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가족 납골묘에서 차례 지내기

2011. 6. 30. 22:00☎오마이 뉴스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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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납골묘에서 차례 지내기
새로운 추석명절 차례 풍속도 -1
02.09.24 13:32 ㅣ최종 업데이트 02.09.24 14:48 윤도균 (ydk3953)
추석 명절날 비가 내릴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와는 달리 날씨가 완연히 화창한 가을 날씨이다. 우리 가족은 내가 살고 있는 인천 지역에 큰 형님댁이 살고 계시고 동생네와 작은 형님댁은 서울에 살고 있기 때문에 명절 때만 되면 전국에서 고향을 찾기 위하여 치르는 귀성 전쟁은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하지 않으며 편안한 가족들의 만남을 할 수가 있다.

올 해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추석 전날 큰형님댁으로 온 가족들이 모여 송편도 만들고 오랫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들도 나누며 추석 준비를 하는 바쁜 일손들이지만 그래도 모두 즐겁기 만하다.

몇 년 전부터는 명절 때가 되어도 만나기가 쉽지 않던 조카들과 우리 아들들도 지난 8월 21일을 마지막으로 4명 모두 전역을 하였기에 올 추석 명절을 기해 형제가족 구성원 전원의 만남은 그 의미가 사뭇 남다르다.

오랜만에 형제들의 가족 전체가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뜻 있는 날이기에 나는 지난 6월 우리가족 납골묘(48기형)를 어려운 난관 속에 조성을 한 바 있어 이번에는 아예 우리 가족의 제례문화를 현대사회 후손들이 사용하기 적합하게 수정하여 우리 가정의례준칙으로 삼기 위하여 내가 초안으로 만든 계획안을 온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눠주고 이를 주제로 가족회의를 열었다.

먼저 입안을 한 나의 설명으로 과거에 한학 공부를 한 나 자신도 솔직히 말해서 제례 때 게시하는 지방서식 현고학생 부군신위(顯考學生 府君神位)가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가 곤란하고 유세차(孺歲次)로 시작하는 축문 내용의 이해는 더욱 난해하다. 그러다 보니 옛부터 전해오는 유교 문화의 제례 방식에 건성으로 참석을 하고 있을 뿐 그 뜻과 의미를 알기란 전문적인 해석을 요하는 일로서 알길이 쉽지 않다.

나이 먹고 한학까지 했다는 내가 이 정도면 우리의 2세들이 성인이 되어 제사를 모시게 되는 시기가 되면 아예 축문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세대가 되니 제사를 올리는 "의(意)"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가 있기에 제례 절차를 시대 변천에 맞추어 알기 쉽고 적용하기 편하게 안을 수립하여 우리 가족 전체 회의에서 의논을 하니 가족 전원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었다. 이에 우리 가족은 즉석에서 모의 제례 연습을 하여 보니 의외로 가족 모두가 박수를 치며 지금까지 전래되어 오던 제례 법례 보다 훨씬 이해가 되며 의가 깊다고 환영을 한다.

이렇게 제례 예행연습까지 마친 우리 가족 일행은 추석명절 차례를 납골묘 현지(경기 파주)에서 치르기 위하여 이른 새벽부터 준비를 하여 명절 당일 오전 9시에 4대의 승용차 편을 이용하여 출발을 하였다. 많은 가족이 단체로 차량운행을 하는 것이 상당히 조심스런 일이 되어 나는 조카들에게 안전운행할 것을 신신당부를 하고 출발을 하며 내가 선두를 인도하였다. 경인 고속도로를 경유하여 순환고속도로 김포대교를 지나 자유로에 들어서니 이른 시간인데도 예상보다 많은 차량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득 메우고 있다.

태풍 루사의 피해가 전국적으로 상당히 컸음에도 불구, 이곳 자유로변 논들에는 누렇게 고개를 숙인 벼들이 비교적 순조로운 풍작을 예상해도 좋을 정도로 농심을 가득 채우고 있어 지나는 나그네의 마음도 한결 풍요로운 생각이 들게 한다. 도로변 길가에 가을의 여신처럼 우상화된 코스모스 꽃의 물결이 자유로를 달리는 운전자들의 마음에 신선한 낭만을 생각하게 한다.

하늘에는 고추잠자리 떼가 마치 달리는 차량들과 경주라도 하려는 듯 차량을 따라 날으는 모습이 한결 가을의 정취에 빠지게 한다. 멀리 바라보이는 황샛 마을의 개량형 농가 주택들의 형형색색 예쁜 지붕 색깔 모습이 마치 어떤 외국의 풍경을 바라보는 절경처럼 한가롭게 보인다. 특히 이곳은 나의 고향 마을이기에 더욱 마음 뿌듯하다. 마음 같아서는 곧바로 홀로 계시는 고향마을 누님댁으로 달려가 누님을 뵙고 싶지만 누님댁은 차례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에 들르기로 하고 마음을 접는다.

많은 가족의 대 이동인 만큼 무엇보다도 안전운행에 신경이 쓰여 규정속도로 달리고 있는 나의 차량 뒤를 이어 꼬리를 물고 달려오는 조카들의 모습에서 또 다른 만족을 느끼게 한다. 자유로를 가득히 메우며 달리던 차량의 행렬이 오두산 통일 전망대 구간을 통과하여 임진각 방향을 향하니 차량의 행렬이 한결 줄어들며 한산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여유롭다. 우리 일행은 조금은 편안한 운행을 하며 목적지가 바라보이는 두포리 구간을 통과하려니 형님댁에서 출발한 지 1시간여 만에 우리의 목적지인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마산리 파평윤씨 종중산에 위치한 우리가족 납골묘에 도착하였다.

서둘러 차량을 주차를 시키자마자 조카아이들과 우리 아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마치 선착순 경주라도 하는 모습으로 납골묘를 향하여 산으로 뛰어 올라가는 모습이 나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그러더니 묘지에 도착한 아이들과 가족들의 입에서 이구동성으로 '와'하는 감탄의 소리가 들린다.

우리 가족은 미리 준비 하여간 빗자루와 걸레로 깨끗하게 묘비석과 젯상 화병을 닦으니 가족 납골묘가 한결 더 산뜻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우리 가족은 어제 저녁 새로 마련한 제례 순서에 의해 진설을 하고 사회자가 순서에 의해 진행을 한 후 납골묘에 잠들어 계신 조상님들을 기리는 글(축문)을 내가 읽어내려 가니 제일 큰형님 내외분과 가족들 대부분이 눈시울을 적시며 눈물을 닦는다. 글을 읽어 내려가는 나 자신도 목이 메어 한참 동안이나 읽던 글을 중지하여야만 했다.

이어서 조상님들에 대한 추모 예배 순서에서 막내 동생의 아들인 조카아이가 예배순서를 진행하는 모습에서 한결 엄숙하고 미래 지향적인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여 한결 의가 깊다는 생각을 한다.

이어서 교회를 나가신 지 일년여 정도 되신 큰형님께서 조상님들과 우리 가족에 대한 기도를 하시니, 나처럼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 몇몇 식구들도 경건한 마음으로 경청을 하며 두손을 모은다. 이어서 찬송가를 합창하고 조상님에 대한 추모담을 큰형님의 설명으로 납골묘 묘비 앞에서 상세하게 해주시니 지금까지 건성으로 제례 참석을 하여 절 몇 번하면 제사 끝으로 생각을 하던 때의 분위기와는 그 이해도 면에서 완연하게 다르고 산 체험으로 얻은 산 교육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어서 가족 합창으로 어머님 은혜 노래를 부르니 마음에 앙금처럼 남아 있던 부모님 생각이 콧등을 찡하게 한다. 마지막 순서로 조상님들에 대한 인사(절)에서 신앙인은 기독교 방식으로 나처럼 종교인이 아닌 사람들은 편한대로 하라고 하였더니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도 남자들은 모두다 넙죽 두 번씩 절을 하고 있다.

남자들만의 절하는 모습을 보며 아직은 우리가 유교적 근본의 인습을 100% 무시할 수 없는 두 마음이 마음 한구석에 향수처럼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열심히 명절 차례를 지내고 있는 모습을 마침 우리 가족 납골묘 옆에 매장으로 가족묘지를 설치한 대가족들이 성묘를 왔다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모습 또한 신구 제례문화의 갈림을 보는 것 같아 더욱 우리 가족들은 신중한 자세로 새로운 제례문화 발전계승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추석명절 차례를 마치고 우리 가족들은 이날 처음으로 시도한 새로운 제례법 실행에 대한 평가 토의를 하며 대화를 나누며 준비해간 음식을 먹고 있는 중에도 마을에서 차례를 일찍 마친 동리분들이 차를 몰고 우리 가족 납골묘에 와서 설치에 따른 절차와 비용에 대하여 질의를 하며 이구동성으로 참 어려운 결정을 하여 시범이 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고들 극찬을 하시며 찬사를 아끼지 않으신다. 이렇게 분수에 넘는 마을분들의 찬사를 받고보니 우리 가족의 결정이 잘한 결정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

이렇게 가족 납골묘에서 추석명절 차례를 마치고 온 가족이 하나된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가족 전원이 누님댁을 찾으니 70이 다되신 누님은 우리들의 방문이 반가워 어쩔 줄을 몰라하시며 좋아하신다. 그 모습을 보니 누님만 홀로 두고 먼저 가신 매형 생각이 떠오르며 다시 한번 누님의 건강이 염려가 된다. 서둘러서 누님이 차려내신 명절 음식을 맛있게 먹고서 우리 4형제 가족들은 각자 헤어져 처가댁들을 방문하기 위하여 차량을 몰고 흩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니 마치 옛날 부모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 시골집에 들러 명절 차례를 모시고 형제들이 각자 돌아가는 모습을 멍 하니 바라보시며 먼산 모퉁이를 다 지나도록 오랫동안 서서 바라보시던 부모님의 아련한 생각이 들며 육십이 다된 나이에 눈물을 글썽이게 된다. 그 땐 왜 그렇게 철이 없었었는지... 또 왜 그렇게도 부모님 마음을 헤아릴 줄 몰랐는지... 부모님께서 우리들 보다도 더 손주들을 사랑하시는 마음을 왜 그렇게도 몰라야 했는지...

내게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아들 내외가 손주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왔다가 훌쩍 손자 아이 얼굴이나 보여주고 다녀 가게되면 방금 떠난 손자 아이의 모습인데도 눈에 삼삼이 떠오르며 다시 보고싶고 그리운데 우리 부모님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고 아리셨을까 생각을 하니 다시 한번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에 눈시울이 젖는다. 아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잘못 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출처 : 사람사는이야기속으로
글쓴이 : 청파 윤도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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