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자랑 "인천자부심 산악회 강화 교동 화개산" 시산제 산행

2015. 3. 31. 14:22☎인천N방송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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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교동도 화개산 259.6m 시산제 산행

 

지난해 (2014년) 석모도 '해명, 낙가산' 산행 때 교동도에 '연육교' 공사 중인 것을 보았다. 그때 맘 속으로 다리가 완공되면 교동에 있는 화개산 산행을 한 번 해야지 하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마침 (2015년 3월 29일) '인천자부심 산악회'에서 강화군 교동면에 위치한 화개산 259.6m으로 시산제 산행을 간다고, 함께 가자고 지인으로 부터 연락을 받았다.

'교동대교'는 강화도와 교동도간을 잇는 다리다. 이 다리는 총연장 3.44㎞로 총 904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되어 2014년 7월 1일 개통 했다.

 

마침 잘됐다. 그렇지 않아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기꺼이 참석키로 하고, 부평역에 오전 7시 50분까지 도착하니 이날 '화개산 시산제 산행'에 동참한 산악인들이 탄 차량이 자그마치 관광버스 20대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수십 년 산행을 다녀 봤지만, 내 생전 이렇게 많은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시산제 지내러 가는 것은 처음 본다.

이 모습을 보며 부평지역 산악인들 단결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탄 차량은 16번 차량인데, 한 마을에 살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지인들과 만남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이날 산행에서 만나 반가운 인사 나눌 수 있으니 '알먹고 꿩 먹고' 산행이다. 

내가 이번에 교동도에 꼭 가려는 이유가 있다. 그러니까 벌써 50여 년 전 일이다. 1960년대 낙후된 농촌 발전을 위하여 '4-H구락부 활동을 열정적으로 할 때다. 그때 강화 교동도에 사는 절친한 친구가 있었다. 친구와 나는 파주와 강화에 사는 관계로 만남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서로 진솔한 편지를 주고받으며, 농촌에 대한 이상의 꿈을 함께 나누며 정보를 교환했었다.

물론 이번 방문에서 친구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리운 친구가 살던 고향 흙 내음이라도 맡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함께 했다.

 

교동의 원래 이름은 대운도(戴雲島) 이었다고 한다. 고림(高林) 또는 달을신(達乙新) 이라고도 불렀으나, 고구려 때 처음으로 현()을 두어 고목근현(高木根縣)이라 하고, 신라 경덕왕때 교동 현이라 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교동도에는 조선시대부터 왕족의 유배지로 유명했다. 최충헌에 의해 쫓겨난 고려 21대왕 희종을 시작으로 안평대군, 임해군, 능창대군 등 11명의 왕족이 교동으로 유배당했다가 풀려나거나 사사되었다. 그 중에는 조선왕조의 풍운아 연산군이다. 중종반정으로 쫓겨난 연산군은 교동으로 유배된 지 2달 만에 사망했다.

 

전남의 해남지역이 선비들의 유배지였다면, 교동도는 왕족의 유배지였다. 정쟁에서 패한 인물은 한양에서 먼 곳으로 보내졌다. 그러나 왕권에 치명적일 수 있는 왕족 등, 거물은 가까우면서도 완전히 격리된 곳에서 늘 동정을 살펴야 했기 때문이다. 한양에서 하루, 이틀거리인 교동도는 해안과 가깝지만 급한 조류로 접근이 쉽지 않아 유배지로서 최적의 땅이다. <온라인 검색 자료 참조>

 

20대의 전세 버스에 나눠 탄 차량이 군부대 검문소를 지나 화개산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니 9시 20분이다. 부평에서 한 시간 남짓 달려왔다. 배편을 이용할 때 같았으면 아마 3시간 정도는 걸려야 도착했을 것이다. 그랬던 교동도에 교동대교 연육교 개통이 주는 의미는 아마 이곳 교동 주민들의 생활에 큰 변화를 몰고올 것이 예상된다

각 차량별로 들머리 도착과 함께 곧바로 산행이 시작된다. 서둘러 산행을 마치고, 시산제를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 화개산 등산로는 최근에 시설 공사를 마쳤는지 주차장, 화장실, 운동시설, 부대시설 등이 하나같이 손때도 묻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여기저기 불도저 자국이 생생하다.

산행 들머리에서 20여 분 지나자 처음 만나는 이정표가 보인다. 화개산 정상까지 9km이다. 고도는 259.6m다. 등산로는 대체적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지그재그 이어지고 있다. 어린아이나 노약자들도 크게 힘들이지 않고 안심하고 오를 수 있다.

사진 촬영을 하며 앞서가다 뒤를 돌아보니 화개산을 오르는 인파가 구름처럼 무더기로 오르고 있다. 등산로 주변 골짝에는 한증막 터가 남아있다. 안내판을 확인하니 조선후기부터 사용해 오던 한증막인데, 1970년대까지 교동 주민들이 사용을 했다고 한다.

나는 한 시간 남짓해 화개산 정상에 선두로 오른다. 정상에는 을씨년스럽게 외로히 서있는 육각정이 나를 보고 반가워하며 잠시 쉬었다 가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나는 잠시 시야를 넓혀 사방을 둘러본다. 날씨 좋은 화창한 날 같았으면 그야말로 거리낄 것 하나 없는 일망무제 조망 명소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날은 해마다 이맘때면 반갑지 않게 찾아오는 중국발 황사 현상으로 하늘이 온통 흙먼지에 가려 조망이 완전 꽝이다.

 

화개산 정상에서 300여 미터 지나면 봉수산성터가 있다. 그런데 이곳도 성은 오간데 없고, 성터만 소원탑처럼 돌무더기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곳에서부터 하산로는 오를 때와 달리 삐죽삐죽 튀어나온 암릉 구간이라 세심한 안전 산행을 요하는 곳이다. 그러나 여기만 잘 내려서면, 눈 감고 걸어도 안전할 정도로 편안하게 널널 하산길이 이어진다.

우리 일행은 이날 화개산 산행을 모두 마치고, 올 한해 동안 무탈 안전 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를 천여 명의 산악인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모셨다.

이어 인천이 낳은 연예인 염경환의 재치있고 익살스런 사회로, 관광버스 차량별로 한 명씩 노래 부르기 장기자랑을 펼쳐 푸짐한 시상도 했다. 또한 강화군수께서 제공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이날의 인천자부심산악회 시산제를 모두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