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새해 "福" 만두 가족 모임

2015. 1. 2. 14:24☎청파의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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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새해 복 만두 드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2014년 섣달 그믐 전날 아내가 안산과 동탄에 사는 처제들에게 전화 해 2015년 새해 첫날 스케쥴이 있냐고 묻는다. 그러다 보니 엿들으려 하지 않아도 통화 내용이 내 귀에까지 들려 아니 저 아줌씨가 왜 그럴까? 새해가 되니 맘이 싱숭생숭해져서 그러나 어디가 헛헛해서 그러나 별에별 생각을 하는데, 아마 처제들도 새해 첫날 특별히 일정이 없다는 것 같다.

 

그러자 아내가 처제들에게 야! 다른 집들은 형제 자매들이 모여 여행도 가고 가족 모임도 한다는데 우리 남매들은 너무 맹숭맹숭 아니냐며 특별히 계획이 없으면 멀지만 우리집에라도 모여 만두라도 만들어 먹자고 제안을 한다.

 

그래서 시작된 2015년 새해 초하룻날 우리집 가족 모임은 원당에 사시는 장모님을 작은 아들이 가서 외할머니를 모셔오고, 안산 처제네 내외, 조카, 동탄 처제네 내외 그리고 우리가족 모두 열 한 명이 모여 전날 미리 준비 해둔 만두 재료를 가지고 만두를 빗는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만두를 만들다 보니 만두도 시대 따라 그 모양이 변천을 하는것인지 아니면 만들기가 편해서 인지 별에 별 여러 가지 만두 모형이 탄생을 한다. 그중에도 동탄에 사는 막내 처제의 개량 만두는 무엇 보다 만들기도 편하고 그 모양도 눈에 띄게 예쁘고 또한 만두를 쪄서 먹기도 손쉬워 가장 인기를 끈다.

 

그러나 나는 “2015년 새해를 맞이하여 모든 가족이 복 많이 받으라는 생각을 하며 복 주머니 만두를 만들었다.” 그랬더니 이를 마땅치 않게 생각한 아내 왈 당신 그렇게 엉터리로 만들려면 만두 만들지 말래나 뭐라나 하면서 처제 동서들 면전에서 핀잔을 준다.

 

하지만 내가 어디 그런 아내의 잔소리를 하루 이틀 들은 것도 아니니 에라 모르겠다. ‘기차화통 소리 당신은 떠들으시오.’ 나는 내 생각대로 올해는 가족들 복 많이 받으라고 줄기차게 복주머니 만두를 만들어 댄다. 그랬더니 아내의 성화도 주츰한다. 아마 처제들 다 집으로 가고 나면 저녁에 또 한 번 잔소리를 들어야 할 것은 벌써 계산을 해놓았으니 걱정은 없다.

 

그렇게 만두 만들기가 끝나고 온가족이 둘러 앉아 아내가 쉴 사이없이 쪄내는 오만가지 모형의 만두를 시식하며 두 동서들 이야기가 걸작이다. 오늘 다양한 만두 맛이 다 각각 다른 것 같다더니 그중에서도 큰 형님이 만드신 만두가 제일로 맛이 있다나 뭐란다나 하면서 너스레를 떠는 바람에 그나마 아내에게 핀잔 맞으며 만든 복주머니 만두 체면이 섰다.

 

2015년 새해 첫날 우리 가족(처가집) 모임 만두 이야기를 영상과 사진으로 소개를 합니다. 곁들여 우리가 설 같은때 되면 대부분 만두를 만들어 떡국을 끓여 먹는데 그 만두에 유래를 검색으로 알아 보아 아래에 소개를 합니다.

    

 

만두의 유래

 

만두는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 졌고 그 시작은 어디일까? 만두를 알아 볼려면 만두의 유래를 알아야 할 것이다 만두의 유래는 삼국지에서도 나타 나지만 크게 두 가지 설이 전해 내려온다.

 

첫번째 유래

 

중국에 사는 고귀우 라는 소년이 만두 빚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 했다. 고귀우라는 소년은 유년시절 별명이 구불리였는데 손님들은 그가 빚은 만두를 구불리 라고 불렀다고 하는 이야기 전해 온다. 고귀우가 만두를 빚을 때, 속은 별 차이가 없지만, 빚은 만두 모양이 예쁘고, 밑면이 타지 않고, 더군다나 맛이 아주 특별했다고 한다.

 

그후 1800~1900년대 초 원세개가 천진에서 군대를 훈련시키던 중, 우연하게 구불리 만두를 먹게 되었고, 그 맛이 좋아 이를 북경에 있는 서태후에게 선물로 갔다 주었다고 한다. 그 후 서태후가 구불리 만두를 좋아하게 되었으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는 설이 전해 온다.

 

두 번째 유래

 

중국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이 맹획을 공격할 때, 어떤 사람이 "남만(남쪽 오랑캐)에서는 사람을 죽여서 그 머리를 제물로 하여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있는데, 그러면 신이 음병(은밀하게 도움을 주는 병사)을 보내 준다는 설" 이 전해 오며 그렇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명은 그대로 하지 않고 양고기와 돼지 고기를 섞어 소를 만들고 밀가루로 싸서 사람의 머리 모양을 만들어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를 후세 사람들이 음식 이름을 '남만의 머리'라는 의미로 만두라 했다가 음식 명칭인 만두로 변화된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에 만두가 들어온 시기

 

고려 시대로 추정하며 발효시킨 찐빵과 비슷한 것이었다. 가루에 술을 넣어 부풀린 반죽을 찐 것으로 중국의 만두를 가리키는 말이다. '고려사'에는 충혜왕때 궁 주방에 들어가 만두를 훔쳐 먹은 자를 처벌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만두란 말이 처음 나온책은 '영접도감의궤'(1643)에 처음으로 나오는데, 중국에서 온 사신을 대접하기 위하여 특별히 만들었고, 그 후에는 궁중의 잔치에도 종종 차렸다고 합니다.

 

궁중잔치 기록에는 생치만두, 골만두, 생복만두, 진계만두, 생합만두 등이 나옵니다. '이순록'에는 "인조가 전복 만두를 좋아 했는데 생신날에 왕자가 비와 함께 동궁에서 직접 만두를 만들어 가지고 새벽에 문안을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800년대의 '음식방문'의 생합만두는 "좋은 생합을 골라 만두 소처럼 만들어 넣고 녹말을 묻혀서 데쳐 초간장에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병시'라고 하는 음식이 나오는데, 밀가루를 반죽하여 둥글게 만들어, 주름을 잡지 않고 반으로 접어 반달 모양으로 빚고 장국에 넣어 끓인 만두국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