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 18. 10:06ㆍ☎사람사는이야기방☎
희곡작가 홍승주의 글에 ‘진짜소리’라는 시가 있다. / 세상의 아름다운 것 중에/ 이 이상 더 돋보이는 말은 없다/ 시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이를 넘지 못하고/ 그림이 아무리 좋아도 이에 미치지 못하고/ 음악이 아무리 오묘해도 이보다 더 좋은 소릴 못 낸다/ -중략- /감사합니다/ 수고하십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름답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당신이 최고입니다/ -중략-
새삼 이 시가 떠오름은 요즘 사람들의 삭막함 때문이다. 남녀노소 불문코 예의에 대한 불감증이 점점 경화되고 자기 중심의 개인주의가 나날이 팽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전철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앞에 선 사람을 불편케 하고, 신문을 활짝 펼쳐 양 옆 사람의 시야를 가리고도 당당한 표정의 사람이나, 손잡이를 잡다가 앞 옆 사람의 머리를 치고도 모르는 척 딴전을 피우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미안합니다’ 한마디 사과함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아니면 자기 행위와 이웃의 불편에 대한 완전 무감각의 불감증이 원인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택시를 탔을 때 기사가 먼저 방향을 물어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손님이 방향을 말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요금을 지불하고 ‘안녕히 가세요’ 인사를 해도 묵묵부답이다. 청각장애인한테 혼자 떠들고 돌아서는 씁쓸한 기분이다. 배신감까지 든다. 물론 모든 기사들이 다 그러한 건 아니다. 어서오십시오. 어디로 모실까요, 곱게 나이 잡수시는 것 같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손님을 즐겁게 해주는 기사분도 가끔은 접한다. 오아시스를 만난 듯 그날 하루는 정말 행복해진다.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모두들 무심한 낯빛들로 서 있다. 한 지붕 아래의 사람들이 층마다 드나들어도 표정에 한 자락 미동도 없다. 물론 모두 그러한 것은 아니다. 드물지만 눈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누는 깬 사람들도 없지는 않다.
뿐만이 아니다, 동종의 일을 하는 예술단체의 선후배들끼리도 소통이 드물다. 학교 선배는 아니어도 등단의 대선배를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도 똑바로 마주볼 뿐 인사가 없다. 상대가 누구인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낯선 사람 보듯 턱을 쳐들고 있다. 당황한 선배가 먼저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다. 그제야 후배는 얼굴을 붉히듯하며 중학교 때 선생님 소설을 많이 읽었다고 말한다.
좌석 양보를 받고도 고맙다는 답례 없는 뻔뻔한 노인들과 책가방을 무릎 위에 받아주어도 감사하단 말없이 버스가 정차하자마자 가방을 나꿔채듯 뛰어내리는 여학생, 평생을 살 섞어 살고도 사랑한다, 아름답다, 당신이 최고다고 말할 줄 모르는 60·70대의 멋없는 부부들, 내 집안일 농사일 도와주는 지인들에게, 궂은일 도맡는 환경미화원, 동네 일 봐주는 동사무소 직원들에게 ‘수고하십니다’, ‘감사합니다’ 부드러운 위로의 말 건넬 줄 모르는 무심한 사람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몰상식의 사례들은 이렇듯 부지기수다.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평화로움이 없어졌다. 눈동자는 충혈되고 목줄띠는 불거지고 누군가 나를 해코지 아니 하나 경직되어 사방을 째려보기도 한다. 사뭇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표정들이다. 마음 빗장을 스스로 굳건히 닫아걸고도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낯빛들이다.
홍승주 작가의 ‘진짜소리’를 내 것으로 마음 문 활짝 열어 흡수하여 한번 실천해 볼 일이다. 하고 보면 그렇게 쉬운 말을, 그렇게 서로 기분 좋은 것을, 큰 위로가 되는 것을, 살맛나게 만드는 보약인 것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이웃들과 함께 어우러져 사람답게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최상의 말소리, 진짜소리임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인색하게 기본적인 그 진짜소리를 삼킴으로 하여 상대에게 상처주고, 신명나게 살아갈 의욕을 상실케 하고, 분노케 하고, 증오심만 돋우어 결국 우리 사는 세상은 거칠고 각박해지면서 필히 불신의 시대, 인간 단절의 시대로 치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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