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오는 길목에 찿은 예봉 운길산 산행길[사진]

2006. 2. 23. 16:30☎청파산행과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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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에 찿은 예봉 운길산 산행길[사진]

 


 
  
 

고사목이 되어도 아름다운 소나무

 

 
예봉산 개요
 

예봉산 : 높이는 683.2m. 능선길로 1.5km 정도 떨어져 적갑산과 마주보고 이어져 있었어요

위   치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관리소 031-590-4241

예봉산은 경기도 남양주군 와부읍 팔당리와 조안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는 683.2m로, 능선길로 1.5km 정도 떨어져 적갑산과 마주보고 이어져 있었어요. 인근 주민들은 사랑산이라고 불러왔고, 옛 문헌에는 예빈산(禮賓山), 예봉산(禮蜂山)으로 기록되어 있던 것이 조선총독부 《조선지지자료》에 예봉산(禮峯山)으로 나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일제강점기에 오늘의 이름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 합니다. 수림이 울창하여 조선시대 때는 인근과 서울에 땔감을 대주던 연료공급지였다는 유래가 전해지고 있기도 하며

 

또 다른 유래가 있기도 합니다 남양주군에 있는 예봉산은 경기도 하남시의 검단산을 바라보고 있는 산이다. 예봉산은 남북의 두 줄기가 팔당댐에서 합쳐졌다가 서울로 흘러드는 한강의 물결 파노라마를 지켜볼 수 있는 산으로 인접해 있는 예빈산(禮賓山 589m)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옛날에 배를 타고 영월, 정선, 충주, 단양, 춘천을 오가는 길손들이 한양을 떠나며 삼각산이 보이는 이곳에서 임금에게 예를 갖추었다 해서 예빈산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이 산자락에서는 실학의 선구자 정약용, 건국 운동을 선동했던 몽양 여운형 선생, 가나안 농군학교를 설립해 농촌지도자를 양성하는 데 앞장섰던 김용기 장로 등 이름 있는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예봉산 정상에 못미처 율리봉을 거치게 되는데 이곳은 이름 그대로 산밤나무가 많아서 가을이 되면 밤을 줍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팔당 조개울 마을에서 오성암을 지나 직녀봉을 거쳐 되돌아 예봉산을 오를 수도 있는데

 

이코스에 몽양 여운형 선생이 일제시대 일본 경찰을 피해 살았다는 은신동굴을 만날 수 있다.직녀봉 정상에 이르기 전, 남쪽 기슭에 20여미터 높이의 벼랑바위 아래 자연동굴이 그것이다. 이밖에 상팔당 마을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 직녀봉과 견우봉을 오른 다음 되돌아서 예봉산을 오르는 방법이 있다.

 

등산코스


등산코스는 팔당리, 조안리와 조곡에서 오르는 길이 있다. 팔당리에서는 팔당 2리 버스정류장(한일관)에서 철로 쪽 골목길을 따라 굴다리 밑을 지나 마을 회관 앞길로 올라간다. 계곡을 따라 들어가다 오른쪽 사슴목장에서 숲길로 접어들어 조동으로 넘어가는 갈림길이 나오면 가파른 길로 다시 올라가 쉼터에서 능선을 올라 정상으로 향한다.

 

정상에 오르면 팔당교와 한강, 검단산, 운길산 등이 바라보인다. 정상에서 북서쪽 안부로 내려서 팔당과 세광사로 가는 큰 길을 따라 630m봉에 올라 잡목림 길을 나아가면 적갑산에 오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하산은 적갑산을 올라 도곡리로 내려간다. 예봉산만 등산하면 3시간, 적갑산까지 곁들이면 하산까지 3시간 40분이 걸린다.

 

 

 
제 1코스
구리시 교문 4거리에서 덕소, 팔당을 거쳐, 양수교를 건너지 않고
춘천가는길로 직진, 약 2㎞가면 등산로 입구인 송촌국민학교가 보임.

 

운길산 개요

예봉산 : 높이 610.2m. 산수가 수려하고 교통이 편리하여 가족산행이나 가벼운 주말산행지로...

위   치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관리소 전화 031-590-2474

 

운길산은 서울에서 동쪽으로 40㎞,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되는 양수리에서 서북쪽으로 4㎞ 거리에 솟아 있는 산이다 산 아래까지 시내버스가 연결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산세가 부드럽고 등산로가 순탄하여 가족산행이나 가벼운 주말산행에 적합한 곳이다 특히 산 중턱에 있는 수종사에는 지방 문화재 제 22호인 팔각 5층 석탑과 500년이 넘는 수령을 자랑하는 은행나무가 있다

 

무엇보다도 남한강과 북한강을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경관이 뛰어나 해동 제일의 사찰이라 옛 사람들은 전했다   서거정, 초의선사, 정약용, 송인, 이이 등이 머물던 곳으로 시 몇 수가 전해진다. 물 맛이 좋아 차와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운길산 산행의 묘미는 서북 능선을 타면서부터 맛보게 된다.  수종사에서 나와 북서 능선을  타고 쉬엄쉬엄 걸어 20분 정도 오르면 정상이다. 정상에서 하산 길은 3가지로 올라온 길따라 되돌아 내려 가거나 수종사 지나 왼쪽으로 빠져 송촌리로 내려간다.  또는 정상에서 서북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을 타면 463m고지-새재고개- 고대농장을 거쳐 덕소로 빠지는 종주코스를 밟게 된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실학자 정약용의 묘.
 

1972년 5월 4일 경기도기념물 제7호로 지정되었다. 능내리에 정약용을 모신 유택인 여유당(與猶堂)과 함께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다산 정약용은 1789년(정조 13)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부승지까지 이르렀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서 당시의 새로운 학문인 서학에 관심을 가졌으며 1792년 홍문관 수찬으로 있을 때는 거중기를 제작하여 수원성의 축조에 이용하기도 했다. 《경세유표(經世遺表)》 《마과회통(麻科會通)》 《목민심서(牧民心書》 등 광대한 책을 펴낸 저술가이며 정치, 경제 등 제도 개혁을 주장하기도 했다.

 

묘는 부인 풍산홍씨와 합장한 원형의 묘로 남향하고 있고, 묘 앞에는 비좌와 비신 및 팔작지붕 모양의 옥개석을 갖춘 비가 있다. 비신에는 2열로 ‘문도공다산정약용 숙부인풍산홍씨 지묘(文度公茶山丁若鏞 淑夫人豊山洪氏 之墓)’라고 씌어 있다. 비좌는 높이 31.5㎝, 너비 129㎝, 두께 90㎝이며, 비신은 높이 179㎝, 너비 69.5㎝, 두께 34.2㎝이고, 옥개석은 높이 62㎝, 너비 119㎝, 두께 81㎝이다. 묘역 앞에는 1959년에 세운 묘비 2기와 자연석에 여유당이라 쓴 비가 서 있다.

 

봉분 앞에는 혼유석, 상석, 육각향로석이 있으며 봉분 왼쪽에 1974년에 세운 비가 있다. 계체석과 상석 오른쪽에 제단이 있고 그 앞에 또 하나의 비와 망주석이 서 있다. 상석 옆에는 높이 250㎝, 너비 10㎝의 비석과 상석, 그리고 좌우에 망주석이 서 있다.

 

주변 명소

 

봉선사
조계종 25교구본사
정약용선생묘
경기도기념물 제7호
서울종합촬영소
종합영상지원센터
광릉
사적 제197호

 

 
산행지도 한서락님 제공
 

 산행일시 : 2006년 2월 22일(수요일)

 산  행 지 : 예봉산(683m)~운길산(610m)

 산행코스 : 상팔달 6코스입구 = 예봉산 (683m) = 철문봉 (630m) = 적갑산 (561m) = 504봉 = 운길산  

                      (610m) = 동봉 (500m) = 수종사 = 송촌리(뒷풀이)

 산행인원 : 23명(1명 중도귀가)

 산행시간 : 5시간반   

 

 

 

인사소개 및 산행안내를 경청하는 회원들의 모습

 

산행기

 

하루종일 4평 정도의 사무실에 종일 있으려니 질력이 나고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무심코 우리산내음카페  우스게소리 게시판을 인터넷 사냥을 하다 보니  다음과 같은 문자 메세지와 관계된 계시글이 올라 있었어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문자 메세지

우리 엄마는 휴대폰의 ‘휴’자도 몰랐습니다.
그러던 엄마가 휴대폰을 사게 됐습니다.
나는 엄마에게 문자 보내는 법을 가르쳐 드렸지요.
엄마는 자판을 열심히 누르시더니
회사에 있는 아빠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나 : 엄마 뭐라고 썼어???
엄마 : 응…? 아빠 사랑한다고 썼지.
흐음, 문자 보내는 걸 잘 가르쳐 드린 거 같습니다.
한데 잠시 후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 : 여보!! 이게 뭐야!!!
엄마 : 왜요??

아빠가 받은 문자메시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
"
"
"
"
"
"
"
"
"
여보지요 영원히 사망해” ^*^~~

그걸 보면서 을매나 나혼자 배꼽을 잡고 웃다가 기래 좋아 기럼 나두 도영이 할마이에게

장난 한번 해볼까 하는 장난끼가 동하기에 나는 즉시 아내에게 문자 멧시지를 날렸지요

 

 

 

 

 

기리구 났는데 보통때 같으면 바로 댓글이 오는거이 정상인디 시상에 멧시지를 보내고 몇 시간이 지나도 도영이 할마이 소식이 꿩 궈먹은 소식이네요 거참 이상하다 생각을 하며 업무를 보고 있는데 아니 느닷없이 열이 38도나 오르면서 뭘 먹은것이 잘못되어 체했는지 하픔이 꼬약꼬약 나오며 사람이 처지기 시작을 하는데 정말 견디기가 힘이 들더라구요 마음속으로는 병원을 가 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그잘난 체한것 가지고 수선을 떨며 병원을 가는것 같은 느낌이들어 어디 조금  더 견디어 보지 하는 생각으로 미루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이때나 저때나 멧시지를 보내도 소식없는 아내를 기다려 보지만 종무소식이고 좀 낫기는 커녕 점점 더 열이나며 힘이 빠지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날 따라 또 아파트단지 중요 회의에 참석을 하여야겠기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죽지 않으면 까무러치기라는 생각으로 꾹 참고 두어시간 회의 참석을 하고 나니 이제 완전히 그로기 상태에 이르지요 오죽했으면 회의 끝난후 회식을 하러 가는데도 불참을 하고 사무실을 지키고 있으려니

 

밤 8시가 다 되어 돌아온 아내 수다스런 여고 동창생들과 회식을 하다가 나의 멧시지를 보고 일행들이 배꼽을 잡고 웃으며 아니 시상에 멀쩡이 살아있는 여편네 더러 언제 사망하는냐고 멧시질 보내는 도영이 할아부지 증말 웃긴다고 대갈을 하며 배꼽을 빼고 왔단다 그러면서 하는말 당신 정말 농담이라도 내가 사망하기를 바라는것 아니냐구 물음마침을 하데요 그래서 시치미 꾹 참고 왜 무슨일인데 그래? 하면서 아니 당신은 남편이 죽네 사네 하는 판국인데도 동창생들과 수다만 떨고 다니면 다냐고 뭐한놈이 성질 낸다고 한 수를 뜨니

 

도영 할마이 그건 들은척도 안하고 전화 멧시지를 보여 주면서 이거이 사랑한다고 쓴거냐고 똑똑이 보라고 하며 당장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이지요 그러다 얼떨결에 38도 가까이 열이 올라 있는 나를 보더니 시상에 이눔의 의리없는넘의 도영이 할마이 그것 좀 보라구 나더러  언제나 사망하냐고 하더니 죄가 내렸다고 하면서 아무렇치도 않게 지나치려 하네요 나는 할 수 없이 지가 지은 죄가 있으니 아무 소리도 못하고 속으로 야속한 마음을 금치 못하며 꾹 참고 있는데 아무래도 도저히 더 이상은 참기가 곤란하데요

 

그런데다 당장 내일 산행을 가야 하는데 이런 몸으로 산을 간다고 하면 또 한 소릴 들을것 같고 견디다 견디다 못해 밤 9시가 넘어 집으로 사색이 되어 기어 들어가니 그때서야 이눔의 도영이 할마이 상태가 급박함을 알았는지 상비약을 찿고 극성을 떨지만 이미 병원이나 약국은 모두 문을 닫았을 시간이니 우선 집에있는 아스피린을 먹이고 이웃에 사는 자기 친구집에 전화를 하여 훼스탈이랑 열 내리는 약을 얻어다 먹이고 날리를 치면서 아무래도 되게 체한것 같다고

 

손가락을 노끈으로 칭칭 피가 통하지 않게 묵고 나더니 시상에 이눔의 도영이 할마이 인정 사정없이 굵은 바늘로 손가락을 꾹꾹 찔러 손끝을 따는데 거짓말 보태지 않고 새카만 피가 유혈이 낭자하네요 그렇게 양손을 돌파리 아내에게 바늘로 찔리는 수모를 겪고나서 트림을 하며 두어시간 눈을 붙이고 나니 그런데로 좀 돌린듯 하지요 그런데 늦게 퇴근을 한 작은 아들 아이가 아비의 표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지 아버지 오늘은 자기가 정리를 하고 2시에 올라 올터이니 그냥 주무시라고 말을 하네요

 

마음같아서는 그대로 따운되어 아침에 일어나고 싶지만 내일은 우리산내음 수요산행이 있는날인데 그냥 누워 있을 수 없기에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니 도영이 할마이 제발이지 내일은 한번 산행을 한번 걸르라고 사정을 하며 그러다 당신 쓸어지면 어떻게 하려 하는냐고 나더러 완전히 산에 미친 사람 취급을 하네요 그러길래 알았어요 낼은 수도권 근교 산행이니 여차 하면 돌아올 터이니 너무 걱정을 하지 말라고 하고 다시 밤 11시 사무실로 나오려 하니

 

늦은 시간 집을 나서는 남편의 뒤 통수에다 대고 도영이 할마이 또 다시 한방을 날리네요 그것 좀 보라고  자기더러 언제나 사망하냐고 학수고대를 하니 괴씸죄에 걸려 벌을 받는것이라고 거참 그런 소리를 듣고 나니 증말 기분 웃기데요 그러다 보니 애꾸지게 난 또 한서락 아우에게 화살이 가지요 아니 그눔의 우리산내음 카페에 한서락이 아운 와 그따위 우스게 소리를 올려놔 가지구 멀쩡한 사람 골병을 들게 하는거야 ? ㅋㅋㅋ 한서락 아우를 탓하다 아무리 내가 곰곰히 생각을 해봐도 정말 내가 미친짓을 한거여 욕을 먹어 싸지 하며 나를 반성을 하지요

 

앞으로 이제 나 절대로 농담이라도 "여보! 언제나 사망해 아주 영원히 오래 오래 사망해 "소리 도영이 할마이에게 죽어도 안 할 할껍니다 농담으로 한것인데 어쩌면 그렇게 얄짤없이 보복을 당 할 수가 있는지요 이 문명의 시대에 귀신이 어딧느냐구 귀신 이야기 하는 사람들에게 귀신 씨나레 까먹는 소리 하구 있다구 미신을 믿는 사람들을 흉을 보았는데 으이그 아마도 그것도 나의 오판인듯 하네요 귀신도 정말 있는것 같구요 나이 값도 못하구 괜스리 씰때없이 실없는 짓 해가지구 한마디로 개피를 보았지요 ㅋㅋㅋ

 

그런데도 2월 22일 이른 아침 아직 머리도 어찔어찔하고 다리도 맥이풀려 뒤뚱 뒤뚱 하면서도 또 배낭을 메고 우리 산내음 산행길에 동참을 하기 위하여 부평역을 경유 용산역에 도착  다시 구리행 전철을 갈아타고 일행들을 만나지요 이번에도 무려 23명의 산님들이 모여 늘 하는것 처럼 인사소개와 산행대장으로 산행에 대한 주의 사항과 안내을 경청하고 곧 바로 산행이 시작이 되지요

 

 

개로 개통된 구리행 전철을 타고 하차하여 이곳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

타고 상팔당에 하차하여 우리들은 곧 바로 들머리 구간을 들어 서지요

 

 

어제밤에 내린 비로 인하여서 일까요? 안개가 자욱하여

이날 산행의 조망은 영 아니라는 안타까운 생각을 하지요

 

 

정상가는길이 2.14km

 

 

등산 안내도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지나고 있어요 싱그러운 솔내음을 맡으면서요

 

 

억세계 굳세계 살아 왔어요 모진 비바람도 모두다 이겨내면서요

 

 

예봉산 정상 가는길에는 두곳에 무명인의 묘가 있는데 그림의 묘는 두번째 묘이지요

 

 

늘 푸른 소나무 / 대한민국이여 영원하라

 

 

낙옆쌓인 등로를 오르고 있지요 하지만 등로 밑에는 아직도 얼음이 박혀 자칫 잘못하면

낙성을 하여 고생하기가 쉽네요 봄이오는 길목 산행길은 늘 이점을 유의 하여야 합니다

 

 

예봉 운길산 산행길은 대체적으로 육산으로 이어지고 있었어요

 

 

어제밤에 내린 비가 아마도 정상 부분쪽에는 눈이되어 내렸던 같았어요 등로에 엷게

내린 눈발이 있었고 어쩌면 이 겨울 마지막 볼 수 있는 아주 미세한 상고대도 있었어요

 

 

예봉산 깔딱고개 구간을 오르고 있는데 그렇치 않아도 제 컨디션이 아닌 상태에서 산행을 온것인데

아무래도 무리가 따르는듯 평소 산행길에 페이스가 아니고 자꾸만 처지고 많이 힘이 들어 하지요

 

 

예봉산 정상에서 우리산내음 일행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어요

 

 

정상에 오르니 이제 조금 조망이 보이지만 아직은 멀었어요

 

 

지금은 작전회의중 ㅋㅋㅋ

 

 

상고대핀 등로를 따라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울산내음 친구덜...

 

 

 

 

 

 

이곳 예봉 운길산 산행길에는 이 사진의 철탑이 한 이정표 노릇을 한답니다 철탑에서 150m 더 직진으로 가면 철문봉이 나오고 그곳에서 조금 지나 직진으로 가면 갑산 가는길이고 등로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가면 운길산으로 가게 되지요

 

 

철문봉 정상의 모습

 

 

철문봉 유래 안내판

 

 

이곳에서 갑산가는길 운길산 가는길이 구분 되지요

 

 

외로운 소나무에도 상고대가 피어 있었어요

 

 

미끌미끌 조심조심 하나도 안전 둘도 안전 안전 운행덜 하세요

 

 

나두 외로운 소나무지요

 

 

 

 

이곳 예봉 운길산 산행 구간에는 유난히도 군데 군데 이렇게 아름다운 소나무

군락지가 드문드문 있었어요 소나무가 많은것도 아니고 단 몇그루가 말입니다

 

 

 

 

낙엽쌓이 등로길을 솔 향기를 맡으며 가기도 잘도 가지요

 

 

 

 

잠시 가던길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며 팀웍 재정비를 하지요

 

 

 

 

가다가 힘이들며 쉬어 가고 가다가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가지요

 

 

뒷 자리는 깨끗하게 밥먹은 자리에 쓰레기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지요

 

 

은근히 목이 타네요

 

 

가야할 봉우리들

 

 

연산형님 노익장 과시 하신거 맞지요? 학년이

무시기 소용인가요 6학년 5반이 자랑 아니지요

 

 

 

 

암릉 구간도 지나고 ...

 

 

 

 

내가 산행을 시작하고서 이날 산행길이 가장 힘이 들었지요

완전히 컨디션 조절에 실패를 했어요 이번일로 크게 반성을 하지요

 

 

운길산 정상비

 

 

소개를 올립니다

좌(연산님) 잘 모르시지요? 우리 한국의 산하에 산행길 올리시는 물안개님 부군이시지요

가운데 우리산내음 산행길에 영원한 가이드 조대흠 대장이구요 그리구 우 땅딸이는 지지요

 

 

 

 

운길산 정상에서 일행들과 함게...

 

 

이제는 수종사 방향으로 하산을 하지요

 

 

헬기장도 지나고 ...

 

 

육산길도 지나고

 

 

이제사 조망이 트인듯 하지요

 

 

산행을 하다보면 수많은 수종의 나무들을 만나게 되지요 하지만 지는 그 많은 나무들중 으뜸은 소나무라 생각을 하지요 기암절경속에 뿌리를 내리고 생명을 유지하며 수많은 인고의 세월을 묵묵히 살아가는  저 늘 푸른 소나무를 저는 젤로 사랑 합니다

 

 

고사목이 되어도 아름다운 소나무

 

 

 

 

드디어 그 유명한 수종사 은행나무가 보이구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鳥安面) 운길산(雲吉山)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1458년(세조 4) 세조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금강산(金剛山) 구경을 다녀오다가, 이수두(二水頭:兩水里)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어 깊은 잠이 들었다. 한밤중에 난데없는 종소리가 들려 잠을 깬 왕이 부근을 조사하게 하자, 뜻밖에도 바위굴이 있고, 그 굴속에는 18나한(羅漢)이 있었는데, 굴속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울려나왔으므로, 이곳에 절을 짓고 수종사라고 하였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그후 조선 후기에 고종이 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요문화재로 보물 제259호인 수종사부도내유물(浮屠內遺物)이 있는데, 석조부도탑(石造浮屠塔)에서 발견된 청자유개호(靑瓷有蓋壺)와, 그 안에 있던 금동제9층탑(金銅製九層塔) 및 은제도금6각감(銀製鍍金六角龕) 등 3개의 일괄유물이 그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나는 발길을 서둘러 수종사를 들어서지요

 

 

수종사 경내 대웅정 모습

 

 

서체에 반해 한참을 감상을 하지요

 

 

삼성각

 

 

수종사 대웅전 앞에서 바라본 조망 멀리 북한강이 흐르고 있었어요

 

 

수종사 5층석탑

 

 

수종사 경내를 돌아보고 일행들은 서둘러 하산을 하였지요

이 표지판이 이날 등산구간 마지막을 알리고 있지요

 

 

하산로 마즌편에 보이는 이름모르는 마을과 산

 

 

우리 일행들이 하산을 한 운길산을 돌아 보았어요

 

 

하산후 버스를 기다리며 가볍게 뒷풀이 한잔을 하러 들어갔지요

 

 

단 30여분 정도의 시간에 동치미 국수 인원대로 5.000원 시키고 파전 4장을 시켰더니 6장이나 나오고 동동주는 완전히 달기만 하고 물 한병도 제대로 주지를 않고 반찬이라고는 셔빠진 김치 한가지에 완전 박아지 장사를 하고 있네요 그래도 우리들은 이곳은 시골이라서 설마 했는데 ... 흐미 기절 초풍을 하겠네요 그리구서 버스가 오기에 계산을 하니 세상에 이십이만원돈이라네요 아무리 한번왔다 가는 사람들이되어 단골 손님이 아니라고 해도 정말 이집의 박아지 상혼에 완전히 손을 들었지요

 

정수기 물은 휠타를 갈지않아 수도물 그대로이고 심지어 커피도 100원씩을 받고 팔며 써비스는 전혀 안하지요 물도 갔다 먹으라하고 음식도 테블에 가져다 놓기만 하고 물수건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이집 오래전부터 이집을 이용해본 사람들로 부터 불친절 박아지 씨우는 소문난 불친절한 식당이라는것을 모르고 지발로 기어 들어가 순식간에 박아지를 쓰고 나왔지요 혹시라도 한국의 산하 산님들 운길산 산행후 식사 하실때 이 집은 참고 하여 이용을 하시도록 하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올립니다

 

 

이날 따라 컨디션도 아닌데 게다가 박아지를 쓰고 버스를 타고 구리에서 전철을 갈아타고 용산에서 또

직행으로  갈아타고 지하 부평역에 하차를 하니 시상에 사람이 많다 많다 난 늘 정말 부평역 지하상가에는 사람이 많다는것을 실감을 하지요  사통팔달로 이어지는 교통의 중심지이어서 그런가요 정말 서울에 어느 지하상가를 다녀봐도 부평역 지하상가의 인파 같은곳을 처음 보지요 아름다운 예봉 운길의 산 바람만 쏘이다 다시 인간시장속으로 빠져 들어 왔지요

 

 

산행길 떠날때 컨디션 조절이 안된 상태에서 산행을 보내놓고 나니 도영이 할마이 도영일 델구 지하도 입구까지 배웅을 나왔네요 정말 사람 오래 살구 볼일이네요 하지만 도영이 얼굴을 봐서 웃으며 집으로 귀가를 하지요  그리구 휴대전화 멧시지 사건은 그럭저럭 종결 단계로 돌아가고 아내가 약방에서 체한데 먹는 약을 사다 대령을 하여 그걸 먹고 나니 한결 편안한 기분이 되어 말도 되지 않는 산행기를 또 쓰고 있지요

 

 
저의 길고 긴 산행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산님들에게도 함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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