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에 살고있을 펜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2009. 7. 22. 01:11☎청파의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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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에 살고있을 펜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46년전 펜팔 친구에게 띄우는 편지
09.01.25 13:17 ㅣ최종 업데이트 09.01.25 13:17 윤도균 (ydk3953)
   
▲ 46년 펜팔 친구 (우측) 지금은 하늘날에 살고 있는 46년전 펜팔 친구 흑백 사진을 앨범을 정리하다 발견 버리기에는 죄책감이 드는것 같아 스캔 작업을 하여 하늘에 살고 있는 펜팔 친구에게 띄워본다.
ⓒ 윤도균
펜친
 
나에겐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인 1963년부터 강원도 춘천에 살고 있던 여자친구와 무려 4년이란 긴 세월 동안 펜팔로 우정을 나누던 펜친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펜친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하늘나라에 살고 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 그때 그 시절 그렇게 친했었던 그 펜친의 이름도 성도 가물가물 잘 기억을 하지 못하며 살고 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소중하게 부르던 이름이었는데도 말이다.
 
당시는 지금처럼 전화가 없어 그 여자 펜친의 목소리 한번 들어 보지 못하며 오직 일주일에 한두 번씩 펜팔 편지로 우린 그렇게 열심히 우정을 나누었던 펜친이었는데, 그 이름마저도 지금 가물가물 하다니……. 정말 내가 나를 다시 생각해봐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당시 나의 펜친은 춘천에 살았고 부모님이 모두 안 계셨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그래서 나는 외롭게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그 펜친에게 더욱 격려와 용기를 주는 글을 보내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우리들의 펜팔 편지는 그렇게 오랫동안 쉼 없이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을 해본다. 그때 우리들 연령대가 한창 고민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시기를 겪는 과정이었기에 우리들은 더욱 서로의 이야기를 흉허물 없이 허심탄회하게 나누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오랜 기간 동안 서로 단 한번 만난 적은 없지만 서로 부담 없이 사진을 나누어 기릴 정도로 돈독한 우정을 쌓은 사이로 발전이 되었던것 같다. 그때 우리들은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늘 마음 속으로 서로를 그리는 한 마음으로 우정은 더욱 깊어만 같다. 그렇게 서로 흠뻑 빠지도록 친했던 애틋한 펜친이었는데 …….
 
오늘을 살고 있는 나는 지금도 어쩌다 그 펜친을 생각하면 마치 가슴에 바위를 올려 놓은 듯한 무거운 마음의 아픈 기억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괴롭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46년 전 아마 1965년 여름쯤인가 그때 우리들은 모르긴 해도 서로 백여 통이 넘는 펜팔 편지를 주고받는 우정으로 발전을 하다 보니 딱히 누구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언제부터인가 우린 서로 한번쯤은 꼭 만나고 싶었던 공감대가 형성 되었고 그러던 어느 날 펜친이 먼저 나에게 보낸 편지에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며 나더러 춘천을 꼭 방문 하여 달라는 편지를 보냈는데 ……. 그때나 지금이나 여자들만 보면 늘 얼굴에 홍조를 띠는 내 소심한 성격은 편지가 아닌 실제로 여자 펜친을 만난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쿵당거리고 떨려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마음과는 달리 나는 그럴 듯하게 펜친에게 바쁘다는 핑계를 대는데, 어느 날인가 다시 펜친이 직접 자신이 내가 살고 있는 파주 금촌까지 오겠으니 나더러 금촌에서 만나자는 편지를 보내와 이 편지를 읽고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얼씨구 좋아했을 텐데……. 왠지 나는 기쁘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마음에 부담을 느끼며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드디어 그 펜친과 만나기로 약속한 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금촌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배웅을 나가 눈이 빠지게 펜친을 기다렸지만 그렇게 나에게 편지로 떡 떠먹듯 온다고 약속했던 펜친은 약속 시간이 지나고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네 시간이 지나도 오질 않더니 나중엔 어두컴컴한 밤이 되어도 결국 펜친은 오지를 않았다.
 
그러니 그때부터 얼마나 걱정이 되던지……. 내가 오라고 한것도 아니고 펜친 자신이 먼저 오겠다고 떡 떠먹듯 약속하였는데도 말이다. 솔직이 그때 나의 심정은 막상 펜친이 내 앞에 나타난다고 해도 조금은 부담을 느꼈을 심정이었는데 막상 온다던 펜친이 오지를 않고 보니 오히려 얼마나 불안하고 염려가 되던지 허겁지겁 귀가하여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 할 수 없이 나는 꼬박 뜬눈으로 그 밤에 펜친에게 편지를 써 이튿날 동이 트자마자 매일 우체부 아저씨에게 보내던 편지를 그날은 집에서 상당히 먼 거리에 위치한 우체국까지 달려가 펜친에게 나의 궁금한 마음이 담긴 등기 편지를 보내고 펜친의 답장을 기다렸는데……. 이후 무슨 일인지 답장 편지는 펜친이 아닌 펜친의 남동생으로부터 10여일은 족히 지난 어느 날 답장을 받게 되는데...
 
   
▲ 46년 펜팔 친구의 모습 친구야 하늘나라에선 더욱 힘찬 희망의 날개를 달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 다오 46년전 펜친의 사진을 하늘에 띄어 보낸다.
ⓒ 윤도균
펜팔친구

 
"형 누나가 교통사고로 하늘나라에 갔어요"하는 청천병력과 같이 가슴 아픈 편지를 받아야 했다. 그때 심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여질 것만 같은 절망이었다. 그러다 보니 얼떨결에 나도 4년이란 긴 세월 동안 편지를 주고받은 펜친이 떠난 길을 따라가고 싶을 정도로 망연자실 막막한 상태였다. 그러면서 또 한 편으로는 내가 그녀를 죽게 했다는 자책감에 크게 괴로워하며 누나를 잃고 나 홀로 외로이 혼자 남은 펜친의 남동생과 몇 번인가 위로 편지를 주고받았고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늘 그렇게 습관처럼 쓰던 펜팔 편지를 두 번 다시는 쓰지 않고 절필하는 과정을 겪으며 살아야 했다.
 
그리고 그 후 몇 년간 나는 미친 듯이 내 주어진 현실에 빠져들어 충실하려 노력하였으나 늘 하늘나라에 살고 있는 펜친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그동안 펜친과 주고받았던 100여 통이 넘는 편지들을 꽁꽁 묶어 보이지 않는 나의 사랑방 다락 깊숙이 간직하여 두고 군대를 갔는데 ……. 나중에 첫 휴가를 나와 편지를 찿다 보니 세상에 그 펜친과 주고받았던 소중한 편지들을 ……. 당시는 종이가 귀하던 시절이 되어 아버지께서 쓸때없는 종이 뭉치인줄 아시고 모두 변소에 휴지로 써 버리고 마셨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 그런데 그뿐이 아니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그 시절 무려 내가 15년 동안이나 줄기차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소중하게 써 왔던 나의 일기장들도 모두 함께 화장실 휴지로 사용해 버리셨다는 것이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던지,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일면에선 오히려 잘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두 번 다시는 이 세상에 돌아올 수 없는 펜친의 편지를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고 한들 더 이상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될 수 있을까 ? 어차피 우리들은 운명적으로 인연이 아닌 사람들이었던 것을……. 그 후 나는 우리 마을에 32살 노총각 1호의 명예를 유지하면서도 더 이상 펜팔 편지를 쓰지 않고 살았다. 그때 그 시절엔 32살 노총각이면 아마 요즘 시대 40세 노총각과 맞먹는 끗발이다.
 
모처럼 시간이 있어 오랜만에 문갑 서랍에 쳐 박아 둔 빛바랜 사진첩을 뒤척이다 오랜 세월 동안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펜친의 흑백 사진을 보니 그냥 버리기엔 너무도 그 펜친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 생각되어 46년 전 펜친의 사진을 지금은 잊어버린 그때 그 시절 추억이라 생각하며 스캔 작업을 하여 하늘에 살고 있는 펜친에게 띄어 보낸다. = 아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