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진관사 칠성각에서 발견된 독립신문(獨立新聞) 제30호에 실린 <태극기> 시(詩) 일부]를 비에 새긴 것이라 한다. |
ⓒ 윤도균 |
| |
이어 서둘러 진관사를 향해 발길을 재촉 하는데, 차도 좌측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돌 비석이 세워 있고, 그 비에는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태극기와 약간 문양이 다른 태극기가 돌비석에 새겨있고 그 옆에 태극기에 대한 설명이 비문에 새겨있다.
태 극 기
三角山 마루에 새벽빗 비췰제
네 보았냐 보아 그리던 太極旗를
네가 보앗나냐 죽온줄 알앗던
우리 太極旗를 오늘 다시 보앗네
自由의 바람에 太極旗 날리네
二千萬 同胞야 萬歲를 불러라
다시산 太極旗를 爲해 萬歲萬歲
다시산 大韓國
[진관사 칠성각에서 발견된 독립신문(獨立新聞) 제30호에 실린 태극기 시(詩) 일부]를 비에 새긴 것이라 한다. <비문발췌>
이 태극문양은 『진관사 칠성각 해체 복원 불사 중에 독립신문을 비롯한 신문 6종 20점이 태극기 안에 싸인 채로 발견되었다. 이 유물은 1919년 중국과 국내의 항일독립운동에 실제 사용된 것으로, 진관사가 당시 서울 지역 항일독립운동의 거점 사찰이었음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이 <진관사 태극기> 기념비는 3년 전 불기 2555년(2011) 8월 10일, 광복절 제 66주년을 앞두고 제막되었다고 한다. <진관사 태극기> 비는 한국독립운동(韓國獨立運動) 중심에 섰던 초월(初月. 1878~1944) 스님이 보관했던 태극기 형태를 비에 새긴 것으로, 초월 스님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고 서울지역 항일운동 거점사찰인 진관사의 역사를 후세에 전하고자 조성했다고 전한다. (진관사홈페이지발췌)
이렇게 숭고한 뜻이 담긴 줄도 모르고, 걷는것만 좋아서 이 비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나치려 했던 것이 얼마나 부끄럽던지……. 돌비에 새겨진 '태극기' 예찬시와 비문을 읽으며 머리가 숙여진다.
진관사는 요즘 '템플스테이와 사찰음식'관 건축에 일대가 각종 공사로 혼란스러워
그 모습 보면서 이렇게 숭고한 태극기 역사를 간직한 진관사 만이라도, 그 옛날처럼 조용한(靜)포교 활동을 하는 사찰로 남았으면 하는 기대를 해보지만, 솔직히 요즘 종교 시설들 이 하나같이 몸집 부풀리기에 경쟁이 된 현실을 아는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것도 모순이긴 마찬 가지다.
한창 중수(重修)중인 진관사를 한 바퀴 휘 돌아보고, 서둘러 조카네 집까지 이어지는 길은 마침 북한산둘레길 구간이라 다양한 볼거리를 만나며, 널널하게 걸으며 4명의 남정네들 수다가 얼마나 걸죽하고 깨가 쏟아지는지 지루한 줄도 모르고 3시간여를 걸었다.
|
▲ 진관사 대웅전 기둥마다에 쓰인 대련 서예 작품 |
ⓒ 윤도균 |
| |
|
▲ 조카가 외삼촌 외숙모를 위해 마련한 음식 |
ⓒ 윤도균 |
| |
그러는 사이 얼떨결에 북한산 입구에 사는 조카네 아파트 단지에 도착 했는데, 평소 차를 타고 지나 다닐땐 몰랐는데, 이곳 아파트는 성냥각 쌓아놓은 것처럼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른 시멘트 덩어리가 아니라, 약간의 유럽풍 건축 방식을 닮아 층수도 높지 않고 다양하고 한결 분위기가 호감을 끈다.
11층에 사는 조카네 집에 도착하니 "외삼촌 하면서 달려 나오며 반기는 조카"가 어려선 그렇게 야리야리하고 앳돼 보였는데, 외삼촌과 이모를 초대해 놓고 정성으로 차려낸 음식이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에 맛은 왜 그렇게 내 식성에 꼭 맞는지, 그러다 보니 분위기에 흠뻑 젖어 "형님 한잔, 아우 한잔" 하며 마신 술병 숫자가 꽤된다.
그렇게 예정에도 없는 조카의 초대 만찬을 즐기고 귀가를 하려는데, "외삼촌, 이모 잠깐만요." 하면서 일행들 손에 쇼삥빽을 들려주데, 그 내용물이 5년산 매실 원액과 온갖 먹을거리를 얼마나 많이 담았는지 팔이 빠질 정도로 무겁다.
그러면서 외삼촌 이렇게 먼 우리집 방문 해주셔 고맙다며, 차를 몰아 구파발역까지 태워다 주며, "외삼촌 안녕히 가시라"는 조카딸 부부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대견하던지, 전철을 타고 집에 오는 내내 하늘에 계신 누님 생각에 눈시울이 글성하다.
|
▲ 귀가길 아파트에 걸린 일몰 풍경 |
ⓒ 윤도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