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악산 산행길, 40년 전 근무했던 LMG 벙커를 발견하다 = 오마이 뉴스 =

2011. 7. 12. 20:33☎오마이 뉴스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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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악산 산행길, 40년 전 근무했던 LMG 벙커를 발견하다
고향 친구 후배 동생들과 함께한 감악산 산행길
11.07.12 18:30 ㅣ최종 업데이트 11.07.12 18:30 윤도균 (ydk3953)
  
감악산 675m 정상비 정상에는 향토유적 8호로 지정된 삼국시대 고비(古碑, 파주시 적성면 객현리 산 25번 지, 높이 170cm)가 서 있는데, 일명 '빗돌 대왕비 또는 설인귀비'라고도 한다. 이 비석의 글자가 마멸되어 그 생 김새가 북한산의 진흥왕순수비와 비슷하여 진흥왕 순수비라는 설도 있고 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이 고장 출신이라는 점으로 미루 어 설인귀비라는 설도 구전으로 전해 지고있다.
ⓒ 윤도균
감악산

 

 

 

  
▲ 아 그리운 감악산 고향 친구 후배들과 함께 오른 감악산 산행길은 그야말로 고향떠난지 몇 십년만에 산상 향우회를 하는듯 하루종일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산행길이 이어졌다.
ⓒ 윤도균
감악산

고향 친구 후배 동생들과 함께한 감악산 산행길 

 

나의 손아래 동생은 취미가 낚시다. 형이 만날 때마다 함께 산에 다니자고 권유를 해도 무정하게 들은 척도 않고 줄기차게 낚시터 찾아 전국 팔도를 다니던 동생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니면 형의 끈질긴 권유에 못 잊은 척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살아있는 형 소원 못 들어주겠느냐?" 생각을 했는지 어느 날부터 여동생과 매제를 대동하고 형의 산행길에 따라나섰다.

 

그것이 기회가 되어 생전 산과 담쌓고 살 사람 같던 동생이 우리나라 속담에 "가랑비에 옷 젖는다" 고 했듯이 자의든 타의든 산행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동생이 어느 날은 형! 언제 우리끼리 감악산 산행 한번 다녀오자고 제안하여 선뜻 그러겠노라 약속을 했다. 그런데 그 소리 나온지 벌써 몇 개월이 지났건만 늘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나중에는 깜빡 잊고 있었다.

 

그래도 형 입장 뻔히 잘기에 더 이상 두말 않고 이때나 저때나 형 눈치 살피며 감악산 갈 날만 고대했을 동생을 생각하니 미안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7월 둘째 주(10일) 감악산 산행 D-day를 잡고 동생에게 연락하니 친동생, 외사촌 동생, 그리고 고향 친구, 후배들까지 연락하여 20여 명이 감악산 산행에 참여 한다는 연락이 온다.

 

  
법륜사 대웅전 원래 감악산에는 감악사, 운계사, 법륜사, 운림사 4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모두 소실되었고, 지금의 법륜사는 1970년에 옛 운계사터에 재창건되었다. 중앙에 대웅전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머타전과 동양 최대의 백옥 11면 관세은보살상과 전면에는 9층 석탑과 자연석으로 세운 세계평화의 비가 있고, 절 입구에는 해탈교라는 작은 다리가 있고 경내에는 하얀 불상이 우뚝 서 있으며, 절 뒤편으로는 산신각이 있는데 그 안에서 시원한 석간수가 흘러나온다. 절 바로 밑에는 높이 20여m의 운계폭포가 있으며, 감악산 등산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 윤도균
법륜사
  
숫가마터 감악산에는 곳곳에 숫가마터 자리가 자리잡고 있다. 1960년대 말까지 이곳에서 숫을 구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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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가마터

그런데 문제는 교통편이다. 편한 대로 생각하면 승용차 운전하고 떠나면 되는데 모처럼 고향 사람들과 산행하면서 산행후 하산주 한 잔 못하면 그 무슨 재미냐고 형님 차 운전하지 말고 대중교통편 이용하자는 제안에 따라 부평에서 양주까지 지하철 1호선 47개 역이나 거치며 1시간 42분 걸려 양주역에 도착해 일행들을 만나 다시 25번 시내버스를 타고 감악산을 향하여 달려 간다.

 

불광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적성행 버스를 타고 온 팀과 감악산 계곡 법륜사 입구에서 만나 가벼운 인사를 나눈 후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전 10부터 산행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곳 감악산 산행 법륜사 코스는 소문에는 경기 오악으로 알려져 산이 되어 상당히 험할 것 같지만 의외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너무도 편안한 코스로 이어진다.

 

그런데다 파주시에서 등산로 주변에 다양한 이벤트 휴식처를 마련하여 명상의 숲, 숯가마 쉼터, 그리고 여름철 산행길에 갈증을 풀어주는 오아시스 약수터가 몇 곳이나 있어 가볍게 단산을 즐기는 사람들의 여름 산행지로 주목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우리 일행들도 부담없이 쉬엄쉬엄 너르게 산을 오르며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산행길 내내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으며 오른다.

 

  
묵은밭 지대엔 망초꽃이 피어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메밀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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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밭
  
칼바위 위에 40년지기 전우가 까마득히 올려다 보이는곳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윤도균
칼바위

그러다 보니 내가 산행을 하는것인지 산책을 나온것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편안한 산행으로 약수터 너덜길 지나 사거리 안부에 올라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우측으로 가 임꺽정봉 정상에 올라 장군봉 일대 기암 절경을 조망하며 일행들 너도나도 한목소리로 감악산이 이렇게 아름다운 산인 줄 몰랐다며 내친김에 기념사진을 찍었다.

 

발아래 기암절경 암릉 단애 지역에 장정 한 사람 간신히 들락거릴 수 있는 임꺽정 굴에 도착하여 의적 임꺽정 활력 무대를 돌아보고, 감악산 정상에 오르니 올해 초 구제역으로 감악산 기슭 객현리에서 목장을 운영하다 자식 같은 젓소 100여 두 넘게 생매장 살처분하는 어려움을 겪은 친구 부부가 내가 감악산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감악산 정상을 찾아 반가운 만남이 이어졌다. 함께 점심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형님 한 잔 아우 한 잔 고향 떠난 지 수십 년 만에 모처럼 고향 사람들과 산상 향우회라도 열린 듯 화기애애하다.

 

그러다 보니 산행은 예정보다 늦어져 일행들은 서둘러 감악산 휴게소 방향으로 하산을 하고 나는 산 욕심 미련이 남아 영국군 전적비 방향으로 진행하면서 마지막 헬기장 봉우리를 빡시게 올랐다. 다시 내려서며 선고개에 채 못미쳤을 때, 세상에 뜻밖에도 40여 년 전 내가 현역시절 예하 부대에서 1년여 근무할 적 대대 ATT 훈련 때면 이용하던 LMG 벙커를 만나는 기적 같은 일을 만났다.

 

  
임꺽정봉 676.3m 감악산 정상보다 1.3m가 더 높다.
ⓒ 윤도균
임꺽정봉
  
감악산 정상에서 고향 후배 동생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다.
ⓒ 윤도균
감악산 정상

 

그동안 몇 번의 감악산 산행을 할때 마다 일행들이 있어 말은 하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앓듯 두고두고 그 당시 나의 LMG 사수 최명규 병장과 함께 근무했던 추억을 그리며 찾을 수 있다면 꼭 그때 그 벙커를 찾고 싶은 생각을 했었지만 새까만 이등병 시절 추억이라 지형이 아름아름해 감히 찾을 엄두를 못 냈었는데 이날 뜻하지 않게 40여 년 전 내가 근무했던 벙커를 만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아마 전군 지휘 검열 때 일인 것 같다. 그때 나의 사수 최명규 병장의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아 새까만 쫄병으로 의지하고 정들었던 최 병장과의 이별이 너무 아쉬워 벙커 시멘트벽에다 "사수가 떠나던 날"이란 시를 낙서로 남긴 일이 있었다. 그런데 마침 훈련 상황 점검차 25사단을 방문하신 1군 사령관별 넷 한아무개 장군님께서 하필이면 우리 벙커엘 들어오셨다.

 

마침 내가 LMG 벙커 벽에 낙서로 쓴 시를 보시고 이 글 쓴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 이젠 꼼짝없이 영창에 가는구나 생각을 하며 덜덜 떨며 모깃소리만 하게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제가 했습니다 하고 대답을 하니 뜻밖에 글 잘 썼다고 칭찬하며 장군을 따라나선 정훈참모에게 사진 찍고 낙서한 시 발췌케 하고 검열단 일행이 떠났다.

 

  
감악산 하산길에 40년전 내가 최명규 병장과 함께 근무했던 LMG 벙커를 만났다.
ⓒ 윤도균
LMG벙커
  
영국군전적비 입구 국기 계양대에는 대한민국 국기 유엔기 영국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 윤도균
영국군묘지

벙커에 낙서했다고 꼼짝없이 영창 가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이 시가 그 시절 "전우신문'에 게재되어 나중에 포상휴가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런 추억이 담긴 벙커를 생각지도 않게 만나니 나는 너무 기뻐서 망설이지 않고 벙커에 들어가 혹시 아직도 그때 내가 낙서한 시 흔적이라도 남아 있을까? 두리번거리고 찾아보아도 낙서는 보이지 않고 전방 임진강 일대 전경 모습만 옛날 그 모습 그대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불현듯 최명규 병장 모습이 한없이 그리워 나는 잠시 눈시울을 적신다. 그립고 보고싶은 최명규 병장님 살아 있다면 꼭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영국군 전적비를 찾아 일행들과 묵념을 올렸다. 2008년 10월 1일 등록문화재 제407호로 지정되었다. 6·25전쟁 때 설마리전투에서 고지가 적군에게 완전히 포위된 상황에서도 최후까지 설전을 벌이다가 전사한 영국군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전적비이다.
ⓒ 윤도균
영국군전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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