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나는 얼굴도 모르는 폴란드의 미혼모 엄마에 의해 임신 7개월에 중절수술을 받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양수가 터져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 쌍태아 형제는 죽고, 우리 한나만 1.52kg의 연약한 몸으로 세상에 나와 3개월을 인큐베이터에서 살고 2001년 01월 04일에 태어났습니다.
선교사인 언니로부터 가끔 한나를 키워볼 것을 권유받았으나, 나는 그때마다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아이를 키울 입장도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외국 아이를 키울 생각은 더욱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집안 행사에 언니의 딸 자격으로 참여한 한나를 처음 만난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작고 가녀린 몸에 슬픔이 가득한 한없이 깊고 푸른 두 눈을 대하는 순간 얼마나 가엾고 안됐던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네가 이 세상에 와서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키워진 것처럼, 제는 네가 받은 것을 누군가에게 갚는 게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느냐' 는 언니의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한나가 그리도 어렵게 내 곁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둠과 작은 바람소리에도 심한 공포를 느껴 몸을 움츠리며 자지러지게 울고, 언제나 깊은 잠을 들지 못한 채 자다가 몇 번 씩 깨어 일어나 천정에 무엇이 있다고 손가락질하며 무서워 울었습니다.
이 모두가 엄마 뱃속에서 7개월 동안 내내 겪어야 했던 죽음의 공포에 시달린 탓임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젠 많은 분들의 사랑의 보살핌과 염려 덕택으로 의젓한 초등학생이 되었답니다.
이제는 한글을 배워 쓰기 시작해서 아무데나 '김한나'라는 이름과 글씨를 써대고, 한글을 보면 글자 수에 맞춰 짐작하여 읽느라 바쁘기만한 사랑스런 우리 한나.
또래의 아이들과 다른 외모로 인해 '너 미국사람이지?' 라고 짓궂게 묻는 아이들의 끈질긴 시선으로 인해 사람들이 모인 곳을 꺼리는 어려움도 있지만, 이는 우리 한나가 한국에 사는 한 극복해야 할 과제이겠지요.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이 필요하다' 는 아프리카 속담이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을'이 되어 힘을 모을수록 우리 아이들을 더 좋은 아이들로 키워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 한나를 키우면서 받았던 '마을'의 사랑을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저 역시 '마을'이 되어 보답하겠습니다.
- 한나 엄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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