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도 보고 뽕도 따고 봄맞이 가족 산행

2014. 3. 18. 22:54☎오마이 뉴스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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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바람에 실려온 봄의 화신
ⓒ 윤도균

 


가족과 함께 봄맞이 산행

 

며칠 전 조카딸 (큰누님 딸)에게 전화가 온다.

"외삼촌 시간 되시면 (2014.3.16.일요일) 저희 집에 외삼촌 두 분과 이모님 함께 놀러 오세요."

"아니 왜? 무슨 일 있어?"

"아니요. 이번에 갑자기 생떼 같았던 오빠 하늘나라에 보내고 나니, 훌쩍 엄마, 오빠 생각이 나면서 외삼촌과 이모님 생각을 했어요." 하고 말이다.

 

조카의 전화를 받고 보니 나 또한 조카들 어릴때 이웃에 살며 놀아준 뒤론 조카들이 성년이 되어, 시집, 장가가고 난후에는 명색이 외삼촌이란 사람이 집안 '애경지사'있을 때를 제외하곤 언제 한번 만나 제대로 이야기 한번 나누지 못한터다.

 

그래서 시작된 우리의 만남은 (2014.3.16.일) 아내와 함께 부평에서 전철을 세 번이나 갈아타며 약속 장소인 구파발역에서 10시 30분 만나고 보니, 우리 부부와 손아래 남동생, 그리고 막내 여동생 부부와 조카사위가 만나 반가히 인사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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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근린공원길 따라 봄바람 산행이 시작된다.
ⓒ 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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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가 힘들면 쉬었다 가자
ⓒ 윤도균

 


 

이어 아내와 여동생은 곧바로 조카딸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고, 우리 남정네 네 사람은 구파발역에서 시작하는 '진관근린공원길'을 따라 가벼운 산행을 시작하는데, 이날따라 매년 이맘때면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중국발 미세 먼지 관계로 시야가 흐리멍덩하지만, 그래도 완만한 코스로 이어지는 근린공원길을 따라 바스락 바스락 낙엽을 밟으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다 북한산 입구 아파트에 사는 조카 사위의 북한산둘레길 예찬론에 귀가 솔깃해, 지루한줄도 모르고 걷는 산책길이 마냥 즐겁다. 그 사이 우리는 하나고등학교 방면으로 내려서, 내친김에 진관사까지 갔다 오기로 하고 가는데, 중간에 한옥마을 분양 모델하우스가 있어 들어가 보니 고즈넉한 분위기가 어쩌면 그렇게 맘에 들던지…….

 

그러나 앞에 보이는 한옥 분양가가 대충 10억대를 호가 하니, 만약 입주하려 이것저것 더 옵션을 설치하다 보면 12억은 족히 들것 같아 우리같은 서민들로선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천문학적 금액에 놀라 그냥 그림에 떡만 주어 먹고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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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둘레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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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사 칠성각에서 발견된 독립신문(獨立新聞) 제30호에 실린 <태극기> 시(詩) 일부]를 비에 새긴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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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서둘러 진관사를 향해 발길을 재촉 하는데, 차도 좌측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돌 비석이 세워 있고, 그 비에는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태극기와 약간 문양이 다른 태극기가 돌비석에 새겨있고 그 옆에 태극기에 대한 설명이 비문에 새겨있다.

 

태 극 기

 

 三角山 마루에 새벽빗 비췰제

네 보았냐 보아 그리던 太極旗를

네가 보앗나냐 죽온줄 알앗던

우리 太極旗를 오늘 다시 보앗네

自由의 바람에 太極旗 날리네

二千萬 同胞야 萬歲를 불러라

다시산 太極旗를 爲해 萬歲萬歲

다시산 大韓國

 

[진관사 칠성각에서 발견된 독립신문(獨立新聞) 제30호에 실린 태극기 시(詩) 일부]를 비에 새긴 것이라 한다. <비문발췌>

 

이 태극문양은 『진관사 칠성각 해체 복원 불사 중에 독립신문을 비롯한 신문 6종 20점이 태극기 안에 싸인 채로 발견되었다. 이 유물은 1919년 중국과 국내의 항일독립운동에 실제 사용된 것으로, 진관사가 당시 서울 지역 항일독립운동의 거점 사찰이었음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이 <진관사 태극기> 기념비는 3년 전 불기 2555년(2011) 8월 10일, 광복절 제 66주년을 앞두고 제막되었다고 한다.  <진관사 태극기> 비는 한국독립운동(韓國獨立運動) 중심에 섰던 초월(初月. 1878~1944) 스님이 보관했던 태극기 형태를 비에 새긴 것으로, 초월 스님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고 서울지역 항일운동 거점사찰인 진관사의 역사를 후세에 전하고자 조성했다고 전한다. (진관사홈페이지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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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 조계종 진관사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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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사 대웅전과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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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숭고한 뜻이 담긴 줄도 모르고, 걷는것만 좋아서 이 비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나치려 했던 것이 얼마나 부끄럽던지……. 돌비에 새겨진 '태극기' 예찬시와 비문을 읽으며 머리가 숙여진다.

 

진관사는 요즘 '템플스테이와 사찰음식'관 건축에 일대가 각종 공사로 혼란스러워 

 

그 모습 보면서 이렇게 숭고한 태극기 역사를 간직한 진관사 만이라도, 그 옛날처럼 조용한(靜)포교 활동을 하는 사찰로 남았으면 하는 기대를 해보지만, 솔직히 요즘 종교 시설들 이 하나같이 몸집 부풀리기에 경쟁이 된 현실을 아는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것도 모순이긴 마찬 가지다.

 

한창 중수(重修)중인 진관사를 한 바퀴 휘 돌아보고, 서둘러 조카네 집까지 이어지는 길은 마침 북한산둘레길 구간이라 다양한 볼거리를 만나며, 널널하게 걸으며 4명의 남정네들 수다가 얼마나 걸죽하고 깨가 쏟아지는지  지루한 줄도 모르고 3시간여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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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사 대웅전 기둥마다에 쓰인 대련 서예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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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가 외삼촌 외숙모를 위해 마련한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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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얼떨결에 북한산 입구에 사는 조카네 아파트 단지에 도착 했는데, 평소 차를 타고 지나 다닐땐 몰랐는데, 이곳 아파트는 성냥각 쌓아놓은 것처럼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른 시멘트 덩어리가 아니라, 약간의 유럽풍 건축 방식을 닮아 층수도 높지 않고 다양하고 한결 분위기가 호감을 끈다. 

 

11층에 사는 조카네 집에 도착하니 "외삼촌 하면서 달려 나오며 반기는 조카"가 어려선 그렇게 야리야리하고 앳돼 보였는데,  외삼촌과 이모를 초대해 놓고 정성으로 차려낸 음식이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에 맛은 왜 그렇게 내 식성에 꼭 맞는지, 그러다 보니 분위기에 흠뻑 젖어 "형님 한잔, 아우 한잔" 하며 마신 술병 숫자가 꽤된다.

 

그렇게 예정에도 없는 조카의 초대 만찬을 즐기고 귀가를 하려는데, "외삼촌, 이모 잠깐만요." 하면서 일행들 손에 쇼삥빽을 들려주데, 그 내용물이 5년산 매실 원액과 온갖 먹을거리를 얼마나 많이 담았는지 팔이 빠질 정도로 무겁다. 

 

그러면서 외삼촌 이렇게 먼 우리집 방문 해주셔 고맙다며, 차를 몰아 구파발역까지 태워다 주며, "외삼촌 안녕히 가시라"는 조카딸 부부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대견하던지, 전철을 타고 집에 오는 내내 하늘에 계신 누님 생각에 눈시울이 글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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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길 아파트에 걸린 일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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