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주 최연순 두분 선생님께서는 내가 6.25 사변으로 피난 나와 9살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을때 "최연순 선생님"께서 우리들 1학년 담임을 하셨고 홍승주 선생님께서는 내가 2학년때 담임 선생님을 맡으셔서 사실은 두분 선생님께서 코흘리기 개구쟁이 철부지 어린시절 나를 일깨워주신 소중한 은사님이시다.그시절 전쟁으로 인하여 사람사는 형편이 거의 죽지못해 초근목피 하는 생활환경에서 학교에 입학하여 처음으로 최연순 선생님을 뵈었을때 어린 마음에도 나는 이 세상에서 우리반 담임 선생님이 제일 이쁜 사람으로 생각을 했던 기억이 60 중반 나이가 지난 지금까지 선생님을 기억하는 첫 인상으로 오래 남아 있다.
두분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이 초등학교를 다닐때 같은 학교에 근무를 하시며 사내 결혼을 하시게 되었고 우리들은 두분 선생님 부부를 은사님으로 모시는 영광을 앉게 되었는데, 훗날 홍승주 선생님께서는 서울의 모중학교로 전근을 하시게 되며 우리들 곁을 떠나시게 되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하였던 두분 선생님과 아쉬운 작별을 하게 되었다. 그후 우리들은 두분 선생님에 대한 어릴적 기억만 간직한채 지금까지 57년이란 세월을 살아 오면서 어언 환갑 진갑을 넘어 60 중반 나이가 되도록 두분 선생님을 한번도 모시지도 ?아 뵙지도 못하고 허무한 세월을 보냈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우리들 어린시절 담임 선생님을 하셨던 홍승주 선생님께서는 서울에서 경희중학교 교장선생님 역임 하신 후 대학 강단에 서시며 우리나라 문단에 많은 저서와 시집을 남기셨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한 후 나는 이때부터 두분 선생님 연락처를 알기 위하여 사방팔방 수소문을 하였지만 쉽지 않았는데 홍승주 선생님께 공부를 배운 제자들이 운영하는 "경희고12회동문카페"를 알게되어 그곳에 홍승주 선생님을 ?는 글을 올렸는데 회원님들 중에 친절하게 홍승주 선생님 연락처와 이메일 주소를 알려 주셔서
이때부터 미국 LA에 거주하고 계신 "홍승주,최연순" 두분 선생님과 일주일에 한 두 번씩은 꼭 이메일 편지로 소식을 전해 올리게 되며 선생님의 근황과 활동하시는 활략상을 알게 되었다.홍승주 선생님께서는 정년퇴임 후 자녀들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셔서도 81세란 고령의 연세에도 끊임없이 우리나라 문단에 눈부신 활동을 하시고 계신 소식을 접하며 늘 마음속에 나의 코흘리기 개구쟁이 어린시절 담임 선생님이셨던 두분 선생님을 그리는 마음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드디어 지난 3월 23일 두분 선생님께서 잠시 3개월 일정으로 국내 업무차 귀국하시게 된다는 소식을 어 접한 후
두분 선생님께서 귀국 하시는날 인천공항에 마중을 나가 출국장을 빠져 나오시는 두분 선생님 모습을 뵙게되는데 세상에 57년만에 선생님 모습을 뵙는데도 어릴적에 뵌 선생님 모습이 어렴풋이 그대로 남아 있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어요 그렇게 두분 선생님께서는 아직도 정정하신 모습이셨어요 너무도 오랫만에 먼 발치에서 뵙는 두분 선생님 모습이 반가워 달려가 꽃다발을 앉겨 드리니 두분 선생님께서는 깜짝 놀라시며 얼마나 반가워 하시던지요 몇 해도 아니고 57년 만에 두분 선생님을 만나뵙는 그 감격이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감동이었어요
우리말 속담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그 강산이 무려 여섯번이 변하도록 나는 두분 선생님을 잊고 살았었다. 그래 이번 5월은 스승의 날도 즈음하였고 마침 57년전 우리들 코흘리던 어린시절을 자상하신 담임 선생님으로 우리들을 일깨워 주셨던 두분 선생님께서 국내 체류중이시어 나의 초딩 동창생들에게 연락 하여 2009년 5월 10일 우리들이 자란 고향 마을에서 어릴적 부랄친구들과 두분 선생님을 모시고 식사 대접을 한 후 선생님과 함께 어린시절 공부를 하던 모교 갈현초등학교를 방문 계획이며 이어서 전쟁으로 인해 학교 교실이 소실되어 초등학교 인근에 위치한 이조 16대 인조대왕릉 경내 느티나무 아래 칠판을 걸고 두분 선생님께 공부하던 그때 그시절의 추억을 돌아 보며 두분 선생님과의 옛날의 추억을 기리는 계획 일정으로 늦깍기 동창회를 소집하여 두분 선생님과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하루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어요 .
그런데 두분 선생님께서는 미국에서 귀국 하시어 안산 예술인 아파트 자택에 살고 계시어 나는 이른 아침 서울 강남에 살고 있는 동창에게 차를 몰고가서 두분 선생님을 모시고 오시라는 부탁을 한 후 나는 송내에서 두분 선생님을 모시고 온 친구의 차량에 동승하여 확트인 순환 고속도로와 우리나라의 아우토반이라 불리워도 좋은 자유로를 달리며 선생님께 그동안 변모하는 자유로변 조망에 대하여 마치 가이드라도 된것처럼 설명을 해 드리며 그 옛날 우리들이 초등학교 다닐때 봄 가을 소풍지로 자주 ?던 금단사를 먼저 돌아보기 위하여 도착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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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분 선생님 양 옆으로 제자들인데 언뜻 보면 두분 선생님도 우리들 동창생처럼 정정하신 모습이세요
금단사는 현대 종교 시설들만 보아왔던 사람들 입장에서 볼때는 아주 작고 하찮게 보이는 볼품없는 사찰이지만 그러나 이 청파의 초딩 동창생들에게는 어린시절 꿈을 담은 소풍 단골 장소의 향수가 서려있는 사찰이다. 우리들에겐 비록 작지만 더욱 아담하고 친근감있게 다가오는 법화사가 아직 그대로 모습이 남아 두분 선생님을 모시고 일행들을 만나기전 먼저 법화전을 돌아 보며 그 옛날의 추억에 젖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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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5도민 경모공원 이정표
이정표를 따라 가면 황해도 평안도도 갈 수 가 있다. 하지만 이곳 이정표는 고향을 바로 코앞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서도 반세기를 지나 60여년이 다되도록 그리던 고향땅 한번 밟아보지 못하고 애타게 고향가는 꿈을 꾸며 기다리시다 안타깝게 수(壽)를 다 하신 이북 5도 실향민 여러 어르신들의 망향의 한 을 달래기 드리기 위하여 이북이 빤히 건너다 보이는 이곳 통일동산에 정부에서 이북 5도민 경모공원을 설립실향민 여러분들의 애타는 가슴을 달래 드리기 위하여 이북 5도별로 조성된 공원묘지 이정표이다.
그런데 이날 제가 두분 선생님을 이곳 이북5도민경모공원엘 모시고 온 뜻은 홍승주 선생님께서는 6.25당시 20세 전후의 몸으로 홀홀 단신 나홀로 이남으로 피난을 나오셨는데 그동안 내가 선생님께서 쓰신 많은 시집과 문학지를 읽다 보니 선생님의 글 속에 은연중 늘 고향 그리시는 마음이 흥건하게 배어있음을 알게되어 제자된 입장에서 선생님의 마음이 가슴에 와 닿아 두분 선생님을 이북 5도민 경모공원에 모시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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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향의 제단
멀리 한강과 임진강이 갈라지는 삼더풍 방향을 바라보시며 북한땅 이북을 바라보시던 선생님께서는 말씀을 하시다가 할말을 잃으시고 묵묵히 망향의 제단 주위를 오가고 계신 모습을 뵙니 저에 마음이 쨘 해집니다.말이 홀홀 단신이지 선생님 부모형제 고향 그리시는 그 가슴이 얼마나 시리고 아프셨겠어요 사랑하는 가족을 북에 두고도 평생을 만나지 못하고 살아오신 선생님 마음을 헤아리니 저의 마음도 울쩍 해지며 눔물이 납니다. 두분 선생님 더욱 건강 유의 하시며 꼭 오래오래 사세요 그래서 꼭 선생님 그리시는 고향땅 밟고 그리운 가족들 만나 보셔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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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내가 운영하는 카페 중국에 거주하는 회원께서 불과 한 달전 중국에서 "홍승주 선생님 동생분 모습이 들어있는 사진"을 보내온 것을 제가 스켄 작업하여 선생님께 보여 드렸습니다.그랬더니 선생님께서 놀라시며 얼마나 반가워 하시던지요 아마 모르긴 해도 선생님께서는 이 사진을 보시고 선생님 당신의 가족 그리는 마음 삭이시느라 상당히 마음고생 하셨을것이라 생각 했어요
그런데 이날 3번째 방문지로 들른 이북5도민경모공원 현 위치에서 코 앞에 보이는 저 건너 임진강만 없다면 ...아니 선생님께서 한 마리 새가 되실 수 있다면 훨훨 날아서 그리운 가족들을 만나 뵈실 수 있을텐데.... 이렇게 한참 경모공원을 돌아보시던 선생님께서는 야! 청파야 너무너무 감동이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생전에 그리던 고향을 목전에 두고 그 소원 꿈을 못이루고 고인이 되어서도 다시 고향이 그리워 이곳 경모공원 묘지에 묻혀 고향을 그리는 먼저가신 실향민 어르신들의 묘소를 바라 보시는 선생님의 마음이 애틋 하신듯 합니다.
두분 선생님께서는 좀체로 발길을 옮기지 않으시며 당신들 지척에 보이는 북녁땅을 예의 주시하시는 모습이 왜 그리도 가슴이 아리던지요 더 이상 두분 선생님을 이곳 망향의 묘지에 머시게 했다가는 아무래도 선생님 이날 이곳 이북 5도민 경모공원 떠나지 못하실것 같은 쓸쓸한 모습이 엿 보여 나는 서둘러 선생님을 기다리며 초딩들이 모여있는 일송정으로 달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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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분 선생님께 카네이션 꽃 바구니를 전달하여 드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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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인사말씀
말이 초딩 동창이지 우리들은 일학년때 갈현초등학교에 입학하여 6학년 졸업할때 까지 전원 한 반에서 함께 공부를 한 동창생들이다 보니 우스게 소리로 어느 친구네 집에 숫가락이 몇개 있는것까지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서로의 사정을 너무도 잘 아는 사이들이지요 그런데 우리들도 어언 나이가 60 중반을 넘어서고 보니 벌써 몇 몇 초딩들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친구들도 있고 또 그넘의 사는게 뭔지 이런일 저런일 급한일들이 있어서 동창회에 참석하지 못한 회원들이 많아 이날 고작 열네명의 회원들이 참석을 하였어요
하지만 그 숫자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비록 많은 동창들이 참석을 하지는 못하였지만 우리 열네명의 남여 초딩들이 57-8년만에 만나뵙는 두분 선생님께 하나된 마음으로 모두 일어서 넙죽 엎드려 선생님께 큰 절을 올리니 두분 선생님께서는 이런 우리들 모습에 놀라워 하시며 얼마나 좋아 하시던지요 그리고 잠시 두분 선생님의 소견 말씀이 전해지는 동안 우리들은 6.25 사변으로 인하여 두분 선생님께 척박하기 이를때 없는 교육 환경 여건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추억을 그려본다. 그 시절 우리들은 전쟁으로 학교가 소실되고 교실이 부족하여 운동장에 미군부대에서 빌려온 천막을 치고
그 무더운 여름날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공부를 했었지, 그런가 하면 미군들이 철수를 한 후 부터는 이 군용 천막마져 빌리기 쉽지 않아 학교 인근에 위치한 이조 16대 인조대왕릉이 있는 장릉 느티나무 아래에 칠판을 걸고 맨 흙 바닥에 앉아 공부를 하던 그때 그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잠시 그 힘들고 어려운 시절 두분 선생님께서 천방지축 개구쟁이 철부지 우리들에게 한글을 깨우쳐 주시고 공부를 가르쳐 주신 고마운 은혜를 회상하며 차마 대중음식점이 되어 "스승의 은혜" 노래는 부르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다 함께 "스승의 은혜 노래" 를 합창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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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사진
우리들은 일송정에서 회식을 마친후 넓은 잔디밭에 나와 두분 선생님을 모시단체 사진과 개인 사진을 찍는 시간을 마련하였어요 이렇게 단체 및 개인 사진을 찍은 후 은사님이신 홍승주 선생님 저서 시집 한권씩을 선생님으로 부터 하사 선물을 받고 우리들은 다시 57년전 처음 우리들이 학교에 입학하여 졸업을 한 모교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 소재 "갈현초등학교"를 방문 하기 위하여 3대의 차량에 분승하여 달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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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교장선생님 인물 사진
현관에 들어서니 역대 교장 선생님들의 모습을 만나 뵙는데 우리 초딩들은 맨 앞에 초대 이기동 교장 선생님만 아는 선생님이시다. 이기동 교장 선생님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고인이 되셨습니다.잠시 마음속으로 이기동 교장 선생님에 대한 묵념을 드립니다.그리고 마침 이날(일요일) 당직 교사이신 임관용 교무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교내 곧곧을 돌아 봅니다 그리고 도서관에 들려 우리나라 문단에 거목으로 활략을 하신 우리들의 초딩시절 은사이신 홍승주 선생님 저서 "홍승주 문학전집 12권"을 이곳 도서관에 기증하신 책들을 만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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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운동장에서 그 옛날을 회상하며 ...
그 옛날 우리들이 공부하던 그때 그시절엔 우리뒤에 보이는 자리에는 1층짜리 목재 교사가 있었는데 당시 6.25사변 관계로 피해가 커 지붕은 학부모님들께서 가을철에 볏짚 이엉을 한 마름씩 가지고 오셔서 초가 지붕을 이으셨고 유리창문 대신 창호지를 바른 교실에서 책상이 어디 있나요 전쟁으로 인하여 널려진 화약냄새나는 탄약 BOX 나무를 이용 마루바닥에 앉아 이용할 수 있는 작은 책상을 만들어 사용을 하였고
이도 여의치 못한 나는 그냥 마루바닥에 엎드려 글씨를 썼고 어디 종이가 요즘처럼 좋기나 했나요 시커먼 마분지에 지우게도 없어서 글씨를 쓰다 틀리면 침을 발라 살살 밀어 마분지를 한켜 벗겨내는것으로 지우개를 대신하며 공부를 하였고 나중에 4학년때는 간신히 외삼촌께서 책상을 만들어 주셨는데 공부 시간에 당시 "사친회비"를 피난민이 되어 미처 못 가져 왔더니 지금은 이세상에 아니 계신 김봉희 선생님께서 나를 책상위에 올라가라 해놓고 종아리를 때리고 심지어 책상위에 올라있는 나를 책상을 밀어 마루 바닥에 나가 떨어지게 하였던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교사로서 행할 수 없는 일을 아무렇치도 않게 행하여 그 어린시절 상처받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나는 이때부터 담임 선생님이 무섭고 싫어서 학교 가기를 꺼려 했는데 '가마귀 날자 배떨어진다더니 피난생활로 6남매를 학교에 보내기 힘든 생활을 하셨던 아버지께'서 나를 초등학교 4학년 2학기때 학교를 안 보내시고 서당으로 보내셨는데 나는 그때 담임 선생님이 무섭고 싫어서 어린 마음에도 학교 안가게된것이 얼씨구 잘?다는 생각을 하며 4학년 중퇴를 하였지요
그래서 저는 이날 돌아보는 갈현초등학교가 다른 친구들도 물론 그렇겠지만 나 청파에게는 아주 남다른 감회가 서려 많은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여 훗날 아련히 그때 그시절이 그리울때면 이 사진들을 들춰 보면서 두분 선생님을 모시고 있었던 그날의 초딩 동창회를 그리려 합니다. 두분 선생님께서는 오는 6월 22일 다시 미국 거주지로 출국을 하시게 예정이 되어 있으세요 그러고 보면 사실 이번에 선생님과 작별하고 나면 이제 언제 다시 두분 선생님을 뵐날이 쉽지 않을듯하여 선생님께 두고 두고 추억으로 남기실 이 자료를 정리 하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들은 교무선생님의 배웅을 받으며 교문을 나서 이번에는 그 옛날 우리들이 교실이 없어 학교에서 1.2킬로 정도 떨어진 이조 16대 인조대왕릉 경내에 울창한 모습으로 자란 느티나무 아래 칠판을 걸고 흙바닥에 앉아 두분 선생님께 공부하던 시절을 추억을 기리기 위하여 가고 있다 그런데 이곳 인조대왕릉은 이미 40여년 전에 비공개 지역이 되어 나는 이미 한달여 전 문화재청에 장릉 탐방 허가 신청을 내 허가를 받아 40여년 비공개 지역 장릉 경내를 출장소장 안내를 받아 조용조용 견학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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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느티나무에 칠판을 걸고 우리들은 공부를 했어요
멀리 재실(관리사)가 보입니다.그 옛날 우리들은 이곳 느티나무 아래 칠판을 걸고 공부를 하다 여름철 비라도 내리면 저곳 관리사로 뛰어 들어가 그곳 마루에서 공부를 했던 기억이 삼삼하게 그 옛날 그대로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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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 너머로 장릉 정자각이 보인다.
내가 35세 때 쯤 이곳 장릉이 비공개로 정해진것 같다 그 전에 우리 마을 사람들은 이곳 정자각 좌우로 난 길을 걸어서 장릉 그 넘어에 위치한 우리 마을을 오가고 했는데 그런 장릉을 40년 이상 비공개 하고 보니 먼저 울창한 녹음에 놀랐고 그리고 깨끗하게 잘 단장 관리된 경내 모습을 보며 비공개의 필요성을 재 인식 하기도 한다.
이곳 장릉은 정자각우측 옆으로 작게 보이는 두 건물이 있는데 하나는 인조대왕 신도비각이며 그 앞쪽의 건물은 능침을 지키는 능침지기의 관리 숙소로 알고 있었고 특히 인조대왕 신도비는 타 릉에 세워진 신도비와 비교할때 월등한 차이날 정도로 웅장하게 큰 오석에 정갈한 서체로 정성을 들여 써 내린 서체글을 볼 수 있다 그 옛날 나는 학교 하교길에 비가 오는날이면 이곳 신도비각안에 들어가 비 피했다 귀가를 하곤 했었다.
그리고 인조대왕릉의 봉분의 형태는 합장묘이며 한쌍의 상석이 귀면이 양각된 고석으로 받처저있고, 그 앞에는 우람한 장명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봉분 앞쪽 좌우측에는 무인석과 문인석 그리고 망주석이 순서대로 배치 되어 있다.또한 봉분은 곡담으로 견고하게 둘러 있으며 낭간석과 12지상의 동물들의 석물들은 조화있는 배치가 균형미의 극치를 보는 듯 아름다운 모습으로 축조 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이곳 장릉이 비공개 지역으로 되었지만 그 옛날 이곳 장릉은 (파주 금촌,교하,탄현,)일대 중고교는 물론 초등학교들이 봄철과 가을철이면 의례히 이곳 장릉을 소풍지로 각광을 받았고 나는 이곳 장릉과 이웃 한곳에 우리동네가 있어 어린시절 친구들과 이곳 장릉에 와서 술레잡기 놀이도 하고 찜뽕(손야구) 놀이를 하며 자랐다.
이렇게 시간가는줄도 모르고 57년만에 만나뵙는 두분 선생님과의 만남 자리는 장능 잔디 밭에 둥글게 모여앉아 해가 지는줄도 모르로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어느사이 이제는 아쉬움을 남긴채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그런데 사실상 이날의 행사를 주관한 나로서는 하루종일 기뻐하시는 두분 은사님과 그리고 동창들의 열린 마음으로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기쁘던지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런 우리들 마음이 하나가 되어 예정에도 없던, 헤어지기 직전 동창들이 각자의 정성을 모아 두분 선생님께 아주 작은 정성의 뜻을 모아 전해 드리며 고국에 체류 하시는 동안 맛있는 음식 사드시라고 전해드리는 동창들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보기 좋던지...
이날 저녁 늦은 시간 두분 선생님께서 저에게 전화를 주셨어요 야! 청파야 너희들 어쩌면 이렇게 마음이 하나같이 순박하고 고마울때가 있느냐 그동안 내가 대학 교단에서며 많은 제자들을 두었지만 오늘처럼 코흘리기 개구쟁이 시절 제자들로 부터 순수한 마음이 담긴 시간이 쉽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시며 청파 너가 우리 부부 "홍승주,최연순 선생님" 마음을 너의 초딩 친구들에게 전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전 하시는 선생님 전화를 받았다.
네 선생님 제가 두분 선생님의 뜻을 동창들에게 모두 전하겠습니다. 선생님 미국으로 떠나시기전 한번은 더 ?아 뵙겠습니다. 하오니 늘 지금처럼 더욱 건강 유의 하시며 늘 그 자리에 오래오래 서 계셔 주시기를 우리 제자들 두손모아 두분 선생님께 당부를 올립니다.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