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갈현초등학교 66년지기 동창들의 고향 월롱산 우정 산행

2018. 6. 19. 11:36☎갈현10회동창회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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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갈현초등학교 66년지기 동창들의 고향 월롱산 우정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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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년지기 갈현 초등학교 동창들의 파주 "월롱산 우정" 산행


우리는 19506·25 한국전쟁을 7세때 격은 세대다. 그러니까 요즘 젊은 세대들이 흔히 말하는 꼴통세대다. 그시절 우리들은 끈이가 오갈 때 없어, 아침은 꽁보리밥에 점심은 굶는날이 먹은날 보다 더 많았다. 그리고 저녁은 멀건 국물이 흔겅한 김치죽, 콩나물죽으로 연명을 하고도 용케 잘 살아 오늘에 이르렀다.

 

전쟁 세대이다 보니 우리 동창들은 나이가 많은 아이는 11, 10, 내 경우는 9살에 국민학교에 입학을 했다. 반에는 피난민 아이들이 많았다. 전쟁으로 학교가 폐어되어 교실이 부족했다. 다행히 미군이 지원해준 군용천막을 학교 운동장에 설치하고, 비오는날은 천막 특유의 냄세가 풀풀나는 그 안에서 공부를 했다. 그러다 비 개인날은 학교 인근 밤나무숲이나, “이조 16대 인조대왕능재실 느티나무 아래서 공부를 했다.

 

한마디로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점심시간이면 밥 먹는 아이들보다 굶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미국 원조 구호품으로 받은 우유가루에, 인디카쌀 안남미(安南米-알랑미)쌀을 넣어, 큰 가마솥을 걸고 끓여준 우유죽을 먹고 자랐다. 그러다 보니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 경우는, 그 우유죽 먹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요 기다림이었다.

 

그때 담임선생님이셨던 최연순 선생님께서 우유죽을 퍼주시며, 유난히도 키가 작은 나에게 한 국자 더 퍼담아 주신, 그 선생님의 은혜를 잊지 못한다. 선생님은 지금 구순 연세에도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건강히 살고 계신다. 그때 만난 우리 동창들은 6학년 졸업 때까지 줄기차게 한반에서 공부한 동창들이다.

 

그동창들이 지금은 모두 다 고희를 훌쩍 넘겨, 나이가 많은 친구는 76, 적은 친구는 72세나 되었다. 그렇게 나이차가 있어도 우리들은 크게 위, 아래 따지지 않고 66년을 줄기차게 변치않는 끈질긴 우정을 이어왔다.

 

그런 인연들이다 보니 동창 전체 모임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쉽지 않아, 그중 몇몇은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친구들이 이구동성 한 목소리로 자주는 아니어도 종종 만나, 때로는 가벼운 산행도 하고, 여행도 하며 남은 여생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자고 의견을 뫃았다.

 

그바람에 이번 모임은(2018.6.17.) 우리의 고향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에 위치한 월롱산(218.5m)” 우정산행을 했다. 산행을 마치고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 갯말에 위치하며, 우리들 보다 3년 선배(최상화)님이 운영하시는 로빈의 숲에서 즐거운 점심식사를 했다. 그리고 이어 역사탐방길에 나섰다. 마침 인근에 이조16대 인조대왕능이 있어 어린시절 느티나무 그늘 숲에서 공부하던 추억을 떠올리며 추억 탐방을 하고, 이날의 ‘66년지기들의 월롱산 우정산행을 모두 마치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월롱산 유래

 

탄현면 금승리와 월롱면 덕은리, 그리고 금촌 야동동에 걸쳐 우뚝 솟아 있는 해발 246미터의 월롱산은 예로부터 신산으로 알려져 있다. 월롱산 내령은 크게 두 개의 봉우리로 나누어져 있는데 월롱면 덕은리와 야동동 쪽을 파주 월롱산이라 하고 탄현면 금승리 쪽을 교하 월롱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월롱산 서쪽에 월롱산과 해발높이가 비슷한 기간봉이 있으며 이곳에는 측량에 이용된 기가 꽂혀 있어 깃대봉으로 부르기도 한다. 월롱산 정상에 오르면 사방으로 파주 일대를 모두 조망할 수 있어 월롱산은 천연 요새와 같은 곳이다.

 

그 동안 문헌적으로 월롱산성이 존재하고 있음은 보고되었으나 구체적인 산성의 규모와 실체에 대한 조사가 없었다. 그러나 경기도박물관의 정밀 학술조사에서 월롱산성이 임진강과 한강 하구 지역을 통제하던 초기 백제의 주성 역할을 담당했던 성으로 밝혀졌다. 월롱산성은 동서남북이 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의 외벽은 거의 20미터 이상이 절벽인 자연지형을 이용하였고, 현재 내벽의 대부분은 정연한 석축형태를 보이지 않고 일부 석재만이 노출되어 있다. 문지는 동문지, 서남문지, 서북문지, 북문지가 확인되며 동문지와 북문지를 제외한 서남문지와 서북문지는 자연암반을 계단 모양으로 깎아 내면을 조성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월롱산성은 삼국시대 백제가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국가를 건국한 4세기 전반경에 임진강과 한강의 하구 지역을 통제한 초기 백제의 주성이다.

월롱산성이 위치한 곳은 북쪽으로는 임진강과 내륙지역, 서쪽으로는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하여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요충지로 성의 외벽은 수직의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성의 내부는 평지성처럼 가용면적이 매우 넓어 천의 요새라 할 수 있다

월롱산성의 지표조사 결과 3세기에서 4세기 중반의 회청색격자문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역사적으로 백제의 전성기인 근초고왕때 이 산성이 주로 이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산성의 형태는 월롱산 정상부의 내성과 동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가위 모양으로 둘러진 외성으로 구성되고 있는 전형적인 테뫼식 산성으로 성곽의 길이는 1,315m, 면적은 33,232m²에 달한다.

월롱산성은 삼국시대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영토분쟁을 벌였던 시기에 한성 백제의 전략적 기능과 문화상을 살펴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음백과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