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생일선물

2007. 9. 7. 00:54☎사람사는이야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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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미용재료 소매상인 우리 가게에는
1년에 한 두 번 씩 찾아오는 흑인 노부부가 있다.

할머니는 70이 넘은 연세인데
항상 단정한 옷차림에 멋있는 하이힐,
총기 넘치는 말씨는 20년은 젊어 보이신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보다 연세가 더 많으시다.
굽은 허리에 항상 큰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시며
추억이 될만한 사진들을 카메라에 담으신다.
그리고 이분들은 2시간가량 되는 우리가게에
1년에 한 두 번씩 들러 향수를 구입하신다.

향수를 고르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는 할아버지.
두 분의 정겨운 모습은 항상 나에게 감동을 준다.
50년 넘게 살아온 숙성된 부부애에서만
우러나올 수 있는 사랑이기에 나는 그 사랑을 보는
특권을 누리며 항상 감사했다.

어느 한가한 오후,
그 날은 할머니의 77세 생신이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향수를 사러 오셨다.
할머니의 생일 선물을 하고 싶은 마음에
할머니 몰래 혼자 먼 길을 오신 것이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할머니가 항상 찾으시는 향수가
그날 따라 다 떨어진 것이다.
먼 길 오신 할아버지를 그냥 보낼 수가 없어
비슷한 향기를 찾아 권해 드렸다.

할아버지는 기뻐하시면서 그걸로 달라고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확인을 시켜 드리기 위해
향기를 맡게 해드리려고 향수를 코 밑으로 가지고 갔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괜찮다면서 그냥 달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Now that I am old, I cannot smell any.
It's no use for me.-
내가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냄새를 잘 못 맡아요.
코에 갖다대도 무슨 냄샌지 몰라."

난 순간적으로 코끝이 찡했다.
당신은 냄새도 맡지 못하시면서
아내의 생일 선물로 향수를 사러 오시다니...

할아버지의 떠나시는 차를 배웅하면서
나도 저렇게 아름답게 늙어 갈 수 있을까
보는 모든 이에게 빛이 되고 향기가 되는
그런 노후를 만들 수 있을까.

할머니의 77세 생신을 축하드리면서
두 분이 오래 오래 건강하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 아름다운 4월의 어느 날, Atlanta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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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보다 더 향기로운 사랑입니다.
이 향기가 이 세상 모두에게
잔잔하게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 사랑하라고 사람은 모여 삽니다 -