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노인복지관 시니어기자단 강화 석모도 여행

2015. 1. 7. 22:44☎부평시니어기자단☎

728x90

 

 

 

시니어기자단 2015 새출발 "강화 석모도 여행"


 



2015년 새해를 맞이해 며칠전 부평노인복지관 시니어기자단 홍은표 기자에게 전화가 온다. 새해도 되었고 새로운 마음 가짐을 다지는 의미에서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위치한 석모도로 가벼운 여행 취재를 떠나면 어떻겠냐고 말이다.

 

그러다 보니 여행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좋아하는 난 더 이상 따지고 말고 할 겨를 없이 무조건 OK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속담에 시집갈 달에 등창 난다라고 일년내내 병원 문턱도 안갈 정도로 건강을 자랑한 사람인데 하필이면 강화 여행 전날 밑도끝도 없이 컨디션이 난조를 보인다.

 

하품이 꼬약꼬약 나오고 몸이 나른하고 욱신욱신 하고 안하던 앓는 소리까지 나도 모르게 나올 정도다. 하지만 그까짓것 쯤이야 하며 새벽같이 헬스장에 가 2시간 동안 몸을 푸는데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가벼운 운동으로 시간을 때우고 귀가를 한다.

 

그러자 아내의 잔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당신이 맨날 청춘인줄 아냐, 몸이 아프면 얼른 병원엘 갈것이지,’ 운동은 무슨놈의 운동이나며 얼릉 병원에 댕겨 오라고 한 소릴 한다. 어쩔 수 없이 병원에 들려 진찰을 받으니 노로바이러스에 전염되어 그렇단다. 그러면서 큰 걱정은 안해도 되고 하루 이틀 약 먹으면 나을것이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올해들어 가장 추운 날에 시니어기자단 동료들과 함께 떠나는 강화 석모도 여행 취재길이라 마음 같아선 약속을 보이콧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지만 약속은 금이란 생각을 하며 평생을 살아온 나는 201517일 오전 630분 강화행 완행 버스를 석모도를 향해 달려 간다.




이곳 외포리 선착장에서 석모도까지 가는 유람선 표를 사야 한다.







강화 석모도 여행전 석모도와 보문사에 대해 알아 보았다.

 

교통편은?

 

강화버스터미널에서 외포리행 버스를 타고 외포리 선착장에 하차해 여객선을 타는데 요금은 왕복 2,000원이고 승용차를 가지고 타게 되면 16,000원 요금을 내야 합니다. 유람선 타는 시간은 약 10분 정도 걸려 석모도 석포항에서 도착 합니다. 그리고 다시 석포항에서 보문사행 버스를 타는데 요금은 1,100원 내고 보문사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석모도 위치

강화도에서 서쪽으로 1.5지점에 있다. 면적은 42.31이고, 해안선 길이는 42.0이다.

 

석모도 명칭과 유래

대동여지도에는 석모로도(席毛老島)’로 표기되어 있다. ‘석모로라는 지명은 물이 돌아 흐르는 모퉁이혹은 돌이 많은 해안 모퉁이라는 뜻이다. ‘돌모로를 한자화 하면서 석모로(石毛老)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석모도(席毛島)로 기록되어 있다.

 

자연환경

해명산(海明山, 309m)에서 낙가산을 지나 상봉산(上峰山, 316m)까지 이어지는 산줄기가 섬의 중앙을 남북으로 지나며, 북쪽에는 성주산(264m)이 고립된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다. 성주산이 분리되어 있는 이유는 성주산과 상봉산 사이의 송가평이 간척을 통해 형성된 농경지이기 때문이다. 이들 산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200m 이하의 저평한 지역이다. 남쪽의 어류정도도 간척사업을 통해 석모도에 연결되었다. 1월 평균기온은 3.0, 8월 평균기온은 24.2, 연강수량은 1,448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시대에는 송가도가 섬으로 존재하면서 교동부에 속하였으나, 석모도와 제방을 통해 연결되고 농경지가 조성됨에 따라 하나의 섬으로 통합되었다. 1914년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강화부와 교동부가 통합됨으로써 교동부에 속하였던 송가도(현재의 상리와 하리)가 삼산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에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이 되었다.

 

현황

2009년 기준으로 인구는 2,202(1,113, 1,089)이 거주하고 있으며, 세대수는 1,075세대이다. 중동부에 위치한 석모리가 중심지를 이루어 면사무소·우체국·농협·수협 등이 있다. 토지이용 현황은 논 13.85, 1.38, 임야 21.25이다.

 

주민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감자·고추 등과 임산물로는 대추·표고버섯 등이 생산된다. 근해에서 병어·새우·숭어·꽃게 등이 잡히고 넓은 간석지를 이용한 굴양식업이 활발하다. 육지와는 강화도의 외포리에서 정기여객선 및 행정선과 도선이 수시로 왕래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삼산초등학교, 해명초등학교, 삼산승영중학교가 있다.

 

문화재로는 매음리에 635(선덕여왕 4)에 혜정대사가 창건한 보문사(普門寺)와 보문사석실(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27보문사마애석불좌상(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29) 등이 있다. 절 뒤에는 눈썹바위가 있고 부근의 산림과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석모도 남쪽에 있는 민머루해수욕장의 일몰은 서해의 3대 일몰조망지로 손꼽힐 정도로 유명하다. 해수욕장 인근에 어류정항과 장구너머포구가 있어 어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유람선을 타기 위하여 걸어가고 있는 기자단 일행들 모습


 



철부지 갈매기들은 사람만 보면 새우깡 달라고 달려든다.











한기자님과 홍기자님 포즈 아주 멋쩌요.









석모도 선착장에 하선을 합니다.





석모도 석포리에서 보문사 구간 사이를 오가는 버스를 타고 달려 간다.



버스에는 우리 일행들외 2명의 여자 승객만 탄채 달려간다.



보문사 주차장에 하차를 한다.



보문사를 향해 걷고 있는데 인근 상가 식당 아줌마들의 거북스러울 정도의 손님끓기 상행위가 극성을 부려 기분이 별로다.





보문사 일주문



매표소가 있지만 우리 기자단 일행 6명은 전원 경로 우대로 무사 통과를 한다.




일주문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도 찍고 간다.



해가 지면 다시 떠 오릅니다. 우리가 오늘은 70 고개를 넘고 있지만 8십 9십 고개도 훨훨 넘게 될것 입니다.












보문사(普門寺)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낙가산(洛迦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직영사찰로서, 우리 나라 3대 관음영지(觀音靈地) 중의 한 곳이다. 이 절의 창건에는 다음과 같은 연기설화(緣起說話)가 전한다.

 

635(선덕여왕 4) 4, 삼산면에 살던 한 어부가 바다 속에 그물을 던졌더니 인형 비슷한 돌덩이 22개가 함께 올라왔다. 실망한 어부는 돌덩이들을 즉시 바다로 던져 버리고 다시 그물을 쳤지만 역시 건져 올린 것은 돌덩이였으므로 다시 바다에 던졌다. 그날 밤, 어부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귀중한 것을 바다에 두 번씩이나 던졌다고 책망하면서, 내일 다시 돌덩이를 건지거든 명산에 잘 봉안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다음날 22개의 돌덩이를 건져 올린 어부는 노승이 일러준 대로 낙가산으로 이들을 옮겼는데, 현재의 석굴 부근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돌이 무거워져서 더 이상은 나아갈 수 없었으므로 바로 이곳이 영장(靈場)이구나.” 하고는 굴 안에 단()을 모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신라시대의 역사는 자세히 전하지 않으나, 고려 초기에 금강산 보덕굴(普德窟)에서 관음진신(觀音眞身)을 친견한 회정(懷正)이 이곳에 와서 불상을 살펴보니, 가운데 좌상은 석가모니불, 좌보처는 미륵보살, 우보처는 제화갈라보살이었고, 나머지는 18나한상과 송자관음이었다. 회정은 이 22존 중 삼존불과 18나한은 굴 속에 모시고 송자관음은 따로 관음전을 지어서 봉안한 다음 이 절을 낙가산 보문사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절의 역사는 사찰의 격에 비하여 자세히 전하지 않으며, 조선시대 후기부터의 역사만이 전해지고 있다. 1812(순조 12)에는 이 절의 승려들이 홍봉장(洪鳳章)의 도움을 받아 중건하였고, 1867(고종 4)에는 경산(京山)이 석굴 안에 처마를 이어 나한전을 건조하였으며, 1893(고종 30)에는 명성왕후의 전교로 요사와 객실을 중건하였다.

 

1911년 일제가 30·말사를 제정하면서 전등사 말사가 되었다. 1918년에 대원(大圓)이 관음전을 중수하였고, 1932년에는 주지 배선주(裵善周)가 객실 7칸을 새로 지었으며, 1935년에는 나한전을 중창하였다. 그 뒤 관음전을 중건하고 대범종을 조성하였으며, 1976년 범종각과 요사를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관음전·대방(大房종각·석실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석실 굴 안에는 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석굴 입구에는 세 개의 홍예문을 설치하였고, 동굴 안에는 반원형 좌대를 마련하고 탱주(撐柱)를 설치하였으며, 탱주 사이에 21개 소의 감실이 있어 석불을 안치하였다.

 

이 밖에 이 절에는 마애석불좌상과 천인대(千人臺)가 있다. 마애석불좌상은 1928년에 금강산 표훈사(表訓寺)의 승려인 이화응(李華應)이 보문사 주지 배선주와 함께 조각한 것으로, 높이 9.2m, 3.3m이다. 석불좌상의 상부에는 거대한 눈썹바위가 있고, 좌측에는 비명(碑銘)이 있으며, 불상 앞에는 소규모의 석등이 있다. 이 석불과 석굴에서 기도를 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하여 찾는 여인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다.

 

또 천인대는 길이 40m, 5m의 큰 바위이다. 이 절의 창건 당시 서역(西域)의 고승이 이 천인대에 불상을 모시고 날아왔다는 전설이 있다. 그 뒤 이 바위는 법회 때 설법하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는데, 이 바위 위에 1,000명이 앉을 수 있다고 하여 천인대라고 명명하였다. 199410월 대한불교조계종 직영 사찰이 되었다.

 















 













보문사 500 나한상







법향루



윤장대



범종각



대웅전





봉향각







눈섭바위 마에불 오름 계단길




 





오름길 내내 아름다운 연등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소원을 담은 병











눈섭바위 마애불 오르길에 본 두 남여 기자 무엇을 생각하고 있나요.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마애불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우리는 낙가산 정상을 오르른다.


 





낙가산 가는길



낙가산 오름길에 만난 소원탑


 

낙가산 235m 정상에서 일행들이 환호 하고 있다.



홍기자님 올해 대박 나세요.





낙가산 정상에서 일행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하산을 한다.







낙가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



ㅎ하산길에 올려다 본 눈섭바위 풍경

  
























보문사 부도탑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개인의 유골을 보관하는 탑이다.









우리 만남은 우연히 아니야 다 같이 '재건축(재미있게, 건강하게, 축배를 들자) 건배도 나누고



다시 한번 재건축 건배를...



용봉온천 가건물 이곳에서 해수온천을 하는곳이다.




강화 석모도 해수 용궁 온천 (무료운영)

70여도의 해수 온천수가 지하에서 솟구쳐 나온다. 가건물 온천에 들어가니 온천수에서 올라오는 김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뽀얗다. 그런데도 온천수에 몸을 담그니 보통 온천과 달리 몸에 배어드는 그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10여분 정도 몸을 담근 후 탕에서 나와 비누질을 하는데 아무리 비누질을 해도 거품이 일지 않아 허탕만 친다. 이곳 용궁해수 온천은 비누가 필요 없다. 대신 때 타올만 있으면 만사 OK. 그러면서 두 서너번만 탕에 들락 거리다 보면 때가 저절로 일어나 물만 끼얹으면 될 정도다.

 

기자가 용봉 온천을 체험 한 바에 의하면 24시간 내내 쉬지않고 솟구쳐 나오는 해수 온천수가 얼마나 따끈따끈 한지 전국을 다니며 온천 체험을 한 중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손색이 없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이 우수한 용궁해수온천을 발굴해 놓고도 사업성 있는 온천으로 개발 하지 못하고 벌써 10여년이 지나도록 허름한 가건물에 무료로 운영 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기자의 생각에는 용궁온천에 대한 문제점을 하루속히 해결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용궁온천으로 발전 시켰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곳 용궁온천수는 이용해본 사람들의 입소문에 의하면 특히 아토피 피부에 효염이 있다고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하며 이 온천수 물을 퍼다 이용할 수 있도록 별도의 시설을 가추었다고 한다.






이곳에 옷을 맡기고 비누 한장만 사면 온천을 무료로 할 수 있다.



족탕온천을 즐기는 사람들





족탕온천



누이좋고 매부좋고 김기자님 힘자랑 하시며 많은 사람들 눈길을 끕니다.





해안길 어느 음식점에 길을 물으며 커피 한잔 했는데 이곳 쥔장 선착장 가는길을 엄하게 해안길로 안내 하는

 바람에 무려 1시간 40여분을 걷고 또 걸었다. 덕택에 힘은 들었지만 도 해안길 트래킹 제대로 잘했다.





























드디어 우리 일행을 싫고 갈 유람선이 오후 5시 지나 들어오고 있다.










  

 

   청파의 변신   

 


  http://cafe.daum.net/salamstory   

주소를 클릭 하면 이동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