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어먹고 살까, 갚고 살까 / 제25회 인천시민문예대전 수필부분 당선작

2015. 12. 17. 19:39☎청파의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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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회 인천시민문예대전 당선작 시상식 및 송년의 밤
 
25회 인천시민문예대전 당선작 시상식이 (20151211일 오후 6) 인천 하버파크 호텔 (HarborparkHotel) 3층 아이리스홀에서 거행 되었다.
 
영예의 당선작 수상은 시부분 (오태근) 소설부분 (양다은) 수필부분 (한준희) 아동문학부분 (정희영)씨가 수상했다.
 
이어 문예대전 당선작 시낭송 569돌 한글날 백일장 일반부 장원 수상자 시상 산문부분(전 규) 27회 인천문학상 시상 수상자 정경해 시인) 2015년도 신입회원(15) 환영과 소개 2015년도 주요 회원 (10) 동정 및 수상자 축하 2015년도 창작집 발간 회원 (21) 에 대한 축하와 소개순으로 진행 되었다.
 
마지막 순서로 참여하는 인천문협, 재미있는 인천문협, 공부하는 인천문협” 2015년 송년의 밤 행사가 참석회원들의 흥미진진한 분위기속에 열려 송년축가, 넌센스 퀴즈, 장기자랑, 게임, 노래, 송년마무리, 전회원 합창순으로 진행된 가운데 이날의 [인천문학상[ [인천시민문예대전 당선작] 시상식 및 송년의 밤 모든 행사를 마쳤다

 

 

 

 

 

1999년 봄날이었다. 곳곳에 봄의 기운이 넘쳐나고 있었지만 내 처지는 한겨울보다 더 꽁꽁 얼어붙었다. 거래처에서 받은 어음이 줄줄이 부도가 났다. 우리 회사의 배서어음을 받은 많은 채권자가 사무실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앞다퉈 피어나는 봄꽃처럼 아우성이었다.

 

어느 날 아침, 영업부 사무실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건장한 덩치의 낯선 남자 세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명함을 뿌리듯 건네는 그들은 채무를 대신 받아주는 조폭들이었다. 다짜고짜 거친 말을 해댔다.

사장님 잘좀봐쥬슈

급작스러운 상황에 입이 얼어붙어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들은 영업부 사무실로 따라 들어왔다. “긴말 필요 없소이다. D 금형 회사에 준, 부도난 어음 갚을 때까지 매일 이리로 출근하겠소이다.” 주먹깨나 쓸 것 같은 그들이 사무실을 점령하면서 직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업무는 마비상태였다. 일주일간 피 말리는 협상 끝에 10개월 분할상환 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조달청에서 알루미늄 원자재를 신용보증기금으로 구매한 것, 그것이 가장 큰 산이었다. 상환 기일이 도래했으나 어음 발행회사가 부도가 났으니 갚을 길이 막막했다. 산본 신도시 새 아파트로 이사한 지 불과 5년 만이었다. 보증기금 갚지 못해 집은 27천만 원에 경매로 넘어갔다. 그 밖에도 변제를 요구하는 채권자들이 사무실에 이어 집으로 찾아와 안방을 차지했다. 하지만 부도를 낸 회사들로부터 회수해야 할 대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들도 고의가 아닌 천재지변 같은 처지이니 어쩌랴. 어디를 가나 사면초가였다. 동서남북이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오를 수도 넘을 수도 없는 높고 견고한 담이었다. 가족들은 웃음을 잃었고, 웃음은 사라졌다. 실의에 빠진 가족들을 보면 중죄를 저지른 죄인 같았다. 나는 패장이었다.

 

방법은 하나였다. 한강으로 가자. 한강으로 갈 수 있는 택시비만 주머니에 챙겨 마지막 길을 향해 떠났다. 할 말이 없어 유서 따위는 쓰지도 않았다. 아니 할 말이 너무 많아, 살고 싶은 욕구가 강해 쓸 수가 없었다. 택시가 노들섬에 이르렀다. 밤에 보는 한강은 검고 사나웠다. 내 몸 하나쯤은 감쪽같이 먹어치울 기세였다. 물결을 따라 모양을 달리하는 달빛을 바라보고 있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점차 미련이 가셔졌다. 유서 안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구천의 어머니가 나타나 호통을 쳤다.

 

네놈이 겨우 그 정도냐? 그것밖에 안 되는 인물이라면 어서 가거라.”

 

담당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푹 꺼졌다. 아내와 자식들이 눈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울음이 터졌다. 죽음의 문턱에서 망설였다. 한바탕 울고 나자 저승으로 가는 문 또한 엄청나게 높이 솟아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 초등학교 친구 A가 찾아와 있었다. 두 시간을 기다렸단다.

 

변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채권자들이 시간을 주지 않으니 어쩌면 좋을까?” 그간의 일을 소상히 말하며 자문을 구했다.

 

지금 같은 세상엔 될 수 있으면 갚지 않는 것이 장땡이다. 갚을 돈이 있으면 제주도에 땅이나 사서 은둔해라.”

 

친구는 두말할 것 없이 갚지 않는 수단을 취하라고 했다.

 

잠시 후 또 다른 친구 B가 찾아 왔다. 두 친구는 사전에 만나기로 약속했었는데 시간이 어긋나 따로 오게 된 것이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두 친구를 대접하기 위해 근처 포장마차로 갔다. 우선 막걸리 세 병을 마셨다. 먼저 온 친구 A가 화장실에 갔을 때, 나중에 찾아온 친구 B가에게도 같은 말로 사정을 알렸다.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몹시 괴롭겠지만 할 수만 있다면 빚은 갚고 사는 것이 평생 후회가 남지 않을 거야. 나는 자네 속을 잘 알고 있어.”

 

두 친구가 서로 다른 해법을 내놓았다.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내 속내를 속속들이 잘 알고 지내는 처지였다. 두 친구는 사회 경험도 많은 편이라 평소에도 그들의 충고를 귀담아들었다. 하지만 상반된 두 견해는 깊이를 잴 수 없는 우물이었다.

 

떼어먹고 살까, 갚고 살까.”

 

구천에 계신 어머니의 호통으로 죽음의 문턱은 넘어섰지만 두 친구가 서로 다르게 제시한 두 갈래 길에서 망설였다. 천우신조(天佑神助)인가. 2002년 한일 월드컵대회가 열렸다. 나라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전국에 걸쳐 야외음악 무대 설치가 경쟁적으로 붐을 이루었다. 그 무대장치의 소재는 알루미늄 파이프였다. 우리 회사 연구소와 포항공대 이성학 박사팀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선도적으로 기술을 개발해놓은 같은 종류의 제품이었다. 때를 만난 것이다. 회사는 불길처럼 일어났다. 한두 해가 지나면서 개인들의 부채는 모두 갚았다. 그렇지만 신용보증을 받은 체납 연체 금리는 연 27%였다.

 

이자만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거액의 부채를 떼어먹고 사느냐 갚고 사느냐, 또 갈림길이었다.

 

가족회의를 열렸다.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세 딸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부모가 가는 길이면 무조건 따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장남도 역시 같은 태도였다. 아내가 나섰다.

 

감고 삽시다.”

 

신용보증기금을 갚지 않으면, 온 국민의 돈을 떠어 먹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라고 했다. 아내는 어딘가 깊숙이 감추어 두었던 은행통장을 내놓고 방을 나갔다. 가장으로서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생각하니 목이 멨다. 능력이 모자란 나 자신을 스스로 책망했다. A라는 친구 말대로 제주도로 도망가서 땅이나 좀 사고 살면 어떨까. 아니다. 완강히 변제를 주장하는 아내를 생각해 갚아야 한다. B라는 친구도 의미 있는 충고를 했다. 끝내 성곽에 같힌 패장은 되고 싶지 않았다. 다음날 서울 신용보증기금을 방문해 채무를 끝냈다. 마지막 빚을 청산하고 아내와 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외쳤다.

 

, 만세다!”

 

두 친구가 달려왔다. 또 포장마차로 갔다.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그날 우리의 의견은 하나로 일치했다. 같은 길이었다.

 

내 생각이 미처 자네들만 못했어.”

 

친구 A가 말하며 술값을 다 냈다.

 

흥하느냐, 망하느냐, 갚느냐, 마느냐, 죽느냐, 사느냐, 두 갈래 길에서 한동안 갈등했었다. 그렇지만 길은 하나였다. 가족들이, 친구들이, 고마운 고객들이 나를 떳떳하게 살 수 있는 길로 가게, 한강에서 건져 올렸다. IMF 때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