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의 중국이 거리 줄거리

2013. 5. 22. 20:04☎청파의사는이야기☎

728x90

 

 

 오정희의 중국이 거리 줄거리  

 

 

언어의 풍부한 색채 속으로

오정희는 여성이 경험하는 세계를 뛰어난 문체로 형상화한 작가다. 인간이 존재하고 있는 공간과 시간, 그리고 인간의 심리 변화를 세밀하게 표현하는 그녀의 작품들은 소설의 미학적인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곤 한다. 마치 조각가처럼 한 문장, 한 문장을 세심하게 조형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녀는 비교적 과작(寡作)인 편이다.


「중국인 거리」와 함께, 유년기의 고통스러운 성장을 그려 내고 있는 「유년의 뜰」, 인간의 육체가 지닌 섬뜩한 욕망과 생명력에 대한 집착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동경(銅鏡)」, 여성을 바람처럼 떠도는 존재로 만드는 역사적 트라우마, 가부장적 사회의 억압적 구조 등을 복합적인 시점으로 조망하고 있는 중편 「바람의 넋」 등 그녀의 작품은 여전히 우리를 고민하게 한다. 여성은 생물학적인 기관으로 규정될 수 있는 존재인가? 사회가 여성을 규정하는 가치들, 예컨대 '여성성', '모성성' 등은 과연 자연적인 것으로 파악될 수 있는가? 이런 가치들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인가? 그녀의 작품이 우리에게 묻는 근본적인 질문들은 너무도 다양하며, 여전히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소설의 시점이 된 1959년 5월의 중국인 거리.

낯선 성장의 시간, 낯선 타자

「중국인 거리」는 아홉 살 때 해안촌 근처의 중국인 거리로 이사 왔던 한 소녀의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된다. 정확히 말한다면 유년기를 거쳐 성장해 버린 후의 '나'가 과거 어린 시절의 '나'에 대해서 설명하고 묘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라는 존재는 의심할 수 없는 동일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다. 시간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화되어 나타난다. 이런 나'들'이 하나의 존재로 이어지도록 해 주는 것은 바로 기억이다. 유년기의 기억에 대해서 서술하는 순간, 과거의 서술되는 자아와 현재의 서술하는 자아는 연속성을 지니게 된다. 「중국인 거리」는 우리가 육체의 어중간한 상태를 견딜 수 없어 되도록 빠르게 지나쳐 버려야 했던 고통스러운 성장의 지점으로 돌아가고 있다.

 

 

 

 

최근의 중국인 거리. 인천의 관광 명소가 되어 가고 있다.

거울에 비친 나는 늘 낯설다. 나의 몸이 변화하고 있는 순간에 나를 바라본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중국인 거리」에서 나타나는 공간, 시간, 인물들의 이물감은 근본적으로 일인칭 서술자가 겪고 있는 낯선 변화와 결부되어 있다. 우선 제목이 명시적으로 보여 주는 것처럼 이 소설은 해안촌 근처의 중국인 거리를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식구들과 함께 시골에서부터 트럭을 타고 이사 와서 도착한 중국인 거리는 '나'에게 지독히도 낯선 느낌을 줄 뿐이다. 그녀가 성장기를 보내게 될 이 공간은 사건이 발생하는 단순한 무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여타의 현대소설 작품들에서도 나타나는 것처럼 공간은 그곳에 속한 인간의 심리나 행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중국인 거리」에서도 낯선 공간들은 존재의 속성을 구조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큰 덩치에 비해 지붕의 물매가 싸고 용마루가 밭아서 이상하게 눈에 설고 불균형해 뵈는 양식의 집들이었다. 그 집들은 일종의 적의로 냉담하고 무관심하게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이사 온 '나'의 눈에 비친 중국인들의 집은 '나'가 중국인들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을 효과적으로 집약하고 있다. 이웃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그들은 어린 소녀의 눈에 불편하고 이상하게 다가올 따름이다. 그렇기에 중국인의 푸줏간에 고기를 사러 가는 것도 그녀에게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상 속의 작은 모험처럼 생각되기도 하는 것이다. 타자(他者)1)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아를 형성해 가는 아이들에게 이질적인 타인들은 끊임없는 관심의 대상이 된다.

 

통틀어 중국인 거리라고 불리는 동네에, 바로 그들과 인접해 살고 있으면서도 그들 중국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아이들뿐이었다. 어른들은 무관심하게 그러나 경멸하는 어조로 '뙤놈들'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들과 전혀 접촉이 없었음에도 언덕 위의 이층집,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한없이 상상과 호기심의 효모(酵母)였다.

 

여기에서 중국인은 실제의 특정한 타인들을 일컫기도 하지만, 상징적인 존재들이기도 한다. 나와는 '다른' 존재의 모습을 가장 확실하게 드러내는 이들이 바로 이방인이 아니던가. 이방인은 두려움의 대상인 동시에 매혹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타인의 속성은 '나'와 한 중국인 청년의 관계에서 가장 아름답게 드러나고 있다.

 

나는 잊혀진 꿈속을 걸어가듯 노란빛의 혼미 속에 점차 빠져들며 문득 성큼 다가드는 언덕 위의 이층집들과 굳게 닫힌 덧창 중의 하나가 열리고 젊은 남자의 창백한 얼굴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중국인들의 집이 늘어선 언덕 위의 어떤 집에서, 일인칭 서술자는 젊은 청년의 얼굴을 보게 된다. '나'가 같은 동네에 사는 매기 언니라는 한 양공주의 집에서 처음으로 어른들의 음료인 술을 마시던 순간, 그녀는 우연히 건너편의 그 청년과 또 눈이 마주치게 된다. 창문 사이로 아련하고 아름답게 나타나는 청년의 얼굴은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서술된다. 그때마다 소녀가 느끼게 되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은 우리도 한번쯤은 겪었을 감정의 성장통(成長痛)일 것이다. 같은 공간에 속한 타인들을 두려워하던 그녀가 타인에게 매혹되는 것은 '나'와 '너'의 관계가 지니는 야누스적인 특성을 온전히 드러낸다.


나와 너는 다르기에, 우리의 관계는 평화로울 수만은 없다. 낯선 이들이 맺는 관계가 함축하고 있는 갈등과 폭력성은 미국과 관련된 여러 측면을 통해서 잘 나타나고 있다. 주인공의 동네에는 미군들과 매매춘을 하는 여성들이 살고 있다. 소녀는 '매기 언니'라고 불리는 이웃집 언니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 친구 치옥이의 집에 세 든 그녀는 미군 흑인 병사와 함께 살고 있다. 매기 언니와 한 침대를 쓰는 흑인 병사, 매기 언니의 '미제' 물건들, 이런 것들이 치옥이와 주인공에게는 모두 관심의 대상이 된다. 6·25라는 역사적 갈등 상황을 시작으로 우리 주위에 급속도로 자리 잡은 미국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경험되고 있었다.


 

소녀와 소녀의 오빠를 비롯한 동네 아이들이 미군 부대 주위를 지나갈 때 일어난 사건은 외부에서 온 세력이 지닌 잔혹한 힘의 실체를 보여 준다. 부대 안의 테니스 코트에 모여 칼 던지기를 하고 있던 미군 병사들은 칼의 방향을 바꾸어 아이들을 향해 칼을 던지고, 칼은 아이들 근처를 빠르게 지나 뒤편에 있던 고양이를 맞춘다. 고양이는 아이들을 대신하는 일종의 희생양인 것이다. 오줌을 지린 채 도망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담담하게 서술된다.


흑인 병사가 매기 언니를 창문 밖으로 밀어 버리는 사건 역시 폭력적인 타인의 모습을 예증한다. 그가 국제결혼을 해 줄 것이라고 믿었던 매기 언니는 그에 의해 참담하게 버려진다. 아마도 어떤 백인 병사와의 관계로 낳았을 혼혈아 '제니'의 엄마이기도 했던 그녀는 세상 밖으로 밀려갔다.

 

 

인천 자유공원에 세워진 맥아더 동상. 소설 속에서 미군의 위엄을 상징하고 있다.

 

이처럼 낯선 것들과 조우하면서 지나가는 성장의 시간은 고통스럽기 그지없다. 사회적 역사와 개인적 역사가 교직되면서 형성되는 '나'는 낯선 세계와 결국 화해하지 못한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웃의 그 중국인 청년은 자신들이 축제를 할 때 쓰는 물품과 먹거리를 선물로 건넨다. 감정을 교환하는 표식이 되는 선물이 소녀에게 주어졌으나, 소녀는 그의 선물을 금이 가서 쓰지 않는 항아리 속에 넣어 둔다. 이것은 그의 감정을 마치 유물처럼 매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자신의 은밀한 세계 안에 보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소녀는 그의 선물에 화답하지 않음으로써, 감정의 '성장통'과 일종의 결별 의식을 치른다.

죽음을 향해 사라져 가는 여성들

이 소설의 일인칭 서술자가 유년기를 이토록 이질적이고 불편한 것으로 인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소녀의 육체가 성인 여성의 육체로 변화해 가는 필연적인 과정과 결부되어 있다. 가슴이 나오는 등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신체적 변화는 아이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만일 신체적 변화가 아이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면, 아이는 이렇게까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엄마'처럼 '엄마'가 될 미래의 시간이다. 엄마의 임신은 소설의 주된 서사적 분기점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수채에 쭈그리고 앉아 으윽으윽 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임신의 징후였다. 이제 제발 동생을 그만 낳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처음으로 여자의 동물적인 삶에 대해 동정했다. 어머니의 구역질은 비통하고 처절했다. 또 아이를 낳게 된다면 어머니는 죽게 될 것이다.


밤이 깊어도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마악 생기기 시작한 젖망울을 할머니가 치마 말기를 뜯어 만들어 준 띠로 꽁꽁 동인 언니는 홑이불의 스침에도 젖이 아파 가슴을 싸 쥐며 돌아누워 앓았다.

 

엄마가 일곱 번째 임신을 하고, 여덟 번째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순간은 아이에게도 단절과 변화의 시간이 된다. 엄마와 아이의 육체적 경험은 동시 발생적이다. 엄마가 여덟 번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서술자도 신체적 변화를 겪는다. 이 변화는 순차적으로 진행되어, 소설은 엄마의 출산과 서술자의 초경이 연쇄되는 것으로 종결된다.

 

내가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어머니는 지독한 난산이었지만 여덟 번째 아이를 밀어내었다. 어두운 벽장 속에서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절망감과 막막함으로 어머니를 불렀다. 그리고 옷 속에 손을 넣어 거미줄처럼 온몸을 끈끈하게 죄고 있는 후덥덥한 열기를, 그 열기의 정체를 찾아내었다. 초조(初潮)였다.

 

아이가 보기에, 성체가 된 여성의 몸은 한번도 자신의 의지로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 여성이 임신할 수 있다는 생물학적인 가능성은 늘 여성의 삶을 출산이라는 노동에 종속되게 만드는 요인인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는 자신이 잠재적으로 '엄마' 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것에 불안과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엄마의 출산은 지금 순간적으로 끝났지만, 그녀의 임신과 출산은 또 언제 어떻게 반복될지 모른다. 그리고 그녀의 출산이 완전히 끝난다 해도, 성장한 소녀는 대를 이어 또 다시 임신과 출산에 복무하게 될 것이다. 거부하기 어려운 생물학적 성(性)은 개인을 억압하는 기제가 된다.


여성의 육체가 사회의 존속을 위해 도구화되고, 여성이 '모성'으로만 규정되는 상황은 여성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불편하게 만든다. 「중국인 거리」는 여성들이 모두 죽음을 향해 사라져 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일시적으로 살아남는 여성들은 가부장적 사회가 요구하는 출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거나, 수행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주인공인 소녀와 소녀의 엄마처럼 말이다.


반면, 아이를 낳을 수 없거나 사회의 규범적인 관계하에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성들은 궁극적으로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다. 서술자의 친척 할머니는 아이를 한번도 낳아 본 적이 없다. 여동생에게 남편을 빼앗기고 버려진 그녀는 조카딸인 서술자의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 것이다. 혼혈아인 제니를 고양이의 새끼를 보듯 혐오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할머니, 새끼를 낳은 고양이에게 "쥐새끼를 낳았구나"라고 되풀이해서 말한 뒤 고양이가 새끼들을 모두 먹어 치우고 머리만 남기자 그것을 갖다 버린 할머니. 그녀의 모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모성적인 존재에게 기대하는 자비롭고 희생적인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여기에서 우리는 여성의 모성성은 결국 사회가 여성들에게 덧씌우는 일종의 신화적인 이미지임을 보게 된다. 정갈한 성품을 지닌 할머니가 죽을 때가 다 되어서 자신의 남편과 다시 만나 남편의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는 일화는 여성의 육체가 단순한 출산 기계가 아니라 성적 욕망을 지닌 역동적인 대상임을 일깨운다.

 

공원 뒤쪽의 성당에서는 끊임없이 종을 치고 있었다. 고양이를 바다에 던질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우리 뒤를 따라오며 머리칼을 당기던 소리였다. 일정한 파문과 간격으로 한없이 계속되는, 극도로 절제되고 온갖 욕망과 성질을 단 하나의 동그라미로 단순화시킨 그 소리에는 한밤중 꿈속에서 깨어나 문득 듣게 되는 여름 밤의 먼 우렛소리, 혹은 깊은 밤 고달프게 달려가는 기차 바퀴 소리에서와 같은, 이해할 수 없는 두려움과 비밀스러움이 있었다.
수녀가 죽었나봐.
누군가 말했다. 끊임없이 성당의 종이 울릴 때는 수녀가 고요히 죽어 가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미군들이 칼을 던져 죽여 버린 고양이를 바닷가 방죽 아래 버리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은 성당의 종소리를 듣는다. 지고한 천상의 소리처럼 들리는 종소리 뒤에는 고결한 여성의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모두 안다. 경건한 묘사와 현실의 비정함 사이의 간극이 이 장면을 비극적으로 만든다. 수녀들은 시간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성스러운 여성-타락한 여성'의 이분법은 한편으로는 수녀의 이미지로, 다른 한편으로는 양공주의 이미지로 나뉘어 나타난다. 사회가 바라는 무조건적인 '성스러운 여성'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실체인 것처럼, '타락한 여성' 역시도 존재하기를 그친다. 우리의 현실 곳곳에 파고들어 자리하고 있는 '공공(公共)의 여성'에 대한 신화. 그것은 단지 가부장적 사회가 상상해 낸 여성의 왜곡된 허위적 이미지일 따름이다. 여성에 관한 가부장적 이분법에 맞는 개인으로서의 여성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살 수 없는 여성들은 다만 사라질 수밖에 없기에 억지로 여성이 될 수밖에 없는 소녀 역시 언젠가는 이 세상의 바깥으로 사라지게 될지 모른다.

낯선 시간의 얼굴을 마주하다

이처럼 외면하고 싶은 성장통의 시간을 대면하는 것은 '나'라는 개인과 나를 구성한 사회·역사·정치·문화적 현실을 복합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된다. 현재의 나를 직시하기 위해서는 내 몸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들을 다시금 어루만져 볼 수밖에 없다.

 

"나는 커서 미용사가 될 거야."
삼거리의 미장원을 지날 때 치옥이가 노오란 목소리로 말했다.
"회충약을 먹는 날이니 아침을 굶고 와야 해요."
선생의 지시대로 치옥이도 나도 빈속이었다.
공복감 때문일까, 산토닌을 먹었기 때문일까, 해인초 끓이는 냄새 때문일까. 햇빛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얼굴도, 치마 밑으로 펄럭이며 기어드는 사나운 봄바람도 모두 노오랬다.

 

「중국인 거리」는 성장하고 싶지 않은 여성의 성장을 복합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 되고 있는 전후의 한국 사회에 비해서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가? 해인초의 노란 냄새처럼 현기증 나는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금 「중국인 거리」를 읽는다.

더 생각해볼 문제들

1.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래로 기억과 정체성의 상관관계는 문학에서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기억을 둘러싼 현대의 존재론적 화두는 최근의 영화 『메멘토』나 『이터널 선샤인』 등에서도 흥미롭게 형상화되고 있다. '나'의 자기 정체성은 어떻게 확인되는 것인가? 한 개인이 지니고 있던 기억이 모두 상실되었을 때, 잊혀진 자아와 현재의 자아 사이에는 연속성이 존재하는가? 「중국인 거리」에서 기억을 현재화하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2. 인간의 성적 정체성은 사회·경제·정치·문화적 역학 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함으로써 생산된다. 육체가 성장하는 과정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억압이 가해진다. 성장하고 싶지 않은 개인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육체가 성장하는 당혹스러운 과정은 우리에게 어떤 효과를 남기는가? 첫 월경을 겪으면서 여성으로 재탄생하는 「중국인 거리」의 일인칭 서술자처럼 우리도 원치 않는 성장으로 당혹감을 느끼지는 않았는가? 남성과 여성에게 사회가 강요하는 보편적 정체성과 '나'의 특수성 사이에서 발생하는 괴리감은 늘 불편함을 낳는다. 성적 정체성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단순한 이분법만으로 설명되기에는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3. 현재 세계의 문화는 시간적·공간적 격차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한국의 거리에서 외국 문화의 요소들과 외국인들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다. 우리는 이들에게 배타적인 태도를 취할 수도 있고, 우호적인 태도를 취할 수도 있으며, 양가적인 태도를 취할 수도 있다. 한국인들과 아시아인들이 결혼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코시안[Korean+Asian] 자녀들이 태어나고 있다. 순수한 '한국', '한민족'이라는 집단은 이전에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민족이 혼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타인들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윤리 의식을 지닐 수 있겠는가?

 

작품해설

1979년 『문학과 지성』 봄호에 발표된 오정희의 단편소설.
작품의 무대가 된 인천의 중국인 거리는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무대가 되었던 지역이며, 한국전쟁의 참담한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공간이다. 소설 「중국인 거리」는 화자인 소녀 ‘나’의 시점을 통해 황폐한 중국인 거리의 삶과 그 속에서 성장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회상의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작가는 아홉살 소녀의 감수성을 통해 중국인 거리에서의 삶들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보다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주인공인 ‘나’의 식구들은 피난지로부터 아버지의 일자리를 따라서 중국인 거리로 이주한다. 소설의 도입에는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낯선 중국인 거리의 풍경이 해인초 냄새라는 후각적 이미지를 통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주인공은 매일 아침 맞은편 집에 사는 양갈보인 메기언니를 보기 위해 메기언니의 동생인 치옥을 만나러 간다. ‘나’는 그렇게 치옥과 함께 메기언니의 방에서 신기한 물건들을 구경한다. 그런 화자의 눈에 우연히 건너편 이층집 중국인 남자의 얼굴이 들어온다. 그를 통해 주인공은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비애를 경험하게 되며, 바로 그것이 성장의 조짐이 된다. 작가는 주인공의 그러한 성장의 과정에 고양이, 메기언니, 할머니의 죽음을 배치한다.
주인공은 지아이들이 칼을 던져 부대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도둑고양이를 죽이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바로 그날 밤 술 취한 흑인이 메기언니를 집 밖으로 던져버리고, 그로 인해 메기언니가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뒤이어 주인공의 할머니가 치매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난다. 일련의 죽음을 경험한 ‘나’는 할머니의 애지중지하던 동강난 비취반지를 자유공원의 맥아더 장군 동상 근처에 묻어버리고서 “인생이란”이라 중얼거리며, “복잡하고 분명치 않은 색채로 뒤범벅된 혼란에 가득찬 어제”에서 “수없이 다가올 내일들”로 나아간다. 이렇듯 통과제의를 거치며 어른이 되어가는 소녀의 모습은 소설의 말미에서 초경을 겪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줄거리

시를 남북으로 나누며 달리는 철도는 항만의 끝에 이르러서야 잘려졌다. 석탄을 싣고 온 화차는 자칫 바닥에 빠뜨릴 듯한 머리를 위태롭게 사리며 깜짝 놀라 멎고 그 서슬의 밑구멍으로 석탄가루를 흘려 보냈다. 집에 가 봐야 노루꼬리만큼 짧다는 겨울 해에 점심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우리들은 학교가 파하는 대로 책가방만 던져둔 채 떼를 지어 선창을 지나 항만의 북쪽 끝에 있는 제분공장에 갔다.

우리는 밀껌으로 풍선을 만들거나 침목 사이에 깔린 잔돌로 비사치기를 하거나 전날 자석을 만들기 위해 선로 위에 얹어 놓았던 못을 뒤지면서 화차가 닿길 기다렸다가 화차가 오면 재빨리 바퀴 사이로 기어 들어가 석탄 가루를 훑고 이가 벌어진 문짝 틈에 갈퀴처럼 팔을 들이밀어 조개탄을 후벼 내었다. 철도 건너 저탄장에서 밀차를 밀며 나오는 인부들이 시커멓게 모습을 나타낼 즈음이면 우리는 대개 신발주머니에 보다 크고 몸놀림이 잽싼 아이들은 시멘트 부대에 가득 석탄을 팔에 안고 낮은 철조망을 깨끔발로 뛰어 넘었다.

나는 해안촌(海岸村) 혹은 중국인 거리라고 불리어지는 동네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다 이 동네는 겨우내 북풍이 실어 나르는 탄가루로 공기가 늘 거무죽죽하게 탁하다 우리가족이 이 도시로 이사를 온 것은 지난봄이다. 어머니는 담배장사를 했는데 단속이 더욱 심해지자 아버지가 석유 대기업소에 취직을 하게 되는 것을 계기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오던 날 새벽에 이삿짐을 풀게 되었는데 우리 집에서부터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진 언덕에는 바랜 잉크빛깔이나 흰색페인트로 벽을 칠한 커다란 이층집들이 길을 사에 두고 나란히 마주보고 서 있었다 엄마는 일곱째 아이를 배고 있었는데 나는 일곱째 아이를 낳게 되면 어머니가 죽게 될 것이란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늙은 중국인들은 아편을 피우기도 하고 중국인거리에는 이따금씩 양갈보들의 늙은 창부타령이 들려 오기도 했다. 늙은 중국인들은 가끔 나와 내 친구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어른들은 그들을 경멸하는 어조로 뙈놈들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밀수업자, 아편쟁이, 마적단, 오랑캐, 백정일 뿐이었던 것이다. 우리 집과 마주보고 있는 이층집에는 내 또래 치옥이라는 아이가 살고 있었다 치옥이의 집 이층은 우리가 매기언니라고 부르는 양갈보와 검둥이 그리고 그들의 아이 제니가 세들어 있었다. 할머니나 어머니는 치옥이네를 양갈보집 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거리에서 적산 가옥들 중 양갈보에게 방을 세주지 않은 것은 우리 집뿐이었다.

그네들은 거리로 면한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거리낌없이 미군에게 허리를 안겼으며 볕 잘 드는 베란다에 레이스가 달린 여러 가지 빛깔의 속옷들과 때묻은 담요를 널어 지난밤의 분방한 습기를 말렸다. 여자의 옷은 더욱이 속엣 것은 방안에 줄을 매고야 너는 것으로 알고 있는 할머니는 천하의 망종들이라고 고개를 돌렸다. 치옥이의 부모는 아래층을 쓰고 위층의 큰방은 매기언니가 검둥이와 함께 세 들어 있었다.

치옥이는 이층의 큰방을 거쳐가야 하는 협실과도 같은 좁고 긴 방을 긴 방을 썼다 때문에 나는 아침마다 치옥이를 부르러 가면 그때까지도 침대 속에 머리칼을 흩뜨리고 누워 있는 매기 언니와 화장대의 의자에 거북스럽게 몸을 구부리고 앉아 조그만 은빛 가위로 콧수염을 가다듬는 비대한 검둥이를 만났다 매기언니는 누운 채 손을 까닥거려 들어오라는 시늉을 했으나 나는 반쯤 열린 문가에 비켜서서 방안을 흘끔거리며 치옥이를 기다렸다 나는 검둥이가 우울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맥없이 늘어진, 두꺼운 가슴팍의 살, 잿빛 눈, 또한 우물거리는 말투와 내게 한번도 웃어 보인 적이 없다는 것이 그러한 느낌을 갖게 한 것이다 매기언니가 외출하고 없을 때면 치옥이와 나는 그 집에 들어가 화장품이며 향수 따위를 구경하기도 하고 유리병, 페티코트, 속눈썹 따위를 만지작거리기도 하였다 푸른 병에 들어있는 박하액을 한 모금씩 마시기도 하고 비로드 상자 속의 악세사리들을 몸에 걸치고 거울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치옥이는 커서 양갈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게다가 매기언니가 치옥이에게 목걸이와 구두와 옷도 모두 준댔다며 자랑을 했다. 할머니는 제니를 짐승의 새끼라고 했지만 치옥이는 제니를 목욕시키고 머리를 빗겨 주는가 하면 밥을 먹여 주기도 했다. 백인 혼혈아인 제니는 다섯 살이 되도록 말을 못했다. 혼자 옷 입는 것은 물론 숟갈질도 못해 밥을 떠 먹여 주면 한 귀로 주르르를 흘렸다.

결국 매기언니가 검둥이의 손에 죽게 되고 제니는 고아원으로 가게 되었다 할머니가 어느 날인가 몸져누운 뒤 얼마 안되어 시골로 가셨듯이 할머니는 어머니의 서모였다. 할머니는 자식한번 실어보지 못했다고 어머니는 말하곤 하셨다 할머니는 중풍에 걸리셨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할머니를 시골로 보내셨다. 그리고 두 계절이 지난 겨울 끝 무렵 할머니의 부음을 들었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반닫이를 어루만지며 한동안 울었다. 할머니가 떠나실 때 공원에 올라가 장군의 동상에서부터 숲 쪽 오리나무까지 할머니 나이만큼 예순 다섯 발자국을 걸어 그 밑에 할머니의 손수건뭉치를 묻었던 나는 두 계절이 지나 예순 번을 세어 할머니의 낡은 유품을 파내어 손에 담아 보았다.

매기언니가 죽고 제니가 고아원으로 가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그 해가 지나자 다시 봄이 되었고 나는 6학년이 되었다. 나는 일년동안 키가 한 뼘이나 자랐고 언니가 쓰던 장미가 수놓인 가방을 들게 되었다. 여전히 석탄을 훔치기도 하며 쥐떼처럼 몰려다니기 했으나 가끔 골방에서 연애소설을 읽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제 집을 훨씬 덜 지었으나 해인초 끊이는 냄새는 여전히 공기를 노랗게 착색시키고 있었다.

한편 치옥이는 치옥이의 아버지가 제분공장에서 피댓줄에 감겨 다리가 끊긴 후 치옥이의 부모는 치옥이를 삼거리의 미용실에 맡기고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오래 전부터 간혹 언덕 위 2층집에서 나를 바라보던 청년이 어느 날인가는 내게 종이 꾸러미를 내밀었다 나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잠근 뒤 종이 뭉치를 끌렀다. 속에 든 것은 중국인들이 명절 때 먹는 세 가지 색의 물감이든 빵과 용이 장식된 엄지손가락 만한 등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금이 가서 쓰지 않는 빈 항아리 속에 넣었다 이전부터 여러 차례 이층집 그 남자의 시선을 느끼곤 했었다. 그는 한마디도 한 적이 없었다. 코허리가 낮고 누른빛의 얼굴에 항상 알 수 없는 미소만 피고 있었을 뿐이다 안방에서 어머니는 상고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으나 나는 이층에 있는 벽장 속으로 몰래 숨어 들어갔다.

나는 어머니의 비명과 언제부터 울리기 시작한 종소리를 들으며 죽음과도 같은 낮잠에 빠져 들어갔다. 내가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어머니는 지독한 난산이었지만 여덟 번째 아이를 밀어내었다. 어두운 벽장 속에서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절망감과 막막함으로 어머니를 불렀다. 그리고 옷 속에 손을 넣어 거미줄처럼 온몸을 끈끈하게 죄고 있을 후덥덥한 열기를 ... 그 열기의 정체를 찾아내었다 그것은 바로 초조였다.

 

「완구점 여인」에서 「옛우물」까지

어릴 적 가정부로 들어왔던 여인은 어느 순간, 소녀의 어머니 자리에 앉는다. 계모는 쉴 새 없이 아이를 낳으면서 차츰 소녀에게 냉담해지고 아버지 역시 소녀에게 무관심해진다. 소녀는 동생의 죽음을 겪으며 세상에 대한 거부와 적의를 품는데, 이는 도벽·살해·방화 욕구 등으로 나타난다. 어두운 교실에 혼자 남아 서랍을 뒤지면서 “뻣뻣한 스커트를 허리께까지 훌쩍 걷어 올리고 그대로 선 채 오줌을 누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거나, 분필 토막으로 변소에 “선생님 나쁜 년, 엄마 나쁜 년”이라고 낙서를 해댄다.

완구점 여인에게 매혹된 소녀는 날마다 상점의 유리문을 통해 불구의 여인을 바라보거나, 훔친 돈으로 문구점에 있는 오뚜기를 사 모은다. 어느 날 소녀는 시간이 너무 늦어 집에 갈 수 없다는 핑계로 문구점 여인과 함께 나란히 누워 동성애적인 접촉을 갖는다. 얼마 후 완구점 유리문에 ‘내부수리중’이라는 팻말이 붙더니, 그 자리에 새로이 다방이 들어선다. 소녀는 “딱딱한 껍질 속에서 죽은 동생의 환상과 어머니에 대한 증오와 단 첨가된 춘화와도 같은 여인과의 정사를 안고 달팽이처럼 한껏 움츠리며 살아갈 것”이라는 결심을 한다.

「완구점 여인」은 주위 세계로부터 내동댕이쳐진 한 소녀의 고아의식과 방황,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몇몇 삽화와 이미지만이 몽롱하게 드러내 보이며, 오정희는 존재 깊숙이 자리 잡은, 때로는 끔찍할 정도의 불안, 고뇌 등을 예리한 칼날로 환부 그대로를 도려내듯 속속들이 파헤쳐 보인다. 소설 곳곳에는 거부당한 영혼들과 철저히 단절된 삶, 죽음의 냄새들로 가득 채워지게 된다. 그것이 바로 오정희 문학이다.

한국 여성소설의 한 정점에 소설가 오정희(吳貞姬, 1947~ )의 자리가 있다. 그녀의 소설들은 “개인적·존재론적 차원에서 신화적인 차원, 원형 상징의 공간”(이혜원)으로 나아간다. 작가가 즐겨 다루는 것들은 “삶의 불구성, 낙태, 불임, 가족 간의 왜곡된 관계, 비정상적인 성장, 중산층 중년여성의 심리적 갈등”(하응백)들이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그녀의 소설들이 보여주는 높은 미학적 성취이다. 그 때문에 그녀의 작품들은 한국 여성소설의 한 계보학에서 정점의 자리를 확고부동하게 차지하는 것이다.

오정희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완구점 여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을 때 그녀는 갓 스물을 넘긴 앳된 소녀였다. 그녀는 벌써 19세 때 “정결한 사랑, 문학과 나 사이에 어떤 매개항도 두지 말 것. 아름답고 힘 있는 문학을 살(生) 것.”을 결심한다. 그녀가 등단작을 쓰던 스무 살 무렵 그녀의 소설은 이미 충분히 무르익어 농염하게 실존의 의미를 머금고 있다. 삶의 현존을 감싸고도는 의미에 대한 통찰력, 겹으로 둘러싸인 의미를 명료하게 포착해내는 복합적이면서도 명확한 구도, 때로는 섬뜩할 정도로 그로테스크하고 대담한 작중인물들의 행위, 암시와 절제로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문체의 기교, 집요한 묘사 등 오정희의 소설은 늘 한국소설 전위의 자리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엉뚱하게도 당선소감을 묻는 인터뷰에서 “가능하면 앞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고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오정희는 1947년 11월 9일,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서 4남 4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해방 전후 황해도 해주에서 월남해 별다른 생활기반 없이 곤궁한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다. 오정희가 네 살 되던 해에 한국전쟁이 터졌는데 바로 아래 동생을 임신한 어머니 때문에 가족들은 피난하지 못하고 공산치하의 서울에서 석 달을 보낸다. 1951년 1·4 후퇴 때 간신히 국군 트럭 한 귀퉁이를 얻어 타고 가다가 무작정 내린 곳이 충청남도 홍성군 홍주읍 오관리라는 마을이었다.

타관의 피난민들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적대심, 동생과 방안에 갇혀 허기로 보내야 했던 이 시절의 기억들을 오정희는 「유년의 뜰」에서 그대로 털어놓는다. 식탐이 많아 아랫목에 묻어 놓은 식기의 밥 알갱이나 동생의 고구마를 빼앗아 갉아먹어 통통하게 살이 오른 도벽이 있는 아이, 전쟁을 겪으며 지나치게 조숙해져 불순하게 심사가 뒤틀려버린 아이가 바로 오정희의 유년기 모습이다.

1954년에 오정희는 피난처인 홍주읍의 홍주국민학교에 입학한다. 어머니가 장사하러 집을 비우는 바람에 외할머니와 함께 입학식에 간 그녀는 분홍색 인조견 치마에 노란 솜저고리를 입었는데, 외할머니의 실수로 속옷 입는 것을 빠뜨렸다. 그녀는 할머니가 무서워 차마 말은 못하고, 수치심과 불안 속에서 입학식에 참석한다. 휴전 얼마 후인 1955년, 제2국민병으로 징집되었던 아버지가 돌아와 석유회사 인천 출장소 소장으로 취직되면서, 5년여에 걸친 홍성에서의 피난생활을 정리하고 인천시 중앙동으로 이주한다. 인천의 자유공원 근처에 자리 잡은 일명 ‘차이나타운’ 혹은 ‘중국인 촌’이 내다보이는 작은 일본식 집에 정착한 후, 오정희는 신흥국민학교 2학년으로 전학한다.

가뜩이나 소심한 성격의 오정희는 심한 열등감에 시달려 학교에는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학교가 파한 후 자유공원 꼭대기에 올라가 묵묵히 인천바다를 바라보거나, 신문 연재소설부터 야담류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소녀 오정희는 장난기 가득하고 당돌한 아이였다. 집 근처 언덕의 중국인 촌에 세 들어 사는 ‘양공주’들의 하이힐과 플레어스커트와 페티코트 등의 이국적인 화려함과 아름다움은 그녀를 온갖 비밀스럽고 야릇한 상상세계로 이끌어가곤 한다. 이때의 체험과 상상력이 「중국인 거리」에서 그려진다.

눈에 띄지 않게 학교를 오가던 조용한 오정희가 드디어 학교에서 주목받는 일이 일어난다. 1956년 국민학교 3학년 때인 어느 날, 작문시간에 쓴 「제비」라는 산문이 담임선생의 눈에 띠었던 것이다. 난생처음 칭찬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이후부터는 날마다 방과 후에 남아 글짓기 지도를 받아, 그해 가을 경기도 내의 백일장에서 산문이 특선함으로써 단번에 ‘글 잘 쓰는 아이’로 소문이 난다.

1959년 아버지의 전근과 함께 꽤 넓은 마당이 딸린 서울 마포구 신수동 집으로 이사하고, 수송국민학교 6학년으로 전학하며, 과중한 과외에 시달리고, 때로는 잠을 쫓는 각성제를 몰래 복용하며 중학교 입시에 매달린다. 어린 오정희는 입시의 중압감 속에서도 가방 속에 대학생 오빠 책인 니체, 헤세, 지드, 도스토옙스키를 몰래 넣고 다니면서 읽거나 이광수, 김동인 등을 비롯한 한국 전후 작가의 소설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치운다.

1960년에 이화여중에 입학한 오정희는 병약했고, 반에서는 물론 전교에서 가장 작은 체격이었다. 그녀는 학교 정구 코치와 절친한 아버지의 입김으로 정구부에 들어간다. 그것은 병약한 몸을 튼튼하게 만들겠다는 의도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소설가가 되겠다는 ‘허황한’ 꿈을 품은 딸의 생각을 돌려놓겠다는 아버지의 생각이 더 크게 작용한 선택이다. 중학교 2학년 때 막내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자, 집이 싫어진 그녀는 새벽부터 밤까지 운동장에서 라켓만 휘두르고, 3학년 때에는 주전 자리를 차지한다. 그녀는 합숙소나 정구코트 벤치에 앉아 틈틈이 독서를 하고, 가끔은 사랑과 우정을 소재로 한 짧은 소설들을 써보며 소설가의 꿈을 은밀하게 키워간다.

중학교 3학년 늦가을부터 선수 생활을 집어치우고 고교 입시공부에 매달린 끝에 1963년 이화여고에 입학한다. 그 뒤 내면의 열등감이 다시 살아나며 친구·가족·세상에 대한 강한 불신과 적의를 품고 반항적이 되어 결석과 조퇴를 밥 먹듯 한다. 책가방을 든 채로 혼자 교외선을 타고 돌아다니거나, 심한 문학 병을 앓으면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다. 마침내 등록금과 속옷, 일기장, 섬머셋 모옴의 『서밍업』을 가방에 챙겨 가출을 감행한다. 어느 민박집에 잠시 머물면서 춘천 모병원의 간호보조원 자리까지 약속받았으나, 실행에 옮기기 직전에 어머니에게 덜미를 잡혀 가출기도는 실패한다. “성공해서 돌아올 테니 찾지 마라.”는 편지를 띄웠는데, 편지 봉투에 찍힌 소인을 본 어머니가 기어코 그녀를 찾아낸 것이다.

1966년에 작가가 될 뜻을 품고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한 오정희는 이 학교 은사로 있던 김동리, 서정주, 박목월, 김수영, 김현의 강의를 듣는다. 당시 서라벌예술대학에는 이동하, 김형영과 같은 선배와 이경자, 윤정모, 김민숙, 송기원, 이시영 등의 동급생들이 있었다. 특히 이곳에서 만난 이경자와는 대번에 “인생의 미궁 속에서 아직 불도 지피지 않은 문학의 등잔불을 들고 음울하게, 온갖 열등감의 헝겊 쪼가리들에 감싸여 살고 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함을 깨닫고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이즈음 오정희는 몇 편의 소설을 써보기도 하고 문학의 어려움을 어렴풋이 알게 되며, 자신에게 재능이나 광기가 없다는 생각과 거기에 겹쳐진 스무 살의 지적 열망과 절망에 사로잡혀 참담한 시간을 보낸다. 2학기 가을 무렵부터는 아예 학교 나가는 일을 작파해버리고 집에서 뒹굴며 낭인이 되어 정처 없이 유랑 길에 나설 것인가, 고아원 보모가 될 것인가, 스님이 될 것인가 하는 따위의 궁리를 하며 우울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낸다. 이러한 괴로운 시간이 오정희의 문학에는 오히려 밑거름이 되었다. 마침내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단편 「완구점 여인」이 당선되어 문단에 첫발을 내딛는다.

작가는 1970년에는 서라벌예대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 조교로 일하며 「번제(燔祭)」 등을 발표한다. 1971년 이후에는 잡지사, 출판사 등을 전전하면서 「봄날」, 「관계」, 「직녀」 등을 계속 발표하다가 1974년에 결혼한다. 이즈음 작가는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는데, 하루 종일 쓸데없이 냉장고 문을 여닫거나, 냉수나 차를 쉬지 않고 마셔대는 일로 그 초조함을 달랜다. 문단에 나오고, 결혼과 출산의 경험을 하며, 서서히 범속한 일상성에 매여 고정되기 시작하는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불안과 그것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일탈 욕구에 시달렸던 시기이다.

1975년 첫 창작집 『불의 강』을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다. 1978년 강원대학교 사회학과 전임강사로 임용된 남편을 따라 춘천으로 이주하고 「꿈꾸는 새」 등을 발표한다. 1979년에 「중국인 거리」, 「비어있는 들」, 「저녁의 게임」 등의 문제작을 잇달아 발표한다. 작가에게 제3회 ‘이상문학상’을 안겨준 「저녁의 게임」은 어릴 적 작가가 한때 화투를 배워 “자나깨나 화투장이 눈앞에 어른대는 통에 한 학년 위의 오빠를 꽤 학교에 가지 않고 벽장 속에 숨어들어가 화투를 치던, 끝내 어머니에게 들켜 죽지 않을 만큼 매맞”았던 체험이 모티브가 되었다.

이 소설은 저녁식사를 마친 후 부녀간의 화투놀이 풍경, 그 사이사이에 낀 대화, 과거에 대한 회상, 그리고 짧은 외출 등으로 연결되는, 지극히 단순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태롭고 공허하고 무의미하지만 충실히 이행하는 ‘화투’라는 행위를 통해, 삶이 일종의 무료한 게임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여주인공은 무작정의 가출·일탈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책임량을 완수하듯 저녁 시간 아버지와의 게임이 끝난 뒤, 즉 철저하게 일상의 의무를 다한 뒤에 비로소 바깥나들이에 나서는 것이다. 이 나들이가 오히려 어떤 충동적이고 격렬한 일탈 행위보다 일상의 허위성과 권태로움을 충격적으로 전달한다.

「저녁의 게임」과 같은 해에 발표된 「중국인 거리」는 인천의 중국인 촌 부근에 거주할 당시의 체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은 김병익에게 “우리 단편문학의 한 뛰어난 범례가 될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수작이다. 오정희는 1980년에 전쟁 통에 소식을 알 수 없었던 아버지를 둔 가족의 뒤틀려진 삶과 황량했던 어린 시절의 삽화들을 담은 「유년의 뜰」을 발표한다.

기생 출신의 외할머니, 아버지를 기다리며 술을 마시다가 급기야는 수상한 외박을 하는 어머니, 밤 외출을 자주 하는 언니,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 노릇을 하며 언니를 잔인하고 가학적으로 때리는 것으로 제 욕망·슬픔·분노를 분출하는 큰오빠, 미국인 양자로 들어간 고아들을 부러워하며 영어공부에 매달리는 작은 오빠, 병약한 동생, 이들과 더불어 생활하는 주인공 소녀. 소녀는 「완구점 여인」에서처럼 도벽과 게걸스러운 탐식 습관에 빠져 있고, 방에 갇혀 있다가 시신으로 들려나오는 주인집 딸의 정체에 대한 호기심과 허기 등을 겪으며 자란다. 가족의 뒤틀려진 현재의 풍경과 과거의 기억들은 집안의 ‘거울’에 낱낱이 비친다.

어느 날 이 거울이 깨어지며 집은 이웃동네로 이사를 떠나게 되며, 동시에 소식이 없던 아버지가 돌아온다. 「유년의 뜰」뿐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도 ‘거울’은 오정희가 즐겨 사용하는 소도구다. 우리 문학사에서 ‘거울’의 이미지 참회나 환상적 나르시스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반해 오정희의 ‘거울’은 현재를 사는 인물들의 하찮은 행동과 삶의 권태·고통·광기·절망·허위의식 등 복잡 다양한 세계를 비춰내는 역할을 한다.

오정희는 같은 해, 가족이 모두 집을 나간 상태에서 홀로 남은 주인공이 등화관제 훈련으로 인한 어둠의 시간 속에서 느낀 감정을 묘사한 「어둠의 집」을 비롯하여 「겨울 뜸부기」 등을 발표한다. 그리고 1981년에는 어느 소도시 중산층 파티에서 보이는 삽화를 통하여, 중산층 사회의 속물근성과 허위의식에 찬 일상, 이에 대한 모멸감을 드러낸 「야회」를 비롯하여 「인어」, 「별사(別辭)」 등을 발표하며, 두 번째 창작집 『유년의 뜰』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한다.

1982년에는 더 이상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라고는 없는 노부부의 삶과 심리를 그린 「동경(銅鏡)」과, 결혼 이후 일상을 감당하지 못해 “바람처럼 펄럭이며” 가출벽을 보이다가, 결국에는 치한들로부터 윤간을 당하게 되는 여주인공이 충격으로 인해 망각된 어린 시절과 전쟁에 대한 상처를 기억 속에서 하나씩 길어 올리는 과정을 그린 「바람의 넋」, 그리고 「하지」 등을 발표하고, 같은 해 제15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다.

1984년에는 「지금은 고요할 때」와 「순례자의 노래」, 「새벽별」을 발표하며, 같은 해 8월에는 뉴욕주립대 교환교수로 나가는 남편을 따라 가족 모두가 뉴욕 주 올바니 시로 이주하여 머물게 된다. 1986년 귀국하여 세 번째 창작집 『바람의 넋』을 <문학과지성사>에서 발간한다. 1987년에는 「그림자 밟기」를, 1989년 「불꽃놀이」, 「저 언덕」, 「파로호」 등을 꾸준히 발표한다. 이즈음 문득 오정희는 “낡은 거푸집 하나로 똑같은 물건들을 거듭 찍어내고 있다는 느낌”에 견딜 수 없어 잠시 새로운 소설의 창작은 쉰 채, 1990년에 기왕에 발표했던 소설을 가려서 엮어낸 『야회』, 짧은 소설집 『술꾼의 아내』 등 주로 그동안의 작품모음집을 펴내는 데 만족한다. 집 근처의 산에 갔다 오는 일 외에는 거의 외출을 피하고, 가족들이 나간 빈집에서, 책을 보거나 글 쓰는 일에 매달린다.

하지만 쓰지 못한 채 빈칸으로 놓아둔 원고지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 보낸다. “평생 말뚝에 묶인 소처럼 달아나지도 못하고 그 언저리를 빙빙 돌며 겁내고 눈치나 보며 살수는 없겠지. 맞대결을 하면 어쨌듯 결판이 나겠지.” 그래서 “속이 타고 막막하여 책상 위에 얼음을 갖다 놓고 깨물어 가면서, 소설 쓰기에 대한 주눅을 깨뜨리려”는 자기와의 싸움을 거쳐 1994년에 발표한 것이 「옛우물」이다. 같은 해 자선소설을 한데 묶은 『옛우물』을 <청아>에서 펴내고, 십 년 가까이 살던 춘천의 스무 평의 아파트에서 서른 평의 아파트로 늘려 이사한다. 자기만의 서재를 갖게 되며 안정을 찾은 작가는 모처럼 신작 소설 「새」 등을 이듬해에 내놓는다.

작가는 ‘이상문학상’의 수상소감에서 “내가 문학에서 나를 아낀다면 그것은 나를 아끼는 게 아니라 나를 죽이는 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언어를 통해, 그러나 결코 언어에 취함이 없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해나갈 것을 다짐한 작가에게 소설 쓰기는 “보상을 바랄 수 없는 짝사랑, 지독한 연애”이기 때문이다.

 

 

  http://cafe.daum.net/salamstory   

주소를 클릭 하면 이동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