 "드릴깝쇼"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드는 것이었다. 나는 '깝쇼'라는 말이 재미있어서 괜히 옆에 있는 친구에게 "집에 갈깝쑈"하고 흉내를 내었다. 그날 이후 우리들은 '깝쇼'를 말끝에 달고 다녔다. 얼마 후 교실에서 담임선생님이 한 아이에게 "교무실에 가서 출석부를 가지고 오너라" 하고 말하자 그 아이는 "출석부만 가져올깝쇼" 하고 되물어서 온 교실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정색을 하며 "'깝쇼'는 서울의 상인들이 쓰는 서울 사투리야" 하면서 다시는 쓰지 못하게 하였다. 이와 같이 특정 집단에서 쓰는 말을 재미있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써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문재는 간단한 거여, 구청에 가서 내 자식허구 혼인한 양 그까짓 종이에가 몇 자 끄적끄적해서 내면 그것으로 그만이렸다.
-뭐라구요?
-원 이렇게 말귀를 못할아듣다니? 결혼한 광부에게는 가족수당이라는 것이 붙어서 이쪽 돈으로 계산하여 팔천 원 가량 더 준다는 거여. 내가 문서상으로만 내 자식놈하고 성사를 하면 …….
-그러면 저는 어찌되나요?
나중에는 다그쳐 물었다.
-어떻게 되다니? 아무렇지도 않지, 그리고 넌 매달 사천 원씩을 받게 된단 말여, 사천 원씩.
-그래, 사천 원씩 받게 된다.
구여사가 감격한 듯이 중얼거렸다.
-그럼 전 어찌되나요?
(중략)
-아무렇지도 않다니깐 그래, 서류상으로만 혼인했다고 그래서 너의 몸이 망가지는 것도 아닐게고,
- 그건 무슨 소리죠, 할아버지?
-원 이런 맹랑한 애 봤나? 무슨 소리라니.
변 노인을 얼굴을 붉혔다.
-박태순, <정든 당 언덕 위> 중에서
광부로 간 아들이 보내오는 돈으로 살아가는 할아버지가 어느 처녀에게 아들과 서류상의 결혼을 권유하고 있는 부분을 인용하였다. 할아버지의 은근하고 약삭빠른 목소리가 '거여' 라는 어미에 그대로 묻어나고 있고, 겁을 먹고 있는 처녀는 '어찌되나요' 라는 애원조의 말로 대응하고 있다. 이 대화에서 두 인물이 지니고 있는 겅격적 특색이 목소리와 말투에 생동감 있게 드러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목소리가 살아 있도록 말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대화는 글의 형태를 벗어나서 말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소리를 살아 있도록 말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대화는 글의 형태를 벗어나서 말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소리를 살리기 위해서는 말투가 가지는 감각적 효과를 감안해야 한다. 즉 '아, 오늘 참 고마웠습니다' 라는 말과 '오늘은 고마웠습니다, 네' 하는 말은 같은 내용이지만 감탄의 정도에는 분명하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아'는 좀더 적극적일 수 있고, '네'는 무엇인가 소그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인물은 그가 속하는 사회적 계층이나 집단에 의해서 생활의 방식이 정해지게 마련이다. 군에 입대한 지 몇 달 안 된 신병은 아직 군인의 생활규법에 익숙해 있는 않을 것이므로, 그가 전형적인 군대집단의 말투를 사용하면 어색하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군에 입대하여 군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매달려 그의 말투를 그런 방식으로 묘사한다면 좋은 표현이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다. 갓 결혼한 신부가 "여보" 하고 큰소리로 남편을 부르는 것도 옳은 표현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물이 처한 상황을 면밀하게 고려하여 인물의개성이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들이 들어오고 뒤따라 며느리가 들어왔다. 화산댁이는 더욱 몸을 도사렸다. 며느리는 선 채로 눈을 내려감으면서,
-아끼는 어문인 줄 모르고…….
-괜찮다!
화산댁이도 외쳤다. 서로 욕하다가 들킨 때처럼 민망하고 딱한 동안이었다. 다행히 절은 하지 않았다. 이윽고 며느리가 부엌으로 나가자 화산댁이는 기인 한숨을 내쉬었다. 아들은 종시 말이 없다.
-이천댁 박손이 죽었다. 모르제?
-…….
-잔구리기 데리고 이천댁도 살기가 말 앙이다!
-…….
-붓돌이가 장개갔다. 색씨가 수수하고 들일도 잘하더라!
-그런데, 아야, 내가 온 짐에 안사돈을 한번 봐야 안 되겠나?
아들은 그만 기를 벌쩍 내면서,
-뭐라카능기요. 냄새시럽구로!
화산댁이는 뭐가 남새스러운지를 알 수가 없었다.
-여영수, <화산댁이> 중에서
윗글은 산골에 사는 어머니(화산댁이)가 도시로 장가간 아들을 찾아가서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녀에게 당하는 박대를 집약하여 보여주는 대화의 한 부분이다. 화산댁이가 아들에게 고향산골의 소식을 전할 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아들과 반말도 아니고 어정쩡한 말로 변명을 하는 며느리는 각기 그들의 개성적 속성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기에 화산댁이의 순박하고 따뜻한 마음은 오히려 더 짙게 나타나고, 사투리로 인해서 그 순박의 멋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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