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 15. 15:46ㆍ☎청파산행과여행기☎
옛 선조들의 숨결느끼며 걷는 남한산성 옛길 서문~북문 8.6km
산성 옛길 1구간 9.5km 영상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 주소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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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옛길 소개
남한산성 옛길은 조선시대 후기 10대로 중 하나인 봉화로의 일부 노선으로, 서울과 지방을 연결하는 주요 노선 중 하나였습니다. 봉화로의 일부 구간과 주변의 다양한 역사문화 자원들을 연결해 탄생시킨 것이 바로 남한산성 옛길이다.
남한산성 옛길은 조선시대 왕들이 여주의 영릉을 참배하러 갈 때, 보부상들이 보따리를 지고 인근 장터를 떠돌 때, 지방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서울로 향할 때 지나던 길이었다.
이처럼 남한산성 옛길은 지난 시절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동서남북 4개의 특색 있는 길을 걸으며, 선조들의 숨결을 느끼는 동시에, 바쁜 일상생활 속 휴식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서문길 (약 2.1km) 송파구 거여동 ~ 남한산성 서문
남한산성 서문길은 서울특별시 송파구 거여동에서 출발하여 남한산성 서문(우익문)까지 이르는 길입니다. 감이동 초입에는 먹자 골목이 형성되어 있으며, 서문으로 오르면서 남한산성의 다양한 생태계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북문길 (약 5.8km) 광주향교 ~ 남한산성 북문
남한산성 북문길은 광주시 광주향교에서 출발하여 남한산성 북문(전승문)까지 이르는 길입니다. 북문길 초입에 위치한 광주향교와 상사창동 연자마 등 다양한 문화유산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남한산성행궁 (Temporary Palace of Namhansanseong, Namhanhaenggung)국가사적 제 480호
임금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행궁이라 한다. 남한산성 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조선 인조 4년(1626)에 건립되었다. 실제로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47일간 항전하였다. 이후에도 숙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등이 여주, 이천 등의 능행길에 머물러 이용하였다. 남한산성 행궁은 1909년까지 잘 남아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훼손되었다. 1999년부터 발굴 조사를 시작하여 2002년에 상궐에 해당하는 내행전을 준공하고 2004년 행궁 좌전을 준공하였다.
내행전 (Upper Palace, Naehangjeon)
상궐 내행전은 왕이 잠을 자고 생활하던 공간으로 인조 2년에 처음 지어졌으며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전체 28칸의 건물이다. 가운데 3칸은 대청을 되어있고, 좌우 2칸씩은 온돌방과 마루방이다. 대청을 제외한 3면에는 퇴칸을 두었고 내행전의 기동 위쪽 공포는 새의 날개처럼 생긴 부재를 두 개 겹쳐 쌓은 이익공 형식으로 행궁 내 건물 중 가장 격식이 높다. 기단은 장방형으로 가공한 돌을 3단 쌓아 경사가급하고 평지가 협소한 약점을 보완하면서 동시에 장엄한 외관과 안정감을 주도록 하였다. 팔작지붕에는 용문양과 봉황문양의 막새기와를 사용하였다. 현재 내행전은 2002년에 중건되었다.
외행전(Lower palace, Oehaengjeon)
외행전은 하궐의 중심 건물로 인조 3년에 준공되었으며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상궐 내행전과 동일한 전체 28칸 건물이지만 바닥 면적이 내행전 보다 작고, 내행전에 비해 6m 정도 낮은 곳에 지었다. 병자호란 당시 왕이 병사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호궤를 이곳에서 행하였으며, 한봉에서 청나라 군이 홍이포를 쏘아 포환이 외행전 기둥을 맞추었다는 기록이 있다. 좌승당이 지어지기 전에는 광주부 유수의 집무실로 사용되었으며 현재 외행전은 2010년에 중건된 것으로, 발굴과정에서 통일신라 관련 유구들이 확인되어 건물지와 기와를 쌓은 곳 일부를 보존하고 있다.
한남루 (Pavilion Hannamnu)
한남루는 상, 하궐을 포괄하는 행궁 외곽 담장의 정문에 해당하는 행궁 외삼문의 누각이다. 정조 22년에 광주 유수 홍억이 행궁 입구에 한남루라는 누문을 대문으로 세웠으나 20세기 초반에 붕괴되었다. 한남루란 한강 남쪽 성진(城鎭)의 누대라는 뜻이며 프랑스 영사 프랑뎅(Hippolyte Frandin)이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2011년 같은 위치에 한남루를 복원하였다.
좌승당 (Local Administration facility, Jwaseungdang)
상궐 내행전의 북쪽, 담장의 밖에 있었던 좌승당은 광주부 유수의 집무용 건물로 순조 17년 광주부 유수 심상규가 건립하였다. 뜰로 나서면 좌우 문이 있는데 왼쪽문은 좌숙문이라 하여 북쪽 담밖으로 나무다리를 놓아서 통했다. 오른쪽 문은 의정문이라 하여 하궐 뒤로 통했다. 좌승이란 ‘앉아서도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발굴 조사 결과 건물의 기초부분이 잘 남아 있음이 확인되었고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된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복원이 완료된 상태이다.
일장각 (Local Administration facility, Iljanggak)
일장각은 행궁 하궐에 있던 광주부 유수가 사용하던 건물이다. 일장각은 수어장대가 위치하고 있는 청량산의 다른 이름인 일장산을 건물의 이름으로 한 것이다. 하궐 내부담장 밖에 있었던 여러 건물 중 하나로써, 조 29년에 광주부 유수 이지연이 세운 건물이다. 1900년대에 촬영한 사진에서 일장각의 모습은 확인되지만 행궁지에 있었던 광주군 청사가 철거되는 과정에서 함께 철거된 것으로 보인다. 발굴조사 과정에서 건물지의 일부를 확인하였으며 현재 일장각은 2010년에 중건되었다.
정전(Royal ancestral Shrine, Jeongjeon)
정전은 조선 왕조 임금의 신위를 모신 건물로 영녕전과 구분하여 태묘라 부르기도 한다. 정전은 당시 재위하던 왕의 4대조와 조선시대 역대 왕 가운데 공덕이 있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지내는 곳이다.
영녕전 (Royal ancestral Shrine, Yeongnyeongjeon)
영녕전은 태조의 4대조와 정전에서 계속 모실 수 없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옮겨 모신 곳으로, 영년전의 제례는 정전보다 한 단계 낮게 행해졌다.
이위정 (Iwijeong Pavilion)
이위정은 좌승당 뒤편 후원에 2010년 중건되었다. 순조 17년 광주부 유수부 심상규가 활을 쏘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건축 당시에 지은 ‘이위정기以威亭記’가 탁본과 함께 「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에 그 내용이 전해지고 있는데, 기문은 심상규가 짓고 글씨는 추사 김정희가 썼다. ‘이위(以威)’란 ‘활로써 천하를 위압할 만하지만, 활과 화살이 아닌 인의와 충용으로써도 능히 천하를 위압할 수 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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