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그윽한 "추사 김정희" 고택, 기념관을 찾아서

2013. 4. 15. 22:57☎청파의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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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 그윽한 "추사 김정희" 고택, 기념관을 찾아서

 

 

 

 

 

묵향 그윽한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을 찾아서

 

충남 예산군 광시면 시목리 506번지 여강재에서 '파평윤씨 태위공파 선조 6위분'에 대한 “춘향제”를 모시고 나니 그냥 귀가 하기엔 이른 시간이라 일행들과 이왕 나온김에 멀리는 못가고 예산군 관내에 있는 유적지라도 돌아보고 가자는 의견에 따라 스마트폰 검색을 하니 마침 그리 멀지 않은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799-2에 추사 고택 (041-330-2553)이 검색이 된다.

 

그렇치 않아도 취미 생활로 십 수년간 서예를 하며 나의 경우 추사체 매력에 빠져 ‘추사 김정희“ 선생을 늘 존경했는데 뜻하지 않게 조상님 춘향제 모시러 왔다 추사 선생님 고택과 기념관 방문을 하게 될줄이야...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고’‘가재잡고 도랑치고’격이다.

 

도착과 즉시 '추사 고택 관광안내소'에서 매표를 하니 65이상 노인 (경노)은 무료이고 일반인은 500원의 요금을 내고 입장 하는데 내가 사는 인천 아파트 단지에는 벗꽃 피려면 아직 먼듯한데 이곳 추사 선생 고택 주변엔 흰색, 자색 목련 과 벚꽃이 소담 스럽게 피어 고택을 에워싸고 있다.

 

일행들과 함께 경건한 마음으로 고택에 들어서니 그 많은 기둥마다 아직 묵향이 배어나는듯한 다양한 추사체 명문 글귀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걸려있고 안방, 건너방, 사랑채등 곳곳에도 선생의 서예 작품이 표구 또는 전각 작품으로 걸려있다. 

 

그러다 보니 추사 선생 서체 감상을 하며 사진을 찍다보니 앞서가는 일행을 놓치기 일수다 이런 기회에 좀더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면 차근차근 추사 선생님 작품을 카메라에 담고 감상을 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은데 일행들 놓친세라 뛰다 시피하며 스냅사진을 찍으며 관람을 한다.

 

이렇게 고택을 돌아본 후 이번에는 추사 선생의 묘역을 찾아 잠시 묵념을 드린후 이어서 추사 기념관 관람을 하는데 세상에 기념관 외벽에 추사선생의 작품으로 널리 소개된‘대련작품’5점이 전시되어 눈길을 끓어 이 작품 감상 하느라 또 다시 일행들과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하며 찍은 스냅 사진을 게시 한다.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에 걸린 다양한 작품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에 걸린 다양한 작품

 

 

세한도

 

 

 

"추사 김 정희" 이야기

 

 

추사 김정희 영정 그림

 

추사 김정희’가 귀양길에 올랐다

약관의 나이에

그 글씨와 학문의 깊이로 이름을 날리던 득의의 세월을 뒤로

한 채 떠나는 귀양길이다.

제주도로 건너가기 전,

해남 대흥사에 들렸다.

마음을 나누는 벗,

초의선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두 친구는 대흥사 경내를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대웅전 안 뜰에 들어섰는데

김정희의 눈에 대웅전 현판이 한 눈에 들어 왔다

“大雄寶殿(대웅보전)”,

조선 후기,

조선 특유의 글씨체 동국진체(東國眞體)를 개발한

‘원교 이광사’의 글씨입니다.

 

 

 

원교 이광사의 서체 현판  “大雄寶殿(대웅보전)”

 

‘칼국수 면발 (유흥준이 평하길)’같은 느낌을 주는

골계미의 글씨였습니다.

김정희가 버럭 화를 냈다.

“이보게 초의  조선의 글씨를 다 망친 게 원교 이광사이네

알만한 사람이 어찌 저런 현판을 내걸 수 있나?

당장 태워버리게

차라리 내가 하나 써줌세”. 지긋이 미소 짓는 초의 스님,

친구가 하자는 대로 해줬다.

대웅보전 현판을 떼어

뒤뜰 창고에 넣어두고, 큰 붓에 함빡 먹을 묻혀 쓴 김정희의

无量壽閣 (무량수각) 현판을 대신 내걸었다.

‘중국집

탕수육(-유흥준)’같은 기름진 느낌의

글씨였다.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글 "무량수각"


짧게 끝날 유배생활인 줄 알았다.

그런데 18년이나 흘렀다.

득의양양한 장년에서

모진 풍상을 겪은 백발의 노인이 된 김정희는 유배지를 떠나

이번에도  초의 스님을 만나기 위해 대흥사를 찾았다.

대흥사 뜰을 거닐던,

김정희, 어디선가 낯익은 글씨를 발견했다.

18년 전 자신의 글씨였다.

낯빛의 동요를

애써 감추고 지나쳤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초의 스님과 더불어 차를 마실 때

“초의, 자네 내가 태워버리라던 원교 이광사의 글씨 어쨌나”.

18년 전 그때의 미소로 “태우기엔 아까워 창고에 넣어두었네”. 짐짓 다른 곳을 쳐다보며

 

“내가 쓴 현판은 태워버리게 그리고 원교의

글씨를 다시 내 걸게나”.

그리고 김정희는 떠났다.

 

대웅전 현판은 다시 원교 이광사의 것으로  바꿨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는 어떻게 되었을까?

초의스님은 이번엔 친구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대웅전 옆에 또 다른 건물을 짓고 그곳에 무량수각

현판을 걸어놓았다.

지금도 걸려 있다.

원교 이광사의 글씨와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그 풍경이 함축하고 있는추사 김정희의 인생,

그 깨달음의 과정을 음미해본다. 

 

김정희 [金正喜, 1786~1856]

조선 후기의 서화가·문신·문인·금석학자.

1819년(순조 19)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대사성,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학문에서는 실사구시를 주장하였고,

서예에서는 독특한 추사체를 대성시켰으며,

특히 예서·행서에 새 경지를 이룩하였다.

 

본관 경주. 자 원춘(元春).

충청남도 예산에서 출생하였다.

1809년(순조 9) 생원이 되고,

1819년(순조 19) 문과에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說書)· 충청우도암행어사·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24세 때 연경(燕京)에 가서

당대의 거유(巨儒) 완원(阮元)·옹방강(翁方綱)·조강(曹江) 등과 교유,

경학(經學)·금석학(金石學)·서화(書畵)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그의 예술은  시·서·화를 일치시킨 고답적인 이념미의 구현으로 고도의 발전을 보인 청(淸)나라의 고증학을 바탕으로 하였다.

 

1840년(헌종 6) 윤상도(尹尙度)의 옥사에 연루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1848년 풀려나왔고, 1851년(철종 2) 헌종의 묘천(廟遷) 문제로 다시 북청으로 귀양을 갔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학문에서는 실사구시 (實事求是)를 주장하였고, 서예에서는 독특한 추사체(秋史體)를 대성시켰으며, 특히 예서·행서에 새 경지를 이룩하였다. 

 

그는 함흥 황초령(黃草嶺)에 있는 신라 진흥왕 순수비(巡狩碑)를 고석(考釋)하고, 1816년에는 북한산 비봉에 있는 석비가 조선 건국시 무학대사가 세운것이 아니라 진흥와 순수비이며 ‘진흥’이란 칭호도 왕의 생전에 사용한 것임을 밝혔다.

 

또한 《실사구시설》을 저술하여 근거 없는 지식이나 선입견으로 학문을 하여서는 안 됨을 주장하였으며, 종교에 대한 관심도 많아 베이징 북경으로 부터의 귀국길에는 불경 400여 권과 불상 등을 가져와서  마곡사(麻谷寺)에 기증하기도 하였다.

 

70세에는 과천 관악산 기슭에 있는 선고묘(先考墓) 옆에 가옥을 지어 수도에 힘쓰고 이듬해에 광주(廣州) 봉은사 (奉恩寺)에서 구족계 (具足戒)를 받은 다음 귀가하여 세상을 떴다.

 

문집에 완당집(阮堂集) 저서에 금석과안록(金石過眼錄) 완당척독(阮堂尺牘) 등이 있고, 작품에 묵죽도(墨竹圖) 묵란도(墨蘭圖)》 등이 있다.

호 완당(阮堂)·추사(秋史)·예당(禮堂)·시암(詩庵)·과파(果坡)· 노과(老果)등 가장 많은 호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고택 기둥에 걸린 추사선생 서체 작품

 

 

 

 

 

 

 

추사기념관 건물 외벽에 게시된 추사 선생의 다양한 서체 대련 작품

 

 

 

 

추사기념관 건물 외벽에 게시된 추사 선생의 다양한 서체 대련 작품

 

 

추사기념관 건물 외벽에 게시된 추사 선생의 다양한 서체 대련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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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전경

 

 

 

 

 

추사 김정희 선생 관광안내소

 

 

목련과 벗꽃

 

 

 

 

소담스럽게 핀 벗꽃

 

 

 

 

 

 

 

 

 

 

일행들

 

 

 

 

 

 

고택 안채에서 찍은 사진

 

 

 

 

 

 

 

 

 

 

 

 

이곳은 고택의 뒷채이다.

 

 

 

 

 

 

 

 

고택 뒤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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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체 실험관 전경

 

 

 

 

세한도 그림같은 소나무 숲

 

 

추사묘역 전경

 

 

멀리서본 추사 기념관

 

 

 

 

 

 

관리사무소인데 문이 잠겨있다.

 

 

 

 

 

 

 

 

추사 묘역

 

 

묘비

 

 

 

 

 

 

추사 기념관

 

 

 

 

 

 

추사 김정희 석상

 

 

 

 

추사 김정희 선생 낙관

 

 

 

 

추사 기념관

 

 

 

 

 

 

추사기념관 다양한 전시 작품 모습

 

 

 

 

 

 

 

 

 

 

 

 

 

 

 

 

 

 

 

 

 

 

 

 

 

 

  

 

 

 

 

 

 

 

 

 

 

 

 

 

 

 

 

 

 

 

 

 

제주도 유배지 미니어처

 

 

고택 미니어처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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