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2010. 8. 23. 09:55☎청파의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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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는데

 

청파 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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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동갑내기 친구들은 군대를 다녀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사는데, 나는 낼 모래면 스물일곱이 다 된 나이 (1969. 12. 3) 에 뒤늦게 군에 입대하게 된다. 그렇다고 친구들이 3년간 군 생활 하는 동안 뭣 하나 변변히 이뤄 놓은 것도 없이 그냥 무료하게 허송세월만 보낸 것 같다. 다만, 그런 나에게 한가지 자랑거리가 있다면 늘 주변에 많은 사람과 만남의 인연이 끊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늦게 간 군대에서도 지지리 운이 없어 대한민국 육군 그 수 많은 보직 중 최말단 보병 소총 중대에 배속받아 서부전선 최전방 DMZ 철책 근무를 하게 되며 그나마 다행히 중대 행정병으로 근무하게 되었는데, 그때 우리 중대장이 나와 동갑내기로 중대장은 내가 펜 글씨를 잘 쓴다고 업무와 상관없이 중대장에게 많은 여성으로부터 밀려드는 펜팔 편지를 일일이 답장 편지를 써주어야 했고, 또 특별히 중대장이 관심을 보이는 여성에게는 달콤한 연애편지를 써 중대장의 절대적인 총애를 사며 근무를 했다. 그러다 보니 중대장은 나를 좀 더 자신의 곁에 가까이 두려고 나를 당번(부하)(때깔이)를 시키려고도 하였지만, 그것은 내 자존심이 죽어도 허락지 않아 그냥 행정병으로 근무하며 중대장의 펜팔 여인 관리를 해 주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사단사령부로 보내라는 인사명령이 내려왔다.’ 그러자 중대장은 그날 밤 나를 자신의 숙소 (BOQ) 로 불러 사단으로 가지 말고 자신과 함께 중대에 남아 근무하자고 설득하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중대장님은 직업군인”이 되어 여기서 근무 마치시면 다른 곳으로 가실 텐데, 그때 중대장님이 나를 데리고 가실 수 있느냐고 반문하며 그것은 사실상 불가한 일이니, “저와의 인연은 이쯤에서 좋은 인연으로 접고” 중대장님께서 저를 기쁜 마음으로 사단 사령부로 보내 주십시오. 하고 나의 뜻을 분명히 밝히니 중대장도 더는 나를 종용하지 못하고 어색한 침묵으로 DMZ 철책의 밤이 흐르는 가운데 아주 드문드문 북한군 대남방송 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무겁게 지나고 있는데 갑자기 중대장께서 벌떡 일어나 양주를 꺼내 따라 주며 다시 한번 나의 마음을 움직여 보려 하지만 나의 창창하게 남은 군 생활 미래를 사소한 정에 못 이겨 다시 제자리에 머물게 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서자


나는 중대장에게 훗날 “중대장님 은혜 두고두고 잊지 않겠다.”라고 약속을 하며 거듭 중대장께 사단 사령부로 보내 달라고 통 사정을 하니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던 중대장께서 정색하시며 ‘윤도 균 저 옷걸이에 야전 상의와 모자’ 좀 꺼내라고 하여 나는 아마 중대장님이 야간 순찰을 나가시려나 보다 생각하고 야전 상의와 모자를 꺼내 드리니 “중대장은 윤도 균 네가 정말 나를 두고 상급부대로 가야 한다면” “네 손으로 내 모자와 야전 상의 계급장 (대위)” 떼어놓고 가라고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며, 나는 대한민국 서부전선 DMZ 최전방 GOP 중대장직 임무를 수행하는 지휘관으로 나에겐 윤도 균 네가 그 어떤 사병보다 필수 요원인데 상급부대에서 너를 데려가려 하니 어쩔 수 없이 나는 DMZ 최전방 중대장 보직을 내걸고 육군본부에 항명, 탄원하여 너를 이곳에서 나와 함께 계속 근무하게 하겠다고 말씀을 하신다.

 

  

 

무료한 나날을 보내게 하더니 무슨 수를 썼는지 중대장은 용케도 나를 다시 제자리에 원 복 특명을 내리게 하여 근무를 하게 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그동안 중대장과 나 사이에 두텁게 쌓였던 인간적 관계도 모두 미움이 되어 상실되어 버리게 되고, 중대장과 어쩔 수 없이 명령 관계 냉랭한 대화만 이어질 뿐 그 일이 없었을 때처럼 순수한 진심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상급부대 인사 명령이 불발탄으로 돌아오게 된 바람에 나는 오히려 선임들에게 눈에나, 남은 군대 생활만 더 힘들어지고 있을 때 내가 국군의 방송에 서부전선 DMZ에 근무하는 병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고향 부모님께 보낸 사연이 “국군의 방송 전파”를 타게 되면서 내가 사회활동할 때 나를 무척이나 사랑하며 아껴주시던 지인께서 나에겐 알리지도 않고 나를 사단 사령부로 인사 명령이 나도록 도와주셨다가 이 방송을 듣고 철석같이 사단 사령부 근무를 하는 줄 알고 있다가 깜짝 놀라 확인하니 내가 아직도 서부전선 최전방 DMZ에 근무하는 것을 확인하시고 그 길로 다시 확인하여


 

19711월 새벽 그날도 변함없이 나는 중대본부 상황 근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려 관등성명을 대고 전화를 받으니 “다짜고짜 야! 너희 중대장 바꿔” 하는 명령에 놀라 서둘러 중대장에게 전화 연결을 하고 통화 내용을 감청하니 “부연대장께서 중대장에게 임 대위 윤도 균 그 아이 보내고 연대에서 그 아이보다 더 똑똑한 사병”을 보내 줄 테니 그리 알고 곧바로 지프 보낼 테니 그 아이 실려 보내라고 하니 “중대장은 부연 대장님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하는데 벌써 부연 대장은 전화를 끊고, 30여 분 지났을까 갑자기 GOP 중대 본부로 지프가 속력을 내며 도착하더니 급하게 아직 근무 교대도 하지 않은 나를 보급품도 챙기지 않은 비무장 상태로 중대장에게 인사드릴 겨를도 없이 쏜살같이 지프에 싣고 어디론가 달려간다. 그리고 약 한 시간 반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이 사단 참모장실이었다.


그런데 이날이 마침 월요일이 되어 전체 참모회의에 참석한 수십 명의 참모가 모두 다 영관장교로 소령, 중령, 대령 등 말똥 계급장을 단 장교들로 붐비고 있다. 중대에선 고작 볼 수 있는 장교들이 위관 장교 몇 명이 고작이었는데, 그러니 나는 마치 우시장에 팔려나온 소처럼 좌불안석하며 겁에 질려 차라리 도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이 전체 참모회의가 끝나고 “참모장께서 본부 사령”을 불러 이 아이 어디든 자기 원하는 참모부로 보내라고 명령을 하고, 본부 사령은 나더러 어떤 참모부를 원하느냐고 묻는데 세상에 예하 중대본부에 근무하던 졸병이 사단사령부 참모부 중 어느 참모부가 좋은 곳 (끗발)인지 어떻게 알 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얼떨결에 각 참모부 이름이 새겨진 도표를 보니 “민사참모부”란 부서가 보여 아마 군과 민간인 간에 발생하는 업무를 취급하는 곳인가 보다 판단하고 얼떨결에 민사참모부를 선택한 것이 결국 전역할 때까지 나의 근무지가 되었다.

 

 

그런데 내가 전역을 1개월여 남겨 두었을 때쯤 일이다. 내가 사단 사령부로 전출 오기 전 먼저 근무하던 부대 중대장이 부대 내에서 총기 오발 사고로 사병이 죽어 중대장이 사단 헌병대에 구속되어 며칠 후면 사단 군법회의 재판을 받게 되었다고 나와 절친한 법무참모부 친구가 알려줘 그 소리를 듣자 나는 평소 일요일이면 비록 계급은 장교와 사병 간이었지만 나와 함께 탁구도 하고, 또 겨울철이면 스케이트도 함께 타러 다니며 친분관계를 유지하며 지내는 “ROTC 법무장교”들께 내가 중대장을 도울 방안을 자문받아 나 나름대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백방 노력하여 중대장 살리기 구명운동을 한 결과 중대장은 다행히 사단 군법회의에서 고등군법회의로 넘겨지지 않고 보직을 유지할 수 있는 판결을 받고 헌병 호위를 받으며 헌병대로 돌아가는 중대장을 법무참모부 앞에서 헌병에게 양해를 얻어 머리를 숙인 중대장 앞에서 "중대장님 접니다." 고생하셨지요? 하고 인사를 드리니,

 

너무나 뜻밖의 일에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중대장은 “아니 너 윤도 균” 아니냐고 하면서 고개를 떨어뜨리고 눈물을 흘리신다. 나는 얼른 중대장을 껴 앉으며 중대장님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우선 헌병대에 가 계시면 나중에 제가 정식 면회 신청하여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약속을 하고 그날 오후 헌병대에 중대장 면회를 신청하여 PX에서 중대장과 재회를 하며 재판결과에를 알려 드리며, 그동안 있었던 자초지종 이야기를 설명 드리니 중대장은 뭐라 말을 잊지 못하며 나의 손을 잡고 “윤 병장!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내가 너에게 이렇게 큰 신세를 지게 될 줄 몰랐다. 연발하시며  옛말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는데…. 이런 인연으로 너의 신세를 지게 되다니…. 하시는 말씀을 끝으로 중대장님과의 면회는 끝이 나고 그 후 나는 곧 전역하였다. 그리고 이후 나는 중대장님 소식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40년 전 현역 시절 애증이 남아있는 중대장이 왜 이렇게 애타게 그리운지 모르겠다. 존경하는 임종주 중대장님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