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성을 끼고 도는 "북악산 342.5m" 우정 산행

2014. 5. 21. 13:30☎청파산행과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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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성을 끼고 도는 "북악산342.5m 우정 산행

 

 

 

 

청파 일행의 서울 북악산 342.5m 우정 산행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70여 평생 인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어 살아왔다.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45년여전 현역 시절, 사단 작전 상황실 업무 취급 관련 ‘2급비밀취급인가를 내는데, 그 인가 서식에 부모형제를 제외한 제3자가 나를 '인보증' 해줄수 있는 사람 이름을 적는 양식앞에 나는 고민 해야 했다.

 

그뜻은 만에 하나 내가 무슨 사고를 치거나 불가피 하게 피치못할 일을 저질렀을 때 나를 보증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기록 하라는 것인데, 쉽게 생각하면 아무나 친한 사람 이름을 쓰면 되는 일이지만, 나는 그 빈 칸에 이름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쉽지 않았다.

 

그것은 반대로 내가 세상을 살면서 주의 사람들에게 신뢰 받는 대인 관계를 펼쳐 살지 못했다는 이야기와 같은 뜻이라 그때 그 비취급인가를 계기로 나는 나를 다시 돌아 보는 계기로 삼아 주위 사람들로 부터 신뢰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깨우침을 얻게 되었다.

 

그 후 나에 대인 관계는 다방면으로 개선 효과를 얻어, 2014517일은 내 일생에 가장 소중한 인연으로 서로를 신뢰하는 , 후배, 친구 일곱 사람이 만나 모처럼 우리나라 수도 서울의 도성길북악산342m (백악산) 산행을 하기로 한 날이다.

 

오전 10시 수도권 전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일행들을 만나,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효자동, 청와대를 지나 부암동 고개 그러니까‘1968121일 무장공비 침투 사건때 김신조를 비롯한 31명이 청와대 경비팀과 치열한 격전을 벌였던 곳부암동 고개에서 내려 여기서 부터 북악산 산행을 시작해야 되는데, 이곳에는 고 최규식 경무관추모 동상이 있는 곳이다.

 

북악산 산행을 위해선 반듯이 유념해야 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누구를 막론하고 주민등록증이나 이를 가름할 수 있는 신분증을 지참하고, 창의문 안내소에서 간단한 서류 작성을 하고, 임시로 내 주는 출입증을 목에 걸고서야 본격적인 산행을 할 수 있다.

 

또한창의문안내소는 매주 월요일 휴관 하고, 개방 시간은 하절기(3~10월 오전 9~오후4시까 입장을 할 수 있고, 동절기(11~2) 오전10~오후 3시까지 이며, 퇴장 시간은 하절기 오후 6, 동절기 오후 5까지 이다. 그런데 만약 이를 모르고 증명서를 지참 않고 왔다간 누구를 막론학 헛걸음 치고 돌아가게 된다.

 

그런데 하필이면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우리들의 북악산 산행날이 토요일인데다,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초, , 고생 수학여행이 제한 되다 보니, 예상외로 많은 초, ,고등 학교 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북악산 산행길에 나선 관계로 많은 인파가 장사진을 이룬 가운데 우리도 출입증 교부(0565)를 받고 보니 오전 1015분이다.

 

이곳 북악산은 19681211.21사태로 출입이 통제된 후, 2006212(정월대보름)을 기해 전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선발한 39명의 일반인과 노무현대통령, 권양숙 여사가 북악산 정상까지 2.3킬로에 이르는 구간에 걸처 시범 답사를 한 후, 그해 41일부터 인터넷 예약자에 한해 개방된 탐방 코스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 예약은 필요가 없다. 창의문 안내소 통과해 북악산 산행 코스는 마치 중국의 황산을 오를 때 처럼 가파르게 이어지는 돌 계단 및 데크목 계단을 약 1,000여개 정도 올라야 북악산 정상에 오를 수 있는데, 북악산 정상(백악산) 지나말바위 안내소를 나설때까지 전 구간에 걸쳐 간격을 두고 군인들이 사복을 입고 경계를 하고 있어, 절대로 군사 시설이나 청아대 방향으로 사진을 찍어서는 안된다. 만약 사진을 찍었을땐 그 자리에서 찍은 사진을 삭제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너무 경계가 삼엄하여 다소 부자유 스럽다는 생각이 들 수 도 있지만 , 남북이 서로 총을 마주대고 대치하는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 청아대가 위치한곳인 만큼, 이정도의 불편은 감내를 해야 한다. 그러나 반대로 청아대 반대편 돌담길 넘어로 보이는 조망은 멀리 북한산 족두리봉, 비봉, 사모바위, 보현봉, 백운대, 노적봉까지 한 눈에 들어와 조망이 하이칼라라 할 정도로 시원 스럽다.

 

때는 바야흐로 아카시아꽃 피는 시기가 되어 부암동, 평창동 일대에 흐드러지게 핀 아카시아꽃 향기가 오랜만에 산내음을 맞는 나에겐 그렇게 싱그러울 수 없다. 암문 지나 돌고래 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학생들 수십명과 함께 도착한 관광해설사의 서울한양 도성길 이야기 해설이 얼마나 구수한지 귀에 솔깃해 좀더 듣고 가고 싶지만, 예정된 산행길이 있어 서둘러 일어서는 마음이 서운하다.

 

쉼터 지나 고도를 한층 더 높힌 오름길은 지금까지 지나온 코스는 저리가라 할 정도 가파르게 이어지는데, 그나마 다행인것은 그래봐야 북악산 산행길 전체 구간이 약 3킬로 약간 더 되는 만만한 코스여서 누워 떡먹기 널널 산행이라 산행시작 1시간이 채 안되어 북악산 정상백악산342.5m 올랐다.

 

정상에서 잠시 일행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다시 올랐던 코스를 뒈 돌아 50여미터 내려서다 북악스카이웨이 방향을 바라보고, 진행 하다. 19681.21사태 당시 수십발의 총을 맞고도 굿굿한 모습으로 살아있는 1.21 사태 소나무 지대를 지나, 청운대 나무계단길 따라 또 다른 암문을 한곳 지나 '곡장'이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일대 조망은 절정에 이른다.

 

그런가 하면 오른쪽으로 눈을 돌려 저 아래 성북동 방향을 보면 한 시절, 유명을 떨쳤다는 '삼청각'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아카시아 숲속에 자리하고 있는것을 바라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갑자기 배꼽 시계가 신호를 보내 시간을 보니, 정오 12시가 막 지나 마침 목도 마르고, 출출하기도 해서 성곽길 한 편 소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막걸리라도 한잔 가볍게 할량이었는데, 어디서 보았는지 경계근무 군인이 다가와서 여기선 절대 술을 드실 수 없다는 소리에, 간단히 간식을 나누어 먹고 숙정문 방향으로 하산을 서두른다.

 

숙정문(북문)에 도착해 몇몇이 기념 사진을 찍다 보니, 뜻밖에 함께 산행을 하신 일만 선생님이 보이질 않아 서둘러 일어나 선생님을 찾아도 모습이 보이질 않아말바위안내소방향으로 먼저 가신 것으로 짐작 하고, 말바위에 도착하니 마침 선생님께서 전화가 온다. 당신은 숙정문 지나 삼청각 방향으로 우리들이 앞선줄 알고 내려가셨다고 말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앗차 하는 순간에 선생님과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 그렇치만 이곳 북악산은 다른 지역 산행때와 달리 출입 제한이 구간이라 한 번 출입통제소를 나왔다 다시 들어 갈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하산해서 종로5가 광장시장에서 뒷풀이를 하기로 약속한 장소에서 만나기로 선생님과 전화를 끊고,

 

우리는 소나무 그늘 아래 잠시 자리를 잡고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배낭에서 기다리는 시원한 막걸리를 내어, 형님 먼저 아우 먼저 나눠 마시는 그 시원한 막걸리 맛이 얼마나 꿀맛이던지...

 

그렇게 잠시 목을 축이고 우리는 서둘러 삼청공원, 삼청동길숲속도서관길을 지나 북촌한옥마을을 지나다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북촌 한옥마을 탐방을 하며 안국동 방향으로 가는데, 얼마나 많은 외국인과 일반 관광객들이 한옥마을을 찾았는지 놀라게 된다.

 

이곳 북촌 한옥마을은 가야동까지 이어지다 '헌법 재판소'로 근처에서 끝이나고 우리는 서둘러 일만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안국역에서 종로3, 그리고 다시 종로59번출구까지 전철을 이용해 달려가니, 간발의 차이로 일만선생님께서 먼저 오셔 우리를 기다리시다 반가히 맞아 주신다.

 

이어 우리는 광장시장 단골집 박가네빈대떡집” 3층에 자리를 잡고, 이날 북악산 산행길에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했던 뒷 이야기와 일만 선생님의 '사람사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어 잠시 "남자들이 흘리지 말아야할 눈물"까지 흘리며, 이날 산행의 뒷풀이를 모두 마치고 다음 산행에서 다시 만나것을 약속하며, 아쉬운 작별속에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창의문 입구 풍경

 

 

고 최규식 경무관 동상

 

 

 

성곽길 안내판

 

 

 

창의문안내소 오름길

 

 

안내소에서 받은 내 출입증

 

 

인왕산 방향 풍경

 

 

또 다른 성곽길 안내도

 

 

창의문 지나 북악산 오름길 풍경

 

 

우리들이 산행을 시작할때 벌써 말바위안내소를 입장한 사람들이 하산을 하고 있다.

 

 

우리들이 산행을 시작할때 벌써 말바위안내소를 입장한 사람들이 하산을 하고 있다.

 

 

여기가 중국 황산에 오르는 길이 아닙니다.

 

 

나와 함께 산행에 나선 일행들 모습

 

 

멀리 족두리봉도 보이고

 

 

 

 

 

자북정도란? 자하문 북편산 정의로운 길이라는 글 뜻 正道은 곧 국가 안보를 뜻하는것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산.

 

북악(北岳백악(白岳백악산(白岳山)이라고도 한다. 높이 342m. 기반암은 화강암이다. 인왕산·북한산·낙산·남산 등과 함께 서울분지를 둘러싸고 있으며, 서울 북쪽 경복궁의 진산이다. 1395(태조 5) 시축한 서울성곽(사적 제10)의 기점으로서 북악산에서 낙산·남산·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쌓았다.

 

정도전이 성저(城底)를 측정한 뒤 천자문의 글자 순서에 따라 97구로 나누고 북악산의 정상에서부터 각 구마다 순서대로 번호를 동쪽으로 붙여 나가면서 97번째 글자인 조()자에서 다시 북악산에 이르도록 했다. 청와대가 자리잡고 있어 일반인의 등산이 금지되었다. 서쪽 인왕산과의 안부에 자하문(紫霞門)이 있으며, 남동쪽 기슭에 삼청 터널과 삼청공원이 있다.

 

 

 

 

 

백악산 정상에서 일행들과 함께

 

 

일만 선생님의 열정

 

 

우측 소나무에 동그랗게 흰색을 칠한 구멍이

1968.1.21 무장공비 사태때 교전중 총알을 맞은 자국이다.

 

 

 

 

 

 

 

 

 

 

 

 

 

 

 

 

 

 

 

 

 

 

 

 

 

 

 

 

 

 

 

 

 

 

삼청각

 

 

 

 

 

 

 

 

 

 

 

 

 

 

 

 

 

숙정문 현판

 

 

 

 

 

아버지의 교훈 

 

지금은 저 하늘에 계신 나에 아버지께서 어린시절 들려주신 친구에 관한 옛날 이야기하나가 고희를 넘긴 지금도 나에겐 큰 교훈으로 남아 소개를 한다.

 

이야기는 옛날 어느 부잣집에 외동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은 허구헌날 아버지가 바라는 공부나 일은 안하고 밖으로 싸 다니며 곤드래 만드레 술이나 먹고, 난봉이나 부리며 살아 어느날 아버지가 아들의 잘못된 버릇을 고치기 위하여 망나니 아들에게 제안을 했다. 아들아! 너는 그렇게 주위에 친한 친구가 많다고 자랑을 하니, 그렇다면 너의 친한 친구가 몇 명이나 되는 아버지에게 자랑해 줄 수 있냐고 말하며,

 

네 아버지는 친한 친구라고는 딱 한 사람밖에 없어 외롭다며 너가 참 부럽다고 했더니, 아들은 의기양양해서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로 하자 아버지는 어느날 집에 기르던 커다란 돼지를 한 마리 잡아 죽은 사람의 시체처럼 광목에 둘둘말아 머슴을 시켜 지게에 지고, 아닌 밤중에 아들이 가장 친하다는 친구네집을 찾아가 아들이 내가 피치못할 사정으로 사람을 죽여 포졸들에게 쫓기고 있으니, 자네가 나를 좀 도와 시체를 묻어 달라고 간청을 해보라고 시켰다.

 

그러자 그렇게 친하다는 아들의 친구는 이야기를 듣자 마자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며, 대문을 꽝 닫아 버리고 두 번 다시 얼굴도 내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럼 또 다른 친구를 찾아가 부탁 해보자고 아들을 설득해 그 밤중에 무려 10여명도 넘는 아들의 친구들을 찾아 다니며 애걸복걸 사정을 해보았으나, 그렇게 친한 친구가 많다고 자랑했던 아들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문전박대하며 외면하고 말았다.

 

그렇게 되니 아들은 아버지 앞에 체면이 말이 아닌체 코가 열자도 더빠진 모습으로 머리를 숙이고 면목없어 하는 아들에게 아들아~! 그러면 이번에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 친구 집으로 가서 부탁을 해보자고 하여 새벽이 다될무렵 아버지 친구네집을 찾아가 대문을 두드리니 잠자던 모습으로 뛰어나온 아버지의 친구께서 아니 이 새벽에 웬일이냐고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머리를 숙이고 여보게 사실은 여차저차 해서 내가 그만 실 수로 사람을 죽여 지금 포졸들에게 쫓기고 있으니, 나좀 도와 달라고 간청을 하자 아버지의 친구께는 그 말을 듣자 마자 대문을 활짝열어 어서 빨리 들어오라고 하더니 누가 볼까 얼른 대문을 닫고 아버지 친구의 집 뒤곁으로 가 손수 괭이와 삽으로 땅을 파고, 날이 새기전 어서 묻자고 하며 시체를 지계에서 내려 구덩이 넣으려 할 때,

 

아버지는 친구의 손을 잡고 여보게 사실은 여차저차 이만저만한 일이 있어 아들의 잘못된 버릇을 고쳐주기 위하여 돼지 시체처럼 보이게해서 아들이 그렇게 많다는 친구들의 집을 다 돌아다니며 사정을 해보았으나 하나같이 문전 박대를 당했는데, 자네가 이렇게 우리 아들앞에 좋은 친구 모습을 보여줘 고맙다며, 이튼날 양가가 큰 잔치를 벌여 빗나간 아들의 인생을 바로 잡아 주었다는 이야기다.

 

이후 아들은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의 우정에 감동해 그동안 세상을 잘못 살아온 것을 반성하며, 열심히 공부 해 과거 시험도 합격하고 성공한 사람이 되어, 부모형제를 공경하며 화목하게 잘 살았다는 옛 이야기다. 그만큼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좋은 친구를 사귄다는 것이 얼마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이야기 하고 싶어서다 

 

 

 

 

 

 

 

 

 

 

 

 

 

 

 

 

 

 

 

 

 

 

 

 

 

 

  

 

 

  

 

   청파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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