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7. 12:43ㆍ☎청파의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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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016.06.05.)은 우리 삼남매와 외사촌 누이, 동생들과 함께 하는 25년여된 한마음친목회 모임날이다. 그런데 모임장소가 마침 장충동에서 11시에 만나자고 한다. 어쩐다? 만남 시간이 좀 어짓바르다. 일찍 나서자니 시간이 많이 남을 것 같고 그렇다고 집에 더 죽치다 느즈막하게 참석 하자니 어차피 하루일정 모임인데 괜스리 불필요한 시간을 소모할 것 같다.
에라 모르겠다. 이럴땐 마음가는데로 발길 닿는데로 따라 가보는거다. 그렇치 않아도 한동안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등산도 못하고 허구헌날 핼스 운동으로 스트래스 풀고 있는데 오히려 잘됐다. 오랜만에 나홀로 서울역에서 시작해 남산에 올랐다. 장충동으로 하산하는 가벼운 산행이나 하자 맘먹고 아침 8시 서둘러 집을 나서 부평에서 전철을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니 9시다.
한 창시절 서울에서 사업 할때(1980년대)는 서울 지리는 눈감고도 찾아 다닐 수 있을정도로 해박했다. 그랬는데 30여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다 보니 서울이 그 옛날 모습이 아니다. 남산을 오르기 위해선 우리나라 “국보 1호인 숭례문(남대문)”을 지나야 한다.
남대문(崇禮門) 하면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40분 전후 강화에 살던 정신병자 같은 인간 말종 채종기(70)’의 방화로 우리나라 국보 1호 숭례문이 불타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얼마나 목놓아 울었던 생각이 떠 올라 또 다시 그때를 회상하며 울컥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숭례문 방화범 채종기 이 인간'이 내가 자주가는 강화에 살았다고 한다. 그때 불타던 숭례문을 생각하면 아직도' 방화범 채종기를 법이고 뭐고 따지기 전에 내손으로 처형' 시키고 싶은 심정이 굴뚝 같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은 법치 국가라 이런 쳐죽일 인간을 처형시키지 못하고 공짜로 나랏밥 멕이며 구형살이를 시키고 있다.이런 인간은 마땅히 사형을 시켜야 하는데도 말이다.
우리나라 국보 1호인 숭례문은 그 험하다는 일제 36년의 역사도 바로 보고 지켜냈고, 6•25 한국전쟁의 아픈 상처도 컷지만 원활히 치유하고 발전하는 대한민국의 관문 역활을 당당히 해냈다. 그래서 더욱 자랑스럽고 빛나는 우리나라의 자랑스런 국보 1호인 숭례문이다. 그런데 ‘정신병자 인간 채종기'인지 나발인지 하는놈의 손에 의해 어처구니 없이 소중한 역사가 담긴 숭례문이 불타버리고 말았으니 기가막힌다.
그래도 다행히 불탄지 5년만에 다시 복원하여 2013년 4월 새단장한 숭례문 복원준공식을 볼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옥에 티라면 복원공사 과정에 개운치 않은 뒷이야기들이 있어 안타깝지만 그래도 그만하길 천만다행이다.
이런 아픔을 딛고 우뚝선 "숭례문"인데 최근 들어 ‘우리나라 국보 1호인 숭례문을 국보 1호’에서 제외 시키자는 일부 사람들과 시민단체들이 있어 기분이 좀 씁쓸하다. 누가 뭐라 해도 숭례문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간직한 소중한 보물이다. 그런데 숭례문을 국보 1호에서 제외 시키자는 사람들은 숭례문에 대한 역사성이나 희귀성은 것은 고려하지 않은체, 기분 내키는데로 오랜기간 이어온 역사적 건물의 가치를 멋대로 가늠질 하려 하고 있다.
시련을 겪으면서도 당당하게 우뚝선 숭례문을 보는 마음이 너무 답답하다. 내친김에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보 1호인 “숭례문”에 대한 내력을 알아 보았다.
국보 제 1호 숭례문(남대문)
국보 제1호. 1396년(태조 5) 창건되어 1448년(세종 30) 개축했다. 조선왕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정한 뒤, 정궁인 경복궁의 방향에 의해 남문인 숭례문이 정문이 되었다.
풍수지리에 의해 편액도 다른 문들과는 달리 세로로 쓰여졌다. 이는 서울 남쪽에 있는 조산인 관악산이 북쪽의 조산인 북한산보다 높고 산의 모양도 불꽃이 일렁이는 듯하여 관악산의 화기를 맞불로서 꺾기 위한 것이며, 오행에서 남쪽을 가리키는 예(禮)를 숭상한다는 의미를 담아 숭례문이라 이름했다.
1934년 일본이 '남대문'으로 문화재 지정을 했으나 1996년에 역사 바로세우기 사업의 하나로 일제가 지정한 문화재에 대한 재평가작업을 하면서 '숭례문'으로 명칭을 환원했다. 앞면 5칸, 옆면 2칸의 2층 건물인 이 문은 화강석의 무지개문을 중앙에 둔 거대한 석축 위에 세워져 있으며, 지붕은 우진각지붕으로 상하층 모두가 겹처마로 되어 있고 사래 끝에 토수를 달았다. 추녀마루에는 잡상과 용두를 두고, 양성한 용마루에는 취두를 두었다. 2층인 이 문의 구조는 위층의 4모서리 기둥이 아래층까지 내려와 견고하게 결구되었으며, 위층 중앙에는 4개의 고주를 두었다.
다포계 형식의 공포를 얹은 이 문의 위층은 외삼출목, 아래층은 외이출목으로 구성되어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다포계 목조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조선 초기 건축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잘 보여준다. 또 1962년 해체복원공사 때 발견된 상량문은 당시의 건축생산체계와 장인조직을 밝히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현존하는 성문 중 규모가 가장 크며 조선 초기 다포계 양식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40분 전후 방화범 채종기의 방화로 인해 불타기 시작해 약 5시간 후인 11일 오전 1시 54분, 목조 건물 일부와 석축 기반을 남기고 2층 누각이 모두 붕괴되어 소실되었다. 문화재청에서는 소실된 숭례문을 원형에 가깝게 복구할 계획을 발표하였다. 2013년 4월 29일 완공되어, 2013년 5월 4일 복원 완료를 기념하는 완공식이 있었다. [위키백과 참조]
"숭례문(남대문) 국보 1호" 명칭을 취소하자는 의견에 대한 / 나에 생각
지난(2016년 5월 11일) 오전 11시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에서는 대한민국 국보 1호인 숭례문(남대문)을 국보 1호에서 취소 하고 한글(훈민정음)을 국보 1호로 지정해야 한다는 서명운동이 시작 됐다. 여기에는 미국에 있는 조선 의궤를 반환해 오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혜문(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스님과 일부 시민단체, 그리고 시민들이이 참여했다.
그렇다면 그들의 주장처럼 조선총독부가 우리나라 국보 서열을 정한 거라면 그 외 우리나라에 많은 국보급 보물들도 다 문제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국보에 메겨진 번호가 그 순위에 따라 중요성이 더하고 덜하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국보마다에 메겨진 번호는 그냥 관리를 위한 번호라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일부 전 정권 폄훼하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민단체들은 일제 강점기였던 ‘1934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문화재 1호로 지정한 것을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이 국보 1호로 재지정’ 한 것이 되어 취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내막을 자세히 알고보면 그것은 절대 아니다.
숭례문은 1996년 역사 바로세우기 사업의 하나로 일제가 지정한 문화재에 대한 재평가작업을 하면서 '숭례문'으로 명칭을 환원했다. 더 중요한 것은 숭례문이란 명칭은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본이 붙인 명칭이 아니라 조선 초기부터 불린 이름이다.
또한 1934년 일제가 “남대문”으로 문화재 지정을 한 것을 사실은 ‘이승만, 윤보선 전 대통령 정부 시절’에도 “남대문”이란 명칭 그대로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이제와서 말도 안되는 “감언이설”로 전 박정희 대통령 정권을 폄훼하면서 “숭례문 국보 1호 지정” 취소 운동을 펼치고 있는지 그 속셈이 궁금하다.
그렇다면 일제 치하에 정해진 동대문(흥인지문 (興仁之門)도 다 바꾸어야 한다. 그럴 경우 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 교육적으로 지금까지 이어온 그 혼란은 어떻게 감당하란 말인가. 검증되지도 않은 일부 사람들과 시민단체의 생색내기식 감언이설, 더 나아가 의식없는 무책임한 위선 행위에 국민들이 절대로 호도 되어 이용 당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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