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영이 할아버지 청파의 "고향마을"을 찿아 [사진]

2009. 11. 20. 00:20☎청파의사는이야기☎

728x90

 

 

 파평윤씨 태위공파 남양공손 집성촌 마을 ( 마산1리 용산동)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마산1리 용산동 

 

이곳 마을은 도영이 할베 청파가 59년전 6.25 사변으로 7살때 피난을 나온 고향 마을 본적지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마산1리 용산동) 마을이다. 그때 나는 잠을자다 느닷없이 포탄이 우리집 바깥 마당에 떨어지는 난리통속에 깜깜한 밤 우리 가족들은 피난길에 올라 이부자리와 몇 일분 곡식을 챙겨 피난길에 올랐는데 칠흑같이 어두운 밤중에 갑작스럽게 밀려 나온 피난민 인파 대열로 가족 구분이 쉽지 않아 ,

 

나와 아버지는 얼떨결에 따로 떨어져, 어머님과 (큰 누님, 큰형, 둘째형, 막내 남동생, 그리고 막내 여동생)은 어머님께서 업으시고 이산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몇 일간 방공호에 숨어 지내며 북한군과 인민군이 내려올때면 방공호로 숨고 우리국군이 북진을 할때면 어린 7살 나이에도 뛰어 나와 군인 아저씨들을 향하여 만세를 부르는 과정을 겪으며 나는 아버지를 따라 파주 교하 어디쯤에 임시 정착하였는데 당시만 하여도 아버지께서는 연세가 젊은이가 돼어

 

신변에 위험을 느끼시어 나를 친척집 아주머니에게 맡기시고 남으로 남으로 도피를 하셨고 나는 친척집 아주머님께서 그 전시 피난길 와중에도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1리 약산동 외가댁으로 나를 데려다 주셨는데 다행이 외가댁에 도착하니 어머님과 형제들이 외가댁에 계셔서 다시 가족 상봉을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난리통으로 귀찮은 생각에 친척 아주머님께서 만약에 나를 외가댁에 데려다 주지 않으셨으면

 

아마 나는 모르긴해도 십중 팔구는 어쩌면 영영 부모님과 이별한체 전쟁 고아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내가 국민학교도 안들어간 7살 철부지였으니 그 친척댁 아주머니가 아니었으면 내가 가면 어디를 갈 수 있었단 말인가? 아슬아슬한 순간에 나는 전쟁고아 부모없는 고아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을지 죽었지도 모를 운명이 될 수 있었는데.... 지금 내 나이 고희를 바라보는 마당에 다시 생각을 하여 보아도 

 

당시 나를 외가댁에 데려다 주신 아주머님 은혜가 하늘같이 고맙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지금까지 그 아주머님께서 생존하여 계셨다면 고운 옷이라도 한 벌 해 드릴 수 있었을텐데... 그 아줌니는 우리 어머님 보다도 연세가 몇세가 많으셨으니 우리 부모님께서 다 돌아가시기전 아주머님께서 먼저 돌아 가셨다. 일년에 몇 번 찿는 고향인데 오늘은 왜 이렇게 이미 돌아가신 두분 부모님과 그 맨댁 아주머님 모습이 그리운지 모른다.

 

"여우도 죽을때는 자기가 살던 굴"을 향한다고 했는데 아마도 오늘은 내가 그 여우의 마음이 된듯 하다.

 

 首 邱 初 心 : '여우는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로 향한다'는 말로써,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르는 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금방 정자터

 

이곳이 금방이라고 하는데 당시 우리 마을 사람들은 이곳이 유일한 휴식 공간이었고 마을에 무슨 행사가 있을때면 의례히 이곳 금방 바위에 치성을 드리고 일년에 한 번씩 동네 잔치가 벌어지곤 했다. 내가 어린 7살 나이때도 이곳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빙 둘러 있어 농사철이 되면 마을 어른들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그러니까 우리 고향마을 정자 휴식처가 되었다. 정자나무 그늘 인근에는 연못이 있어 우리들은 그 연못에서 겨울철이면 썰매를 타고 여름철이면 연못에 연꽃과 잉어가 놀고 있는것을 보면서 자랐다.

 

그시절 나와 함께 뛰놀던 친구 송태, 문갑이들이 있는데 피난이후 송태는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나지 못하였고 다행이 문갑이는 나와 동갑내기에 지금도 고향마을에 살고 있다. 그런데 나는 생일이 윤 사월 열하루날인데 그 친구는 그냥 4월 20일경이 되어 윤 사월이 아니면 항상 내가 생일이 빨라 친구더러 내가 형님이라고 하면 사람좋은 친구는 늘 "그래 너가 형님"이라고 형님 형님 하여 한 바탕 웃곤 한다. 어릴적 부랄친구 송태야!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살았으면 연락이나 한번 하여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정자나무 아래 우뚝선 바위를 마을 어르신들은 신앙처럼

귀히 여기시며 그곳에서 치성을 드리기도 하였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내가 고향마을을 찿아 파평윤씨 태위공파 남양공 시조 할아버지 묘소 촬영을 위하여 군부대 영내를 찿았는데 마침 이때 모 방송국 프로그램중 미녀와 야수인지 무슨 프로그램 촬영을 병영에와서 녹화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군부대 영내가 되어 사진촬영을 하기가 뭣할것 같아서 두어장 찍고 말았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곱게 단풍이 가득하게 물든곳이 금방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남양공 시조 할아버지 묘소에 때 늦은 할미꽃이 피어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구름도 울고 넘는 울고 넘는 저 산아래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있는지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있는지
산골짝엔 물이 마르고
기름진 문전옥답 잡초에 묻혀있네


2새들도 집을 찾는 집을 찾는 저 산아래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있는지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있는지
바다에는 배만 떠 있고
어부들 노래 소리 멎은지 오래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