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24. 09:57ㆍ☎파평윤씨네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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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 1131년(서기 2023)년… 파평윤씨 태위단 6위 선조님 춘향제 봉행
파평윤씨 태위공파종회(회장 鍾範)는 지난 2023년 4월 23일(일) 오전 11시, 충남 예산군 광시면 시목리에 위치한 태위단에서 90여명의 후손들이 참석한 가운데, 태위공(12世, 諱 安庇), 영평군(13世, 諱 忱), 상시공(14世, 諱 仁達), 녹사공(16世, 諱 之中), 대사성공(17世, 諱 懇), 편수관공(18世, 諱 哲碩) 등 6위에 대한 춘향제를 엄숙히 봉행했다.
춘향제는 중국발 괴질 코로나19 역병이 3년간 강타하는 바람에 기간중에는 참석 인원을 제한하며 조상님에 대한 춘향제를 모셔왔었는데, 올해는 코로나가 지나고 처음 맞이하는 춘향제라 전국 각처에서 후손들이 성황을 이룬 가운데 춘향제를 모실 수 있었다.
춘향제가 끝나고 파평윤씨 태위공파종회 총회가 재실 여강재(麗岡齎)에서 열려, 집행부에서 준비한 유인물(자료) 원안대로 승인하고 총회를 모두 마쳤다. 이어 재실 뜰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후일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 가셨다.
태위공 심방록 (太尉公 尋芳錄)
충렬조에 문과하여 태위문하시랑찬성사하니 견여사하라. 이 할아버지한테는 이것이 전부다. 배위도 없고 분묘도 없고 모든 것이다 없다. 삼사 삼공의 으뜸가는 높은 벼슬만 한줄기 써 놓고 아무 것도 없으니 무슨 재간으로 단번에 뛰어 올랐단 말인가. 아니다. 견여사하라 했으니 보아야겠다. 본파 종회장인 종말은 직업이 의료인이기 때문에 평일은 시간이 없고 일요일만 되면 국립도서관으로 출근한지 수년 동안 많은 책을 뒤져 보았으나 별반 신통한 것은 없고 도막도막 싸라기 줍듯 모인 것이 알아 볼 것도 있고 의문점도 있어 천신만고 끝에 종합해 놓고보니 이래서 선현들이 고려사나 보라고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슬은 구슬인데 꾀기가 어렵게 되어 있으니 그저 보기나 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종말은 이 정도를 알기에도 수년 동안이나 고생했는데 이제 와서 그만 둔다면 견여사라는 문구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그래서 공에 대한 기록이 있는 도막마다 책장을 복사해 놓고 승진관작 순서대로 대략 정리해 놓았으니 앞으로는 후손들이 다시는 고려사에서 할아버지 역사를 찾으려고 고생하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하는 바이다.
시조 태사공 휘 신달의 十一세손이며 첨의정승 영평부원군 문현공 휘 보의 여섯째 아드님으로 태어나신 공의 휘는 안비(安庇)요 호는 빈재(斌齋)요 시호는 양평(良平)이시다. 소시로부터 온화한 성품으로 매사에 공평하며 예절과 재예와 용모가 출중하고 또한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며 학문에는 남달리 집중력이 강하여 진리를 깨우치지 아니하고는 손에서 책을떼지 아니하는 성품이셨다. 고려 충렬왕 二十년 갑오 서기 一二九四년 十월 갑신문과에 소년의 몸으로 장원급제하니 왕이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시며 공으로 하여금 권무를 삼으시매 부친 문현공께서 말씀하시기를 신의 아들이 등과는 하였으나 나이가 어리고 신이 또한 전선을 맡았으매 감히 받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재삼 굳이 사양하시니 왕이 이르시되 전선을 맡은 벼슬아치들은 거의가 다 자기네 친척과 친분이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권무를 삼으려하는데 하필 경은 과인이 시키는 자제의 권무자리 마저 그다지도 사양하는고 하고 감탄하시며 사관을 불러 이 사실을 후세에까지 전하라 하시었다.
그 뒤로 더욱 더 학문을 연마하시다가 전중시어사 시강학사 좌간의대부 우좌대언 정당문학 벽상삼한삼중대광 태위문하시랑찬성사 우문관대제학 감 춘추부사 성균관대사성 등 등 고려관작의 최고를 두루 지내시며 충렬왕을 비롯하여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공민왕에 이르기까지 七대왕에 걸쳐 나라에 공헌하시다가 근 八十노령에 이르러 모든 관직을 치사하시고 사저에 계시던 중 때마침 공민왕 五년 몽골 치하에 있던 관북지방이 수복되어 장손자 좌산기상시 인달이 북병사로 제수되어 북청지방에 부임하매 공께서도 개경의 혼탁한 신돈 김용 등의 풍진을 떨쳐버리고 수복지역도 살펴보실겸 손자를 따라 가시어 산수화조를 벗 삼아 시흥을 즐기며 지내시는데 호사다마라고 뜻하지 않은 풍운이 북으로부터 홍건적을 몰고와 온갖 만행을 저질으니 일차에는 관민이 합력하여 무난히 격퇴하였으나 二년후에 적은 다시 한수 이남까지 침법하여 만행이 더욱 극심한지라 백성들은 살 곳을 잃었으며 공께서도 역시 손자와 더불어 사력을 다하여 싸우다가 불행하게도 타관 땅에서 피화되시었으니 참으로 통탄을 금치 못하는 바이다. 난이 끝난 후 현지에 안장하고 묘역도 단장 수호하였으나 고려를 끝으로 조선조가 창건되매 후손들은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켜 각처로 분산 은거하다가 끝내 공의 분묘를 실전하고 말았으니 어찌 송구하지 않으리오.
배위는 전의이씨니 좌복야 승간의여라. 특히 배위와 시호는 함경도 종인이 편찬하여 국립도서관에 보관한 조산대부공 파보에 상세히 기재되어 있어 이 사실을 여러 종인에 알리니 본종 남일운문중 가승보에도 똑같이 기재되어 있는 관계로 이 사실을 확신하고 조산대부공 파보와 남일운문중 가승보를 복사하여 보관중이다.
一九五八년 무술파보 편찬시에 병억 도유사 병옥 총무유사 은균 재무 유사 등 이 어른들과 의정부 신곡동 소재 고강재에서 기거를 함께 하며 족보를 편수하는데 하루는『선기야 이리 좀 와 봐라』정색을 하고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이미 늙어서 통일을 못 보고 죽을 것이니 도리가 없고 선기 너는 전도가 만리 같으니 통일이 오거든 북청에 달려가서 태위공과 상시공의 분묘를 찾아라』하시는 간곡한 말씀은 반 백년이 다 된 오늘에도 귓전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 가슴이 술렁인다. 그 당시 그분들의 연세는 현재 내 나이보다 十년이 젊으셨을 때이거늘 나는 지금 누구를 지목하여 이런 부탁을 한단 말인가. 이 중차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목적은 달성치도 못한채 후인에게 한마디도 전하지 못 한다면 이 부탁의 말씀은 영원히 수포화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고민 끝에 궁여지책으로 그 실화를 보책에 실으니 앞으로 뜻있는 후손이 있으면 유의하기 바라는 바이다.
六百여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심묘치 못하고 내려오다가 서기 一九二十년 경신 가을에 장례원경 용식태께서 주관하시어 각 문중의 성금을 모아 의정부 신곡동에 태위공을 비롯하여 四세 五위를 봉향하도록 단을 모아 비석 하나를 세우고 위토답 일천평을 매입하여 추향제로 봉행하였다. 그로부터 三十七년 후인 정유년에 종약상 우식께서 위비 넷을 설치하고 종중 성금으로 재실을 지었으니 이것이 바로 고강재이며 이곳에서 무술보를 편수하였다. 그러나 급속도로 늘어나는 도시화 때문에 단소로는 적합하지 못하여 많은 종인들이 고심하여 왔던 바이다.
서기 一九八四년 태위공파 갑자파보증수를 계기로 불초 종말 선기가 파보편찬위원장을 맡게 되매 총무 덕균형과 손을 잡고 비록 박덕비재하지만 최선을 다 하자는 굳은 결의와 동시에 착수하여 모든 비용을 절약하고 시일을 단축하여 단 一년만에 대과없이 완수하였으니 이것이 곧 크나큰 기적이며 우리 태위공파의 서광이 비쳤음이니 위로는 조상님들의 음덕이요 아래로는 여러 종현들의 합심 단결된 소치라 아니 할 수 없는 사실이다.
一九八五년 수보 종결한 결과 결산서와 수보 잔여금 三천여만원을 비축하고 동년 十一월 十일에 개최한 태위공파 중흥 종회에서 회장에 선기, 상임부회장에 덕균, 형기, 부회장에 병규외 다수 종인을 만장일치로 선출하였으며 따라서 태위공 영평공 양위의 단소를 예산 광시에 있는 장손자 상시공단소 상단에 이전 봉안하기로 의결하였다.
종말은 본파 종회장의 무거운 짐을 다시 짊어지고 나아가 각 문중에 통고하여 종친 단합과 숭조사업에 협조를 당부하고 아울러 단소 봉안과 신도비 및 재실 건립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여 주도면밀하게 추진하니 제반 공사가 추호도 차질없이 착착 진행되었다.
一九八六년 六월 八일 단오일에 내외 귀빈 후손 방손 유림 등이 운집한 八백여명의 축하속에 신도비 제막식 여강제 준공식에 이어 단소 향사를 봉행하였다. 이 거창한 숭조사업이 어찌 한 두사람의 힘으로 되겠는가. 우리 태위공파 전 종인이 일치 합심 단결하여 협조하신 결과가 아니겠는가. 충심으로 감사드리는 바이다. 위로는 기존 상시공 위토 천 평에 태위공 위토 천 평을 더 매입하여 도합 二천 평 소출로 춘향사에 쓰게 하였다. 향사일은 매년 음력 三월 첫 일요일로 정하고 봉행하오니 후손들은 차질없이 참여하시기 바라는 바이다.
옛글에 이르기를 천하를 얻는 것이 어려움이 아니오 천하를 다스림이 어렵다 하였듯이 앞으로도 우리가 그간에 보여 왔던 단합된 마음과 믿음을 조금도 흩어짐 없이 수호와 봉사에 열과 성을 다하여 위로는 조상님들의 영혼을 편안케 하고 아래로는 후손들의 충효전가 정신을 지표로 삼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연천군 백학면 노곡리에 교리공 이장지에도 태위공을 설단에 모시고 추향제로 봉행함을 알려드리는 바이다.
파평윤씨대종회 고문 / 봉강재종회 자문위원
태위공파종회 회장
한의사 송강 윤선기 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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