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28. 12:00ㆍ☎청파의사는이야기☎
27년 정든집 이사하던 날 산새도 울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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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정든집 이사 하던 날
우리 부부는 1975년 결혼하여 신혼시절을 4년여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네 번이나 이사를 전전하며 전세살이를 했다. 그러다 슬하에 두 아들을 낳아 키우는 과정에 전세살이를 졸업하고 인천광역시 부평구에 위치한 5층 서민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를 했다. 그해가 1980년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자라 큰 아들은 중학교를 다녔고 작은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때 우리는 또 한 번 부평에서는 가장 교통, 교육 환경 여건이 좋은 지역 부평1동 지역에 있는 15층 고층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이사한 28평형 아파트는 우리 네식구가 살기엔 더 이상 나무랄데 없는 비들기 집 같은 Sweet Home이다.
당사 이사할 때 형은 고등학교 1학년 동생은 중학교 1학년였던 두 아들이 지금은 다 결혼해서 큰 아들에겐 열다섯살 중학생 손자가 있고, 작은 아들에겐 갓 두 돌 지난 손녀딸을 두었다. 이만하면 맨손으로 출발한 우리 부부에겐 그런데로 자식농사 잘 짓고 성공한 편이라 생각하며 더 큰 욕심내지 않고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지난 3월이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큰 아들과 아내가 죽이 맞어 며칠 동안이나 궁시렁대더니 느닷없이 27년간이 살아온 우리집 보다 14평이나 더 큰 아파트를 보고 왔다며 아내가 하는 말 ‘여보 우리 이집에서 오래 살았으니 우리도 이번에 집을 한 번 옮겨보는 것이 어떠냐’고 운을 뗀다. ‘나참 기가막혀’ “아닌밤중에 홍두께”라더니 예고도 없이 아내가 너무 갑자기 들이대는 바람에 할말을 잃었다.
‘아니 이 사람아 우리 나이를 생각해야지, 우리가 지금 소득도 없는데 큰 집만 차고 있으면 그 뒷치닥거리를 어떻게 감당 하려냐고 되물으니, 아내와 왈 ‘아들과 자신이 알아서 할테니 당신은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는 식으로 일방통행 한다.’ 남편이 가장이란 사실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도 한 마디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난 이제 더 이상 집에 투자할 여력 없으니 꿈에서라도 나에게 기댈 생각 안한다면 어디 둘이 알아서 잘 해보라고 반 허락을 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설마 지들이 일을 저질르지는 못하겠지 하는 안일한 심정으로 방심을 했다.
그후 며칠이 지나도록 잠잠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갑자기 상기된 목소리로 전화를 한다. ‘여보 당신 놀라지 말아요. 하며 나 일 저질렀어요 한다.’ ‘아니 이사람아 밑도끝도 없이 뭔 소릴 하는거야. 저지르다니 뭘 저질렀다는겨’ 하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아내 왈 ‘여보! 나 12동에 43평짜리 계약했어’ 한다. 어이가 없다. 지나는 말처럼 농담반 진담반 한 이야긴데 ‘이 눔의 여편네가 그여코 일을 저질르고 만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일저질러논 아내앞에 막무가내로 나무랄 수 도 없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원님덕에 큰 집에 한 번 살아보는것도 나쁘지는 않다.’란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한창 들떠있는 아들과 아내에게 한 마디 한다.
내가 반복해 말하지만 장노(장기간 노는 사람)가 되어 돈은 일원한 푼도 보탤 수 없으니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집 계약할 때 내 이름이 아닌 큰 아들과 당신, 두 사람 명의로 계약을 하라고 인심을 쓰며 마음을 비운다. 왜냐하면 어차피 내 인생 70 고개를 넘은지도 한 참 지났는데 원래 인생이란것이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것인데...’ 뭘 더 이상 미련 둘 이유가 있겠는가? 그래 내 수중에 가진것은 다 비우고 정신만 바로 갖고 살자고 생각을 바꾸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 다.
이렇게 시작된 우리집 이사 작전은 며칠에 걸쳐 새로산집 인테리어를 하고 이사 날을 잡는다. 우리는 원래 미신을 믿지 않는 집안이라 그냥 평일(수요일)로 이사날을 정했는데 이사해본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이삿짐 센타 불러 견적 내면 처음엔 너도 나도 하나같이 한 차로 충분하다고 장담을 한다. 그러나 이삿날 짐을 내리다 보면 ‘백이면 백’ 의례히 이삿짐센타 장삿속 관행하는 말이있다. ‘한 차론 절대 안되니 추가로 차 한 대 더 불러야 한다고 한다.’라고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한다.
그러다 보면 기분좋게 이사해야할 날 화주와 이삿짐센타간에 자연히 언쟁이 오가고 화주도 이삿짐센타도 기분 엉망으로 진심이 없는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이사를 마치게 된다. 난감한 것은 상황이 이쯤되다 보면 이삿짐 내리다 말고 금액문제로 이사를 중지할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집주인은 원튼 않턴 차 한 대 더 불러 짐을 옮긴 경험을 했다. 벌써 7년전 일이다. 원래 살던집을 새롭게 인테리어를 하기 위하여 컨테이너 Box에 짐을 보관할 때 경험을 했다. 이때
나의 경우 이사 모두 다 끝나고 이삿짐센터의 부조리하고 고질적인 병폐 관행으로 인하여 애꾸지게 서민들이 피해 보고 있다는 사실을 허가관청과 관계기관에 민원을 내 결국 해당 이삿짐 센타로 부터 사과도 받고 환불에 상응하는 A/S도 받았다.
그래서 이번 이사에는 두 번 다시 그런일 반복 당하지 않기위해 아예 계약 단계 초 부터 조목조목 짚었다. 만약 우리 짐이 한 차가 넘으면 추가 운반 비용을 10만원 더 지불키로 정했고 이삿날이 평일인데도 ‘손없는 날이라고 10만원’이 더 추가되고 6층에서 짐 내리는 고가 사다리차 비용, 이사짐 도우미 (남자 4명, 여자 1명) 비용, 또 새로 이사가는 집이 14층이라 고가 사다리차 비용 합하여 모두 총 97만원에 계약을 했다.
그리고 2016년 5월 25일이 이사 날인데 “오룡익스프러스 www.movingpiaza.co 080-042-0024)에서 온 5명의 도우미분들 어쩌면 그렇게 손발이 척척 맞아 “일사천리”로 일을 잘 하는지 신기해서 놀랄 정도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이삿짐센타에 대한 고정관념 불신감을 깨끗이 해소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짐이 하도 오래된 살림이라 그런지 ‘버릴 것은 이미 집 사람 빼고 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어영부영 이삿짐이 두 차가 꽉찼다. 그 바람에 약정대로 10만원 비용 추가해서 이사비용이 총 107만원이 들었다.
이사를 모두 마치고 그분들이 돌아간 후 생각해보니 뜻밖에 ‘꼼꼼 친절 예우’를 받으며 이사에 큰 도움 주었던 “오룡익스프러스 www.movingpiaza.co (080-042-0024)”에서 오신 도우미분들께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 내 나름대로 “27년 정든집 이사” 후기를 적으며 ‘꼼꼼 친절이사’ 전문업체 “오룡익스프러스 www.movingpiaza.co (080-042-0024)”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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