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물결속에 파묻힌 "매헌 윤봉길" 의사 유적지 충의사

2013. 4. 16. 14:28☎청파의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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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헌 윤봉길" 의사 유적지 충의사를 찾아서  

 

 

 

충의사 (박정희 대통령 친필)

 

 

충의사 오르는길 태극기 물결

 

 

매헌 윤봉길 의사 유적지에 펄럭이는 태극기 물결 

 

오늘 (2013.4.14)은 충남 예산군 광시면 시목리 506번지에 있는 여강재에서 파평윤씨 태위공파 선조 6위분에 대한 “춘향제”를 모시는 날이라 파주시 파평면 마산리 남양공손 문중 종친회장을 맡은 나와 종친 3명도 이날의 춘향제 참석해 춘향제를 모시고 나니 예상보다 제례 행사가 빨리 끝나 곧바로 귀가하기엔 다소 이른 시간이 되어 종친들과 모처럼 나온 김에 예산군 관내에 있는 유적지라도 관람하고 가기로 한다.

 

그리고 즉석에서 스마트폰 검색을 하니 광시면 시목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799-2에 “추사 고택”과 예산군 군서면 사양리 40 ~ 1 127번지에 있는 “윤봉길 의사 사적지 충의사”가 검색이 된다.

 

우리는 여강재에서 점심을 먹으며 종친들과 대화를 나누며 두서너 잔 마신 막걸리 맛이 일품이다. 그러다 보니 이곳 예산의 “고덕生 막걸리” 맛에 반해 결례를 무릅쓰고 막걸리 한 병을 챙겨 먼저 추사 고택과 기념관을 돌아보고 “윤봉길 의사 사적지 충의사”에 도착하니 입구부터 온통 태극기 물결이다.

 

그런데 마침 세차게 불어오는 봄바람에 충의사 일대에 게양된 수백 개도 넘는 펄럭이는 태극기 물결이 장관이다. 그러다 보니 평소 사진 찍을 때 유난히 태극기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나로선 때맞춰 조상님 춘향제도 모셨겠다 “윤봉길 의사 사적지 충의사”도 방문했겠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가재 잡고 도랑’치는 격으로 기분이 업 되어 충의 문 (忠義門 글 郭尙勳)을 지나 충의사라 쓴 현판 (忠義祠 글 朴正熙)라 쓴 글을 보니 나도 모르게 왈칵 목이 멘다.

 

지난 2005년인가 윤봉길 의사 사적지 이곳 충의사 현판 ‘고 박정희 대통령 친필’을 서산에 사는 모 문화원장 양수철 (전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장)이란 작자가 일제 어쩌고저쩌고하며 박정희 대통령이 쓴 현판이란 이유로 충의사 현판을 떼어내 훼손한 것을 보고 얼마나 가슴 아파했는데 이날 다시 훼손한 현판을 복원해 충의사에 걸린 박정희 대통령 친필 현판을 보며 얼마나 감개무량하던지….

 

참고로 2005년 내가 이곳 충의사를 돌아본 심정을 아래에 소개한다.

 

나는 그간 윤봉길 의사 사적지 “충의사”를 두어 번 방문한 일이 있는데 얼마 전 뉴스에 의하면 ‘윤봉길 의사 사적지 충의사’에 걸린 ‘고 박정희 대통령 친필 현판’을 서산에 사는 모 문화원장 양수철 (전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장)의 소행으로 현판이 철거 훼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에도 예산 광시면 시목리에 모신 조상님 춘향제에 참석했다. 이를 확인 하려고 다시 충의사를 찾았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민족 배신자 양수철의 소행’으로 “충의사” 현판이 떼어져 없어진 것을 목격하니 범인 ‘양수철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치가 떨린다. ‘윤봉길 의사’는 우리 민족이 일제 36년 치하에 진절머리나는 수모를 당하며 힘들게 사는 것을 가슴 아파하며 구국일념으로 젊은 나이에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몸바쳐 산화하신 분인데….

 

그런 애국자 ‘윤 의사 유적지 충의사’ 걸린 고 박정희 대통령 친이 뭐가 어떻게 잘못되었다고 철거 훼손을 했단 말인가? 그런데 더 웃기는 일은 이 시대 대통령이란 분이 충의사 현판을 떼어 훼손 한 범인 양수철 이란 작자를 범죄 후 며칠이 지나도록 체포하지 않고 백주 대로를 활보하며 문화원장의 자리를 지키게 하고 있었으니, 쯧쯧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세상이 변해서 그렇다고 이해를 하자 생각을 하면서도 이렇게 애매모호한 행동으로 범인을 내버려둔 ‘노무현 정부’의 알다가도 모를 이중 심리에 대해 운문의 자손이며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으로 너무도 부화가 치밀고 분통이 터져 가슴 아프기 짝이 없다.

 

에이 더러운 세상 돌아가는 꼴 정말 구역질 난다. 명색이 일국의 대통령이란 사람이 ‘역사를 바로 보고, 바로 말하지 않고’ 요리조리 눈치로 기회나 살피며 보신하려는 행동을 보면서 어찌 보면 범인 “양수철”보다도 더 나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나만의 생각일까?

 

이러고도 훗날 자신의 역사 평가에 대해 정정당당할 수 있을까? 너무 한심하기 짝이 없는 불쌍한 위정자들의 치부에 놀아나는 ‘윤봉길 의사 유적지 충의사’ 현장을 돌아보고 온 기분 정말 더럽고 메스껍기 짝이 없다. (2005. 4. 11)

 

 

 

 

역사 재구성,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한 시대의 역사적 방향을 정한 결정적 하루가 있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주인공들의 하루 행적을 시간대별로 재구성해 그들이 결정에 이르는 과정과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맥락 등 결정적 하루의 후폭풍을 추적한다.


■ 방송 : 2012. 4. 26.(목) 22:00~22:50 (KBS 1TV)

■ 연출 : 나 영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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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의 일왕(日王) 탄생일기념식.
일본군의 대규모 집결지에 윤봉길의 폭탄이 명중한다

군부 최고 실세 시라카와가 사망하고
일본군 수뇌부가 현장에서 즉사하거나 중상을 입는다

윤봉길은 어떻게 사방을 둘러싼 일본군을 따돌리고
의거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사전 답사에서 폭탄 제조,
삼엄한 경비를 뚫고 공원에 진입하기까지
치밀하게 계획된 윤봉길의 하루를 추적한다.


■ 06:30 삶의 길, 죽음의 길


▲ 상해 원창리 13호 김해산의 집,                 ▲ 물통 폭탄과 도시락 폭탄 모형
   80년 전 내부구조 그대로다

.

1932년 4월 29일 오전 6시경. 윤봉길은 상해의 한 여관을 나서 중국 교포 김해산의 집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홍구공원 거사를 지휘한 김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6시 30분, 윤봉길은 김구와 함께 아침식사를 한 뒤 그로부터 폭탄 두 개를 건네받는다. 폭탄사용법을 익힌 그는 곧바로 운명의 거사길에 오른다.


80년 전, 김구가 25세의 청년 윤봉길을 배웅했던 ‘김해산의 집’은 지금도 남아있을까? 프로그램은 윤봉길과 김구가 만났던 ‘김해산의 집’을 최초 공개하고 두 사람의 마지막 극비회동을 재구성한다.

 

  
■ 07:50 홍구공원으로 진입하다


▲ 윤봉길이 진입한 홍구공원 정문              ▲ 정화암과 백정기


7시 50분경 홍구공원 앞에 도착한 윤봉길. 삼엄한 경비를 뚫고 공원 내로 진입하는 유일한 방법은 행사 입장권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윤봉길은 입장권이 없이도 그대로 공원 진입이 가능했다. 그는 어떻게 경비원을 따돌리고 정문을 통과할 수 있었을까?


윤봉길이 유유히 공원 내로 진입하던 그때, 거사를 계획한 또 다른 세력이 있었다. 무정부주의자 정화암, 백정기 역시 천장절 행사를 노리고 있었던 것. 하지만 홍구공원 내로 진입한 이는 오직 윤봉길뿐이었다. 정화암과 백정기의 계획은 왜 순조롭지 못했을까?

 


■ 11:40 폭탄투척, 결정적 순간


▲ 연단 위의 일본군 수뇌부                      ▲ 
시라카와 상해 파견군 총사령관.    


일본군 수뇌부가 올라간 연단과 윤봉길의 거리는 약 19미터. 그의 앞에는 무장을 한 일본군1만여 명이 있었다. 기념식 2부의 절정, 일본군이 기미가요를 부르는 순간 군중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윤봉길은 앞으로 돌진해 폭탄을 던진다. 

 

11시 40분, 윤봉길의 의거는 성공했다. 연단에 정확히 떨어진 폭탄으로 일본군 수뇌부가 현장에서 즉사하거나 중상을 입는다. 천황의 총애를 받던 총사령관 시라카와는 이날의 폭발로 며칠 동안 사경을 헤매다 숨을 거둔다. 승승장구하던 일본군에 치명적 타격이었다.

 
제작진은 홍구공원(현 노신공원) 현장을 찾아 당시 윤봉길이 실제로 폭탄을 던진 위치를 파악하고 폭탄 투척의 순간을 재구성해, 의거가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아본다.


■ 결정적 하루, 그 이후

 

▲ 전 세계 언론을 장식한 홍구공원 의거      ▲ 윤봉길의 사형집행 모습

 

의거 성공, 그 이후는 어땠을까? 윤봉길은 현장에서 즉시 체포돼 상해 일본군 헌병대에 수감된다. 거사를 주도한 김구는 언제 끝날지 모를 도피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홍구공원 의거가 조선인에 의해 계획된 것이 알려지면서, 중국 정부가 대한민국 항일투쟁에 전폭적인 지원을 시작한다.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던 상해 임시정부도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한편 체포된 윤봉길의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일본은 민간인 윤봉길을 전례 없이 군사재판에 넘기고 사형을 선고한다. 그 해 12월, 윤봉길은 생을 마감한다. 비밀리에 진행된 사형집행은 공교롭게도 시라카와가 숨진 시간 직후였다. 프로그램은 석연찮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일본의 노골적인 보복행위를 고발한다.  

 

http://www.kbs.co.kr/1tv/sisa/historyspecial/view/vod/1889092_30885.html 

 

 

 

 

 

 

 

 

 

 

 

 

 

 

 

 

 

 

 

 

 

 

 

 

 

 

 

 

 

 

 

 

 

 

 

 

 

 

 

 

 

 

 

 

 

 

 

 

 

 

 

 

 

 

 

 

 

 

 

 

 

 

 

 

 

 

 

 

 

 

 

 

 

 

윤봉길 의사 부인 배용순 여사 묘역

 

 

 

 

 

 

 

 

 

 

 

 

조릿대 숲속에서 여강재에서 가저온 막걸리를 마시는데 그 맛이란...

 

 

 

 

 

 

배용순여사 묘역을 돌아보고 내려오는데 분수대에 갑자기 오색 무지개가

떠오릅니다. 아마도 길조 소식이 오지 않을까 기대를 해봅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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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대교를 지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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