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천 칼럼] 조선일보...대통령다운 대통령’은 사라지고 ‘벌거벗은 권력’만 남았다[펌글]

2021. 3. 26. 09:32☎일어나라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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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석 칼럼]  조선일보


‘대통령다운 대통령’은 사라지고 ‘벌거벗은 권력’만 남았다

 

4월 7일, 국민을 ‘朝三暮四’ 원숭이로 농락한 정권에게 한 방을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먼동이 터오는 것 같은 희미한 느낌이 들었다. 영화 미나리가 남긴 마음속 물결무늬는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미나리는 사은품(謝恩品)으로 관객들에게 대사 한 구절을 선물했다. 할머니가 한국에서 가져온 씨앗을 뿌린 실개천 미나리꽝으로 손주들을 데리고 가자 손자는 나뭇가지를 타고 오르는 뱀 모습에 흠칫한다. ‘그냥 둬. 보이는 게 안 보이는 것보다 나은 거야. 숨어 있는 게 더 위험한 거란다’라는 윤여정 할머니의 한마디, 이게 미나리의 선물이었다.

2021년 한반도를 공중 촬영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대한민국 모습은 폭격 맞은 도시 사진과 흡사할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4년 내내 공중 폭격하듯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동시에 무너뜨렸다. 먼저 권력으로부터 독립과 정치적 중립이 생명인 헌법기관, 다음은 ‘돈을 캘 수 있는 곳’ 순서로 폭탄을 떨어뜨렸다.

법원·헌법재판소·검찰·중앙선관위는 완파(完破) 또는 반파(半破)됐다. 법원은 자기 거짓말을 쓸어 담느라 허둥대는 대법원장과 ‘법원 하나회’가 점거(占據)한 각급 법원장실 정도가 남았다. 검찰은 지붕 전체가 날아갔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발언이 불법 선거 운동 시비를 불러오자 중앙선관위는 ‘선거법상 대통령은 선거운동이 금지돼 있다’고 발표했다. 며칠 후 선거법 위반 판정을 내렸다. 그 선관위가 문 대통령 앞에선 꿀 먹은 벙어리다. 선관위 실세(實勢) 자리에 선거 캠프 출신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판사는 대부분 문 대통령이 앉힌 사람들이다.

여의도에는 입법부 대신 다수결(多數決) 독재 기구가 들어섰다. 법이 될 수 없는 법을 찍어 낸다. 얼핏 보면 감사원은 모진 폭격을 견뎌낸 듯하다. 겉모습이 그럴 뿐 감사원장은 대통령 수족(手足)들에게 포위돼 있다. 그래도 못 미더웠을까. 검찰과 묶여 ‘LH 투기(投機) 공사'에 대한 조사에서 배제됐다.

경찰만 폭격 중에도 건물을 더 높이 올렸다. 숙원인 일반 사건에 대해 수사를 시작할 권한과 수사를 끝낼 권한을 손에 넣었다. 그 과정에서 경찰은 여러 사건 처리를 통해 정치권력과 경찰이 헌법과 법률에 의한 상하(上下) 관계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증명했다. 일본 폭력 조직 속 오야붕(親分)-꼬붕(子分) 관계와 다름없었다.

돈을 캐고 돈을 쓰는 곳은 일제 폭격 후 권력과의 연분(緣分)을 따져 자리를 나눴다. 주요 공기업 실적은 한 해 수조(兆)원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섰다. 전투 요원보다 몇 배 많은 민간인 사상자(死傷者)를 내는 게 공중 폭격이다. 무차별 규제로 사지(四肢)가 묶인 기업들은 미래 먹거리 발굴과 투자에 손을 놓은 채 몇 년째 시늉만 하고 있다. 한국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도 보복이 두려워 속만 삭인다.

‘보이는 것’은 이렇게 무너지고 사라졌다. 그럼 미나리의 할머니가 ‘보이는 것’보다 무섭다던 ‘보이지 않는 것’은 어떻게 됐을까. ‘대통령’과 ‘대통령다운 대통령’은 하늘과 땅의 차이다. 4년 전 취임사를 낭독하던 순간 반짝했던 ‘대통령다운 대통령’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대통령 권력의 대부분은 행정부의 수반이라는 헌법에 따라 ‘주어진 것’이다. ‘대통령다운 대통령’은 국가 원수(元首)라는 지위에 걸맞은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해 대통령 스스로 쌓아 올려야 한다.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할 때 남 탓을 들먹일 때마다 ‘대통령다운 대통령’은 연기로 사라진다.

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혼자 영리한 체하는 것보다 미련한 짓은 없다. ‘안보는 미국, 장사는 중국과’가 편리하다는 걸 모르는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이 상황에서 중립(中立)이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나라’가 아니다. ‘아무나 건드려도 되는 나라’라는 뜻이다. 이러다간 머지않아 남들이 만든 규칙에 따라 한국의 국익을 눈 뜨고 희생해야 할 때가 닥친다.

‘도토리를 아침에 세 알 저녁에 네 알’ 하면 마다하고 ‘아침에 네 알 저녁에 세 알’ 하면 반기는 게 원숭이다. 오늘 내가 편하려고 아들·딸·손녀·손자의 어깨에 빚을 걸머지게 할 수 없다. 이 마음속 탑(塔)은 70년 세월 국민이 땀과 눈물로 쌓아 올린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룩한 기적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 정권은 이 공든 탑을 허물라고 꼬드겨왔다. 국민을 원숭이로 본 것이다. 4월 7일 국민은 이 정권에 보여줘야 한다. 우리 국민은 원숭이가 아니라 이역(異域) 땅에서도 꿋꿋이 뿌리를 내린 미나리라는 사실을.

[강천석 논설고문 mngedit@chosun.com]/-(jj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