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진산(문학,연경,노적,청량,자유공원)을 찿아서 [사진]

2007. 1. 5. 01:10☎청파산행과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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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의 진산 (문학,연경,노적,청량,자유공원) 속으로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

= 산중에 명산은 안산 즐산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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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 주변의 역사

지도 : 학익, 문학 지석묘 : 인천도호부청사 : 관교동 은행나무 : 인천향교 :
문학산성 : 안관당 : 학산서원 : 사모지 고개 : 중바위 : 갑옷바위 : 연경산정자

  

  

인천의 지형은 산맥을 살펴볼 때 세가 약해서 그 줄기를 살피기는 어렵지만 자세히 보면 계양산에서 뻗은 줄기가 철마산, 주안산, 소래산에 이르기까지 남북으로 해안선과 평행되게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계로 인천의 생활 문화권은 고대 국가 시절부터 자연환경과 더불어 문학권과 계양권으로 각각 독립되어 발전해 왔다. 문학권은 문학산을 중심으로 문학동, 선학동, 관교동 등을 끼고 발달했고, 계양권은 계양산을 중심으로 계산동지역에 발달되었다. 그러다 일제의 침략으로 제물포항이 열리면서 웅봉산을 중심으로 개항장이 생겨 상권이 형성되며 동인천 지역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 중 문학산을 중심으로 한 문학 문화권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인천의 진산으로 알려진 문학산은 남산 또는 학산, 속칭 배꼽산이라고 불리는데, 인천의 진산답게 각종 유물, 유적이 문학산을 중심으로 흩어져 있다. 이미 기원 전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문학 지석묘와 학익 지석묘가 이곳에서 발굴되었다. 그리고 문학산 정상에는 비류왕릉과 비류정, 봉화대가 있었다는 문학산성, 임진왜란 때 김민선 부사가 왜적을 맞아 싸우다 과로로 순직한 것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 안관당터 등 많은 전설들이 산재해 있다. 또 옛 도읍지임을 알 수 있는 인천 도호부청사 일부와 향교가 아직까지 남아 있어 구읍으로서의 위용을 근근히 말해주는 듯 하다. 

 

 

 

  산행일시  : 2007년 1 월 3 일 (수요일)

  산  행 지 : 문학산~연경산~노적산~청량산

   산행코스 : 문학경기장역-문학산-삼호현-연경산-노적산-옥련동-청량산-흥륜사-송도유원지- 동인

                        천역-자유공원-차이나타운-인천역.

   산행인원 : 청파 윤도균,연산동님,조대흠대장,양지편사람님,호야님,거시기님,원효봉님,여운덕님

                        참사남님,모닥불님,세실리아님,은영님,야화님,슈퍼스타님,자연사랑님,천정숙님,이민자님

                        (총 17명)

  산행시간 : 4시간 15분  

 

 

 

한국의 산하 가족 여러분 대망의 2007년 새해를 맞이 하여 산님 여러분들의

건강과 늘 변함없는 즐거운 산행길 안전하게 이어 가실것을 기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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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내음 2007년 새해 첫 수요산행을 이번에는 내가 살고 있는 인천지역의 산을 돌아 보기로 하여

일행들이 인천 지하철 문학경기장역 홈에서 만나 산행을 시작하기전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지요

 

그러니까 이미 지난해가 되었네요 년말 수요 산행이 있었지만 뜻하지 않게 숙모님 상을 치르는 바람에 수요산행을 한 주 쉬게 되고 보니 왜 그런지 몸도 마음도 마치 천근이나 되는것처럼 무겁고 지푸드드하기 짝이 없네요 그런데다 년말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송년 모임 행사에 참여 하느라 자주 肉食을 대하게 되고, 날씨가 쌀쌀하여 지면서 늘 이른 아침이면 워밍업으로 아파트 인근에 있는 부평공원에 나가 속보 걷기 8킬로씩 하던 운동을 가족들과 주위 경험자들이 요즘처럼 날씨가 추울때 나이든 사람들이새벽 운동을 하는것이 별로 건강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 아침운동을 접은지 20여일이 지났는데

 

어느사이 이미 몸 근육이 많이 늘어져 있는 기분이 드네요 그래 안되겠다 빨리 수요산행날이 와야지 벼르고 있었는데 뜻 하지 않게도 2007 금년 새해 첫 수요 산행지를 인천의 진산 (문학,연경,노적,청량)산으로 정하여 놓았으니 아마도 늘 나를 보살펴주는 조대장과 산초스 아우들의 새해 첫 선물 마음의 배려가 아닌가 생각을 하며 감사한 마음이 드네요 비록 직접적인 물건을 주고 받는 선물은 아니지만 늘 마음으로 서로를 배려 하는 마음들 ...

 

어케 생각하면 지난 한 해 우리들 사실은 친 형제 그 어느 친인척들 보다도 더 자주 만나며 산행은 물론 사람사는 이야기 대화를 나누며 이어진 산행길 시간들에서 우리들 너도 나도 진정한 산이 만들어 준 산 우정을 쌓다 보니 이제 어떤때는 멀리 사는 친인척 형제들 보다도 더 가깝고 더 친근 하다는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지난 일년간 정말 많이도 만나고 함께 어우러져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숫자 무려 61회나 산행을 함께 하였네요 그러다 보니 이제는 누구랄것도 없이 서로 눈치만 보면 서로의 심정을 이해 할 수 있을 정도로 미운정 고운정이 들어 버렸네요

 

이제는 무슨일이 있어 단 일주일을 못 만나면 궁금하고 그립고 보고싶고 정말 아마 이래서 사람사는 훈훈한 모습이 동물이나 자연과 다른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하네요 물론 우리들과 산행을 시작 하였던 일행들중에 시간적으로 여의치 못하여 함께 하지 못하시는 회원님들이 더러 있어 아쉬움이 남지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인연의 고리가 모두 그것 뿐인것을, 그런가 하면 때론 특별한 다툼이나 견해 차이가 없었는데도

 

어느날 갑자기 마음이 변하여 우리들을 떠나 버린 산님님들도 더러는 있더라구요 하지만 그걸 어떻게 잡겠어요 사람마다 각기 개성 성격 문화 수준 차이가 남다른데 ...그러니 떠날사람 맘 편하게 보내 드리고 남은 사람들만이라도 더욱 하나된 마음으로 한국의 산하 팻찰달고 이어지는 우리들의 수요 산행길은 이제는 남여 평등 노소 동락 형님 아우 오라버니 동생으로 통하며 산행길이 이어지고 있답니다 우리 일행들이 산하 팻찰을 달고 무리지어 산행 이어지는 모습을 지켜 보신 어떤 분들은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카페 회원님들 산행인줄 알고

 

질문을 하지요 혹시 한국의 산하 카페냐구요 ㅋㅋㅋ 한국의 산하 카페? 그러면 아닙니다 우리들은 한국의 산하 가족들입니다 하고 말을 하면 그럼 우리산내음 카페는 뭐냐고 꼬치꼬치 질문을 하시는분들도 계시요 그럴때 우리들은 누구랄것도 없이 산행을 함께 하기위한 편의상 카페를 운영 하고 있을뿐이라며 설명을 드리면 그때서야 아 그렇구나 하시며 당신들도 늘 한국의 산하를 즐겨 찿는 산하 가족이라고 말씀들을 하시며 너무 반갑다고 손을 잡고 흔드시는 산하 가족들을 만나는 기쁨도 있답니다

 

그리고 우리들 수요산행길에 동참을 하시는 산님들이 산행때 마다 계속하여 수를 더하고 있네요 또 어떤 분들은 당신들은 직업상 평일 산행이 쉽지 않으니 토요 또는 일요 산행을 신설 하여 함께 할 수 없느냐는 주문을 하시는 분들도 많이들 계시지요 그런 열성적인 분들 말씀 들을때면 선뜻 그렇게 하겠다구 말을 하고 싶지만 우리 일행들도 모두 각자의 생활이 있고 직업이 있는데 그럴 수 도 없구 미안한 마음을 금치 못하네요

 

사실 산행팀을 하나 더 신설 운용을 한다는것 쉽게 생각 하면 간단할것 같지만 그렇게 쉽지만은 않지요 먼저 산행길을 늘 안전하게 리드 할 수 있는 훌륭한 리더가 필요 하구요 산행에 따른 안전 문제등 여건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지요 그래서 올해도 우리들의 수요 산행길은 더 이상의 욕심내지 않고 지금처럼 변함없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수요산행으로 만족을 하려 생각을 하며 새해 첫 수요 산행을 시작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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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인천 문학경기장 모습 전경

 

청량한 여름의 푸르른 숲이 그립습니다 그 푸르름은 어디를 가고 삭막하게 볼품없이 남의 가지와 풀썩이는 먼지와 낙엽만이 딩구는 요즘은 산행길이 대부분이지요 푸르름이 싱싱하게 산을 덮었을 그 여름엔 정작 그 푸르름의 고마움 감사함을 몰르고 당연히 올것이 아니 있을것이 있는 푸르른 여름의 풍성함으로만 생각을 하였었는데 ... 막상 그 여름을 보내고 깊은 겨울의 삭풍부는 산행길에서 왜 문득 그 여름의 왕성한 푸르름에 대한 감사가 생각나며 그리워 지는것일까요?

 

이날 산행에 함께한 일행들이 문학경기장 역에서 새해 첫 만남 산행 인사를 반갑게 나눈후 조대장으로 부터 이날 인천의 진산을 찿아 나선 산행 개요와 산행 계획을 설명들은 후 우리들 일행은 굴다리를 지나 아파트와 주택이 있는 주거단지 사이 기슭에 이어지는 인천의 진산 그 첫 산행구간 문학산을 오르기 위하여 들머리 구간을 들어서며 이날 산행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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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 스럽게도 몇일전 내린 비로 등로가 풀석풀석 먼지가 나지를 않으니 천만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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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 정상 가기전 무명봉에서 바라본 인천도호부청사 전경

 

1982년 3월 2일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건축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조선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의 건물은 객사 지붕에서 발견된 명문()에 의해 1677년(숙종 3)에 중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천부읍지()》에 의하면 객사() 20칸, 동헌() 10칸과 내동헌·삼문() 외에 공수()·삼문·사령청(使)·향청(
군관청()·훈무당()·작청()·옥사·사창()·좌기청()·어용청()·수미고()·군기고() 등이 있었다고 한다.

군관청은 광복 전까지
파출소로 사용되다가 불타 없어졌고, 내동헌은 1955년까지 인천시 문학출장소로 사용되다가 헐렸다. 현재의 동헌은 옮겨지을 때 축소 건축한 내동헌으로 추정된다. 1950년에 지금의 위치로 이전 개축하여 당시의 배치와 형태를 알 수 없게 되었다.

현재는 객사 일부와 동헌, 훨씬 후대에 지은 창고만이 남아 있다. 객사는 3칸 2면만 남아 있는데
맞배지붕주심포() 집이다. 동헌은 전면 6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굴도리집으로 관청건물로는 드물게 부연을 달지 않은 홑처마지붕이며 기둥도 네모기둥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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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를 수 록 더욱 확연하게 보이는 문학경기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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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문학산 정상 군부대 기지가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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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을 배경으로 일행들이 새해 첫 기념촬영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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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으로 당겨본 문학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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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 정상은 군부대 시설이 위치하고 있어 이곳에서 좌측으

로 우회를하여 우리들은 삼호연 방향으로 산행을 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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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어도 끝없이 이어지는 조대장의 해박한 산행 설명은 끝잊줄 모르고 솟구치는 샘물처럼 끝도 없이 지속하여 이어지고 있지요 그러니 누가 저 사람을 환갑쟁이라면 믿을 수 있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환갑 나이라 하면 꼰댕이 취급하며 심지어 노인문화로 몰아 가며 기피를 하려 하는데 누가 울덜이 리더 조대장을 노인이라 그래서 뒤진 문화라고 함부로 폄하 할 수 있나요? ㅋㅋㅋ

 

내 눈으로 보기에는 서툰 생각을 하는 그 어떤 젊음들 보다 훨 더 상큼하고 배울것이 많은 아름다운 사람이지요 이런 사람이야 말로 정말 이 시대의 진정한 산꾼 리더가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렇게 박식한 조대장을 난 늘 아우 아우 하며 산행을 함께 하고 있으니 내가 정말 나이들어 좋은 리더를 만나 산행길에서 영광을 하며 산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늘 하며 맘속으로 늘 조대장에게 감사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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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조심 미끄럼 조심 늘 안전산행이 최고의 산행즐거운 산행 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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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지 고개

 

학산서원터에서 길을 따라 올라가면 문학산과 연경산 사이의 고개 마루에 다다르는데 이곳이 여러 가지 전설이 얽혀 있는 사모지 고개이다. 지금은 청학동으로 가는 도로를 내느라 문학산과 연경산의 비탈흙을 깍아 메워 둥글번번한 마루턱이 되었으나 옛날에는 좁고 잘룩한 고개였다고 전한다.


이 고개에 대한 전설 중 삼호현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 중국으로 가던 사신들은 육로나 해로를 택했는데 해로를 택할 경우 서울에서 부평의 이별고개를 거쳐 이 고개를 넘어 한나루(지금은 매립하여 논으로 쓰고 있는데 송도역 앞 옥련동에 위치)에서 배를 타고 떠났다. 그런데 그때 사신을 배웅하러 따라 나왔던 가족들은 별리현에서 가슴 아픈 이별을 했다고 한다. 중국까지는 멀기도 했지만, 풍랑을 만나 어떤 불행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에서였다.

 

한편 사신들도 이 삼호현에 이르면 멀리 보이는 별리현에 그때까지 서있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오랫동안의 이별을 마지막으로 안타까워 했다. 그래서 사신 일행은 "모두들 잘 있거라." " 그동안 잘 있거라" "다녀올게, 잘 있거라."하며 이별의 아픈 소리를 했다고 한다. 별리현에 서있는 가족들을 향해 세 번 큰소리로 외치면서 넘은 이 고개, 이러한 까닭에 사람들은 이 고개를 세 번 부르는 고개라 하여 삼호현이라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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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톤치드향이 그윽한 소나무 숲길도 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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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정

 

  

연경정 천정에 그려진 단청 그림

 

사모지 고개 꼭대기에서 연경산으로 10여분 정도 오르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지금 산 정상에는 정자가 있는데 3,4년 전에 지은 것이다. 이곳에 오르면 인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백제의 요서경락설을 뒷받침하는 능허대가 보이고 월미도, 자유공원, 수봉공원, 계양산, 철마산, 소래산 등 인천 시가지를 자세히 살필 수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서울의 북한산까지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조의 모습은 장관이라 한번 바라보기를 권하고 싶다. 또 해뜰 무렵, 문학산을 배경으로 안개가 깔릴 때면 마치 깊은 산중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아늑하고 포실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인천 팔경 중에 문학산의 맑은 아지랑이를 꼽고 있는데 이 모습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 인천 시민이 자연의 소중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인천 역사의 산 증인과 같은 문학산과 연경산이 차례로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서해안 고속도로의 건설로 인해 연경산은 이미 학익동 쪽으로 7부 능선까지 깍여 나갔으며 인천의 옛 도읍지며 진산인 문학산은 지금 한창 산자락을 깎는 중이다. 학익동 멀리서 보면 마치 커다란 학이 날개를 펴고 포근히 자리잡은 형상인데 이제는 날개죽지를 다 뽑아내고 기부스한 모습으로 숨을 할딱이고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산자락 밑으로 낼 수는 없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또 서해안은 한창 매립공사 중인데 그 매립지를 따라 고속도로를 내는 것이 경비나 경치 면에서 훨씬 효울적인 공사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도 한다. 이   땅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은 과연 나만의 것인지 묻고 싶다. 우리는 이 땅을 잠시 빌려 사는것이 아닌가? 우리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어야 할 이 땅을 우리가 소중히 지키지 않는다면 누가 보존할 것인가? 훗날 우리 후손들은 선조들의 이러한 자연파괴 현장 모습에 과연 박수를 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렇지 않아도 전국 제일의 공해도시 인천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서 타 시도에 비하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얼마되지 않는 녹지를, 마치 산소의 저장고라 하여도 좋을 귀하고 소중한 산을 마구잡이로 헐어서야 체면은 둘째 치고 정말 사람사는 분위기 꼴이 말이 아니란 생각을 하게 한다. 신선한 공기 쾌적한 환경은 우리의 노력에서 얻어지는 것이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닌데  나무를 심어 녹지를 늘려 나가도 시원찮은 판에 있는 것조차 보존 못하는 시민 정신의 실종이 아쉬운 현장을 보고 있는것이 가슴 아프네요

  

 마치 뿌리없이 키 빼기만 멀쓱하게 자라다 제 몸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가는 밀림의 메타쉐콰이연약한 모습을 보고 있는듯한 인천의 전나 모습을 보고 있는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네요 인생사도 자연도 모두다 굵고 믿음직한 뿌리에 근거하여 그 토양에 성장한 인간 자연들이 모두 건강하고 튼튼하고 아름다운것인데 하는 생각을 해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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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산을 하산하여 다시 워킹 산행의 진수를 맛 볼 수 있는 육산 등로와 때로는 계단길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일행들이 노적산을 향하고 산행이 이어지고 있어요 이곳 인천의 진산 찿아 가는길은 특별히 문학산 들머리 구간만 들어서면 산행길을 찿는 어려움은 전혀 없을 정도로 초행길 산행자들도 누구나 쉽게 등로를 찿을 수 있을 정도로 산책을 겸하여 즐길 수 있는 등로로 이어지고 있지요 그러다 보니 늘 산행을 하며 즐산 안산 이야기를 할때가 많은데

 

이날 우리 일행들이 산행을 하고 있는 인천의 진산 찿아가는 등로야 말로 더 없는 즐산 안산 산행구간의 대명사라 이름 붙여도 조금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산행하기 편안하고 안전하니 최고의 즐산 안산 등산로가 안닌가 생각을 하게 하네요 게다가 등로만 완만하고 좋은것이 아니라 인천시에서 곳곳에 전망대를 설치하여 놓아 비록 이날 우리들이 산행을 하고 있는 5개산 전체가 내노라 할 수 있는 고도가 있는 산들은 아니지만

 

시원하게 확트인 인천 앞바다를 바라보며 발전과 웅비의 꿈을 앉고 인천시가 야망찬 국제 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는 송도 신도시 지역의 조망을 전혀 장애 없이 조망 할 수 있으며 바다에 오가는 여객선 고깃배 그리고 운반선들을 볼 수 있는 호기의 등산로로 아직 산행에 맘을 두고서도 선뜻 겁나 하시는 산님들에게 강력하게 추천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이날 우리들의 5산 찿아 나선길이 아름답네요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금년 새해들어 첫날 부터 계속하여 이어지고 있는 스모그인지 희뿌연 날씨가 이날도 조망을 방해 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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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길을 뒤 돌아본 문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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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에 우리들이 노적산을 오른후 가야할 청량산이 보이네요 노적산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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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적산 정상을 오른후 다시 오던길을 되돌아 우리

들은 청량산을 가기 위하여 계단길을 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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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로 같은 육산으로 이어지는 청량산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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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가는길목에 족구 경기장도 있네요 경기장 인근 낙엽을 자리 삼아 일행들이 금강산도 식후경 점심식사를 하지요 물론 대망의 새해를 맞이하여 일행들이 특별히 준비하여 온 각종 특주들로 올 한해도 지난해 처럼 무탈 안전 산행 할 수 있도록 기원을 하며 새해 첫 합동 건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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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 한창 일대때 초가집을 지붕개량하여 스레트지붕 기와지붕 함석지붕으로 개량을 하고 그 지붕위에 아름다운 색상 페인트를 칠하여 당시의 새로운 발전을 비약하던 농촌 모습을 보는것처럼 알록 달록 울긋 불긋 아름다운 주택 단지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어요 넘넘 예쁘고 정겨워 희색빛 아파트 문화에 매일같이 꾀재재 절어든 내 인생에 마치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구세주처럼 나타나는 오아시스를 만난 기쁨처럼 눈에 선하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 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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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을 찿아서 앞으로 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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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수인선 협객열차 인천 종점 자리라 하는데 지금은 모 운수회사 주차장으로 사용이 되고 있네요 아마도 수인선

협객열차 구간이 전철화 건설되고 있는데 이 사업이 완료될때 쯤이면 이곳 모습은 다시 변모하여 지리라 생각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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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길 등산로를 향하여

 

우리들은 잠시 수인선협객 열차 종착지점을 지나 시내구간을 보행으로 걸어 다시 병풍길

등산로를 알리는 빌라지역 울타리 구간을 지나 병풍길 가는길로 들어서 산행을 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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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아마도 이쯤이 병풍바위길 같은 생각이 드는데 일행들이 이렇게 워킹 산행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마치 가볍게 산악 구보를 하듯 달려 가고 있으니 나 처럼 디카를 들고 사진을 찍는 입장에서는 이렇게 육산길 널널 산행길이 암릉이 적당히 함께 하는 산행길을 가고 있을때 또는 우스게 소리로 불수사도북 5산 종주를 할때 보다도 더 허벌나게 힘이들고 지치네요 사진 한 방 찍고 나면 일행들은 벌써 저 앞을 달려 가고 있으니 ...

 

아무래도 올해나 한 해 더 수요 산행길에 따라 다니는것으로 디카들고 하는 수요산행길은 접어야 할때가 되지를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나를 잠시 돌아 보게 하네요 계속적인 수요 산행에 참여를 하려 한다면 아무래도 산행기 쓰는 일을 접고 디카를 포기 하여야만 할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지요 그러면 나 혼자 생각하게 되는것 청파! 너도 별 수 없구나 세월의 흐름앞에는 ... 하는 생각을 나는것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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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바다를 바라보며 일행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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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할 청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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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최대의 인천대교가 건설되고 있는 현장 모습 교량 12.4km 연결도로 9.14km

 

청량산 정상에 잠시 오른후 우리 일행들은 다시 청량산의 명찰 흑륜사를 돌아보기 위하여 발길을 흑륭사로 향하지요 본래의 산행 계획은 흑륜사까지 산행을 하는것으로 예정이 되어 있었으나 이날 산행길이 의외로 일찍 끝이나게 되어 일행들이 인천 자유공원까지 산행을 한후 그곳 지역 인근에 위치한 차이나타운 거리에서 가볍게 신년 산행 뒷풀이를 하자는 의견에 따라 서둘러 흑륜사를 찿아 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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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에서 나무 계단길을 아주 산행하기 좋게 조성을 하여 놓은것이 눈에 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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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연수구 청량산


청량산은 송도유원지를 감싸고 있는 산으로 일명 청룡산,청능산,척량산 등으로 불리워 지기도 한다.


동국여지승람에 이 산의 경관이 수려하여 이름을 청량산이라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청량산이란 이름이 올바른 이름이라 하겠다. 산이름을 청량산이라 지은 사람은 고려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화상이라고 전해져 오고 있다.

이외에 재미있게 전해지는 유래로는 중국 산서성에 있는 유명한 산으로 그 본명은 오대산이라고 하는데 그 안에 청량사가 있고 이 사찰에는 화엄종의 육대조사이신 징관조사께서 머물렀으며, 유명한 스님들을 무수히 배출시켰다고 한다.


어느날 정관조사께서 열반에 드시면서 내 법을 동쪽 해뜨는 작은 나라에서 꽃피운다고 갈파했다고 한다. 이때 법통을 잇고자 하는 두 수제자가 백마를 타고 징관조사가 지적한 해뜨는 동쪽 작은 나라로 향하여 달리고 또 달려서 마침내 중국 대륙을 바라보고 서 있는 산인 지금의 송도 청량산 중턱에 당도하자마자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정지해 버리고 말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래서 홍륜사(옛날에는 인명사) 절터에 누군가가 두 마리의 백마를 상징하는 마상을 세웠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일설에는 청량산이라는 이름이 중국의 산시성에 있던 오대산(청량산)에서 전래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병풍바위

병풍바위사진
호불사에서 우측으로 오르면 평평한 지점에 바위 모양이 마치 병풍형상을 한 깎아 세운 듯이 벼랑을 이룬 바위가 있고 그 곳에 약수가 솟구친다. 이와 같이 병풍형상을 한 바위가 있다 하여 병풍바위라 일컬어진다.
이곳에는 이른 새벽부터 밤이 깊을 때까지 약수를 뜨기 위하여 남녀노소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고 있다.


범바위

범바위사진
청량산 중간지점에 위치하여 호불사를 통하여 가다 남쪽에서 능선을 넘어서면 당도하게 되는 곳이 바로 범바위이다. 바위의 모양이 범의 형상으로 되어 있으며 옛날에는 울창한 숲과 많은 무당들이 드나들며 굿을 하던 곳으로 전해진다. 이곳에서는 바위틈에서 쉬지 않고 솟아 오르는 약수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오가고 있다.

 

뱀사골

뱀사골사진
흥륜사 뒤로 능선을 타고 넘어서면 동편에 작은 계곡이 있다. 이 골짜기를 따라 산책로가 나 있으며, 100여 미터쯤 내려가게 되면 많은 수목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이곳은 5개소의 약수터가 있으며, 이 약수터에서는 많은 생수가 솟아 오른다. 이 생수를 마시기 위하여 찾아오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이 골짜기는 옛날에 뱀이 많아서 인근 주민들 사이에 뱀사골이라 불러졌으며 한때 뱀이 무서워서 접근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오늘날엔 뱀이 모두 자취를 감추어 이 산책로야말로 숲 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요, 깨끗하고 소박한 오솔길이다.



포망골

포망골사진이곳은 일제 시대때 일본군이 연못을 만들어 이를 표적삼아 포사격 훈련을 하던 곳이며 현재도 약수터 위에 있는 바위덩이가 그 당시 포탄을 맞아 일부가 파손된 흔적이 남아 있다. 그 후 이 연못의 물은 산 아래 지역에 있던 삼화농장의 식수 및 농업용수로 사용되던 중 1988년 위 농장이 아파트 부지로 확장되어 1990년 송도산악회 여러 회원들의 뜻을 모아 약수터로 확장 개발되어 많은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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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불? 아니지요 금멕기 불상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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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륜사


흥륜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613년 전(서기 1376년) 고려 우왕 2년 공민왕의 왕사로 계시던 나옹화상께서 개창하셨다. 처음 이곳의 경관이 하도 수려하여 절 이름을 청량사라 하였고 그에 따라 산의 이름도 청량산이라 이르게 되어 오늘날까지 이 산을 청량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그후 청량산은 210여년 동안 전하여 왔으나 1592년 임진왜란의 변화로 소실된 후 340여년 동안 빈터만 남아있다가 서기 1938년에 절을 다시 세우게 되었다. 그 후 1966년에 노후 쇠퇴한 옛 건물들을 헐고 새로이 건물 8동을 세웠으며 1977년 6월에는 절 이름을 바꾸어 지금의 흥륜사로 개칭하여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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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산행을 다니며 만나는 산속의 사찰들과는 달리 이곳 흑륜사는 인근에 주거 지역과 밀접하여 있으면서도 나름대로 사찰의 모든 건축물이라던가 조형물들이 나름대로 위엄을 가추고 있어 근래에 개축된 사찰의 얕은 이미지와는 달리 이곳 흑륜사를 찿는 신도들과 내방객들에게 편안함과 친근감을 주고 있는것이 특징인것 같다 물론 이것은 나의 단편 생각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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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석굴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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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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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적으로 생긴 금 달마상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며 친근감이 함께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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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잉? 깜둥이 달마상도 계시네요 에긍 부끄러버라 목욕좀 하시지 ㅋㅋㅋ

얼레리 꼴레리 누구 누구는 목욕을 안해서 깜댕이 달마가 되었데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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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륜사 경내 관람을 하고 우리들은 동인천 자유공원을 가기

위하여 시내 구간을 송도 입구까지 보행으로 이동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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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성함을 표현하는 남근장승 / 정말 굿 입니다 ㅋㅋㅋ 물건 아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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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근 벙거지를 쓴 남근 장승

 

송도입구에서 버스로 이동 우리들은 동인천 신포시장

인근에서 부터 다시 인천 자유공원으로 이동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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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학도의용대 호국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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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장군 동상

 

인천 상륙작전 당시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여 인천 상륙작전을 감행 북한군과 중공군이 남쪽으로 밀고 내려온 상황에서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하였으나 밀고 밀리는 전투끝에 휴전되어 현재의 우리나라가 두동강이로 나뉘어져 남북 대치를 하고 있는데 이 지금의 현실이 모두다 미국과 맥아더 장군의 공로가 있어기에 현재의 우리나라가 이 정도의 발전된 모습으로 살고 있는데

 

일부 목청 높이는 시민 단체들이 지난해 맥아더 동상 철거를 주장하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정말 당시의 6.25 전쟁 세대 사람으로서 한심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는것 같아 안타깝게 생각을 하였는데 다행이 철거가 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며 다시금 맥아더 동상을 돌아 보며 나 개인적으로 나마 미국에 그리고 맥아던 장군의 위업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지요

 

미국이란나라? 자국의 국민을 위하여서 라면 전쟁을 불사 할 정도까지 자국의 국민보호에 우선하는 강대국 미국이 우리나라 6.25 사변 당시 우리나라 국민의 힘 자력으로는 도저히 북한에 대항 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미국이 발 벗고 전쟁에 뛰어들어 도와주지 아니었으면 우리나라는 볼것도 없이 걍 북한이나 중공에게 먹혀 버렸을지도 모를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운명의 우리나라를 위하여

 

미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피 끓는 젊은 용사들을 우리나라 전장에 투입하여 근 4만여명에 가까운 미국의 젊은 장정들의 생명을 잃어 가면서 우리나라 구출을 위하여 세계를 설득하며 우리나라를 구원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는데 이런 공로 은혜는 무시해 버리고 이제 배 굶지 않고 먹고 살만하니 마치 맥아더장군이 우리나라를 위해한 죄인이나 되는것 밧줄을 묶어 맥아더 동상을 쓰러트려 철거하라는 일부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난 너무도 부끄럽고 서글픈 생각이 들어 쓴 웃음을 웃어야 했었어요

 

그들의 속셈 계산은 한 마디로 쓰면 뱉고 달면 삼킨다는 얄팍한 생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었어요 이렇게 세상 막 그져 목소리 목청 높이는 세력들이 기세를 펼치는 세상 돌아가는 인심을 지켜 보면서 과연 그 일에 앞장선 그분들은 과연 당신들 자식에겐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것인지 궁금하기도 했어요 혹시 이렇게 가르치실까요 "이용할땐 사정없이 이용하고 쓰면 뱉고 달면 삼키라는 훈계"로 자식들에게 설마 가르치지는 않겠지요?

 

존경하는 맥아던 장군님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장군님의 그 큰 맘으로 우리나라 일부 시민들의 과격하였던 행동를 널리 이해하여 주십시요 우리나라 국민들 모두 다가 그러는것 절대 아님니다 지극히 일부의 사람들의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표현이라 생각을 하시며 넓은 양해를 하여 주세요 그리고 우리나라 남북통일 되는날까지 존경하는 맥아더 장군님 우리나라 돌봐 주세요 네 맥아던 장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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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마음으로 자유공원 관람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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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일행들이 차이나타운가에 들어 섰지요 혹시 위 사진에 계신 저분들이

APEC 정상들이시냐구요? ㅋㅋㅋ 예 맞습니다 산 APEC 정상들이랍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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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돼지해 산하 가족님들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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챠이나타운의 명소 공화춘에 들려 내친김에 새해 첫 산행 기념  뒷풀이를 했지요 그런데 시상에 고급 중국집이라서인가요? 맛은 나름대로 그만한데 음식은 마치 무슨 많이 먹고 배탈난 사람들쯤으로 아는지 음식이라고 그 양은  눈꼽 만큼씩이나 나오고 그 싸구려 짬뽕국물 한탕기 써비스란것은 얄짤 없더라구요 소문에 차이나타운에 가면 중국음식 저렴한 가격으로 맛나게 먹을 수 있다는 풍문만 믿고 왔다가 으이그 새해부터 완존히 것물만 키고 왔지요

 

역시 세계적인 장사꾼 중국사람들의 짠돌 상술 써비스에 입맛만 베리고 내 다음에 혹시 지인들이라도 차이나타운 거리로 음식 먹으러 누가 온다고 하면 버선발 벗고 뛰어 나가 말린다는 생각을 하며 쓸쓸한 기분으로 차이나 타운 거리를 빠져 나오지요 시상에 그돈 가지고 걍 울나라 사람들이 하는 중국집에 갔으면 떡을치고 배를 두드리면 먹고도 남았을텐데... 에이 여보슈! 차이나타운 사장님들 걍 지발로 거저 굴러 들어오는 손님이라구 고란식 접대 하면 안되지요 먹는 장사는 써비스가 기본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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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알만한 잔으로 고랑주 건배의 그 맛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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챠이나타운가를 완전히 빠져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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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역에 도착 그런데 인천역은 일제시대 건물 아직도 그대로이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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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소요산행 전철이 개통돼어 이제 인천에서 소요산 가기 위하여 의정부에서 다시 경원선

열차 갈아타고 다니던 소요산 산행길이 이제는 직통으로 한번에 갈 수 있네요 화이팅!! 야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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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산행을 모두 마치고 이제는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지요 다행이 전철 출발역이 되어 우리 일행들 전원이 마주보며 한칸 자리에 앉아 하루 산행의 평가를 하며 다음주 수요 산행 아차 용마산에서 만날것을 약속하며 형님 아우 오라버니 동상 잘가 아쉬운 석별의 인사를 나누며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웬넘의 손폰이 뻑꾹 뻑꾹 울어대네요 그래 받아보니 올 손자넘 도영이 할아부지 일찍 오신다고 해놓고 왜 아직도 안 오셔요? 나 이제 지겨워서 독서실에 못 있겠어요 하며 이 어린 일곱살 손자넘 도영이가 박아지를 할머니 대신 긁어 대고 있네요 ㅋㅋㅋ 내가 수요산행을 떠나는 날이면 울 도영 할마이에게 내 대신 자리를 넘기고 산행에 참여를 하고 있는데 마침 울 도영이가 다니는 유치원이 겨울 방학이라 도영이가 하루종일 좁은 독서실 사무실에서 할머니와 함께 독서실을 지키고 있었으니

 

아마도 이 넘 몸이 근질근질 한 모양이네요 그래서 알았어 도영아 할아버지가 집에 갈때 맛있는 아이스크림 사 가지고 갈께 하였더니 ㅋㅋㅋ 금방 지겹다고 투정하던 넘이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천천히 오셔도 되요 하는 전화를 받고 시상에 이 어린 손자넘까지요 선물이면 단 한 방에 나가 떨어지며 할아버지 천천히 오셔도 된다고 하는데 요즘처럼 불경기에 울나라 높은 자리에 계신님들 때론 본의 아니게 부정한 짓거리로 입방아를 오르내래며 때론 철창으로도 가고 사임을 하게되는 그 심정 이해가 되네요

 

 

저의 길고 긴 산행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산님들에게도 함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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