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상과부(46년) 그 아줌니 보훈가족 되어 만났어요

2009. 7. 22. 00:55☎청파의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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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상과부(46년) 그 아줌니 보훈가족 되어 만났어요
우연한 인연이 청상과부(46년)된 그 아줌니를 보훈가족 명예 찿았어요
윤도균 (ydk3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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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넝쿨처럼 억척스럽게 살아오신 아줌니를 생각하며

 

"안녕하세요..

저는 육군 1사단 인사처에 근무하는 지성준 상사입니다.

국가 숙원사업중 일환으로 순직하신분의 유가족분들을 찾아서 명예와 국가 보훈해택을 드리고자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제가 찾는 분은 고)윤관용씨로 1937년 12월생으로 1961년에 순직하셨습니다.가족중 윤관수씨가 있었으며 주소는 경기도 파주시 천현면 법원2구로 혹시라도 아시는 분들은 저에게 연락을 주시면 가족에게는 명예를 회복할수가 있을겁니다.


저의 전화번호는 010-5080-3768, 031-940-6105번입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모든분들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란 간단 명료한 글이(2007.05.18 15:00 )제가 운영하고 있는 다음카페 “사람사는이야기속으로”에 가입후 인사란에 올라 있었어요 저는 카페 지기로 이 글을 읽으며 정말 요즘 세상도, 군대도 너무 많이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치 않고서야 어떻게 군대에서 이렇게 보훈가족 한 사람을 찿기 위하여 백방으로 이렇게 수고를 하다니 ...이미 거의 40여년전 그 옛날에 군대 생활을 하였던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군이 많은 발전과 함께 개방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나는 이 글을 읽고 곰곰히 생각을 하여 보니 1970년도 제가 현역으로 근무 당시 육군 제 25사단 사령부 민사처에 근무를 하였었는데 이때 저의 군 업무가 군,민 관계 사이에 발생하는 민사 업무와 만에 하나라도 전쟁 발발시 민사작전 관계상 우리 부대 관할 지역내의 행정기관과 유대를 가지고 업무 협조를 하였던 당시 경기도 파주군 천현면장님 성함이 윤관수씨께 였던 것을 기억 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경기도 파주 지역이 저의 고향이기도 하였지만 당시 저의 큰 형님께서 파주군 천현면 법원리에 살고 계시어 더욱 관심이 있었던 지역였기 때문였지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업무차 수 차례에 걸쳐 당시 파주군 천현면 면장님 이셨던 윤관수 면장님과  업무 논의를 자주 하였었던 40여년전의 기억이 얼핏 어렴풋이 되 살아나며 번득 나의 뇌리를 스쳐가는 느낌이 아! 잘 하면 지성준 상사께서 찿는 사람을 내가 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히려 내가 흥분이 되어 서둘러 지금은 해당 행정기관이 경기도 파주군이 지자체의 승격에 따라 경기도 파주시로 전환 되었고 천현면도 읍으로 승격이 되면서 법원읍 사무소로 개칭이 된 법원읍 사무소에 전화를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전화를 받는 직원분에게 혹시 1970년대에 천현면 면장님으로 재임 하셨던 윤관수 면장님에 대한 소재 확인이 가능 할 수 있겠느냐구 그랬더니 전화 통화 직원분께서는 자기로서는 확인이 불가능하며 총무과장님과 상의를 하여 보아야 알겠다고 하며

 

나의 연락처를 알려 주면 확인하여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하여 전화를 끊고 애타게 기다렸으나 그럭저럭 이미 시간이 보름여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어 다시 법원읍 사무소에 전화를 했지요 그랬더니 그때서야 통화를 하신 직원분께서는 깜빡 잊고 있었다며 확인결과 내가 찿고 있는 전임 윤관수 면장님께서는 이미 작고 하시고 가족들의 연락처도 파악이 곤란하다는 답변을 들으며

 

그동안 가느다란 기대를 하였던 나의 희망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던차 문득 나의 머릿속에 윤관수 면장님 후임으로 면장을 역임하셨던 윤병호 선배님의 생각이 떠 올랐어요 그래서 다시 법원읍 사무소에 전화를 하여 그러면 윤관수씨 후임으로 면장님을 역임 하셨던 윤병호 면장님의 연락처나 주소지를 알려 주실 수 있느냐고 물으니 또 다시 확인을 하여 알려 주시겠다고 하여 전화를 끊고 무작정 기다렸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어요


그래 하는 수 없이 옛말에 목마른넘이 우물 판다고 다시 법원읍 사무소에 전화를 하여 직원분에게 조금은 싫은 소리로 어떻게 내 지역 주민들중에서 보훈가족 혜택을 보게 하려는 일인데 이렇게 해당관청에서 태만할 수 있느냐고 항의를 하였지요 그랬더니 통화 직원 말씀이 여러가지 업무로 깜빡 했다고 말을 하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잠깐 전화를 끊으시고 기다리시며 곧 윤병호 전임 면장님 연락처를 확인하여 전화를 하여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고 전화를 끊었어요


제가 윤병호 선배님을 알게 된 것은 1960년대 농촌계몽운동 관계로 선배님과 각별한 지인 관계로 지냈던 인연으로 윤병호 선배님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윤병호 선배님께서 제가 군 전역후 농촌을 떠나 도회지로 이주하여 살게 되며 선배님과 연락이 두절 되었고 그후 고향을 찿을때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나와 각별한 유대관계를 유지 하셨던 윤병호 선배님께서 파주군 천현면장님을 역임 하신 것을 한참이나 훗날 소문으로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나의 생각에 그 윤병호 선배님께서는 고향이 천현면이시고 면장까지 역임을 하셨으니 윤관용씨 가족들의 소재 파악이 가능 하리란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드이어 2007년 5월 22일 오후 3시경 현 파주시 법원읍 총무과 여직원 분으로 분터 연락이 왔어요 윤병호 선배님 연락처를 알게 되었다구요 그러니 얼마나 반갑던지요 저는 당장 법원읍 여직원분께서 알려주신 윤병호 선배님 연락처로 전화를 드리니

 

윤 선배님께서는 처음에는 저를 기억 하시질 못 하셨어요 그도 그럴것이 벌써 내가 선배님을 만나 뵌지가 45년여가 지났는데 저를 단번에 아신다는 것이 무리이고 저의 욕심였지요
그래서 전화로 1960년대 지난날 흘러간 이야기 주머니를 털어 놓으며 이야기를 나누니 그때서야 윤 선배님께서 저를 기억 하시며 야 도균아 이게 얼마 많이냐? 하시며 너무 반갑다는 인사를 나눈후

 

저는 윤선배님께 본론적인 이야기를 말씀을 드렸어요 이러 저러한 일이 있어 윤관용씨 명예와 보훈 혜택을 드리고져 윤관용씨 가족을 찿고 있는데 어렵지만 선배님께서 꼭 윤관용씨 가족 연락처를 수소문 하여 좀 알려 주십시요 하고 말씀을 드렸더니 전임 천현면장을 역임 하셨던 윤관수씨는 잘 알고 있는데 몇 해 전에 이미 돌아 가셨어 하며 말씀을 이으시며 ...한참 계시더니

 

선배님께서 도균아! 알았어 자네의 깊은 뜻을 알았으니 전화 끊고 좀 기다려 보게 하셨어그리고 한 시간여 지났을까 뜻밖에 윤병호 선배님께서 다시 전화가 오네요 그러니 얼마나 반갑던지요 저와 전화를 끊으시고 그사이 선배님께서는 파주 곰시에서 차를 몰고 법원읍에 아직도 살고 계신 윤관수씨댁 가족을 찿아 윤관용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윤관용씨가 윤관수씨의 친 동생은 아니구 먼 친척 동생 분이셨는데

 

마침 윤 선배님께서 찿아가신 윤관수씨댁에 제가 애타게 찿고 계시는 윤관용씨 부인께서 놀러 오셨다가 선배님을 만나셨다고 하시며 곧 바로 윤관용씨 부인을 저에게 전화로 바꿔 주시어 통화를 하였지요 그러면서 그동안의 자초지종 이야기를 대충 설명을 드리며 잘 될지는 아직 잘은 모르지만 어쩌면 생각지 않게 보훈가족 명예를 회복 하실 수 있을 것 같으며 또한 보훈 혜택도 받으실 수 있으실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니

 

전화속으로 아주머님 세상에~~~ 세상에~~~ 하시는 말씀만 전화기 속으로 들리더니... 나중에 도대체 이게 웬일이냐며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으며 아주머님 일단은 마음을 진정 하시고 다시 연락이 할때 까지 기다려 보세요 하고 통화를 끝내고 나는 곧바로 내가 운영하는 카페에 가입후 글을 올려주신 지성준 상사님께 전화를 하여

           

어렵게 어렵게 윤관용씨 가족을 수소문하여 찿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윤관용씨 가족 연락처를 직접 지상사께 알려 드리니 그동안 군에서도 사방팔방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찿았 보았지만 더 이상 찿을길 없어 안타까웠는데 이렇게 뜻밖에 윤관용씨 가족을 찿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기쁜 마음으로 저에게 너무너무 감사 하다는 인사를 하시는 지상사님으로 부터 받았어요

 

그리고 나는 군대가 이렇게 많이 달라진 모습에 놀라며 꼭 윤관용씨 가족에게 보훈 혜택이 돌아 갈 수 있도로 각별한 협조를 지상님께 당부를 드렸어요 그리고 한 시간여 후 이번에는 또 다시 윤관용씨 부인께서 저에게 전화가 오네요 사장님 넘넘 감사 합니다 이 은혜 어떻게 갚아야 하느냐구 하시면서 내일 당장 지상사님과 오후 3시에 호적초본을 가지고 만나기로 하였다며 이 은혜 잊지 못한다고 하시며 좋은 결실 맺으면 꼭 사장님 초대하여 한턱을 내시겠다구요


그러니까 분명히 40 여년전의 나의 군대 생활의 어설픈 인연의 기억이 1961년도 12월 전사 후 국가로 부터 그동안 보훈 혜택을 받지 못하셨던 윤관용씨 가족들에게 뜻밖에 국가로부터 보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도움이 될 수 도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사실은 나 자신도

믿어지지 않으며 어리둥절 했어요


그 후 윤관용씨 가족의 보훈가족 신청 절차는 지성준 상사의 도움으로 순조롭게 진행이 되어 이 사실이 널리 알려져 심지어 육군본부에서도 저에게 너무 좋은일을 하셨다고 치하를 하며 저의 성씨와 같은 파평윤씨 가족들중에 아직도 많은 분들의 가족들이 연락처를 찿지 못하여 보훈가족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인적사항 자료를 보내 주시며 더 많은 분들이 보훈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협조를 당부 하기도 하였다


물론 그 안에도 윤관용씨 부인께서는 답답한 생각만 드시면 저에게 수도 없이 전화로 질의를 하셨어요 절차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답답하시다며 ... 하지만 제가 실무자가 아니니 아주머님의 답답함에 모두 속 시원한 답변을 드릴 수 는 없었지만 아주머님의 기대에 부응키 위하여 육군본부 해당부처 담당자님들과 질의 통화를 하며 가능한한 아주머님의 답답함을 달래 드리며 조금도 걱정 하지 말고 기다리시면 꼭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란 말씀을 드리며 기다려 왔는데,


드디어 지난 9월초 국가보훈처 의정부보훈지청으로 부터 윤관수씨가 전사자로 처리가 되어 그 가족들이 최종 보훈가족이 되었다는 반가운 통보와 함께 윤관용씨 가족들을 의정부 보훈지청으로 초청 국가 유공자 훈장을 받아 왔다며 이날부터 윤관용씨 가족분들께서 꼭 저를 찿아와 인사를 하고 만나 뵙고 싶다고 전화가 계속되고 있네요 그리고 저의 바쁜 스케쥴을 피하여

 

드디어 지난 일요일(2007.9.16)일 보훈가족이 되신 윤관용씨 가족분들이 파주 법원리에서부터 택시 대절을 하여 제가 살고 있는 인천 부평을 찿아 오셨어요 그리고 대절 자동차 속에는 싱싱한 포도와 한 상자와 갈비셋트 또한 돈으로 드리면 받지 않으실것 같아 하시면서 적잖은 상품권을 손에 쥐어 주시며 이 은혜 어떻게 보답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인사를 하시며

 

가족들과 점심 식사를 하자 하시어 맛있는 점심 대접도 받고요 그리고 아주머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제 당신은 나를 친 시동생처럼 생각을 하고 평생 은인으로 생각을 하며 자식들과 함께 우리집을 오가며 사시겠다고 그렇게 해도 되겠느냐고 아들과 며느님이 합석한 자리에서 의사를 물으시네요 그러니 늘 내노라 가진 것은 없어도 늘 주위에 사람들이 함께 하는 제가  어떻게 이 아줌니의 간절하신 소원을 외면 할 수 가 있나요?

 

저 자신도 너무도 기쁘고 즐겁고 또한 보통 인연이 아니란 생각에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도 형수님처럼 생각을 하고 이제 고향 가는길엔 꼭 형수님과 그리고 조카들 만나러 내왕을 하겠다고 약속을 드리며 우리 모두 함께 손을 잡았지요 그리고 다 함께 건배도 하였구요 생각지도 않게 이렇게 뜻밖에 이렇게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남이 이루어 질 수 있다니...다시 생각을 하여도

 

지상사와 나 그리고 윤병호 선배님의 인연이 이어져 형수님께서 22살에 결혼후 3년만에 큰 아들이 세살되고 작은 아들이 백일되던달에 남편이신 윤관용님을 전사로 사별하고 그 아름다운 청춘을 증조부까지 함께 살고 계신 농촌 가정의 큰 며느리로 고생을 하시면서도차마 두 아들을 생각하여 한 눈 한번 팔지 못하시고 무려 반세기에 걸친 길고도 긴 세월을 청상과부로 자리를 지키시며 두 아들을 키워내신 형수님의 여성으로서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연으로 맺어진 형수님의 일생이 너무도 슬프고 가슴이 아퍼 눈물이 쏟아져 우리들은 처음 만난 서먹한 자리이면서도 그것을 초월하여 부등켜 앉고 위로를 했어요 그리고 아들과 며느님께 그동안도 홀 어머님 모시고 잘 하며 살아 왔겠지만 앞으로는 더욱 아들 며느리가 어머님께 효도하여 그 어머님께서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실 수 있도록 잘들 하는것이  

 

할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태어난 손자들에게 앞으로 할머니가 작은 용돈이지만 할아버지의 유지와 혼이 담긴 사랑을 오래 오래 전해줄 수 있을것이란 이야기를 하며 다시 한번 아들 며느리에게 부탁을 했어요 꼭 어머님 남은 여생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사실 수 있도록 아들 며느리가 정성을 다 하라구요 

 

그리고 내가 형수님 손 아들 며느리 손을 모두 모아 움켜 잡고 늘 화목하고 즐겁고 행복한 가정을 일구며 살것을 무언의 약속을 하며 이날의 인연과 만남의 아쉬운 작별을 하였어요

2007.09.19 10:07 ⓒ 2007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